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시작은 내게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산달에 마지막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아이 심장이 갑자기 뛰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에 급히 제왕절개로 출산한 후, 통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슴이 돌처럼 굳어갔다. 젖몸살이 너무 심한데, 아이에게는 어떻게든 젖을 물려야 했다. 아이가 입을 오물거리면, 언제든 가슴을 풀어헤쳐 수유에 온 정신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 낯설고 힘들었다.
잠은 늘 부족했고, 밥은 제때 먹을 수 없었으며, 집은 아무리 치워도 금세 엉망이 됐다. 쳇바퀴 굴러가듯 억눌린 이 삶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나를 통해 세상에 나온 아이는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상은 하루하루가 긴 터널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다른 엄마들도 다 이렇게 사는 것인지, 뭔가 잘못되고 있는 건 아닌지 늘 불안했다. 나의 자아는 본연의 내 모습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슬픔과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서리쳤고, 하루하루 버겁게 흘러갔다.
'그래도 엄마니까 참고 견뎌야 한다'는 당위성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입시키며 훌륭한 엄마가 되기 위해 탐구했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일 외에도 '어릴 때부터 적절한 자극을 줘서 영재로 키워야 한다'는 비장한 목표를 세웠다. 한밤 수유로 잠이 모자란 중에도 졸린 눈을 비비며 전화 영어로 영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새벽까지 '우리 아이 영재로 만드는 법'에 관한 각종 육아 책을 섭렵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지금 시기에 필요한 장난감이나 교구 정보를 긁어모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나 자신에 대한 부족함은 커졌고, 육아를 즐겁고 알차게 하는 다른 엄마를 볼 때는 박탈감마저 느꼈다.
잠시라도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점점 남편의 퇴근 시간에 집착했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가면 멍하니 혼자 앉아 있는 그 잠깐의 시간이 좋아서 넋 놓고 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를 품에서 잠시 떼어놓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시간조차 황홀하게 느껴질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세정아, 지금은 그냥 시간 때우는 중이라고 생각해야 해. '나 죽었다' 생각하고 살아. 다른 엄마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어."
친한 언니의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나를 더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이가 커갈수록 기쁨은 컸지만, 육아에만 전념한 내 삶은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답답했고, 숨통이 조여왔다.
운명처럼 다가온 '품앗이 육아'의 기회
그런 내가 '육아'에 대해 좀 다른 생각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첫 아이가 생후 8개월에 접어들었던 2009년 3월 어느 날이었다. 내가 살고 있던 경기도 남양주 시청에서 '품앗이 교육 설명회가 있습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아이를 낳은 후 자녀교육에 관심이 지대했던 나는 바로 강의 신청을 했다. 강의 당일, 서울에 사는 친정 엄마를 오게 해 아이를 맡기고 그곳으로 향했다.
사실 강의보다 혼자 어디를 갈 수 있는 자유가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고 싶은 욕심으로 참석한 자리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강의는 놀라운 떨림과 메시지를 던져줬다.
딸 여섯을 동네 아줌마들과 품앗이로 키우고 있다는 강사의 경험담. 다만, 마음 맞는 엄마들과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을 나눠 아이들을 함께 키우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나 죽었다' 생각하고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라던 육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강의 한 번으로 '품앗이 육아'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란 역부족이었다. 주변에 친한 엄마들도 없었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결국 첫 아이를 나 홀로 13개월을 키운 뒤,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저녁에 돌아오면 그렇게 마음이 짠하고 아플 수가 없었다. 아침마다 아이를 맡기며 눈물을 훔쳤고, 집에 돌아와서는 종일 어린이집 안에서 답답하게 있었을 아이가 안쓰러워서 마음이 미어졌다.
첫아이를 낳은 지 3년 만에 둘째를 낳았다. 이미 한 번 경험한 일이라, 당혹스러움은 이전보다 훨씬 줄었지만 외로움과 버거움은 여전했다. 둘째가 생후 10개월이 된 어느 날,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진행한 '북스타트 교육(생후 3~18개월 아이 대상으로 책과 함께 키우자는 부모교육 운동의 일환)'에 참여했다. 행사가 끝난 후, "책과 함께 아이 키우기를 여러분이 함께해보시는 것 어떠세요?"라는 담당 선생의 제안에 10명의 엄마들과 마주 앉았다.
