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팔아먹어도 박근혜 편인 사람들, 바뀌려면…"
"나라 팔아먹어도 박근혜 편인 사람들, 바뀌려면…"
[독서통] <이기는 프레임>
2016.02.24 14:56:07
모든 게 여당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24일 오전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밤샘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며 테러방지법 입법을 막으려 애쓰고 있지만, 이런 분투가 여당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 일뿐인가요. 다가오는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의 압승이 기정사실화되었습니다.

야당이 대권에서 이기는 것, 진보 정당이 원내의 의미 있는 정당으로 올라서는 건, 아마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 대부분이 가능성 없는 이야기로 여기실 겁니다.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닌 듯합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극보수주의 국가로 치닫는 미국에서도 이런 한탄이 이어졌습니다. 왜 진보는 이기지 못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는 책 <이기는 프레임>(조지 레이코프·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나익주 옮김, 생각정원 펴냄)이 나왔습니다. 이미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와이즈베리 펴냄)로 보수의 의제 설정 공세에 대응할 진보의 실천적 대안을 제시했던 조지 레이코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교수가 미국 대선을 앞두고 보다 현실 적용 가능한 구체적 실현 방안을 제시합니다.

김종배 <시사통> 대표와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가 진행하는 '독서통'은 이 책을 통해 진보가 선전할 방법을 알아봅니다. 레이코프 전문가이자, <이기는 프레임>의 번역자인 나익주 박사(전남대학교 영미문화연구소 연구원)과 함께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진보주의자가 어떤 방식으로 대화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왜 사람들이 이른바 ‘계급 배반 투표’를 이어가는지도 알아봅니다. 이날(24일) 진행된 인터뷰 전문을 소개합니다. 

▲ 나익주 박사(전남대 영미문화연구소 연구원). ⓒ프레시안(최형락)




언어학의 대가, 정치 언어학을 연구하다

김종배 : 매주 화요일 오후에 찾아뵙는 독서통 시간입니다. 이번 주 책 소개해주세요.

강양구 : 최근 미국 대선 경선이 흥미진진해서 관심을 가진 분 많으시죠? 공화당에서 과연 트럼프가 후보가 될 것이냐, 또 민주당에서는 혹시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칭하는 버니 샌더스가 후보가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이유로 관심을 가지는 분이 많습니다.

우리로서는 부럽죠. 기존 미국 경제 정책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샌더스가 일으키는 돌풍은 얼마나 대단합니까? 미국 정치가 역동적이어서 우리나라 정치와 비교되고, 이 때문에 관심이 더 집중되는 것 같습니다. 이 시기에 맞춰 흥미로운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이기는 프레임>이라는 책인데요,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방법'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김종배 : 저자 소개도 해주시죠.

강양구 : 청취자 여러분이 익숙한 저자가 쓴 책입니다. 조지 레이코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교수입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그 조지 레이코프입니다. 레이코프 교수와 함께 공부하는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웨일링과 함께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사실 팸플릿에 가깝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곧바로 미국 민주당 선거 관계자가 책이 가르쳐주는 대목을 대선 경쟁에 적용할 수 있게 끔요.

김종배 : 오늘 모신 손님은 누구신가요?

강양구 : 이 책을 가장 잘 소개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책을 옮긴 나익주 전남대학교 영미문화연구소 연구원입니다. 조지 레이코프의 중요한 책이 국내에 여럿 번역되어 있습니다. 나익주 연구원께서 그 대부분을 번역하셨습니다. 레이코프의 사상을 직접 공부하고, 대학에서 가르치고, 실제로 미국에서 레이코프와 공동 연구한 경험도 있고요.

김종배 : <이기는 프레임>을 번역하신 나익주 박사 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나익주 : 안녕하십니까.

김종배 : 조지 레이코프와 어떻게 인연이 닿으셨어요?

나익주 : 1982년 저는 언어학 이론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레이코프의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말로는 <삶으로서의 은유>(조지 레이코프 지음, 노양진·나익주 옮김, 박이정 펴냄)로 번역되었는데요, 원제는 '메타포스 위 리브 바이(Metaphors We Live By)'입니다.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은유'라는 뜻이죠.

