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3월 10일부터 올해 6월 19일까지, 장장 2년 3개월에 걸쳐 <프레시안>에 격주 연재된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의 철도 이야기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가 책으로 나왔다. (☞관련 기사 : 달리는 철도에서 본 세계)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계>(박흥수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은 최고의 '철덕(철도 덕후)' 박 연구위원의 삶 자체를 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년간 철도 기관사로 생활한 그는 저자 소개에서 드러나듯 틈날 때마다 철도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기분 좋게 술을 한 잔 걸칠 경우 2박3일 정도는 쉬지 않고 철도 이야기를 할 자신이 있"는 준비된 철도 이야기꾼이다. 박 연구위원은 해당 연재 외에도 철도 민영화, 철도 노동자 파업 등 굵직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프레시안>에 단단한 논리로 무장한 좋은 글을 연재했다.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좋은 역사책이 그러하듯 철도라는 근대 교통수단을 매개로 세계사와 국제 정세, 나아가 인류 문화 발전의 비밀을 따라간다. 영등포에서 시작하는 저자의 추억은 한국 현대사와 연결되고,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해 유럽을 돌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저자가 운행하는 이야기보따리 철도를 타고 그저 달리기만 하면, 세계사를 연결하는 철로에 무임승차한 것 같은 내밀함과 흥분이 읽는 이의 여행에 동승한다.
20세기 중후반 영등포역을 출발한 이야기가 고대사를 찍고, 철도로 제국을 건설한 미국을 건너 이를 좇는 근대 일본 열도의 흥분을 구경한 후, 종착역인 한국전쟁기의 한반도로 돌아온다.
충실한 이야기 덕분에 세계사에 굵직한 영향을 미친 사건의 뒤에서 철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역사가 철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볼 수 있다. 저자는 오늘날 영국의 양대 정당으로 성장한 노동당의 역사에서 철도 노동자의 파업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산업혁명의 그늘을 조명한다.
각자의 문명마다 독립적으로 쓰던 시간 개념이 영국 제국주의의 발전과 함께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저자는 철도가 세계를 더 좁게 만드는 혁명을 이끌면서, 그에 따라 표준시 개념이 탄생하는 과정을 생생히 요약한다.
각자의 문명마다 독립적으로 쓰던 시간 개념이 영국 제국주의의 발전과 함께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저자는 철도가 세계를 더 좁게 만드는 혁명을 이끌면서, 그에 따라 표준시 개념이 탄생하는 과정을 생생히 요약한다.
역사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콘텐츠도 없다. 철도로 맛보는 역사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고, 익숙하다 여기던 것에서 찾는 새로움에 기시감을 맛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지하철에서, 기차에서 차창 바깥을 바라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 장면이 실은 오늘날 우리 삶의 이야기 정경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가지게 된다.
철도는 '덕질'의 대표격 콘텐츠다. 지하철 역사마다 파고 들어갈 이야깃거리가 있고, 철도 여행이 주는 낭만이 있고, 철도의 웅장함이 주는 갖가지 재원 자료가 있다. 일본에서 철도 여행은 중요한 문화 상품이며, 도시락 산업 성장의 일등공신이고, 그 덕분에 도쿄에 소외된 지역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중요 수단이 된다.
철도는 기술 발전 이후,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하나의 문화 콘텐츠화 되어간다. 우리의 철도 문화가 아직 상대적으로 부실하다면, 그 이유는 철도 문화를 받쳐주는 이야깃거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틈을 충실히 메워준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모든 이를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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