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어쩌면 한국에 축복이다!
트럼프 대통령, 어쩌면 한국에 축복이다!
[인터뷰]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 ②
미국 대선이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부동산 재벌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로 좁혀지면서 본격적인 본선 레이스에 돌입했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면 클린턴 전 장관이 백악관으로 직행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초반부터 양 후보는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

이에 미국의 동맹국 사이에서는 트럼프가 정말 대통령이 되면 어쩌냐며 이른바 '트럼프 포비아'(트럼프 공포증)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는 전 세계에서 미군의 개입을 줄여야 하고,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분담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미군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국을 알아서 방어해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한국의 자주적 방위 실현을 위해서는 클린턴 전 장관보다 트럼프 후보가 오히려 낫다는 주장이 나왔다.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자주적인 군대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무기한 연기된 전시 작전 통제권의 조기 환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 교수는 "트럼프는 주한 미군의 급료까지도 우리보고 감당하라고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군이 더 이상 동맹군이 아니라 '용병'이 되는 셈인데, 한국 국민이 아무리 미국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런 상황까지 용납할 수 있을까"라며 주한미군의 도움 없이 한국군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군의 병력이 65만 명이나 되는데 전시에 작전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라며 "주한미군 사령관이 작전 통제권을 행사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국의 차기 권력이 과연 트럼프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냐는 지적이 나왔다. 여야를 막론하고 안보나 대외문제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이 없기도 하거니와, 유권자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것은 경제와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결국 민생 문제가 대선 승부를 가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문 교수는 이에 대해 "전쟁 나면 다 잃는다. 전쟁 이상의 민생 문제가 어디 있나? 더군다나 북한이 4차 핵 실험을 하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민생이 제일이라고?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는 군사적 긴장이나 전쟁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다. 왜? 당장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이를 경제적 민생 문제로 외면한다는 것은 비겁한 행위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문 교수는 "민생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 국민이 안심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그렇다면 북핵 문제와 남북 관계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이를 외면하고 '경제 민주화'로 포장하는 것은 객관적 현실을 오도하는, '혹세무민'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여권의 주요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서도 문 교수는 "(반 총장이) 대선 후보로 나온다면 가장 큰 결점이 유엔 사무총장 임기 동안 북한과 관련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면서 "본인이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얼마든지 북한 문제에서 이니셔티브를 잡을 수 있는데 한국과 미국 정부 눈치 보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참 아쉬운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올해로 30여 년이 넘는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문 교수는 스스로 '실패한 교수'라는 박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라면서도 "한국의 방위 산업과 관련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곧 미국에서 출판될 예정"이라며 퇴임 이후에도 활발한 연구와 저술 활동을 벌일 것임을 예고했다. 

인터뷰는 지난 3일 서울 정동에 위치한 달개비에서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편집인)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관련 기사 : 문정인 교수 인터뷰 ① "원칙의 포로가 된 박근혜, 네 가지가 없다")

▲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트럼프, 한국의 '자주화'에 도움될 수도 

프레시안 :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공화당의 최종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미국 현지에서 트럼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문정인 : 일단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워싱턴에 있는 제도권, 기득권 세력들은 트럼프를 정치 광대, 포퓰리스트라고 말한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시각은 좀 다른 것 같다.

사실 외교 정책의 경우, 트럼프와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서로 접점이 많다. 그러니까 이들은 단순히 포퓰리즘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고 '미국 민생 해결 제일주의'라는 밑바닥 민심을 공통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세계 경찰의 역할을 하면서 개입주의 외교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 군산복합체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지금과 같이 대규모 군사비를 써야 하느냐는 민심이 거세다. 특히 미국 내에 중산층이 사라지면서 기득권과 워싱턴에 대한 비판이 높아졌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트럼프를 정치 광대로 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밑바닥 민심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긴 하지만, 그를 '포퓰리스트'라고 단정 짓는 것도 무리가 있다.

프레시안 : 지나친 대외 군사 개입주의에 대한 불만과 워싱턴의 정치가 민생을 외면한 것에 대한 불만이 겹쳐지는 것 같다. 그런데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주류에서 벗어나지 않는 후보라서, 샌더스 의원이 부통령 후보로 나올 것이라는 구상도 있는 것 같은데 가능성이 있을까?

문정인 : 당선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사건건 대통령과 부통령이 맞서면 그것도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민주당의 인기가 떨어지고 재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의 부통령은 상징적인 자리 아닌가? 샌더스 의원이 그 자리에 앉아서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사람들은 샌더스가 클린턴 전 장관에 '포섭'됐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를 우려한 샌더스 지지자들의 저항도 많을 것이고. 그래서 클런턴과 샌더스의 러닝 메이트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물론 샌더스 의원이 어떤 명분을 가지고 부통령직을 수락하느냐가 중요하긴 하다. 샌더스 의원은 대통령이 목표가 아니라고 밝힌 적도 있다. 즉 본인이 표방하고 있는 정치적 이슈들을 끝까지 쟁점화시키면서 미국 정치인들도 이걸 알게 하고, 이를 통해 미국 정치의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것이 샌더스의 목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이걸 믿고 샌더스 의원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부통령 자리를 명분 없이 수락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트럼프가 공화당의 최종 대선후보가 되면서 트럼프 당선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기존의 동맹국들은 트럼프를 상당히 공포스러운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문정인 :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오히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좋은 현상일 수도 있다. 자주적인 군대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무기한 연기된 전시 작전 통제권의 조기 환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또 트럼프가 주한 미군 비용 분담금 문제를 걸고 넘어질 가능성도 있는데, 그는 주한 미군의 급료까지도 우리보고 감당하라고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군이 더 이상 동맹군이 아니라 '용병'이 되는 셈이다. 한국 국민이 아무리 미국을 좋아한다고 해도 이런 상황까지 용납할 수 있을까?