앞으로 엄마들끼리 '품앗이 그림책 읽어주기 모임'을 하자는데 의견을 모은 순간, 머릿속에 불빛이 번쩍했다. 첫아이 출산 후 육아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때 그 강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네 아줌마들이 작은 재능을 모아서 '품앗이'로 아이를 키운 이야기!
"제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열게요. 카페가 있으면 지속적인 활동을 하기에 편할 것 같아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겠다고 자처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은평 북스타트맘'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시작하고 2주에 한 번 품앗이로 그림책 읽어주기를 진행했다.
그냥 혼자 처박혀 애 키우고 말지!
모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은평구 소식지에서 '마을공동체지원사업'에 대한 안내를 봤다. '3인 이상이면 신청 가능'이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우리 모임인원이면 충분하겠는데? 더군다나 예산까지 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괜찮은 일인가!' 싶었다. 가까이 사는 언니에게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한번 해보자는 것 아닌가. 다음날 오전,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알아보니 우리도 할 수 있겠더라. 양식 다 뽑아놨으니까 다 같이 모여서 의논해보자."
며칠 후, 우리는 이마트 푸드 코트에서 각자 아이를 안고 모였다. 손에는 카페를 통해 공유한 '마을공동체 지원서 양식'을 들고. '한번 지원해보자'는 의견이 모였고, 신청을 위한 단체등록을 하다 엉겁결에 '은평품앗이육아' 대표가 됐다. 얼마 후, 서류에 합격했으니 면접하러 오라는 서울시의 연락을 받았고, 마지막 과정까지 무사히 통과해 작은 그림책 읽기 모임이 덜컥 '서울시 마을공동체'가 됐다. 비로소 그토록 바라던 '품앗이 육아'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사업을 진행할수록 이 일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일인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아이들은 저쪽으로 밀어놓은 채 회의하고 이견을 조율하느라 진땀을 뺐다. 나야 굶어도 그만이지만, 아이들은 무슨 죄로 제때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야 하나.
'좋은 엄마가 되려고 품앗이 육아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하는 게 맞아?'라는 의문은 우리 곁을 떠날 줄 몰랐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울고 지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같이 멘붕에 빠졌다. '그냥 집에 혼자 처박혀 외롭게 애 키우고 말지, 왜 외롭지 않은 육아 좀 해보겠다고 나와서 이 생난리인가'라는 생각이 암암리에 퍼졌다.
그저 내 아이를 행복한 관계 속에서 키우고 싶고, 나도 좀 쉬운 육아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그래서 시작만으로도 꿈같았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사람들의 의견은 왜 이렇게 다양하고, 입장 차이는 왜 이렇게 큰지, 정말 울고 싶었다. 자, 이런 마음을 어떻게 풀면 좋을까? 결국 회의가 끊임없이 이어져야만 하는 현실….
단지 '육아'라는 공감대 하나만으로, 서로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 확신은 위험했다. 더군다나 아이들과 함께 모임을 진행하다 보니, 그 기준이 천양지차기 때문이다. 반면, 공동의 모임이라고 해서 개개인의 주관적인 가치나 판단을 무시하면 안 될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이의 성장에 맞춰 움직이는 '품앗이 육아'에서 어떤 객관적인 지표나 룰을 들이대 방향을 잡는, 매우 경직되고 불쾌한 모임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경험으로 조금씩 알 수 있었다.
우여곡절 '품앗이 육아', 어느덧 5기까지
어찌 됐든, 우리는 북스타트로 시작한 모임이었기 때문에 취지와 정체성을 살려 '책과 함께 자라는 아이와 엄마'라는 슬로건으로 사업 계획을 세웠다. 2주에 한 번 하던 모임을, 일주일에 두 번으로 늘렸다. 그 중 하루는 아이들을 위한 '엔젤데이'로 정해 좋은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거나 아이 월령에 맞는 오감자극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좋은 그림책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엄마가 먼저 좋은 그림책을 선별할 수 있는 눈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일주일에 하루 '맘스데이'를 통해 그림책 이론서와 좋은 작가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엔젤데이'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큰 무리가 없지만, '맘스데이'는 아이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가운데 엄마들끼리 토론을 진행해 다소 버거운 면이 있었다. 그래서 간혹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반발이 일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돌아다니면서도 엄마들이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 배웠다. 서로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엄마들의 모습에서 아이들도 소통과 공감을 알아갔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2012년 6월부터 지금까지 3년 연속 서울시 마을공동체로 선정돼 '품앗이 육아'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는 북스타트 행사를 하던 도서관에서 장소를 지원해줬지만, '마을공동체'라는 의미를 확장하기 위해 새 장소를 마련해야 했다. 많은 시련과 노력 끝에 신사종합사회복지관을 만났고 2013년 초, 2기 모집을 위한 오픈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처음 열 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어느덧 서른 명이 훌쩍 넘었다. 한 개의 모둠에서 월령별로 나뉜 세 개의 모둠으로 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의 활발한 활동을 인상 깊게 본 복지관 측에서 우리만의 육아사랑방으로 쓰라며, 복지관의 빈 공간을 내줬다. 덕분에 벌써 5기 신입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맛에 '품앗이 육아'를 하지!
