"이런 남자,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이런 남자,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몸의 일기 ③] 어느 이상적인 인간의 죽음
2015.08.18 11:53:31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기. 타인의 은밀한 기록이 눈앞에 펼쳐질 때의 기분은 상상만 해도 짜릿합니다. 그래서 기회만 온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임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유혹에 넘어가기 마련이죠. 그런데 여기 자신의 일기를 통째로 공개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 일기에는 열두 살 때부터 여든일곱 살까지 그 남자의 내밀한 기록으로 빼곡합니다.

그 남자의 첫 몽정(13세), 첫 섹스(23세), 첫사랑(26세), 첫아기(28세). 그의 첫 외과 수술, 즉 코 막힘과 코골이의 원인이 되는 코 안의 용종 제거 수술(27세), 오른팔 안쪽에 생긴 첫 검버섯(44세), 노안에 난생 처음 쓰게 된 안경(45세), 처음으로 본 손자(53세),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처음으로 망각한 일(62세).

이뿐만이 아닙니다. 49세 때 갑자기 찾아온 이명과 친구 되기, 60세가 넘어서면서 평생을 갈 것 같았던 아내와의 욕망이 사그라진 현상. 알츠하이머에 대한 공포, 손자의 동성애를 접한 70대 할아버지의 당혹스러움, 오랜 친구들과의 이별 그리고 갑작스런 손자의 때 이른 죽음. 그리고 시간 앞에 허물어져가는 자신의 육체. 마지막으로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기.

그렇습니다. 이 남자의 일기는 보통의 일기와 다릅니다. 우리가 그간 엿보았던 대부분의 일기는 내면의 정신 상태를 기록한 것이죠. 그런데 이 일기는 표면적으로는 철저히 '몸'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는 그 몸의 일기를 읽으며 비로소 알게 되죠. 그 남자의 몸에는 사랑, 갈등, 관계, 과학, 역사 등 세상의 온갖 것들이 가로지르고 있다는 사실을요.

우리는 그 남자의 몸의 일기를 엿보면서 한 남자의 자아를 찾아가는 긴 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얽히고설킨 온갖 등장인물의 이야기는 덤이고요. 이 특별한 일기를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가 <몸의 일기>(조현실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로 펴냈습니다. 페나크가 누구냐고요?

페나크는 '말로센 시리즈', 어린이 책 '까모 시리즈', <소설처럼>, <학교의 슬픔> 같은 소설, 에세이 등을 통해서 프랑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팬을 가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이 페나크가 일기 형식을 빌려서 '소설인 든 소설 아닌 소설처럼' 써내려간 작품이 바로 <몸의 일기>입니다.

<프레시안>과 문학과지성사는 이 <몸의 일기>를 먼저 읽은 여덟 명의 독후감을 매주 화요일, 금요일 두 차례씩 연재합니다. 20대의 젊은 작가, 40대의 의사, 60대 70대의 노(老)작가까지 다채로운 빛깔의 독후감이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세 번째 독후감의 주인공은 30대 초반의 소설가 박솔뫼 작가입니다.

어느 이상적인 인간의 죽음

▲ <몸의 일기>(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몸의 일기>는 최근 읽은 어떤 소설보다 흐뭇한 웃음을 짓게 되는 장면이 많은 소설이었다. 그 장면이 어떤 것이었는지 하나씩 꼽아보면 사실 대부분은 티조가 나오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티조가 일기 속에 등장하면 왠지 웃음을 띠며 책을 읽다 멈춰서 가만히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게 된다. 그다음으로 기억나는 장면은 에티엔이 나오는 장면들이었다. 왠지 서늘한 마음으로 그려보게 되는 우울하고 불안한 표정의 중년 남자.

갑자기 그가 물었다. 내가 바보 같은 소릴 했지? 나 바보가 다 됐지? 그의 눈빛이 갑자기 흔들렸다. 내 머리가 말이야…… 맛이 좀 갔어. (334쪽)

이렇듯 책의 후반부에 나를 멈추게 했던 페이지는 대부분 티조이거나 에티엔이었다. 그런가 하면 책의 전반부는 역시 비올레트 아줌마와 마네스 아저씨, 조르주 삼촌 등 다정하고 정다운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어떻게 몸을 갖고 그 몸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결국 천천히 바라보게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없었다면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어머니와의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토록 풍요로운 생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시기마다 주인공의 옆에 있었던 여러 얼굴들이 주인공 자신에 대한 언급보다 선명히 마음에 남는다. 거기에는 주인공의 청년기 이후 잊을 만하면 등장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팡슈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팡슈는 끝까지 멋있었다, 정말로 멋있었다.

