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기독교-월남자 동맹의 합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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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통] <대한민국은 왜?> 펴낸 김동춘 교수
2015.11.03 20:50:34
3일, 결국 정부가 중·고교 역사 교과서를 현행 검정 교과서에서 국정 교과서로 바꾸기로 했다. 새 국정 교과서는 2017년부터 교육 현장에 배포된다.

정부 정책이 바뀌지 않는 이상, 우리의 학생들은 정부가 만든 획일화된 목소리만 실린 교과서로 '정답'을 외게 될 것이다. 이 교과서에 제주 4.3 사건 때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 대량 학살이 실릴 가능성은 없다. 심지어 박정희의 쿠데타는 '혁명'으로 묘사될 수도 있다. 일제 강점기가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시각이 실릴 가능성도 있다.

현대사가 '역사 쿠데타에 무너진' 날, '독서통'은 <대한민국은 왜?>(사계절출판사 펴냄)라는 제목의 신간을 낸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와 만났다.

김 교수의 이 책은 앞서 '프레시안 books'에서도 소개된 바와 같이 한국 현대사 100년을 놓고서 우리의 뿌리가 어디서 왔는지 추적한다. 친일파가 해방 후에도 왜 득세하게 되었는지, 왜 한국에서 기독교와 극우 세력이 결합했는지,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한국을 지배하게 되었는가를 그 연원부터 밝히며 어제와 오늘 또 내일을 함께 고민한다.

한국 학사(學史)에 수치스러운 날로 기록될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독서통'과 김동춘 교수와의 인터뷰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했다. 정신없이 지나간 한 시간 동안 김동춘 교수는 새로운 생각의 거리를 던졌다. '독서통'은 김종배 <시사통> 편집인과 강양구 기자가 공동으로 진행한다.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가려면 노무현, 김대중 정부에서 만든 각종 과거사위원회에서 새롭게 밝혀진 진실이 (교과서에) 반영되는 쪽으로 가는 게 바르다고 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정부의 역사 반동, 오래가지 못할 것"

독서통 : 화요일의 독서통 시간입니다. 지난해 세월호 사태 이후 '대한민국은 도대체 왜?' 하는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또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어가 '헬조선'입니다. '이게 나라냐, 지옥이냐'는 겁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은 왜?>라는 책이 이번에 나왔습니다. 부제로는 '1945년부터 2015년'이 붙어 있습니다. 현대사를 쭉 훑은 책입니다. 출판사는 사계절출판사입니다. 저자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텐데요, 성공회대학교의 김동춘 교수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김동춘 교수를 모시고 말씀을 나눠 보겠습니다.

요즘 국정 교과서 논란에 딱 맞춰서 이 책이 나왔습니다. 오늘 교수님께서 여러 가지 말씀을 해주시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어서 오십시오, 교수님. 반갑습니다.

김동춘 : 반갑습니다.

독서통 : 책 집필을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김동춘 : 올 1월부터 시작했습니다.

독서통 :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김동춘 : 제가 작년에 안식년을 지냈습니다. 독일에 있을 때 세월호 참사가 났습니다. 여러 가지로 굉장히 우울했습니다. 또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잖습니까. 그래서 뭔가 말하고 싶은 걸 책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래는 짧은 소책자를 쓰려고 했는데, 한국 사회가 너무 복잡하다 보니 최대한 줄인 게 이 정도입니다.

독서통 : 딱 300쪽입니다. 학자들을 만나 뵈면 경계선이 참 엄격하시더라고요. '이건 내 영역이 아니다'는 거죠. 그런데 김동춘 교수님은 사회학자인데 현대사 책을 쓰셨어요. 어떤 문제의식이 역사라는 영역에서 글을 써야겠다는 결정을 낳은 건지 소상히 말씀 부탁합니다.

김동춘 : 저는 역사와 한국 사회의 현재를 분리하지 않습니다. 제가 과거에는 노동 운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고, <전쟁과 사회>(돌베개 펴냄)라는 한국 전쟁을 다룬 책도 썼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분단 체제에 있고, 준 전쟁 체제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전쟁이나 과거의 학살을 모르면 오늘의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옛날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한국 사회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역사를 끌어들였죠. 사실 역사를 통해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여기의 한국'입니다.

독서통 : 서문을 보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퇴행 때문에 글을 쓰게 됐다"고 밝히셨습니다. 어떤 얘기입니까?

김동춘 : 이명박 정부가 등장했을 때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를 평가하는 다른 자리에 참석한 적 있습니다. 당시 저는 다른 사람보다 약간 우울하게 전망했습니다. '이 체제가 조금 오래갈 것 같다'는 거였죠.

심지어 저는 '파시즘'이라는 용어도 썼습니다. 한국 사회의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취약하다고 여겼죠. 그걸 지탱할 수 있는 시민 사회의 힘이 취약하고, 대안 세력이 조직화되어 있지 않고, 미디어 환경도 열악하고, 대학 중에도 우리 사회의 지적 기반을 지탱해줄 수 있는 제대로 된 대학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당시 앞날을 약간 우울하게 전망했었죠. 그런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우울하게 가고 있습니다. (웃음) 최악의 방향으로 가게 된 데 대해서 저 자신도 참 우울하고,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통 : 1월부터 집필하셨다고 했는데, 당시는 역사 교과서를 놓고서 이런 일이 전개될 거라고 예상하셨습니까?