▲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의 대외 군사 정책이 좀 더 자주적인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것인가?

문정인 : 그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물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불개입 주의를 그대로 고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트럼프가 워싱턴의 관료, 의회, 언론, 싱크탱크 등 이른바 '워싱턴 벨트웨이 일당들'의 영향력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고 타협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관측도 나오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공약을 아예 뒤집어버리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런 기회를 통해 한미 동맹이나 북핵 문제를 통 크게 전환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트럼프하고는 이른바 '빅 딜'의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클린턴 전 장관은 지금 오바마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을 강화시키기만 할 것이다. 상당히 과감한 주장일 수도 있지만, 트럼프가 재앙이 아니라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자주화'당하는 입장에 놓일 수 있다는 뜻인가?

문정인 : 그렇다. 지금까지 한미 동맹은 위선적이었다. 이 관계를 벗어나야 한다. 한국군 병력 규모가 65만 명이나 되는데 전시에 스스로 작전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주한미군사령관이 작통권을 행사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트럼프가 되면 한미 동맹에 대한 전반적인 재논의가 있을 수 있고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파격적인 행보를 취할 수 있다. 한국의 보수들이야 안전한 게 좋으니까 힐러리가 좋겠지만, 트럼프가 되면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름의 일리가 있다.

전쟁 방지가 최고의 '민생'이다

레시안 : 트럼프가 한미 관계, 남북 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중요한 것은 국내에 이런 변화를 감내하고 잘 적응할만한 역량이 있을지가 의심스럽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한미 관계나 남북 관계에 있어서 대담하고 과감한 발상이 보이지 않는다. 야당은 지난 총선에서도 그랬지만 이 사안들을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고 있다.

문정인 : 그런 역량은 부족하다고 본다. 특히 국민의 당 안철수 상임대표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같은 사람들의 사고로는 힘들다. 이 사람들은 안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상황 악화를 막고 기존 현상을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지, 이걸 뛰어넘어서 평화 가능성을 여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뭘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 같다. 햇볕 정책의 바탕은 강한 안보인데도 지금 야당은 햇볕 정책이 마치 안보를 포기한 실패한 정책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햇볕 정책의 첫 번째 원칙은 북한의 어떠한 군사적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북한을 흡수 통일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교류와 협력을 통해서 사실상의 통일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햇볕 정책의 3대 원칙이고 이걸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기본 원칙으로 삼아서 지금까지 정책을 펴왔다. 그런데 이걸 실패한 것이라고 하면서 안보만 이야기하면 결국 햇볕 정책에 대해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비판하는 것밖에 안 된다.

프레시안 : 그런데 대선 국면에서 남북 관계는 유권자들의 피부에 닿는 주제가 아닐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대선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민생 문제 해결이고 이게 곧 승부처라는 지적이다.

문정인 : 전쟁 나면 다 잃는다. 전쟁 이상의 민생 문제가 어디 있나? 더군다나 북한이 4차 핵 실험을 하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민생이 제일이라고?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는 군사적 긴장이나 전쟁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이다. 왜? 당장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이를 경제적 민생 문제로 외면한다는 것은 비겁한 행위 아닌가?

민생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 국민이 안심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전쟁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렇다면 북핵 문제와 남북 관계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이를 외면하고 '경제민주화'로 포장하는 것은 객관적 현실을 오도하는, '혹세무민'하는 정책이다. 현실을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외면하는 셈이다.

프레시안 :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이 이른바 '투 코리아'로 가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통일 이야기하지 말고 별개의 국가로 평화만 관리하면서 투 코리아로 가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문정인 : 그게 햇볕 정책 아닌가? 햇볕 정책을 만든 사람들은 하나의 주권을 가진 국가를 만드는 일은 우리 후대가 알아서 할 일이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를 만들어내는 작업과 분단에 따르는 군사적 긴장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두 개의 주권 국가로 서로를 인정하고, 거기에서 공생, 공존, 공영의 기회를 잡자는 것이 햇볕정책이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가 법적, 제도적 통일이 아니라 사실상의 통일을 이야기한 것이다. 남북이 정상 회담과 각종 각료 회담, 국회 회담 등을 하고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이동하다 보면 남북의 동질성이 올라가고 북한의 체제도 바뀔 것이라는 전망에서 접근한 것이었다. 그렇게 남북이 잘 지내다 보면 어느 시점에 통일 논의가 생길 수 있고, 그러면 그건 그 시점에 사는 사람들이 결정해야 할 몫인 거다.

