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정치 혐오' 유발자는 누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정치 혐오' 유발자는 누구?

[정치 기사 뒤집어 보기] 언론이 정치를 만든다

"나중에 정치인 하려고?"

나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택시를 타면 기사 아저씨가 "학생, 전공이 뭐야?"라고 묻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럴 때면 고민 아닌 고민을 한다. 사실대로 "정치학이요"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같은 대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아유, 아가씨가 뭘 그런 걸 공부해?"
"나중에 졸업하고 정치인 하려고? 그럼 거짓말 잘해야겠네?"


이상하게도 내가 만난 택시 기사들은 정치학을 공부한다고 말하면, 정치인에 대해 평소에 갖고 있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게 투사했다. 잘못을 한 건 정치인들인데, 욕을 대신 들어야 하는 건 나였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같은 경험을 한 이가 적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간 인구 편차를 줄여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기 시작한 뒤부터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밥그릇 싸움만 하는 것들 더 많아져 봐야 뭐 해, 아예 깡그리 없애 버려야지!"


강의실에서 배운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었다. 갈등의 이면을 들춰 해법을 찾는 게 정치라고 배웠다. 그러나 강의실 바깥의 사회에서 정치는 냉소와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정치의 가능성을 믿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3월에 실시한 조사에선 우리나라 국민의 17.4%만이 입법부(국회)를 신뢰한다고 나타났다. 의회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다섯 명 중 한 명도 안 된다. 민주화 이후 투표율이 꾸준히 낮아진 것도 정치 불신이 낳은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반(反)정치의 정치학


사람들이 정치의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책임은 물론 정치의 무능에서 찾아야 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지적처럼,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은 정치가 자신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경험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러니 그들이 정치의 힘을 부정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지난해와 올해만 하더라도 세월호 참사, 메르스 확산 등 국민의 안전이 위태로운 상황에 정치는 없었다. 여당은 태만했고, 야당은 무능했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할수록 시민들의 관심이 중요하다. 정치학자 후안 린츠는 '정치적 무관심 속에서 권위주의가 자라나기 쉽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수록, 이미 돈과 권력 등의 자원을 가진 기득권층의 힘이 세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권위주의 체제가 잘 알고 일부러 정치적 무관심을 조작하기도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전두환 정권의 '국풍 81'과 같은 '3S' 정책이다. 스포츠·섹스·영화 등으로 시민들의 관심을 돌려,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시민의 수를 최대한 줄이는 전략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정치를 싫어하고 멀리할수록 그 피해는 결국 시민들에게로 돌아온다.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치 혐오증의 이득을 보는 세력도 존재한다. 정치발전소 박상훈 학교장은 이를 두고 "반(反)정치의 정치학"이라고 표현했다. 반(反)정치적 정서 역시 일종의 정치적 기획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다.

절반의 책임은 언론에 있다

시민들이 정치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가장 일상적인 통로는 바로 언론이다. 언론이 정치를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시민들이 정치를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여기 한국 언론이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다. 지난해 한국보도사진전 대상은 한 지방의회 의원이 시장을 향해 날계란을 던지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수상했다.

▲ 지난해 9월 경남 창원시의회에서 계란 투척 사건이 발생했다. 진해구 출신 김성일 시의원은 NC다이노스 야구장의 입지변경에 반대하며, 안상수 창원시장을 향해 계란을 두 차례 던졌다. ⓒ연합뉴스

정치인들이 의회 안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비단 지방의회뿐 아니라, 국회 안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분명 사라져야 할 부끄러운 모습이다. 정말, 이 장면이 지난해 일어난 일 중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한 사진평론가는 사진이 찍힌 바로 다음 순간에 계란이 과연 어디에 떨어질까 하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호기심'만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에 독자들이 길드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한겨레21> 제1047호, '넘쳐나던 세월호 사진은 어디로?', 송수영)