확실히 이 소설에는 마음속에 남는 다정한 얼굴들이 많았다. 어릴 때 장난이 많고 귀여웠던 티조, 나이 들어서는 날카로우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중년의 티조, 기숙학교에서 열띤 토론을 하던 에티엔과 총기(聰氣)를 잃고 불안한 얼굴을 한 에티엔, 주인공 소년을 지켜주던 아저씨, 삼촌, 아주머니. 이들은 주인공과 함께 살아가고 같은 사회에서 서로 다른 역할들을 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겠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뭐랄까 만화나 동화에서 한 소년이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며 도움을 얻는 인물군(群) 같다는 느낌도 있다. 왠지 한 남자가 어떻게 자라나고 나이 들고 늙어 가는지를 보았다, 라기보다는 정말로 만화에서처럼 주인공을 지켜주는 친구와 어른들이 있고 도움을 받은 소년은 나무랄 데 없는 인격체로 자라 모든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내가 이 소설에 미심쩍은 느낌을 가졌다면 바로 그 점이었을 것이다. 주인공이 나무랄 데 없이 균형감 있는, 지나치게 바람직한 인간인 것이다. 일기라는 형식이 그것을 더욱 두드러지게 했으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거나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은 날카로운 지성과 적당히 예민한 감성, 춤은 못 추지만 건강한 육체를 갖췄고, 활발한 사회생활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능숙한 쪽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러는 중에 아내인 한 여자를 수십 년간 지극한 마음으로 사랑했다. 외도도 없었으며 외도로 보이는 장면도 주인공이 70대일 때 20대의 매력 있는 여성이 먼저 유혹한 상황으로, 그가 여전히 남성적인 매력이 충분함을 보여주는 증거를 던져주는 듯하다. 사실 그런 미심쩍은 마음은 그가 70대일 때까지 두고두고 남았지만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자 그런 마음은 모두 사라지고 나는 그냥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그의 삶과 죽음은 아마 내가 여태 보지 못했고 한국에서는 드물 것이며 점점 나올 가능성이 적은, 그리하여 내가 여태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정말로 보기 힘들 것 같은 어떤 성숙한 인간의 삶과 죽음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갖지 못할 것이다. 나와 이곳과 지금의 세대는 말이다. 그러한 다시 보기 힘든 전(前) 세대의 혹은 전 세대 유럽의 성숙하고 균형감 있는 마지막 인간, 그러나 특별히 시대를 대표하거나 성스럽거나 모두가 기억하는 자가 아니라 보통사람으로 성숙한 거의 마지막 인간의 죽음을 지켜본 기분이었고, 그렇기에 단지 어떤 특정한 개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슬픔이 아니라 '이런 사람은 이제 다시 오지 않고 오더라도 극히 드물어 더 이상 보통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와 같은 혼잣말을 마음속으로 되뇌게 되었다.

착각이겠지만 사실 작가인 다니엘 페나크가 예감한 것도 나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나오지 않을 어떤 종의 죽음, 다시 오지 않을 성숙한 인간들의 시대 그 자체를 그리기 위해 주인공이 등장인물들과 어떤 갈등을 겪고 어떤 내적 고통을 겪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점은 어떠하고 등을 모두 밀어내고 필요한 부분만을 담되, 그것이 지루하거나 어색하지 않을 수 있는 일기라는 형식을 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비관적인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을 다 읽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한 것은 읽기 쉽고 다정하고 과장과 과잉 없이 차분하며 세심한 소설이라는 것이다. 일기라는 형식은 그에 꼭 맞게 작동하지만 사실 그에 큰 포커스를 두지 않아도 읽는 데 부담은 없으리라고 본다. 이상한 결론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더 힘을 내고 싶고 내야겠고 그런 생각도 하기는 했다. 어떤 인간으로 죽을 것이냐는 질문을 피하기는 어려운 소설이기는 한 것이다 결국은.

(30대 초반의 여성인 박솔뫼 소설가는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습니다. 장편소설 <을>(자음과모음 펴냄) <백행을 쓰고 싶다>(문학과지성사 펴냄) <도시의 시간>(민음사 펴냄)과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자음과모음 펴냄)가 있습니다. 김승옥문학상, 문지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다니엘 페나크(Daniel Pennac)는…

▲ 다니엘 페나크. ⓒCatherine Hélie/Editions Gallimard

본명은 다니엘 페나키오니. 1944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나,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에는 열등생이었으나, 그 시기에 독서에 남다른 흥미를 갖게 되었다. 프랑스 니스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26여 년간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73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말로센 시리즈'와 어린이 책 '까모 시리즈'에서 보여준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 넘치는 표현으로 대중성과 문학성을 두루 인정받으며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밖에 강압적인 독서 교육을 비판하고 책 읽기의 즐거움을 깨우치는 <소설처럼>(문학과지성사 펴냄), 열등생이었던 어린 시절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학교의 슬픔>(문학동네 펴냄) 등의 에세이와 소설, 시나리오를 발표했으며, 한 남자가 10대부터 80대까지 몸에 관해 쓴 일기 형식의 소설 <몸의 일기>는 2012년에 발표되자마자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1995년부터 교직에서 물러나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교실을 찾아다니며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미스터리 비평상(1988년), 리브르앵테르 상(1990년), 르노도 상(2007년)을 수상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