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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공동육아, 마을에서 찾다

[민들레] 이웃과 돌멩이국 끓이며 아이 키우기

공동육아를 꿈꾸다

결혼 후 바로 첫아이가 생기고 5년 동안 연이어 세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무척 외로웠다. 새벽 출근에 야근이 잦았던 남편은 얼굴 보기 힘들었고, 큰아이가 다섯 살이 되도록 집에 데리고 있다 보니 어린이집 차가 떠나면 바로 모이는 동네 엄마들의 모임에도 속하지 못했다. 같은 아파트에 5년을 살아도 인사를 나누는 이웃은 겨우 한둘이었다. 이웃이 없는 동네는 섬과 같았다.

첫째가 다섯 살이 돼 보육기관을 알아보던 중 오래전에 본 성미산마을공동체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낯설고 삭막한 도시에서 고향집 같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중에서도 '공동육아어린이집'(이하 '공육어린이집')이 도시육아의 절대 정답처럼 뇌리에 박혔다. '이거다!' 싶어 폭풍 검색을 해보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공육어린이집이 있었다. 바로 대기 신청을 하고 연말에 한 번 있다는 면접 날짜를 기다렸다. 겨우 대기 신청만 했을 뿐인데, 곧 만나게 될 이웃과 의지하며 살 생각에 신이 나기까지 했다. 면접 분위기와 어린이집 분위기 모두 좋아 들떠 있던 차에, 아쉽게도 갑작스러운 남편의 이직으로 이사를 하면서 인연이 닿지 않았다.

서울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이사하기로 하면서 집보다 먼저 공육어린이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군데 있기는 한데 대기 중인 아이들도 많고 차로 등하원해야 하는 거리라 망설이던 중 그 지역에서 공육어린이집 개원을 위한 준비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역 온라인카페에서 만난 몇몇 엄마들이 주축이 돼 두 달 동안 진행되고 있는 모임이었다.

처음엔 서른 가구 가까이 모였는데,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므로 함께 개원을 준비해야 한다는 설명에 부담을 느낀 부모들이 대거 빠져나가고 대여섯 가구 정도가 남아 모임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처음에 모였던 부모들은 사실 어린이집보다는 '품앗이 육아'를 더 원했다고 한다. 어린이집 형태를 원하는 엄마들도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 개원하면 연락 달라며 한걸음 물러나기도 했단다. 낯선 동네, 낯선 엄마들 사이에 불쑥 끼어 같이 해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좋은 이웃을 만나고 싶은 강한 열망에 6개월 된 막내를 업고 양쪽에는 첫째와 둘째 손을 잡고 모임을 이어갔다. 마침 지역에서 '렛츠쿱 강동'이란 협동조합 아카데미가 개설되어 모임 엄마들과 함께 수강을 했다. 이 수업이 동력이 되어 몇 달째 진척이 없던 준비 모임은 활기를 띠었고,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사무국에서 컨설팅을 받으며 본격적인 개원 준비를 시작했다.