사진 보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언론은 정치의 부정적이고 갈등적인 면만 부각해서 보도하는 데 익숙하다. 신문의 정치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 중 하나가 있다. 바로 '계파'다. 선거가 다가오면 언론들은 어떤 정치인이 어느 계파에 줄을 섰는지, 어떤 계파 안에 내홍이 있는지 등을 마치 게임을 중계하듯 보도한다. 갈등하고 반목하는 정치인들의 모습만 언론에서 보여주니, 시민들도 '정치인=싸움만 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기 쉽다.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들만 무조건 탓하기 어려운 이유다. 절반의 책임이 정치 그 자체에 있다면, 나머지 절반의 책임은 언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언론이 좋은 정치를 만든다"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면, 어디서부터 무엇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언론이 제대로 분석해야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비난이 아닌 비판이 필요하다. 야당의 계파 갈등이 문제라면, 누가 누구의 편에 있다가 누구의 편으로 옮겼는지를 중계하듯 보도할 것이 아니라, 계파 갈등이 어디서부터 왜 시작됐고, 야당이 여당과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하는데 계파 간 갈등이 어떻게 방해가 되는지를 분석·보도해야 한다. 이런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갈등적인 모습만 부각하는 보도는, 시민들이 정치의 무능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보다 정치에서 기대를 거둬버리도록 만든다.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언론 보도는 정치인들이 좋은 정치를 하고자 하는 동기도 사라지게 한다. 얼마 전 국정감사장에서 '코뽕', '쌍커풀 안경' 등 성형 보조 기구를 착용한 한 국회의원 보좌관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성형 보조 기구의 부작용을 알리기 위한 기획이었다. 그러나 국정감사 기간에 의원들이 '튀는' 행동을 해야 언론에 한 줄이라도 언급될 수 있다 보니,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장에서 경쟁적으로 기행을 벌이는 관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언론이 정치인들이 내놓는 정책이 아닌 그들이 보이는 자극적인 언행만 따라간다면, 정치인들은 좋은 정책을 입안해 시민의 삶을 바꾸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진다.

정치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해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정치에 대한 혐오뿐 아니라 언론에 대한 혐오도 키운다. 주변을 둘러보면, '신문을 보면 늘 사람들이 싸우는 이야기만 나와서 싫증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삶도 전쟁인데, 굳이 언론에서 전쟁처럼 묘사하는 정치권의 이야기를 더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진다. 정치 혐오증을 부추기는 정치 기사는 결국 정치에도, 또 언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좋은 독자가 좋은 언론을 만든다"

지난해 11월 정치발전소 박상훈 학교장과 몇 명의 회원이 <정당론> 강의노트 읽기 모임을 갖던 중이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 정당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기는 기사가 많다는 불만이 나왔다. 그때부터 정치권의 무능을 비판하면서도 정치가 가진 가능성마저 부정해 버리지는 않는 기사를 찾아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몇 달 뒤에는 아예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을 꾸렸다. 기자 지망생 둘, PD 지망생 하나, 그리고 정당 홍보실에서 논평을 쓰는 당직자 한 명, 총 네 명이 모였다. 매주 언론에 실리는 정치 기사들을 모두 찾아 읽었다. 찾다 보니 정치의 기능을 긍정하면서도 정치의 무능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기사들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이런 기사들을 모아 시민들에게 소개하면,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냉소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무엇보다 언론에도 좋은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겼다.

ⓒ정치발전연구소

우리는 좋은 독자가 되어 보기로 했다. 지난 6월에는 팀원을 공개적으로 모았다. 20,30대 20여 명이 모였다. 기자 지망생, 정치인 지망생,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대학생, 직장인 등. 각자가 처한 상황도 다르고, 각자가 가진 목표도 서로 달랐다. 좋은 정치를 위해서는 좋은 언론이 필요하고, 좋은 언론을 위해서는 좋은 독자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같았다.

팀원들은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 동안 민주주의, 정당정치, 선거제도, 그리고 저널리즘 등에 대한 세미나를 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의 <정치의 발견>(후마니타스 펴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펴냄),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박수형·현재호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을 읽으며 반정치주의가 민주주의적 정치 문화를 만드는데 어떻게 걸림돌이 되는지 고민했다. 또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정치발전소와 서울지역 정치외교학부 연합동아리 '여정'이 프레시안에 공동 연재한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 기사도 어떤 선거 보도가 바람직한지에 대해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됐다. 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의 <텍스트 읽기 혁명>(김원옥 옮김, 다산초당 펴냄), 그리고 <한겨레21> 안수찬 편집장의 <뉴스가 지겨운 기자>(삼인 펴냄)를 통해 언론 환경을 이해하고, 정치 기사가 생산되는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지난 여정은 좋은 정치 기사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이었다. 이제 총 10차례의 연재를 통해 우리가 나름대로 찾은 좋은 정치 기사와 나쁜 정치 기사의 사례를 유형별로 소개해 보기로 했다. 우리의 활동이 한국 언론,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한국 정치에 작은 자극이나마 가져다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