통일은 기본적으로 두 개의 각기 다른 개체가 하나의 속성을 가진 개체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흡수통일을 한다고 해도 북한의 동의가 필요하다. 즉 통일은 상대가 있는 것이고 이 때문에 상대와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런 신뢰 구축이 바로 평화의 과정이다. 그래서 평화는 목표 그 자체가 아니라 프로세스, 과정인 것이다.

프레시안 : 차기 권력으로 여권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주목받고 있다. 반 총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외교나 남북 관계 정책도 박근혜 정부와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문정인 : 반기문 총장은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이긴 하지만, 대선 후보 나온다면 가장 큰 결점이 유엔 사무총장 임기 동안 북한과 관련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미국 눈치만 보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북한 문제에서 이니셔티브를 잡을 수 있는데 하다못해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TF) 팀 하나 만들지 못했다. 본인이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얼마든지 이니셔티브를 취할 수 있는데, 한국과 미국 정부 눈치 보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참 아쉬운 부분이다.

사실 반 총장이 경쟁력을 갖는 부분은 외교 아닌가? 따라서 국민들이 반 총장을 지지하더라도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가장 큰 희망을 걸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반 총장이 해왔던 업적을 보면 별로 기대를 걸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5월 30일 오후 경주화백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6차 유엔 NGO(비정부기구) 콘퍼런스' 개막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패한 교수"?

프레시안 : 이제 곧 퇴임을 앞두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스스로를 "실패한 교수"라고 평가하셨다고 들었다. 다소 이해하기 힘든데 어떤 이유로 이런 박한 평가를 내리신 건가?

문정인 : 선택과 집중을 못했던 것 같다. 1980년대 미국에서 교수로 있었을 때 개발국가론을 통해 주목을 받았고 이후 매릴랜드 대학교의 에드워드 아자르 교수와 함께 <제3세계 국가 안보론>이라는 책을 영어로 냈는데, 이 책이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등으로 번역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 책은 제3세계 안보를 기존의 서구의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3세계에서는 통합의 위기, 정통성의 위기, 정책 운영의 위기에서 안보 위기가 오기 때문에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개발국가론과 제3세계 국가 안보론 연구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성과가 나왔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상황적인 탓도 있는데, 연구 결과가 조금 주목을 받으니까 여기저기서 청탁이 많이 들어오더라. 또 한국에 들어오니 사회적으로 연구 요구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특정한 한 주제에 집중하지 못한 것 같다. 그 때 선택과 집중을 해서 대작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프레시안 : 퇴직 이후에 집중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신지?

▲ 문정인 연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문정인 : 지금 당장 준비하고 있는 것은 한국 방위 산업 문제로 책을 한 권 내는 것이다. 미국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는데 내년 초에 영문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한국 방위 산업의 트렌드를 보면 재밌는 것이, 박정희 정권 때는 방위 산업 초기였으니까 정부가 전적으로 주도했는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 때 방위 산업이 완전히 쇠퇴했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다시 방위 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국방비도 많이 늘어났다.

제 책은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에 대해 짚었다. 보수 정권에서 방위 산업이 쇠퇴하고 진보 정권에서 되살아난 것은 역설적인 현상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통해 이를 규명하는 작업이다.

사실 방위 산업하면 꼬리말처럼 따라붙는 것이 비리인데, 방산 비리가 좀 과장된 부분도 있다. 방위사업청이 비리하는 것도 아니고. 특히 노무현 정권 때 방사청이 만들어지면서 사실상 비리가 많이 없어지기도 했다. 지금 나오는 것은 전부 2012년 이후에 생긴 방산 비리다. 결국 관건은 방사청이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터진 방산 비리 문제는 사실상 노무현 정권을 뒷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방산에서 정치가 개입됐는지를 추척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혐의점이 나오지 않다 보니 다른 부분을 건드려서 방산업자들을 구속시켰던 사례도 많다.

물론 방사청은 제도적으로 비리를 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것인데, 그 틈바구니에서 소위 '해먹은'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프레시안 : 앞으로 후배 학자들은 북한과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연구해야 할까?

문정인 : 우리가 보통 지역 전문가라고 하면 그 지역의 언어를 사용하고 지역에 수시로 방문하고 지역 전문가나 정책 결정자들을 인터뷰하고 그 지역의 1차 자료를 볼 수 있다는 것 등을 조건을 꼽는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북한을 가보지 못하고 있고 정책 결정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현지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느끼고 과거와 비교해보고 하는 등의 활동이 중요한데 이걸 못하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북한 연구에 한계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북한에 직접 다녀오도록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을 보던 연구자들이 북한에 가서 북한 사람과 만나다 보면 작은 차이라고 발견할 수 있는데 지금은 사실상 절벽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

북한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학자들의 지속적인 남북 교류를 허용해줘야 한다. 이런 걸 안 하니까 문제가 생기고 자꾸 부분을 전체로 오독하는 오류가 나타나는 것이다. (끝)
jh1128@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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