김동춘 : 아니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요. 원래는 8.15에 맞춰서 내려고 제가 5월 즈음에 집필을 마치는 거로 계획했는데, 학기 시작하니까 일이 너무 많아서 계속 연기하다가 지금까지 온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 이렇게 역사 교과서 파동과 책 출간 시점이 겹쳤습니다.

독서통 : 그런데 책을 보니 이미 역사 교과서 관련해서 언급해 주셨어요. 이명박 정부 때 역사 교과서 검·인정 체제를 강화하면서 교과서 내용이 얼마나 왜곡되고 문제가 되는지를 짚어주셨죠.

김동춘 : 이명박 정부 때 건국절 논란이 있었죠. 제가 <황해문화>란 잡지의 편집자문위원이기도 한데, 그때 건국절 논란을 놓고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금성 교과서를 놓고서 소동이 났을 때 '국정까지는 아니지만 이 사람들이 결국 교과서를 갖고 미래 권력까지 잡으려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했죠.

저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 저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이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을 치는 것이고, 그다음이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일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역사 교육을 건드려서 미래까지 장악하려 하지 않겠는가 하고 우려했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검·인정 체제 강화도 모자라서, 이제 국정화까지 하려고 하니….

독서통 : 바로 오늘, 김동춘 교수님과 독서통을 진행하는 이 시간에 확정 고시가 이뤄집니다. 되돌릴 수 있다고 보세요?

김동춘 : 이것이 일종의 정권 수준의 프로젝트기 때문에 정권이 교체되면 되돌려질 것으로 생각하고요, 교체가 안 되더라도 이게 과연 지탱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물론 제가 아까 우울하게 전망했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민주화 과정에서 쌓인 역량이 있으니까요.

또 (과거)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왔을 때는 과거의 국정이 너무나 편향적인 교과서였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거든요. 검·인정으로 오른쪽에서 이제 겨우 중간 정도로 왔는데 그걸 '좌파'라고 하니까 상황을 잘못 본 거죠.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으로 보더라도 중간 정도인데 그걸 좌파라고 하니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약하죠. 

독서통 : 그런데 한 가지 우려스러운 건, 정권이 바뀌거나 상황이 바뀌면 당연히 원상 복귀하려는 시도가 있을 텐데요, 그때 다시 정치적 논란이 재현될 테고, 결국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논란이 재현되는 모습이 보인다면 바람직할 것 같지 않습니다.

김동춘 : 저는 검·인정 체제도 이상적이지 않고 자유발행제가 좋다고 보고 있고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어쨌든 정부가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법적 장치를 마련해두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서통 : 교수님께서는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도 지내셨습니다만, 일각에서는 지금의 국정 교과서 파동은 일종의 반동일 수도 있다, 이런 분석도 있거든요. 이런 분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이세요?

김동춘 : 그렇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가려면 노무현, 김대중 정부에서 만든 각종 과거사위원회에서 새롭게 밝혀진 진실이 (교과서에) 반영되는 쪽으로 가는 게 바르다고 봅니다. 제주 4.3사건이라든지, 한국 전쟁 때 학살이라든지, 독재 정권의 인권 침해 사건 등. 그동안 검·인정 교과서에서도 담기 어려웠던 내용이 10년간 새롭게 밝혀진 게 많거든요. 그런 부분이 반영될 때 진정한 국민 교육이나 아랫세대를 위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그런 건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오히려 (교과서 국정화로 인해) 그 반대로 간다는 데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독서통 : 조금 전 교수님께서는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굉장히 취약하고 대학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도 국정 교과서 파동에서 전국의 수많은 대학 교수들이 집필 거부나 반대 성명을 내고 있습니다. 이건 '오죽하면 저럴까'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까?

김동춘 : 그렇죠. 일종의 '마지막 양심'이라고 할까요? 연구하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이 아니겠습니까. 다양한 사상이나 입장을 용인해야만 학술 연구가 이뤄질 수 있고, 거기에 기초해야 교육 연구가 이뤄지는데, 만일 (교과서 국정화로 인해) 그게 부정된다면 자기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거니까요. 거기에 대한 일종의 마지막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독서통 : 학문할 수 있는 그 마지막 기반조차 흔들릴 수 있다?

김동춘 : 그렇죠. 최근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학문의 자유도 제한될 수 있다'는 이상한 발언을 했는데, 그렇게 하면 전체주의가 되는 거죠. (김무성 대표는 10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재외국민 투표율 제고를 위한 선거 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대학에 가선 학문을 자유롭게 배워야 하지만 고등학생까지는 술·담배를 못하게 하듯 교육도 너무 자율성으로 가선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윤치호의 나라, 친일파의 나라, 대한민국

독서통 : 이제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건 의례적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정말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습니다. 정말 재미있어서 빨려듭니다. 이 책 앞부분에서 윤치호와 안중근 얘기를 대비시킵니다. 어떤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 겁니까?

김동춘 :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오늘의 대한민국은 윤치호의 나라'라는 겁니다. 윤치호와 그 후예들, 그리고 윤치호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주류입니다. 윤치호와 다른 길을 갔던 안중근은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어요. 그게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기원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뤄낸 긍정적인 측면 물론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안타까운 점들, 그 고통의 기원이 바로 안중근이 혼자 총을 쏠 수밖에 없었고 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지점부터 시작합니다. 1905년 러일 전쟁 이후 100년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온 것이죠.

