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면에서 <컨테이젼(Contagion)>(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2011)이란 영화는 기존 영화문법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맷 데이먼, 마리옹 꼬띠아르, 케이트 윈슬렛, 주드 로, 기네스 펠트로 등 여느 영화에서는 당연히 주연을 맡을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데도, 그들이 영화 내에서 맡은 배역은 별 존재감이 없다. 영웅이 아니라 그저 'MEV-1'(영화상의 가상의 바이러스)에 던져져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는 평범한 존재들에 불과하다.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 하는 신종전염병의 발생과 확산, 그리고 그 기원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추적하고 있을 뿐이어서, 시각적 만족감이나 점차 고조되는 감정선 같은 것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에피데믹(Epidemic): 인간이 확산시킨 바이러스
<컨테이젼>은 첫 번째 전염 양상을 파헤치는 데에도 상당 부분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영화는 공항의 바에서 견과류에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마른기침을 하는 한 여성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감염자이자 슈퍼전파자(super-spreader)가 된 그녀가 건넨 신용카드를 받은 바의 점원을 포함하여, 그녀가 최초로 감염된 카지노에서 그녀와 접촉한 사람들이 세계 각지로 퍼지면서 바이러스도 전 세계로 확산된다.
한두 사람으로부터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간 바이러스를 역추적하면서 역학조사를 하는 과정도 꽤 흥미를 끌지만, MEV-1 바이러스가 최초로 인간 세계로 퍼지게 된 과정을 영화의 마지막에 보여줌으로써 전염병 대유행에서 결국 인간이 가장 큰 책임이 있음을 암시한다.
2003년 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이나 지난해 에볼라 출혈열, 그리고 최근의 메르스까지 보유 숙주(인수공통 바이러스가 대개 증상을 일으키지 않고 장기간 몸속에 기생하는 생물체1)로 박쥐가 가장 강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숲 속 깊숙이 서식하는 박쥐가 열대우림의 난개발이나 가뭄, 환경파괴 탓에 먹이부족 등으로 마을로 내려와, 돼지·낙타와 같이 인간의 가축과 접촉하면서 바이러스가 확산되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컨테이젼>이 사스(SARS)의 실제상황을 상당 부분 차용했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MEV-1 바이러스는 박쥐와 돼지의 염색체가 교차 배열하고 있다는 정보를 던져준다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개발로 서식처를 잃은 보유 숙주 박쥐가 마을로 내려와 돼지와 접촉하게 되고, 그 돼지를 만진 요리사가 다시 다른 인간을 전염시킨다. 그리고 세계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카지노나 공항이 상징하는 '세계화'는 저 멀리 열대원시 우림에 꼭꼭 숨어 있어야 할 바이러스가 바로 순식간에 내 나라, 내 집까지 마치 '페덱스(FedEx)'로 택배를 받듯이 '배달'되는 슈퍼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메르스는 특히 의료시스템의 후진성이 슈퍼전파자 역할을 했다. 낙타가 아니라 '일류'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MERS-CoV)의 진정한 숙주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똑똑히 목격했다. 또한 OECD 평균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한 공공병원, 환자들의 대형병원 밀집현상, 감염확산에 취약한 응급실, 간병으로 인한 가족 감염, 감염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의료진과 병원노동자 등 그간 한국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이라고 지적되던 것들이 바이러스 확산의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국가방역체계의 공백과 정부의 무능은 안 그래도 허약한 면역체계를 망가뜨리는 데 일조했다. 결국 '원조'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나와 메르스가 아니라 '코르스(KORS)'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올 지경이었다.
인포데믹스(Infordemics): 알 권리와 불안조장 사이
전염병의 원인과 매개 양태와 같은 정보는 첫 번째 의미에서의 전염뿐만이 아니라 두 번째 의미에서의 전염의 확산을 막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컨테이젼>의 신종전염병은 인류가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다. 원인이 뭔지, 기초감염재생산수(R0, 어떤 집단의 모든 인구가 감수성이 있다고 가정할 때 한 명의 감염병 환자가 감염 가능 기간 동안 직접 감염시키는 평균 인원수)가 어느 정도인지, 잠복기와 치사율이 어느 정도인지와 같은 정보에 인간은 무지했다. 당연히 영화에서도 보건당국과 정부는 사람들의 불안을 질병의 확산만큼이나 우려하며,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정보를 차단하려고 한다.