당시 언어학의 주류는 놈 촘스키의 언어학이었어요. 촘스키와 정반대 주장을 하는 레이코프의 이론을 그때 처음 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1993년 박사 학위 논문을 레이코프의 이론을 토대로 썼습니다. 그리고 우리말로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에 <삶으로서의 은유>도 1995년 번역했고요. 그 인연으로 쭉 레이코프의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후 레이코프가 자기 이론을 토대로 정치 담화의 의미를 분석하는 책을 1997년 내놓더라고요. <도덕, 정치를 말하다>(손대오 옮김, 김영사 펴냄)입니다. 그 책을 읽어보니 순수하게 언어학만 다루는 책보다 훨씬 재미있더군요. 나중에는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레이코프의 수업도 직접 들었죠.

이분이 자신의 은유 이론을 토대로 미국인의 정치적 사고에 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래서 나온 책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였죠.

공화당 정부가 미국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가.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월스트리트나 군산 복합체에 더 유익한 정책을 어떻게 "국민에게 유익하다"고 돌려 말해 지지를 끌어내는가. 그리고 이때 은유를 어떻게 동원하는가를 설명하는데 흥미롭더군요.

김종배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했죠?

나익주 : 10만 부 정도 팔렸을 겁니다.

강양구 : 조지 레이코프의 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죠. 그런데 정작 이 책은 나익주 박사께서 번역하지 않았어요. (웃음)

나익주 : 나중에는 인연이 닿긴 했죠. 지난해(2015년) 그 책의 개정판이 나왔는데, 감수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개정판 내용이 초판의 70% 이상 바뀌었습니다. 초판이 나오고 나서 10년 사이에 민주당이 어떤 식으로 헛발질하고 있는가, 오바마가 왜 기대에 못 미치는가를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죠.

김종배 : 개정판도 읽어봐야겠네요. 그런데 조지 레이코프는 실제로 어떤 사람입니까?

나익주 : 이분이 유대인이신데, 촘스키의 제자입니다. 천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인지언어학이라는 언어학의 새로운 흐름의 태동을 이끌었으니까요. 촘스키가 '언어학 혁명'이라고 평가받는 <통사 구조>라는 책을 1957년 내고 나서 지금까지 언어학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레이코프가 촘스키에게 반기를 든 거죠.

레이코프가 20대부터 촘스키와 다른 방향으로 자기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촘스키가 "네가 틀렸다"고 계속 무시했다고 해요. 결국 나중에 레이코프는 촘스키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모교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를 떠나 하버드 대학교에서 언어학 학위를 받게 되죠.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사이에 '1차 언어학 전쟁'이라는 논쟁이 벌어졌어요. 당시 레이코프가 한 축을 이뤘고, 촘스키가 다른 한 축이었습니다. 레이코프는 '생성 의미론자'였고, 촘스키는 '해석 의미론자'였죠. 그런데 이 싸움에서 레이코프가 처절히 패배했습니다. 본인은 끝까지 자기 이론이 틀려서 진 게 아니라, 머릿수에 밀렸다고 주장하지만요.

MIT에서 내는 <링귀스틱 인콰이어리(Linguistic Inquiry)>라는 학회지가 언어학계에서 매우 유명한데요, 레이코프가 세계적 학자임에도 (언어학 전쟁 패배로 인해) 그 학술지에 논문을 단 한 편도 못 실었어요. (웃음)

본인 자신도 떠났고, 촘스키 학파에서도 밀려난 거죠. 그 후 레이코프는 (인지언어학이라는) 다른 길을 모색합니다. 촘스키 언어학의 중심은 인간의 언어 능력을 인지 능력과 별개로 연구할 수 있다는 건데, 레이코프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지각이나 판단 등 일반 인지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는 언어학의 본질을 파헤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촘스키의 언어학적 가정을 하나하나 전부 반박하죠. 레이코프는 결국 일반 인지 능력을 중시하고, 이를 언어학에 도입해 인지언어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죠. 물론 본인 혼자 만든 건 아니고요, 1차 언어학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각자 연구하다가 1970년대 말 비슷한 결과를 낸 겁니다.

인지언어학이 태동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한 책이 앞서 소개한 <삶으로서의 은유>입니다.

제가 버클리대학교에서 레이코프의 수업을 들을 때, 촘스키 이야기만 나오면 이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라고요. 마음속에 아직 울분이 남아있던 것 같아요. (웃음)

▲ 조지 레이코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교수. ⓒwikimedia.org


'빨갱이' 프레임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김종배 : 이제 본격적으로 <이기는 프레임> 이야기를 해 보죠. 일단 정의부터 해보죠. '프레임'이 뭡니까?