독서통 : '윤치호의 나라'라는 건 어떤 뜻입니까?

김동춘 : 윤치호는 원래 개화나 근대화를 추구한 사람이고요. 서구에 대해 동경심을 가졌지만, 미국을 다녀온 다음 미국인이 가진 인종주의적 편견에 실망하고 결국 '일본에 의해 식민지화되는 것이 우리에게 바람직한 길'이라는 노선을 죽을 때까지 견지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문화나 조선의 전통에 매우 큰 열등감과 부정적 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하면 서구의 것을 많이, 빨리 받아들여서 배우는 것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생각한 사람이었죠.

그래서 평생을 영어로 일기를 썼고요. 3.1 운동과 같은 독립 운동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짓, 안 되는 짓을 하는 사람으로 봤죠. 조선이 일본을 따라가려면 200년은 걸릴 것으로 생각한 사람이죠.

독서통 : 윤치호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엘리트의 주류를 형성했다고 보시는 거죠?

김동춘 : 그렇습니다. 물론 1945년 이후에 윤치호는 자살했고요, 새로운 판을 짤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고, 냉전 체제에 흡수됨으로써 식민지 체제가 연장됐죠. 저는 냉전 체제는 식민지 체제의 연장이라고 봅니다.

▲친일파-교회-월남 실향민-극우는 한 몸으로 뭉쳐 한국을 지배해 왔다. ⓒpixabay.com


비틀린 기독교 광신주의와 극우파의 결합

독서통 : 이 책을 보면 또 한 가지 대한민국 사회의 틀을 짓는 중요한 대립 구도로 기독교와 공산주의를 제시합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대목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 이념이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기원한 것도 아니고, 서구의 자유·평등·민주·공화의 가치와도 상관없는 기형적인 어떤 것으로 형성됐는데, 그 두 축이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대립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내용을 조금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김동춘 : 이건 사실 제가 먼저 한 얘기는 아니고 학자 중 일부도 이런 얘기를 하신 분이 계십니다. 황석영 씨도 <손님>에서 이런 내용을 언급한 적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신천 학살을 언급했습니다만,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게 북의 존재에 의해서 역으로 규정된 정체성이죠. 바로 공산주의에 대한 대항마로써 존재합니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하지만 애초 지켜야 할 자유민주주의 같은 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는 단지 허울뿐인 이름뿐이고 유일한 정체성은 '반공'뿐이니까요. 그래서 자유민주주의가 취약한 겁니다. 일거에 무너질 수 있어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으니까요.

물론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대결은 우리가 만든 건 아닙니다. 식민지와 냉전, 분단 때문에 강요된 것이기도 하죠. 그러므로 굉장히 비뚤어진 형태의 기독교, 비뚤어진 형태의 공산주의가 한반도에 들어와서 한국식 기독교, 한국식 공산주의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직까지도 우리를 지배하는 국가 이념으로 기능하죠. 

신천 학살은 1950년 10월 황해도 신천군에서 3만50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이다. 북한은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은 왜?>는 기독교도 역시 이 학살에 가담한 정황을 전하고, 북한 인민군도 이 지역에 숨어 있던 우익 청년과 천주교 신자를 학살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김동춘 교수의 말 대로 한국 전쟁 하에서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충돌이 가장 비참하게 일어난 사건인 셈이다.


독서통 :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독교는 사실은 '반공주의'를 말씀하시는 거죠?

김동춘 : 그렇죠.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신분 해방의 복음이었고 하층민에게 큰 희망의 메시지였는데 일제 강점기 때부터 체제와 타협하기 시작하면서, 또 해방 후에는 대형화, 물량화를 추구하면서 신앙의 중요한 내용 자체를 지키려는 사람이 오히려 소수화되어 버렸죠. 이런 과정에서 남한 기독교라는 것이 세계에서 찾기 어려운 형태로 변질되어, 기독교라기보다 교회겠죠, 우리가 가진 아픔을 치유하는 종교적 기능보다 그 고통을 더 가하는 쪽에 주로 서는 역할을 하게 되었죠.

독서통 : 극우 반공 이념으로 무장한 기독교 세력, 당장 해방 직후의 서북청년단(해방 직후 월남한 우익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미 군정 당시 조직된 극우 테러 단체. 제주 시민의 10%를 포함해 전국에서 30만 명에 달하는 국민을 좌경 분자 처단이라는 명목으로 탄압 혹은 살해했다. 서북청년단 소속의 안두희는 이승만의 친위대 역할을 했으며 김구를 살해했다)이 떠오릅니다. 지금도 대한민국 체제를 떠받치는 세력으로 (기독교 세력을) 봐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김동춘 : 그렇습니다. 기독교(정확히는 개신교죠)는 한국 지배 엘리트에 의해 엄청나게 과대 대표되고 있고요. 이 책에도 인용했습니다만 국회의원 구성이라든지, 엘리트 구성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타 종교나 일반인과 비교하면 종교 인구 이상으로 훨씬 과대 대표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제1공화국 같은 경우는 기독교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당시 교회가 정권의 엄청난 특혜 속에서 성장한 게 사실이죠.

독서통 : 일각에서는 민주화 투쟁 기간만 하더라도 개신교는 동참했는데, 1987년 이후 엄청나게 보수화됐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안 그랬는데, 이후 보수화되었다는 거죠.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뿌리부터 그랬다고 지적하십니다.

