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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푸드 "알바는 밥 안 줘! 티슈도 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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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푸드 "알바는 밥 안 줘! 티슈도 쓰지 마!"

[알바 수기] 최저 임금 받는다고, 최저 인생은 아니다

'알바연대' 대변인이었던 고(故) 권문석 3주기를 맞아 아르바이트 노동자 수기 공모전이 진행됐다. 우수상 2편과 장려상 2편이 선정됐다. <프레시안>이 이들 작품 가운데 일부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여기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부럽다."

무의식적으로 이 말이 나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퓨전 떡볶이, 김밥 등을 먹고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 스쿨푸드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여기서 만든 음식을 '공짜 식사'로 먹을 수 있지 않겠냐며 부러움을 내비쳤다. 나는 이내 곧 웃음인지, 인상을 쓰는 건지 모를 표정이 되고 말았다.

첫 날 출근한 나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매니저를 따라 갔다. 이상하게도 창고로 향했다. 초록색 페인트 칠은 흉물스럽게 군데 군데 벗겨져 있었고, 박스는 높이 쌓여 있었다. 그 중 조그만 글씨로 ‘스쿨푸드’ 명패가 걸려 있었다.

"이곳이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에요. 여기에 옷, 가방을 두면 돼요."

큰 바구니 하나에는 많은 이들의 옷이 마치 빨래를 기다리는 것처럼 엉켜 있었다. 급히 이곳을 떠난 이가 던져놓은 가방이 반쯤 열려 있기도 했다.

"여기서 옷을 벗어요?"

황당했다. 이 백화점에 입점한 점포 직원은 모두 이 곳을 들락날락했다. 창고이다 보니, 굳이 남녀를 가려 들어오지도 않았다. 매니저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어설프게 웃었다.

"누가 안보게 빠르게 갈아입어요. 그럼 돼요. 빠르게! 알았죠?"

매니저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혹시, 누군가 보고 있으면 어쩌나.' 여자인 나는 더더욱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가 내 벗은 몸을 본 것도 아닌데 수치심이 들었다. 나는 계속 두리번거리며 옷을 갈아입었다.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는 창고에서 누가 내 물건을 훔쳐갈지 모르지만, 그것마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됐다. 공포심이 더 컸기 때문이다.

급하게 갈아입고 매장으로 온 나는 매장 서빙 일에 투입됐다. 내 가슴팍엔 ‘교육생’이라는 명찰이 붙었다. 오전 내내 정규직 직원이라는 분께 업무 전반에 대해 배웠다.

"이 매장은 백화점 안에 위치해서, 점심과 저녁에 손님들이 몰려와요. 이따가 점심 때, 일 빠르게 해야 해요."

ⓒ알바노조

정규직 직원은 의욕이 넘쳤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매장 밖으로 줄을 서기까지 했다. 북새통같은 매장에서 빠르게 주문 받고, 음식을 나르고, 치웠다. 정규직 직원도 비정규직 직원인 아르바이트생과 다를 바 없이 일을 했다. 1시간 동안의 러시(Rush)가 끝나자, 빠르게 움직이던 매장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힘든 운동을 한 것처럼 나는 다리가 탱탱 붓고, 온 몸에 힘이 빠졌다. 텅 빈 위(胃)를 느끼며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슬슬 우리도 밥 먹으러 가자."

매니저는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주린 배를 움켜잡았다. 누구보다 매니저의 말이 반가웠다. 이제 곧 밥을 먹을 거라는 생각에 눈이 반짝였다. 오전에 나를 교육한 정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어떤 기대를 담고 있는지 읽은 그는 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뭔가 이상했다. 매니저는 '밥 먹으러 가는 팀' 안에 나를 부르지 않았다. '나를 데려가라'는 눈빛을 보내자, 매니저는 "비정규직이라서 아르바이트생에겐 밥 안 줘요. 정규직만 밥을 먹을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빠르게 등을 돌리고 가버리는 그들을 허망한 듯 바라봤다. 앞으로 4시간이 남았다. 그 날 나는 8시간 동안 굶었다.

출근 둘째 날, '굶지 않고 일 하는 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꾀가 하나 생겼다. 매니저는 8시간 동안 단 한 번, 화장실 갈 시간을 줬다. 단 5분. 5분 안에 바로 옆 매장으로 전력 질주한다면 먹을 기회가 생겼다. 있는 힘껏 달려 빵 세 개를 샀다.