나익주 : 프레임은 사소한 일상생활부터 정치적 담화까지, 인간의 모든 의미 해석에 다 작용하는 기준입니다. 낱말의 경우, '사다', '팔다', '지불하다'를 예로 들어보죠. 영어로는 'buy', 'sell', 'pay'가 될 텐데, 이런 낱말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프레임을 동원해야 합니다. 이런 낱말의 의미는 '상거래' 프레임을 통해서만 해석할 수 있죠.

강양구 :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낱말 하나에도 프레임이 다 전제되었다는 거죠? 사고의 틀.

나익주 : 네. 프레임이 문자 그대로 '틀'인데, 창틀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 세계를 하나의 건물로 보고, 우리가 그 건물 안에 있다고 가정하면, 창틀이 보여주는 만큼만 바깥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접할 때 우리는 우리 마음속 프레임, 즉 특정한 창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김종배 : 어떤 낱말이든 그 낱말을 해석하는 데 선입견이 작용할 수 있다는 거죠.

나익주 : 네. 반복해서 해석하면서 고정관념이 만들어집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선전선동을 통해 원하는 내용을 계속 주입하면 국민이 세뇌되죠.

김종배 : 우리 정치에서 자주 사용되는 '빨갱이', '종북'이라는 단어에는 대한민국의 특수성이 반영되는 거겠네요.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얻은 북한에 대한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남아있고, 정치권이 이를 자극하죠.

나익주 :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프레임은 의식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작동합니다.

강양구 : 본인은 균형 잡혀있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사실 자기도 모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약하는 프레임에 잡혀있을 수 있다는 거죠?

나익주 : 반드시요! 완전한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레이코프는 지적합니다. 어떤 주장을 하든지, 자기 무의식에 자기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는 틀을 통해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프레임을 유권자에게 씌우면, 유권자는 그 프레임이 보여주는 만큼만 세상을 보게 되므로 창틀 바깥의 세상은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 보험의 경우가 그렇죠. 미국에서는 의료 보험이 상품입니다. 이런 '상품'의 틀로 세상을 보면, 아무리 아파도 그건 개인이 해결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이 프레임에서는 돈 없는 자가 치료를 못 받고 죽어도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일 의료보험을 '공공'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돈 있는 사람만 치료받아 살고 돈 없는 자가 죽으면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문제가 되죠. 똑같은 현상을 놓고서 다른 프레임을 통해서 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나오죠.

보수의 문제를 지적하면 말려든다

김종배 : 이 책에서 결국 저자가 설명하는 건 '진보가 이기는 방법'입니다. 진보가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익주 : 미국의 경우, 주로 보수가 프레임 전쟁을 벌여왔습니다. 항상 프레임을 선점합니다. 미국 민주당은 그 프레임을 방어하는 데 급급했죠. 그런데 보수의 프레임을 부정하면 결국 그 프레임을 오히려 강화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레이코프는 끊임없이 이 문제를 지적합니다.

강양구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도 결국 그 문제를 지적하는 책이잖아요? 민주당이 공화당의 여러 주장을 반박하면 할수록, 오히려 유권자는 공화당의 주장만 더 마음에 새기는 상황을 낳는다는 거죠.

나익주 : 레이코프가 인지과학 수업 시간에 과제물을 하나 냈습니다. 지금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고 코끼리에 관해 쓰라는 거였는데, 아무도 그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우리 인지 기제의 작동 방식이라는 거죠.

김종배 : 이기는 프레임은 어떻게 짜야 합니까?

나익주 :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더 들어보죠.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했죠. '살린다'는 프레임을 썼죠. 이때 야권, 환경 단체의 반응은 '그건 4대강 죽이기'라는 거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레이코프가 말한 대로, 이명박 정부의 프레임에 그대로 말려드는 겁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을 살리려 애쓰는 선한 집단이라는 이미지만 더 강화하는 거죠.

김종배 : 이렇다는 거죠? 4대강 살리기 대 죽이기 구도로 가버리면, 4대강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겠죠? 그런데 문제없는 강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익주 : 나중에 환경 단체가 이 문제에 비교적 대응을 잘했던 것 같습니다. 4대강 살리기를 '토건업자 배불리기'로 대응했죠. 그런 식으로 프레임 자체를 바꿔서 맞받아쳐야 한다는 게 레이코프의 핵심 주장입니다.