김동춘 : 제가 이쪽에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1945년을 전후로 기독교 지도자 중에서 중도파, 일부 사회주의자, 합리적 민족주의자, 자유주의는 신봉하지만 이승만 체제와 대립각을 세운 교인이 꽤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전쟁과 분단 과정에서 다 사라졌습니다. 결국, 한국에는 여러 가지 기독교 스펙트럼 중에서 특정한 쪽 사람만이 살아남게 되었다는 점을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습니다.

독서통 : 해방 공간 3년 동안 여론 조사를 보면, 오히려 당시 국민의 이념적 성향이 지금보다 더 왼쪽, 그러니까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웠다는 게 객관적 사실인데, 그 이후 우리가 오른쪽으로 내달린 것처럼 기독교도 마찬가지였다, 쏠림 현상이 심했다는 얘기군요?

김동춘 : 예. 이북에 남아있던 기독교도도 있지만, 해방 정국에서 한국 전쟁 전후로 사라진, 학살당한 사람도 많고 그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극우 반공주의 헤게모니 하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신대학교처럼 일부 남아있는 개혁적인 흐름이 있고, 이분들이 민주화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만, 전체 교세로 보면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교회와 월남인이 결합해 빨갱이를…

독서통 : 이 문제가 월남 실향민(남북 분단, 한국 전쟁을 거치며 북에서 남으로 이주한 사람들)과도 연결됩니까?

▲"좀 과격한 표현이지만 '남한은 월남자들이 만든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민자의 나라의 성격이 있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김동춘 :
그래서 제가 좀 과격한 표현이지만 '남한은 월남자들이 만든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한 겁니다. 이민자의 나라의 성격이 있습니다. 제1공화국의 전체 엘리트 구성이라든지, 이데올로기라든지,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특히 월남자 중에서 엘리트층은 법 위의 권력자였습니다. 서북청년단을 포함한 월남 세력은 남한 사람을 남한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 취급 했습니다.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독서통 : 월남자들의 힘과 영향력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 작동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김동춘 : 물론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다섯 개 중 네 개가 한국에 있지 않습니까? 그 교회의 담임 목사나 창설자들이 다 월남자들이죠. 그리고 우리의 제1신문인 <조선일보>, 전형적인 월남자들의 신문이죠. 거기에 사학들, 사립학교 중에서 상당 부분이 월남자들이 세웠습니다. 물론 제3공화국까지는 경찰, 군부 엘리트도 반 이상이 다 월남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나중에 국가정보원으로 들어갑니다.

독서통 : 월남자의 상당 부분이 이른바 서북 지방, 그러니까 황해도와 평안남도 출신이죠. 또 거기가 기독교 교세가 가장 셌던 곳입니다. 이 출신들이 월남자의 상당 부분을 구성하면서 기독교와 접합되는 양상을 보였다는 말씀이시죠?

김동춘 : 그렇죠. 황해도나 평안도 지방은 우리 사회에서 개화가 가장 빨랐던 지방이고요. 그곳 사람들이 일찍부터 신식 교육을 많이 받았고, 기독교로 개종했죠. 여기는 양반 상놈 차별이 그리 심하지 않았던 곳이고, 오히려 전통문화의 뿌리가 별로 안 내려서 개화가 빨랐습니다. 이분들이 초기 독립운동에 많은 역할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어쨌든 분단되면서 이분들이 이북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 체험을 하고 월남하게 되었고, 그게 남한에서 제일 나쁜 형태로는 서북청년단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월남자들을 모두 같이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한국 전쟁 때 월남한 분들은 대부분 폭격을 피해서 내려온 분들이고, 초기 1946년~47년에 내려온 분들이 대개 기독교도거나 엘리트층입니다.

독서통 : 이른바 북한식 사회 개혁으로 인해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긴 분들이 (초기에 내려온 월남자다)?

김동춘 : 그렇죠. 그분들이 가장 강경한 입장이었고, 대부분의 월남자는 사실 북한에서도 서민층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남한에서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반공 투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자기가 반공 투사임을 입증해야 하고, 그걸 주장해야만 남한에서 일등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다 반공 투사가 되어버린 겁니다.

독서통 : 월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이상하게 보고 의심하니, 그걸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반공 색채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김동춘 : 그렇죠. 생존전략이기도 했죠.

독서통 : 교수님의 이전 작업과도 연결됩니다만, 교수님께서 지금의 한국 사회를 형성하는 데 분단과 한국 전쟁의 영향을 굉장히 중요하게 취급하셨잖아요?

김동춘 : 제가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조사 활동한 분야가 주로 한국 전쟁 때 학살 문제인데,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북한 인민군에 의한 학살만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었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국군, 경찰, 그러니까 이승만 정부에 의해서 훨씬 많은 학살이 저질러졌다는 게 우리의 조사 내용입니다. 그건 보도연맹학살(한국 전쟁 중 국군, 헌병, 극우 단체가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을 포함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4934명을 비롯, 최소 10만 명에서 최대 120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 미군도 민간인 집단 학살에 개입했다. 2009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정부는 국가 기관에 의해 민간인이 희생되었음을 밝혔다)처럼 굉장히 체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학살은 전쟁이 끝나고도 부드러운 형태로 계속 지속했습니다.

독서통 : 부드러운 형태요?