"아이고, 아르바이트하는 데서 밥 안 줘요?"

빵을 담아주는 아주머니의 눈엔 안쓰러움이 담겼다.

"자, 이거 하나 더 먹어요."

아주머니는 내 손 위에 빵 하나를 더 얹어 주셨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곤 냅다 뛰었다. 뛰면서 입에 빵을 처넣기 시작했다. 5분이다. 그 안에 먹고 들어가야 했다. 목이 막혀도 무조건 밀어 넣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창피하지 않았다. 굶으면서 일하는 고통이 어떤 건지, 그들은 모를 테니까.

매장에 돌아와 보니, 나와 같은 구역을 담당하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첫 날 내가 그랬듯이 눈엔 초점이 없고, 힘이 없었다.

"혹시 계속 굶었어요?"

그 고통을 알기에, 모르는 사이지만 말을 걸었다.

"네."

대답은 짧았다. 말할 힘도 없는 듯 했다. 입에 쑤셔 넣다가 남은 빵 반쪽이 주머니에 있었다. 매니저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의 손에 빵을 전달했다.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마워요."

몰래 빵을 입에 넣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망을 봤다. 매니저 눈치에 씹지도 못하고 삼키는 그녀에게 나는 조용히 물을 건넸다. 우리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우리는 조용히 이 상황이 잘못됐음을 이야기했다. 정직원이라고 밥을 먹고, 비정규직 직원이라고 밥을 먹지 못했다. 8시간 내내 우리는 줄곧 서있었다. 단 5분 쉬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매니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는 휴식 시간 없나요?"

매니저는 당황한 얼굴을 하다가 이내 표정이 굳었다.

"너희가 근로기준법을 본 모양인데, 4시간당 30분 휴게 시간 주도록 되어 있지만 너희는 아니야."

매니저는 단호했다.

"너희 근로계약서에 8시간 근무, 5분 휴식이라고 쓰여 있어. 너희가 사인한 거야. 알지?"

숨이 턱 막혔다. 옆에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내게 조용히 물었다.

"언니 저는 계약서 본 적 없는데, 혹시 사인하셨어요?"

물론 나도 그런 계약서 본적도 사인한 적도 없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엔 모든 사업장에서 4시간 마다 30분의 휴게시간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손문상

곧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손님이 항상 많은 주말에 같이 일을 하던 아르바이트생이 떡볶이 국물을 자신의 팔 위에 쏟아버렸다. 한꺼번에 가져 가려다가 삐끗하는 바람에 쏟고 만 것이다. 그녀의 옷에 떡볶이 국물이 쏟아졌고, 팔은 벌겋게 물들었다. 근처에 있던 직원들이 달려와 수습하기 시작했다. 바닥을 닦고, 그릇을 대신 옮겨 주었다.

매니저는 화가 난 표정으로 달려 왔다.

"조심 해야지! 그러다가 손님한테 쏟았으면 어쩔 뻔했어!"

단 한 마디도,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녀의 팔에 묻은 떡볶이 국물을 닦아주기 위해 티슈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매니저는 티슈를 빼앗아 들었다.

"이게 너희를 위한 티슈야? 손님을 위해 제공하는 거 몰라?"

그리곤 그녀의 손에 식탁 닦는 행주를 쥐여 줬다.

"너희는 이걸로 닦는 거야."

행주엔 떡볶이 국물, 김 가루 등이 잔뜩 묻어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한참 행주를 바라봤다. 우리는 대체 왜 이렇게 일을 해야 할까.

우리가 받은 임금은 최저 임금보다 500원이 많았다. 그러나 노동조건을 고려할 때, 최저 임금보다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없었다. 특정 기준 액수 이상을 주라는 최저 임금법 취지에 무색하게, 우리나라에선 최저 임금만 맞춰 주는 게 다반사였다. 비전문적일수록, 대체 가능하기 쉬울수록 그 노동은 ‘최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최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삶마저 최저 인생 취급이었다.

희망을 걸어본다. 최저 임금이 1만 원이 된다면, 우리의 삶도 나아질까. 최저 임금 1만 원 세상이 온다면, 최저 인생 취급도 개선될까. 사람으로 대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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