'각자 반찬 한 개씩 가져와서 오늘 수업 끝나고 같이 점심 먹어요.' 어느 날, 단체 카톡창에 누군가 제안을 했다. 사람들의 가방은 평소보다 묵직했다. 한 가지만이 아닌, 두세 가지 반찬을 더 챙겨온 이도 있었다. 밥도 넉넉히 가져와 부족한 사람이 없는지 서로 살피기 바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끼니 한 번 챙겨 먹는 것도 어려운데, 그 고충을 '행복한 밥상 잔치'로 승화시킨 것이다. 입이 즐거우니 마음도 풀어지고 기분도 좋아졌다. 그런 엄마들을 보는 아이들도 기분이 좋은지 맘껏 뛰어다녔다.
이것이 바로 '품앗이 육아'의 매력이다. 우리끼리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모임이 새로운 이들의 감탄을 자아낼 때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단지 모였을 뿐이고, 좀 더 모여 보자고 애썼을 따름인데, 처음 온 엄마들은 대단하고 놀랍다면서 찬사를 보내곤 한다. 그동안의 어둡고 외로운 육아의 터널을 환한 길로 바꾸고 싶다며 손을 내밀 때 참 뿌듯하다.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볼게요.' 그들의 서툴지만 예쁜 시작이 어느덧 따뜻한 공동체 의식을 발휘할 정도로 성장하면 매우 기쁘다.
"눈을 뜨면 갈 곳이 있다는 게 행복해요."
"저는 '품앗이 육아' 덕분에 산후우울증이라는 걸 몰랐던 것 같아요."
"여기가 아니었다면, 저는 진짜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이곳은 저에게 목욕탕과 같은 곳이랍니다. 육아로 찌든 때를 말끔히 벗겨주는 곳이거든요."
"친정이 멀어서 갈 수 없는 저에게 친정 같은 곳이죠."
나 홀로 외로운 육아를 하던 엄마들은 눈을 뜨면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게 그저 행복하다고 말한다. 갈 수 있는 어딘가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단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마음을 터놓고 어울리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적어도 홀로 속 뒤집히는 육아를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입을 모은다. 내 아이에게 함께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긴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고, 비싼 돈 주고 갔던 문화센터에서 관계를 이어가기 어려웠던 것에 비하면, 이 모임을 통해 얻은 행복은 너무 크다고 얘기한다.
'품앗이 육아' 엄마들의 그릇이 이젠 지역과 사회 연대로까지 뻗어 나가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지역 단체와 엄마와 아이의 쉼터가 될 수 있는 '마더센터'를 만들고 있다. 마을공동체로서는 관록 있는 모임이 되었기에, 여러 마을공동체를 탐방하거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해 공부도 한다.
최근에는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불러 모아 재미있는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율동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처음엔 내 아이 하나 챙기기도 버거웠던 엄마들이 이제 동네 아이들에게까지 무엇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내 아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친구들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우리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좀 더 관심 있게 볼 수 있는 눈을 자연스럽게 키워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오히려 아집이 강해지고 독단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하는 엄마들도 있다. 또 그런 엄마들의 영향으로 아이들도 불행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집에서 아이와 단둘이 지냈다면 알 수 없었던 것, 사람에 대한 이해와 협력, 공감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때로는 나를 아프게 했던 이들 속에서 다시 위로받고 힘을 얻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린 품앗이 육아를 통해 엄마수업, 인생수업을 제대로 받고 있는 게 아닐까.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민들레>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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