김동춘 : 일종의 사상적으로,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나 비판자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인 거죠. 빨갱이라는 게 남한 사회에서 한 인간을 생물학적으로는 존재하지만, 사회적이나 정치적 생명은 박탈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부드러운 학살'이라고 부른 겁니다. 그런 담론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이 전쟁이 지속하는 체제라고 보는 거죠. 여기에서는 일종의 합리적인 정책 대결이나 정당 대결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담론이 등장하기만 하면 일거에 쓸어버리기 때문에. 그걸 제가 전쟁의 효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009년 8월 16일 충북대학교 박선주 교수가 공개한 1950년 7월 국군과 경찰에 의한 공주 민간인 학살 현장. 이 사진은 영국 <픽처포스트(Picture Post)> 지에 실린 것으로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공주에서는 국군과 경찰에 의해 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수백 명이 집단학살됐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빨갱이'라는 명목 하에 민간인 학살이 이뤄졌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아직 독립 못한 반쪽 국가

독서통 : 교수님께서 책에 서술하신 내용 중 또 하나의 인상적인 부분이 1945년, '해방이 아니라 분리'라는 서술입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김동춘 : 이건 제 주장이 아니고요, 일본 연구하는 사람들, 동아시아 연구하는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주장한 겁니다. 그리고 이건 역설적으로 일본 사람들이 주장한 것이기도 합니다.

법적으로 본다면 (해방기) 조선은 일본 영토의 일부였기 때문에 일본이 1945년 연합군에게 항복은 했지만 항복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의 독립을 의미하진 않았죠. 왜냐하면 연합군, 미국이 일본의 조선 식민지 체제를 용인했거든요.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일본이 조선 영토, 즉 과거 일본 섬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영토를 원래 살던 사람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별도의 국제법적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그게 샌프란시스코 조약이고, 이 조약이 맺어지기 이전의 조선 정부는 불법적 정부고 조선의 독립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일본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국제 사회에서 본다면 사실 일본의 항복이 곧바로 조선의 독립은 아닌 애매한 상황으로 미국이 남겨뒀고, 그러므로 바로 미-소가 (공백지였던 한반도를) 점령한 것입니다. 점령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확실한 방침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이 항복했다는 겁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연합군의 대일 강화 조약이다. 1951년 9월 8일 48개국이 서명한 조약으로, 이 조약으로 인해 미국과 일본은 동맹 관계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당시 식민 체제이던) 한반도를 비롯해 일본의 침략으로 피해를 본 아시아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 이후 일본은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남베트남에는 정식으로 침략 피해를 배상했으나 한국과 북한에는 하지 않았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는 경제 원조를 하거나 무상 경제 협력을 하는 방식으로 배상을 대신했다.


그래서 해방은 우리의 기대 사항이었지, 국제적으로 봤을 때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도 강조했듯이 우리는 조선 독립 운동, 무장 투쟁으로 일본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1945년 8월 국제 사회에서 조선이 독립국으로서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우리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보면 조선은 독립하지 못했고, 미군이 군사적으로 무력 점령한 것입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맥아더 사령부가 간접 통치했습니다. 일본 총리가 그대로 있었고 내각이 있었습니다. 조선은 곧바로 미 군정이 직접 통치했습니다. 그게 차이점이에요.


독서통 : 이 말씀이 때에 따라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게, 사실 건국절 논란이 있고 진정한 광복이 언제냐는 뉴라이트의 주장도 있지 않습니까? (교수님의 주장이)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만.

김동춘 : 그럴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일본 사람들 주장에 동조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쟁취했다면 미 군정이, 소련 군정이 한반도에 없었겠죠. 미군과 소련군이 들어오게 되었다는 게 우리의 한계였는데, 그 한계를 당시 조선 사람들이 냉정하게 봤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일본군을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들어온 게 사실이죠. 그러나 진정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든 합의해서 독립 정부를 만들어 이 사람들을 나가게 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우리의 조상들, 1945년 당시 지도자들의 문제점을 강조하기 위해 제가 이 말씀을 드린 겁니다.

독서통 : 김구 선생 같은 경우 일제 패망 소식을 듣고 애통해 한 게 바로 그 이유 때문 아니었습니까?

김동춘 : 예. 여운형 선생께서 건국동맹을 조직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일본이 항복하면 곧바로 우리가 주권을 주장해야 하는데, 무슨 근거로 우리가 주장하겠느냐. 조직이 있다는 걸 보여주거나 투쟁했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하거든요.

독서통 : 교수님께서 우리의 해방이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가 아니었음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불구의 나라라는 인식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김동춘 : 제가 '반(半)국가'라고 표현한 것이죠. 학자들은 '결손국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반국가라는 것이 분단됐다고 해서 반이 아니라, 아직 충분한 주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외국의 간섭으로부터 충분한 주권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국민도 충분한 시민권을 못 누린다. 주권과 시민권은 연결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외국 군대가 우리나라에 진입할 수 있는 상태, 진입해서 전쟁할 수 있는 상태다. 이건 청일 전쟁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제가 강조하고 싶습니다.

독서통 : 3.1 운동 후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하고,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이에 따라 현재 대한민국의 법통은 거기에서 비롯된다는 게 우리의 일반적 인식이잖습니까? 당시 일제 체제는 강점 상태였고, 우리 입장에서는 미수복한 것이고, 그래서 일제가 물러난 건 분리가 아니라 회복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김동춘 : 그렇죠. 회복인데요, 회복을 주장하는 게 국제 정치에서는 군사력입니다. 1910년 한일 강제 병합이 물론 일본은 한국의 동의에 의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강제적인 것이죠.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주장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한국 외교부나 한국 국제법 학자들이 이것이 강점이라는 걸 입증하는 게 충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1910년 8월 29일(한일 병합 조약이 공포되어 대한제국이 멸망한 날) 조선에서 전면적 항거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3.1 운동이 있었습니다만…. 아무튼 이런 점들이 결국 일본의 논리를 국제 사회가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 거죠. 여기서 국제 사회란 같은 진영, 그러니까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제국주의 진영이죠.