김종배 : 이명박 정부가 시도한 '공기업 선진화'도 떠오르네요. '선진화'의 반대는 '후진'이잖아요? '공공 부문은 뭔가 후진적이구나'라는 이미지를 덧씌운 거죠.

나익주 : 미국의 보수가 프레임 전쟁을 정말 잘하는데요, 한국의 보수는 제가 보기에 더 잘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말한다고 유권자가 따를까?

김종배 : 이 책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게, 진보 진영은 사실을 말하고 논리를 펼치면 사람들이 따라오리라는 착각에 빠져있다고 하더군요.

나익주 : 그렇습니다. 잡다한 수치를 제시하고 사실을 말하면 사람들이 따라오리라는 상상은 18세기 식 구 계몽주의 관점일 뿐이라고 레이코프는 비판하죠. 실제 인간은 꼭 이성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감성과 이성이 맞아들었을 때만 움직이죠.

김종배 : 이런 반론이 가능합니다. 선전선동의 영역 아니냐는 거죠. 프레임 짜기는 결국 소통, 대화가 아니라 선전선동 아니냐는 겁니다.

나익주 : 프레임 전쟁을 할 때 언어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에 충실한 단어를 담아야 합니다. 언어는 표층의 프레임이고, 표층의 프레임을 통해서 심층의 가치를 전달해야 합니다. 심층의 가치, 본래의 정체성에 충실한 단어를 찾아내는 게 프레임 전쟁의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 쪽 사람들은 어떻게든 보수의 가치와 연결할 낱말을 찾아냅니다. 어찌 됐든 새누리당이 독재 정권과 연관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죠. 그런데 이것을 긍정적 이미지인 '산업화'로 전환했죠. 그러니 민주화도 산업화가 완성되었기에 가능했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주장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요.

레이코프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만일 사람들이 받아들이면, 그 프레임은 (설사 사실이 아니더라도) 작동합니다. 보수주의자는 '산업화'라는 낱말로 우리나라의 보수가 민주화의 바탕을 깔아준 존재라는 프레임을 만들었습니다. 아주 효과적으로 독재 권력 낙인에서 벗어났죠.

뒤이어 '선진화'를 통해 유능한 산업화 집단이 우리나라를 이제 최선진국으로 끌고 가는 집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야권은 너무 무능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선진화' 프레임을 걸고 나설 때,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김효석 전 의원입니다. 당시 그가 '뉴민주당 플랜'을 내걸었습니다. 열쇳말이 '현대화'입니다. '국가를 현대화한다'는 거죠. 선진화가 나오니 비슷한 현대화를 내세운 겁니다. 아류도 이런 아류가 없습니다. (웃음) 자신들의 가치와 정체성을 담지도 못했죠.

강양구 : 말을 세련되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지자가 마음속에 품은 가치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거군요.

나익주 : 그렇죠.

왜 가난한 사람이 새누리당 찍을까? 

김종배 : 책에서 재미있었던 구절이 "사람들이 정책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하는 데 있어서, 많은 사람이 자기의 이익을 따라간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도덕을 따라간다"는 부분입니다. 상당히 중요한 문제 제기예요.

강양구 : 맞습니다. 우리는 "왜 농촌에 사는 가난한 어르신들 또 쪽방에 사는 가난한 어르신들이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는 정당에 찍느냐"고 한탄하잖아요.

김종배 : 그렇죠. 흔히 이야기하는 계급 배반 투표의 전형적 모습인데, 레이코프는 (사람들이 이익을 따르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하죠.

나익주 :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보면 알 수 있죠. 레이코프는 프레임을 '덫'이라고 합니다. 한번 걸리면 벗어날 수 없다는 거죠.

우리 마음이 어떤 가치에 충실하냐가 프레임의 성격을 규정합니다. 이 프레임은 보통 사춘기 이전에 짜인다고 합니다. 실제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지역에서 사는데 한쪽에서는 A당이 투표율 90%를 기록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B당이 90%를 먹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결국, 우리가 어릴 때부터 가정, 학교, 지역 공동체에서 받는 교육으로 사고의 틀이 형성되는 데, 그 틀이 무엇이냐가 평생을 좌우합니다. 레이코프 식으로 말하자면, 프레임과 은유가 세뇌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제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 보수 정부가 프레임 전쟁을 정말 잘합니다. 다시 이명박 정부를 예로 들자면, 당시 서울시 교육청에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국 현대사 특강을 진행했습니다. 강사진 대부분이 뉴라이트 성향이었죠. 당시 교사들과 충돌도 심했죠.