지난 6월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긴급브리핑을 통해 서울 소재 당시 'D병원' 확진의사의 동선 등을 공개하고 정부에 메르스 발생 병원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을 때 이것이 알 권리인지, 아니면 불안 조장과 사생활 침해인지에 대한 논쟁이 매우 뜨거웠다. 하지만 알 권리/불안조장 또는 과잉대응/늑장대응이라는 이분법만이 중요한 논점일까?
'인포데믹스(Infordemics)'는 정보(information)과 전염병(epidemics)의 합성어로 '정보전염병'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는 감염병 자체에 대한 공포가 제한된 정보나 루머와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것을 뜻한다. 이는 '21세기 흑사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중들의 동요를 유발하며 합리적인 대처를 가로막는 치명적인 기능을 한다.
영화에서 바이러스에 '개나리액'이 효과가 있고 정부는 거짓말만 하며 제약회사만 떼돈을 벌 것이라는 음모론이 블로그를 통해 엄청나게 확산된 것과 유사하게, 한국에서는 '바셀린을 콧속에 바르면 예방할 수 있다'던가 '비타민C가 바이러스를 퇴치한다'와 같은 근거 없는 '민간요법'이 인터넷을 타고 퍼지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인포데믹스를 최소화하는 데에는 정보의 공개 여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정보의 올바른 유통이다. 예를 들어, 메르스와 관련해 보건당국이 금과옥조처럼 여긴 '2m 이내 공간에서 1시간가량 밀접 접촉하면 바이러스가 전염된다'는 원칙은 많은 전문가들에 의하면 근거 없는 기준에 불과했다. 또한 메르스는 이미 201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이후에 어느 정도는 알려진 바이러스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비밀주의로 인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메르스는 기초감염재생산수가 0.7로 알려졌었지만, 인구 밀도가 낮은 사막지역의 수치를 과밀화된 병상을 자랑하는 한국에 문서 그대로 적용시켰다. 방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초동대처에 완벽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슈퍼전파자인 14번 감염자의 경우 전체 확진자의 1/3에 해당하는 63명을 감염시켰고 그중 삼성병원에서만 60명을 감염시켰다. 영화에서는 한 도시에 파견된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역학조사관도 이 점을 지적한다. 기초감염재생산수를 결정하는 것이 전염병 대책 수립에 중요하지만, 이를 결정할 때에는 잠복기, 감염기간, 감염가능인구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고 말이다. 한국 정부도 모르는 것을 알려주니 참으로 교육적인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박근혜 정부의 뚝심
두 달 정도 우리나라를 강타한 메르스는 한국 사회에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공포와 불신을 감염시켰다. 물리적 전염과 심리적 전염을 봉쇄하는데 모두 실패했다. 초동대처에는 그토록 미온했던 정부는 메르스를 종식하는 데에는 매우 신속했다.
하지만 메르스는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메르스 국면에서도 집권 여당은 "메르스로 원격의료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황당한 소리를 했고, 박근혜 정부는 실제로 메르스의 숙주 삼성서울병원에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또한 메르스가 한창이었던 6월 중순 제주도에서는 영리병원을 설립하기 위한 절차가 다시 진행되었다. 심지어 메르스가 아직 진정되기도 전인 7월 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의료수출 5개년 종합계획' 마련에 착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메르스 관련 추경에서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을 위한 예산 101억 원은 전액 삭감되었고, 메르스 확산에 책임이 있는 유력 대형병원은 면죄부를 받았다.
중동에 의료수출을 한답시고 의료인력과 의료기술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것으로는 가릴 수 없는 삼류 의료시스템의 민낯, 전염병에 취약한 병원구조와 공공병원의 부재. 이런 것들을 새삼 다시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박근혜 정부의 뚝심이야말로 186명이 감염되고, 36명이 목숨을 잃은 메르스 바이러스보다, 낙타보다, 박쥐보다, 슈퍼전파자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닐까.
<의료와 사회>는 건강권과 보건의료운동의 쟁점을 정리하고 담아내는 대중 이론 매체입니다. 한국의 건강 문제는 사회와 의료,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볼 때만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와 사회>는 보건의료·건강권 운동 활동가 및 전문가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건강을 위한 사회 변화를 논의하는 장이 되고자 합니다.(☞ 바로 가기 :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