그런 냉정한 현실을 우리가 알자. 우리가 투쟁했지만, 일본을 물리칠 정도로 투쟁하지 못했다는 사실, 또 하나는 상당수의 지식인이 일본의 전쟁을 지지했다는 사실, 말하자면 친일파죠. 그리고 미군이 한국의 당시 위치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 사실이 태평양 전쟁 말기 남양군도에서 체포된 조선인 포로들입니다. 이 사람들 중 일본인보다 포로를 더 가혹하게 대해 나중에 전범으로 처형된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일본과 조선이 같은 나라가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미국 사람들에게 확실히 조선은 독립국이라는 걸 각인시키는 데 우리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무장 투쟁의 취약성, 상당수의 친일파, 이승만과 같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계속 편지만 쓰면서 독립 운동한 행태들…. 이런 것들의 업보가 1945년 이후에도 우리에게 계속 온 거예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런 식의 무장 투쟁한 사람들이 다 남한 사회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그 이후에도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대일 협상에서 끊임없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되었죠. 떳떳한 명분을 내세울 수 없었던 사실이 그 이후에도 계속 연결됩니다.

독서통 : 완전한 해방이 되지 못한 상태, 즉 식민지의 유산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고 보시는군요?

김동춘 : '포스트 식민주의' 혹은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미래 전망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가 가진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한국의 100년은 '민족적인 것이 곧 사회적인 것'이라는 게 제 주장입니다. 민족적 억압이 곧 사회적 억압이고, 차별이고, 부정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한국 보통 사람이 겪는 고통의 근원은 민족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민족 문제를 주목하고 강조하는 것이지, 민족 그 자체가 절대 이상은 아니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인간 해방의 길이 열리는 것이었고, 그걸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 해방이 되지 않았던 것이죠. 그 이후에는 우리 사회에서 분단이라든지, 전쟁에서 자유로워져야 인간 해방이 이뤄진다고 보기 때문에 제가 다시 국가나 민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죠.

일본 원폭이 한반도 분단의 원인

독서통 :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했습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를 두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일본 군부의 숨통을 끊기 위한 일격'으로 이해했는데, 그게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는 이미 끝났다는 걸 당시 미국도 알고 있었고, 원폭 투하는 다른 이유였다고 서술하셨습니다. 정확히는 냉전과 연결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어떤 이야기입니까?

김동춘 : 이것도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연구자들의 학술 연구 결과를 반영했습니다.

일본의 항복은 시간문제였고, 일왕은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일본 군부 내에서도 그럴 준비가 되었는데 미국이 핵을 사용함으로써 일본의 항복을 앞당겼죠. 이를 통해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고자 하는 게 미국의 목적이었죠. 궁극적으로 유럽에서는 독일이 분단되었지만,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 분단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원폭 투하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굉장히 복잡한 전쟁인데, 연합국과 추축국 간의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전쟁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제국주의 패권 전쟁이죠.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서 소련과 미국의 예비 전쟁이기도 하고, 또 하나가 제3세계에서의 민족 해방 전쟁이기도 합니다.

이 복잡한 전쟁의 구도 속에서 핵 사용은 고도로 정치적인 계산 하에 이뤄진 행위입니다. 미국은 이미 1941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 정치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었고, 그 일련의 과정에서 핵이 사용되었습니다. 핵을 투하한 곳도 도쿄가 아니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주변 지역이었죠.

우리는 핵을 투하해서 독립을 이뤘으니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어쩌면 일본 대신 우리의 분단을 가져온 원인이기도 합니다. 일본은 미국이 100% 집어먹죠.

독서통 : 핵을 투하하지 않았으면 소련군이 일본까지 점령하고, 그로 인해 일본을 미국과 소련이 나눠서 점령할 수도 있었는데….

김동춘 : 그렇죠. 소련의 입지가 훨씬 넓어졌겠죠.

독서통 : 실제 당시 역사 기록을 보면 소련의 남하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더군요.

김동춘 : 이미 8월에 한반도에 들어왔죠.

군사 전술적으로 본다면 이라크전과도 비슷한데, 미군은 지상군 투입을 극도로 꺼립니다. 지상군을 투입하면 미군 희생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국내 여론이 나빠집니다. 어떻게 하든 지상군 투입을 하지 않고 전쟁에 승리할 수단을 취하게 되죠. 핵을 사용한 이유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독서통 : 우리나라 사람이 잘 모르는 내용이기도 한데, 사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의 결정적 역할은 소련의 (대 독일전) 승리이기도 하죠.

김동춘 : 엄청난 희생을 겪었죠. 유럽 전쟁에서 1000만 명에 달하는 소련군이 죽었습니다.