이 일을 레이코프의 이론에 맞춰 보자면, 사춘기 학생들의 도덕적 가치관을 원하는 대로 형성하고, 그에 따라 보수 정당의 이해에 맞는 정치적 세계관을 주입하려 한 거죠.

강양구 : 흥미로운 과학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 뇌 사진을 찍어봤더니, 뇌 구조에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연구 결과를 원래 공화당을 지지하는 뇌가 있었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뇌가 있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나익주 연구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변화하기 쉬운(가소성이 높은) 뇌가 사춘기 이전에 공화당 방식으로 훈육되느냐, 민주당의 방식으로 훈육되느냐에 따라 뇌의 구조가 달라지고, 그렇게 달라진 뇌의 구조가 그런 사고방식을 더욱더 강화한다는 겁니다.

김종배 : 레이코프는 '도덕' 혹은 '가치'라는 표현을 쓰는데, 얼마 전 다른 책 한 권을 보니 "사람은 감정에 의해 정체성을 가진다"고 하더군요. 전문가마다 제시하는 개념이 약간은 다르지만, 핵심은 사람들이 합리적, 이상적 사고를 통해 정체성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겠죠?

강양구 : 청취자 여러분은 이 이야기가 불편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제가 기자로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이 이야기가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특정 정당 지지자들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 특정 정치인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일단 정치인을 좋아한 다음에 지지하는 이유를 찾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김종배 : 팬덤 현상이 강화되는 구조도 그렇죠. 우선 정서의 작동이 일어나고, 이후 그것을 강화하는 모습이 일어나죠.

나익주 : 맞습니다. 이 경우 특정인을 좋아한다는 프레임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프레임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거죠. 레이코프는 한번 형성된 프레임을 다른 것으로 교체하려면 죽음에 버금갈 정도의 충격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김종배 : 앞서 나익주 연구원께서 사람의 가치 판단 기준이 사춘기 이전에 형성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험을 미뤄보면, 1980년대 학번의 경우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전혀 모르다가 대학에 가서 광주의 진실을 알고 나서 사람이 확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익주 : 제가 말씀드린 죽음에 버금갈 정도의 충격이 일어난 거죠. 그간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본 정보와 전혀 다른 사실에 의해서 머리를 망치로 두드려 맞은 것 같은 충격으로 인해 기존 프레임이 흔들린 겁니다. 우리 몸이 건물이라면 프레임은 그 일부인데, 우리가 창을 바꾸려면 건물 전체에 충격을 가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 프레임을 교체하려 해도 그렇죠.

제 경우가 딱 그랬습니다. 1970년대 말에 대학교에 입학해서 다닐 때만 해도 세상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는 공화당 당원이셨죠. 당시 친구들이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박정희는 영웅'이라는 생각이 확고히 저에게 자리 잡았죠. 그런데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정부가 사람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장면을 (광주에서) 직접 봤고, 그 장면이 머릿속에 크게 남았습니다. 그러면서 바뀐 거죠.

김종배 : '충격'이라는 두 글자에 답이 있군요. 뇌 회로를 리셋할 정도의 충격이 가해진다면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을 테고, 이 때문에 (현실 정치권에서) 프레임 전쟁이 일어난다고 보면 되겠군요. 

강양구 : 사실 광주 민주화 운동 같은 충격적인 일이 자주 있으면 안 되잖아요. 얼마나 끔찍한 일이에요.

▲ 박근혜 대통령은 최고의 프레임 전사다. ⓒ청와대


野, 진보 프레임 강화해야 새누리당 이긴다

나익주 : 그렇죠.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한방에 바꾸려면 그런 일이 있어야겠지만, 그게 아닌 다음에야 꾸준히 프레임을 제시해야죠.

우리는 누구나 진보적 성향, 보수적 성향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그중 어떤 부분을 활성화하느냐에 따라 특정 성향이 더 강화되죠.

레이코프는 극단적으로 모든 쟁점을 놓고서 진보적인 사람과 모든 쟁점에 보수적인 사람은 극히 일부라고 합니다. 양극단의 10% 정도? 그래서 레이코프는 중도파라는 개념을 쓰지 않고 '이중 개념 소유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보정당이 (우리 사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중 개념 소유자의 지지를 끌어내려면 진보의 가치에 충실한 프레임을 제시해야 하죠.