▲ 시장 골목 작은 도서관에는 정해지지 않은 즐거운 만남이 있다. ⓒ정가람

'왜?'는 없고 '어떻게'만 있었다

공부할 게 점점 많아졌다. '협동조합은 교육에서 시작해 교육으로 끝난다'더니, 매주 수업을 듣고 모임과 스터디를 하며 개원을 준비했지만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모여 네 시간 이상 논의를 해도 늘 시간이 부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원 합의로 일이 진행되다 보니 뭔가를 결정하기까지 상상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받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11월 다섯 명의 엄마들은 협동조합 발기인을 확정하고 터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터전이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아파트 재건축이 대규모로 진행 중이라, 전셋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따금 좋은 조건의 전세가 나왔지만, "어린이집 하려고요"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사람들 얼굴이 굳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덜컥 매매하기엔 더 부담스러웠다. 아파트 1층까지 선택의 폭을 넓혔지만, 터전 구하기는 어렵기만 했다. 그러다 11월 중순이 되었고, 다른 유치원에선 입학설명회가 열렸다. 엄마들의 마음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12월 안에 공간이 마련돼도 이듬해 3월 개원까지는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었다. 직장에 다니느라 아이를 어디든 보내야만 하는 엄마들은 애가 탔다. 공동육아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다른 유치원 설명회에 쫓아다니다, 결국 유치원 추첨이 한창이던 12월 초 안타깝게도 모임을 해산했다. 아이를 다른 보육기관에 보내면서 공동육아 준비 모임을 지속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다들 지쳐 있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좌절에 몇 날 며칠을 속으로 앓았다. 얼마 후 '렛츠쿱 강동 Ⅱ'와 '새로운 변화 사회적경제가 궁금하다'란 수업을 듣다 보니, 왜 모임이 해산됐는지 알게 됐다. '예상치 못한 좌절'이 아니라, '예상했던 실패'였다. 그동안 구성원들 사이에 벌어지는 틈을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니다. 각자 생각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조금씩 달랐고, 육아관도 처음엔 비슷한 듯 보였지만, 막상 함께하니 많이 달랐다. 사람들의 생각에 조금씩 차이가 생기기 시작하자 '전원 합의'라는 의사결정 방식은 걸림돌이 됐고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도 개인차가 생겼다.

어느새 우린 '왜?'란 질문 없이, '어떻게'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이 있다면 그걸 선택할 용기도 있어야 했는데 이미 정한 것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유연하지 못했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에도 속도를 맞추고 마음을 맞추는 것에도 관대하지 못했다. 컨설팅도 받고 같이 공부도 했지만, 막연히 일반 보육기관과는 다른 (뭔가 있어 보이는) 공육어린이집에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만 두루뭉술하게 모아 '6개월 뒤 개원'이라는 촉박한 목표를 향해 정신없이 달렸던 것이다.

공동육아, 다시 도전!

의욕적으로 참여했던 모임이 실패로 끝나고, 거기서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얼마 후 다시 '공육어린이집 개원을 위한 모임'을 꾸렸다. 대여섯 살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이었던 첫 모임과 달리, 이번엔 막 돌을 넘긴 아기를 둔 엄마들이 많이 찾아왔다. 일하는 엄마들이 많아 잦은 모임은 부담스럽다는 의견에, 2주에 한 번 모여 공동육아에 관한 책을 읽으며 모임을 시작했다. 얼마 뒤 공동육아 아카데미에 참석했던 엄마 열 명도 합류했고, 품앗이 육아를 하던 20대 후반의 젊은 엄마들과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30대 후반의 엄마들까지 함께 모였다. 첫 번째 모임에서 실패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더디더라도 서로 친해지며 천천히 생각을 맞춰가자고 했다.

열다섯 가구가 같이 가까운 곳으로 들살이('야영'의 순우리말)도 다녀오고 책도 읽으며 두 달 정도 모임을 가졌다. 그런데 책 한 권을 다 읽기도 전에 문제가 터졌다. 20대 젊은 엄마들이 모두 모임을 그만두게 된 것이다.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속도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었다. 어린이집 개원을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했지만, 곧 둘째를 가져야 하는 젊은 엄마들은 '어서 개원해서 첫째를 맡겼으면' 했다. 그러나 모임은 책만 읽으며 더디기 진행됐고, 논의와 합의 과정은 지난했다. 모임 날짜 한 번 정하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지역의 여러 모임 중에서도 추진력 강하고 진행이 빠른 모임을 꾸려오던 그 엄마들에게는 이런 과정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의 교육관에서도 큰 차이가 났다. 다양한 놀이수업과 체험학습을 통해 다양한 자극을 주고 싶어 하는 엄마들과 프로그램 없이 스스로 놀게 하고 싶은 엄마들이 충분한 논의와 조율 없이 한쪽의 양보를 강요하는 상황이 되면서 갈등이 생겼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독서모임을 시작한 건데, 열 살이 넘는 나이 차, 갓 돌을 넘긴 아이 한 명을 둔 엄마와 두 살 이상의 자녀 여럿을 둔 엄마가 지닌 생각의 차이는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었다. 젊은 엄마들이 빠지고 크게 흔들리던 두 번째 모임은 결국 흐지부지 막을 내리고 말았다. 돌아보니 근본적인 문제는 서로 다른 '필요와 열망'이지 않았나 싶다. 공동육아가 필요한 이유가 저마다 달랐고, 그를 통해 이루고 싶은 열망도 차이가 있었다. 나만 해도 이미 첫째가 병설유치원에 별 탈 없이 다니고 있었고, 마을극단과 작은 도서관에서 나름 공동체를 이루며 좋은 이웃에 대한 절실함을 풀고 있었다. 꼭 '공동육아어린이집이어야 한다'는 동기가 사라지자, 모임의 동력도 사라졌고 모임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처음보다 덜한 것이 사실이었다.