독서통 :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 전쟁이라면 특이한 전쟁으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동춘 : 그렇습니다. 한국 전쟁은 미국으로 봐서는 뭐랄까요, 일종의 시험대였습니다. 소련이 내려오나 안 내려오나 보자는, 일종의 방치죠. 내려오면 이쪽에서 곧바로 개입해서 물리칠 수 있으니까요. 또 내려온다는 건 잘못을 저쪽(소련)에 넘길 수 있죠. 안 내려와도 그냥 분단 상태로 가는 게 그다지 나쁘지 않고.

▲역사의 부끄러운 부분을 공개하고, 함께 문제를 풀 수 있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3일 황교안 총리가 올바른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국정 교과서 확정고시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문제를 풀면 세계 평화의 길이 열린다

독서통 : 다시 오늘의 시점으로 돌아와서, 책을 끝까지 읽은 후 약간 우울해졌습니다. 맨 마지막에 '민주화 운동, 왜 절반만 성공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시는데, 사실 민주화가 되었지만 그마저 퇴행하는 상황인 데다,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되면서 사람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죠.

김동춘 : 제가 절망하자고 이 책을 쓴 건 아니고요. (웃음) 단지 우리가 단순히 '다음 선거에 이겨야지' 하는 식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우리 문제의 뿌리가 굉장히 깊다는 거죠.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좋은 사회로 바꿀 것인가를 조금 깊이 보자는 취지입니다.

포기하자는 건 아니고요, 결국 우리 사회에 외세와 국내 문제가 아주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외세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강요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그런 세력들의 문제가 지금 입장에서는 훨씬 중요한 변수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사람들을 정확히 알고 미래를 대비하자는 취지입니다.

독서통 : 이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요?

김동춘 : 글쎄요. 지금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습니다. 물론 최근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 굉장히 퇴행했습니다만, 그래도 국제 사회에서 매우 큰 변수입니다. 남한이 어떻게 되느냐가 남북한 관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지형도를 바꿀 힘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동아시아를 바꾸면 세계를 바꿉니다.

흔히 매카시즘(1950년대 초에서 중반까지 미국을 휩쓴 반공주의 광풍)은 미국에서 온 거로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매카시즘의 불은 한국 전쟁이 붙인 겁니다. 1950년 1월에 처음 매카시가 발언했습니다만, 한국 전쟁이 터지니 매카시가 힘을 얻어서 "보라. 공산주의의 위협이 이처럼 두렵다"고 하면서 미국의 우익이 자기들의 정치 지형을 바꾸는 데 한국 전쟁을 이용했습니다. 한국 전쟁을 계기로 냉전 체제가 굳어지면서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기득권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 전쟁이 작은 전쟁일 수 있지만, 세계를 바꿨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의 변화라는 것이 아주 작아 보이지만, 남북한이 평화 체제로 가고 조금 더 좋은 나라가 된다면 일본의 우경화를 어느 정도 저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브로커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동아시아의 새 판을 짜는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미국이 동아시아에 개입할 여지를 축소합니다. 남한 사회의 변화가 세계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거죠.

독서통 : 노무현 정부 때 유행한 동북아 균형자론이 떠오르는군요.

김동춘 : 그렇죠. 그 점을 우리가 너무 과소평가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독서통 : 그런데 앞서 말씀하셨듯 극우 반공 이념으로 무장한 기독교 세력, 한국의 지금 체제를 지배하는 세력을 중점에 놓고 본다면 사실 미국을 끌고 가는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도 같은 실체로 봐야 하지 않습니까?

김동춘 : 거의 그렇죠. 한 몸에 가깝죠.

독서통 : 그렇다면 이걸 풀어낼 수 있을까요? 난제 중의 난제 아닙니까?

그리고 지금 젊은 세대에서는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데,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와 강고한 기독교 엘리트를 과연 밀어낼 수 있을 것이냐, 변화할 수 있을 것이냐는 절망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김동춘 : 쉬운 일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갖고 있고 각종 수단을 갖고 있습니다만, 굉장히 큰 약점도 갖고 있습니다.

그 약점은 바로 국민을 설득할 힘이 없다는 겁니다. 결국, 교과서 문제에서도 저렇게 빨갱이 시비로 몰고 가는 것 자체가 취약성의 반영입니다. 차라리 힘 있다면 설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설득하지 못하고 결국 저렇게 주체 사상까지 등장시켜야 할 정도로 다급하고, 약점이 많고, 명분이 약하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독서통 : 극우 반공주의 기독교 세력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떠오르는 장면이 두 가지 있습니다. 총리로 지명됐던 문창극 씨 문제의 발언도 교회에서 이뤄진 것이고, 지금 총리인 황교안 씨가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를 폄하한 발언도 교회 강의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라는 곳에서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이 총리 후보가 되었고 총리가 됐다는 사실, 어쩌면 상징하는 게 너무 크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동춘 : 그렇습니다만, 기독교 신앙이 가진 굉장히 긍정적이고 사람을 치유하는 힘과 윤리적 측면이 있는데, 그 윤리성을 다 포기한 기독교가 과연 얼마나 버틸까요? 저는 그런 기독교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독서통 : 교수님께서 책을 시작하면서 개화파와 독립파의 대립 구도에서 100년의 세월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100년 전 동북아시아 구도와 비슷하게 지금 국제 정세가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이냐는 얘기가 오갑니다.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에 대한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지 않겠습니까? 앞서 무한한 가능성을 언급하셨습니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모멘텀이 될 수 있는 건 뭐라고 보십니까?