강양구 :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보적 가치에 기반을 둔 성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거군요.

나익주 : 그렇죠. 다만 활성화 도구로 숫자와 도표 같은 걸 내세운다면 효과적이지 않죠.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런 복잡한 도구로 뇌의 진보적 성향이 활성화되지도 않죠.

김종배 : 프레임이 중요하고, 프레임 전쟁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어디 쉽습니까.

나익주 : 예쁜 꽃을 든 여인이 다가오는 그림을 바라볼 때, 뒤에는 흉기를 숨기고 있을 수 있다는 사고를 하는 게 중요하죠. 이 프레임이 뒤에 감춘 게 무엇이냐를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영리법인 병원이 의료 수준을 높여 모든 국민이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메시지 뒤에 숨은 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중요하죠.

김종배 : 이 책 1부 마지막에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요약해서 독자에게 제시합니다. '당신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라, 당신이 믿는 바를 자각하고 계속 반복해서 말하라, 긍정적이 돼라, 진정성을 보여라, 절실하게 전달하라, 단순하게 말하라'는 겁니다.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강양구 : 레이코프의 설명에 부합하는 언어 사용법이야말로 박근혜 대통령의 전형적 특성이죠. 

김종배 : 정말 의도적으로 레이코프가 말한 것처럼 하는 건진 모르겠으나, 레이코프의 조언에 딱 떨어지게 말한다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언어로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말하죠.

강양구 : 태생이 프레임 전사시죠. (웃음)

나익주 : 자신부터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그렇게 당당히 말할 수 없겠죠. 로널드 레이건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강양구 :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반대편에 선 것으로 보이는 이른바 진보 개혁 정치인 중에서 그만한 진정성을 갖고, 그만큼 지지자의 마음을 흔드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나익주 : 박근혜 대통령은 골수 지지층 말고도 '이중 개념 소유자'가 자신의 가치에 따라오도록 끌어당길 수 있는 언어를 잘 만듭니다. 반면 반대쪽 정치인을 보면, 장황하게 나열하고 훈계조로 말하죠.

김종배 : 누군가 "보수는 단어로 말하는데, 진보는 문장으로 말한다"고도 하더군요.

강양구 : 제가 기사를 쓰는 방식도 이 책이 비판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서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제 입장과 반대되는 분의 목소리를 오히려 강화하지 않았나 하고요.

박근혜, 최고의 프레임 전사

김종배 :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거의 찍어내듯이 할 때 사용했던 표현이 '배신'입니다. 저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표를 주면서 그의 아버지 박정희를 떠올린 사람들, '예쁘고 불쌍한 우리 박근혜'를 생각한 사람 사이에서는 이 단어가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10.26 이후 입 씻고 돌아선 사람과 유승민을 등치해 생각하게 한 거죠.

나익주 : 아마 완벽하게 감정 이입이 됐겠죠.

강양구 : 많은 언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할 때 유체이탈 화법을 꼬집곤 합니다. 맥락이나 상황에 전혀 상관없이 자기 이야기만 한다고 말이죠. 그런데 이거야말로 효과적인 프레임 전략 아닙니까? (웃음)

▲ <이기는 프레임>(조지 레이코프·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나익주 옮김, 생각정원 펴냄) ⓒ생각정원

김종배 :
오늘 <이기는 프레임>이라는 책으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우리는 책 내용 중 일부만 뽑아서 이야기했습니다. 풍부한 실례를 들어 서술한 책이므로, 여러분이 책을 읽어보시면 무릎을 탁 칠 수 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강양구 : 3장과 4장 내용을 약간 소개하자면, 3장은 '이기는 프레임을 짜는 핵심 개념들'을 담았고, 4장은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기 위한 언어들'을 소개합니다. 정치,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 문제, 양성평등 문제, 환경문제, 식품 안전 문제 등을 콕 집어서 '보수는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진보는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해당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 부분이라도 꼭 한 번쯤 점검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익주 : 우리는 보통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너는 나쁜 놈'이라고 말해버리는데, 이런 사고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공존해서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니까요. '저 사람의 프레임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내 프레임으로 말하기를 꾸준히 노력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상대방 본인이 느끼도록 도와줘야지, '네 프레임이 잘못이니, 이쪽 창틀로 세상을 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김종배 : 오늘 독서통은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익주 박사님,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익주 : 감사합니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