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 정상은 왜 싱가포르에서 만났을까?
양안 정상은 왜 싱가포르에서 만났을까?
[강귀영의 중국 대중문화 넘나들기] 양안 관계의 완벽한 조율자 ‘싱가포르’
양안 정상은 왜 싱가포르에서 만났을까?
지난 11월 7일 분단 66년 만에 중국과 대만(타이완)의 두 지도자가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첫 정상 회담을 가졌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이번 만남은 회담을 불과 나흘 앞둔 3일 늦은 밤 대만 언론을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회담 당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600여 명의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은 두 지도자가 단상으로 걸어 나와 악수하는 모습을 신속하게 타전했다.

당시 취재 현장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필자의 싱가포르 신문사 동료들은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에 무척 감격스러워했다. 이튿날 중화권 매체들은 일제히 "양안 정상이 '81초' 동안 악수를 나눴다", "70년 전 마오쩌둥(毛澤東)과 장제스(蔣介石)의 만남을 연상시키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중국이 먼저 제안한 '시마회담(習馬會)'

홍콩의 시사 주간지 <아주주간>이 베이징 외교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이번 양안 지도자의 만남은 올해 10월 14일 광저우(廣州)에서 개최한 제4차 양안장관급 회의에서 결정되었으며 중국 측에서 먼저 제안하여 성사되었다고 한다.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 입장에서 두 지도자의 신분과 호칭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었지만, 두 지도자는 서로 '주석', '총통'과 같은 공식 직책 대신 '선생(Mr.)'을 사용하기로 하고, 회담 후 가진 만찬 비용도 각각 반반씩 부담하면서 양안이 동등한 입장에서 회담을 가졌다는 인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일찍이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적당한 시기와 장소, 그리고 적당한 신분으로 참석할 수만 있다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대화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작년 11월에도 마잉주 총통은 베이징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총통 신분이 아닌 경제 단체 수장 신분으로 참석해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회담하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으나, 중국 측이 이 제안을 거절하며 무산됐다.

무산된 가장 큰 이유는, 양안 문제를 국제 문제가 아닌 국내 문제로 여기는 중국 입장에서 양안 지도자가 국제 회의 석상에서 조우하는 것이 자기들이 견지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된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양안 정상 회담 장소는 왜 싱가포르였나?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번 회담 장소로 처음 물망에 올랐던 곳은 '홍콩'이었다. 홍콩은 1992년 양안이 '92 컨센서스(共識)'를 이끌어낸 곳이기도 했고, 중국이 대만 문제를 '국내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는 강력한 의지를 어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나 홍콩은 작년 우산혁명(Umbrella Revolution) 이후 젊은 세대들이 반중(反中) 정서를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에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방문을 계기로 급진주의자들이 다시 결집하여 시위를 벌일 수 있다는 점을 염려했다. 이에 중국은 제3국에서 회담을 갖기로 제안했고, 대만 측에서 1993년 양안이 첫 고위층 접촉을 했던 싱가포르를 제안하면서 이번 회담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렇다면 왜 '싱가포르'는 양안의 정상 회담 장소로 선택되었을까? 1993년 4월, 양안이 분단 44년 만에 처음으로 가진 고위급 회담, 왕구 회담(汪辜會談)을 개최한 곳이 바로 싱가포르였다. 또한 싱가포르는 중국과 대만 모두와 외교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방국이었다. 게다가 제3국에서의 만남을 통해 동등한 위치에서 회담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최적의 장소였다.

일찍이 싱가포르는 중국과 대만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왔다. 올해 3월 타계한 고(故) 리콴유 전 총리는 1980년대부터 여러 차례 중국과 대만을 방문하며 적대 관계에 있는 양안 지도자들 사이에서 대화 창구의 역할을 했다. 그가 양안 관계 개선에 얼마나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1992년 양상쿤(杨尚昆)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싱가포르에 국빈방문 했을 때의 일이다. 양상쿤 전 주석과 리콴유 전 총리는 양안 문제에 대해 담소를 나누다가, 중국과 대만이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경제적 이슈로 먼저 접근하고 대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게 됐다. 이에 리콴유 총리는 바로 "그렇다면 지금 주석님의 그 의사를 대만의 리덩휘(李登輝) 총통에게 전달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고, 양상쿤 주석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긍정의 의사를 밝혔다. 그리하여 리콴유는 이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직접 타이베이로 날아갔고, 당시 리덩휘(李登輝) 대만 총통도 이에 동의하여 1993년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역사적인 '왕구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될 수 있었다.

이 회담은 양안 분단 후 44년 만에 처음 열린 양측 고위급 회담이었으며, 양안 관계의 해빙에 물꼬를 튼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역사적인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이유에 대해 훗날 대만 고위 인사는 양안 회담 장소를 놓고 이견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리콴유 전 총리가 양안 관계 개선을 위해 동분서주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싱가포르가 인구의 70% 이상이 중국계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양안 관계의 일이 곧 한 핏줄인 중화 민족의 일이라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당시 회담 성사를 주도한 리콴유 전 총리가 더없이 기뻐하며 흔쾌히 싱가포르의 회담 장소를 제공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리콴유 전 총리가 타계한 이후 이번 양안 회담이 다시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면서 그의 아들 리셴롱(李顯龍) 총리의 외교적 역량도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중화권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양안 관계에서 워싱턴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싱가포르도 간과할 수 없다"라는 말이 오고 간다.

동남아시아의 '붉은 점'으로 묘사되는 작은 도시 국가가 중국과 대만의 가교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으니 그 외교적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실용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면서 평화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싱가포르가 몹시 부럽게 느껴졌다. 1992년 대만(중화민국)과의 단교 이후 줄곧 중국 일변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한국이 싱가포르에게 그 유연한 외교술을 한 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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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한양대학교와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중국어 일간지 <연합조보>에서 서울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만국립정치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지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