김동춘 : 구한말에서 지금과 가장 비슷한 시점은 청일 전쟁입니다.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주한다,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게 똑같은 상황인데, 당시 조선 왕조는 밑으로부터 개혁할 힘이 거의 제로였다고 볼 수 있죠.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밑에서부터 사회를 바꿀 힘이 상당히 있다고 봅니다. 27년의 민주화와 그동안 쌓아온 우리 사회의 역량이 있기 때문이에요.

구한말과 국제 정세가 비슷한 면이 있는 건 사실이고, 권력자의 시야와 비전도 그때와 비슷한 건 사실입니다. 아무런 대책이 없죠. 그렇지만 민간의 힘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그 힘을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형성된 시민 사회와 지식인 사회에서 구하고자 합니다. 그게 교과서 문제에 저렇게 저항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죠.

당장 좋은 정부가 등장할 가능성은 작지만…

독서통 :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국민적 에너지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면, 결국 귀착점은 정치의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성격의 정권이 들어서느냐의 문제로 좁혀서 볼 수도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10년을 본다면 정권은 바뀌었지만, 정권을 둘러싼 이른바 지배층이 바뀌지 않음으로써 끊임없이 공격당하고 무력화되는 양상이 있지 않았습니까?

결국,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보다 더 큰 문제는 지배층을 어떻게 교체할 것인가가 더 본질적이지 않겠습니까?

김동춘 : 사회학자로서 제 고민도 거기에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상층부 권력을 바꾼다고 해서 대한민국 권력이 바뀌는 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관료로 채워지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고요, 그다음 그 관료와 엘리트와 보통의 시민을 길러내는 공장으로서 교육과 대학과 촘촘한 시민 사회, 그리고 언론이 중요하지요.

제가 최근 몇 분과 '다른백년'이라는 모임을 하는 것도 그런 취지인데, 결국 정권이 바뀌더라도 노무현·김대중 정부 이상으로 잘할 가능성이 지금으로써는 크지 않다. 그 이유는 우선 등장할 수 있는 엘리트의 인적 풀이 굉장히 제한적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미리 준비된 사람들도 아니다. 그 사람들의 비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관료 집단이 있느냐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리고 지식인 집단 중 정책 집단이 있느냐도 회의적이다. 그리고 시민 사회가 과연 촘촘히 얽혀있느냐도 걱정스럽다.

그래서 정권의 교체와 관계없이 어떻게 하면 밑으로부터는 민의 힘을 증대시킬 수 있는 촘촘한 시민 사회를 만들 것이냐, 그리고 어떻게 하면 미래 비전을 가진 우리 사회의 엘리트를 키울 것이냐는 것들이 여러 분야에서 고민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음 대선에서 교체가 안 된다면 그다음이 있고, 그다음도 있습니다. 물론 그사이에 우리 사회가 훨씬 더 망가질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권력을 잡았을 때 곧바로 비전을 제시하면서 일에 착수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다면 한탕주의,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독서통 : 그렇지만 정권이 교체되어야 지배층의 교체를 가속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김동춘 : 그렇습니다. 한국은 굉장히 중앙 집권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정권 교체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 건 사실입니다.

독서통 : 어차피 과정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단계적으로 접근할 성질은 아닌 것 같고요.

아무튼, 역사는 현재에 대화를 거는 것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이 책이 정말 그런 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점도 정말 절묘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국정화가 되면 학교 현장에서 이 책이 부교재로 쓰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김동춘 : 이 책을 부교재로 쓰는 교사는 잘릴 것 같은데요? (웃음)

▲<대한민국은 왜?>. 김동춘 지음, 사계절출판사 펴냄. ⓒ프레시안

독서통 :
청취자 여러분도 방송을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셨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사의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게끔 하는 화두가 굉장히 많이 들어 있는 책입니다. 김동춘 교수께서 하나의 줄기를 보여주신 것 아니냐, 그러니까 지난 100년의 역사를 어떤 줄기로 봐야 할 것이냐, 그리고 어떤 줄기로 형성되어 왔느냐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뜻 깊게,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윤치호의 길과 안중근의 길의 대립도 그렇고, 비뚤어진 기독교와 비뚤어진 공산주의의 대비도 그렇습니다. 주로 남한을 중심으로 서술하셨지만, 북한 같은 경우도 비뚤어진 사회주의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따라서 지금 현재에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김동춘 :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쟁점이 되는 부분도 많이 집어넣었습니다.

독서통 : 오독을 할 경우 바로 반박이 나올 것 같은데 그걸 염두에 두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교과서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읽는 학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다른 의견을 갖고 토론을 자극하는 책이 교과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이 원하는 뻔한 정답만 가르쳐주는 교과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늘 사계절출판사에서 펴낸 <대한민국은 왜?>라는 책의 저자인 성공회대학교 김동춘 교수를 모시고 독서통을 꾸며봤습니다. 혹시 교수님 못다 한 말씀 있으신가요?

김동춘 : 예. 제가 맨 마지막에도 썼습니다만,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할 때 '균·화·안·정(균등·화합·안정·정의)'의 네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균등한 사회, 화합하는 사회, 평안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 이 가치를 우리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서 우리 사회의 비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독서통 : 오늘 말씀 중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이렇게 우리 사회를 바꾸면 세계도 바꿀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걸핏하면 나오는 '지정학적 어쩌고'가 아니라, 우리가 반환점이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오늘 독서통은 이렇게 마무리하겠습니다. 김동춘 교수님, 감사합니다.

김동춘 : 네. 감사합니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