▲ 작은 도서관에서 동네지도를 크게 그리고, 자기가 살고 싶은 마을을 그리는 아이들. ⓒ정가람


'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

처음에는 나도 공동육아어린이집이 정답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나, 두 번이나 공동육아 협동조합에 실패하면서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각자의 사정에 맞는 대안은 스스로 찾는 것이었고, 육아에서 중요한 건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고, 어떻게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낼까'에 있었다.

공육어린이집에 보내는 건 실패했지만,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 첫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까지 유치원에 갔던 큰아이가 오후에 돌아오면 두 동생과 매일 마을 뒷산과 한강에서 뛰어놀며 시간을 보냈다. 수시로 마을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들러 이웃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상업적인 육아시장, 외로운 도시육아의 대안으로 찾았던 '공동육아'의 가치를 마을살이를 통해 조금씩 이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함께 키울 공동체가 필요해 두드렸던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문은 '마을'이라는 더 큰 울타리에서 열렸다. 마을의 울타리로 들어가는 데는 시장 골목에 있는 작은 도서관 '함께크는우리'가 큰 역할을 했다. 20년 동안 시민회와 도서관을 이용하는 엄마들의 힘으로 운영하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도서관이었지만, 이미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전학생 같은 어색함이 있었지만 자주 드나들며 가벼운 눈인사를 차 한 잔으로 밥 한 끼로 이어가고 도서관 행사에도 자원하면서 함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도서관은 '우리' 도서관이 됐다. 규칙적인 모임이나 특별한 약속이 없어도 자유롭게 도서관에 모여 책을 보다가 때가 되면 함께 밥상을 차리고, 서로의 아이를 돌봐주고, 부모들의 자발적 참여로 방과후교실을 꾸리며 자연스러운 '마을육아'가 이뤄졌다.

나와 내 아이를 위해 찾은 도서관에서 이웃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작은 도서관은 동네의 크고 작은일까지 함께 나누는 사랑방이 됐다. 몇 년을 살아도 낯설기만 하던 도시는 도서관 가족들이 사는 골목으로 이어져 마을공동체사업을 계획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리 마을'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아이들은 방범용 CCTV보다 더 안전한 이웃의 따뜻한 눈길 속에서 자라고 있다. 엄마 아빠가 아니어도 돌봐주고 보호해줄 든든한 어른들이 아이들 곁에 있어 든든하다.

올해 둘째도 여섯 살이 됐다. 남편과 어디를 보낼까 고민하다 차로 30분 걸리는 공동육아어린이집과 20분 거리의 병설유치원, 걸어서 갈 수 있는 구립어린이집 중 동네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구립어린이집으로 결정했다. 그동안 첫째를 차로 등·하원 시키며 병설유치원에 보내 보니, 아이의 보육기관이 동네 울타리 안에 있느냐 없느냐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굳게 문을 닫아걸고 아무도 인사하지 않던 마을에서 '돌멩이국'을 같이 끓이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는 그림책 이야기가 떠오른다. 먼저 문을 열고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노력으로 모르던 서로가 이웃이 되고, 돌멩이만 들어 있던 국은 갖은 재료가 더해져 풍성하고 따뜻한 국이 된다. 이웃들과 함께 돌멩이국을 끓이며 아이를 키우는 마을육아가 '함께 크는 아이, 더불어 성장하는 어른'이라는 공동육아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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