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의 몸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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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통] <불멸의 원자>
2016.07.13 11:57:15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학교 다닐 적에 물리학을 좋아했다는 사람을 찾기는 힘듭니다. 여기저기서 물리학이, 수학만큼이나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푸념이 들리죠.

하지만 물리학은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컴퓨터, 휴대전화 모두 물리학이 없었다면 탄생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우리나라 전기 가운데 3분의 1을 생산하는 핵발전소, 또 그 형제인 핵폭탄 역시 물리학이 없었더라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물리학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학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서 많은 이들이 현대 물리학이 설명하는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시간, 중력, 양자, 블랙홀 등 현대 물리학의 핵심 주제는 대중이 가장 궁금해 하는 과학 이슈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다 또 물리학과 친해지는 데 실패하고요.

이런 우리를 위해서 이강영 경상대학교 교수가 <불멸의 원자>(사이언스북스 펴냄)를 선물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 교수는 현장에서 연구하는 과학자이면서 글을 맛깔나게 잘 쓰기로 유명한 분이죠.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사이언스북스 펴냄) 같은 책에서 이미 그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한 적이 있습니다.

<프레시안>과 <시사통>이 함께 만드는 '독서통'. 이번에는 이강영 교수를 모시고 흥미로운 물리학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여행할 준비를 해보았습니다.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 이강영 경상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현대 물리학 대중 교양서

김종배 : 독서통 시간입니다. 이번 주는 제가 책을 소개해 드릴게요. 한 1년 전쯤 <시사통>에서 이강영 경상대학교 교수를 모시고 '물리통'을 진행했습니다. 물리학 지식이 없어 진땀을 뺐던 기억이 나는데, 그 내용을 포함해 교수께서 여러 가지 물리학 이야기를 정리한 책이 나왔습니다. 바로 <불멸의 원자>입니다.

저자인 이강영 교수를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교수님!

이강영 : 안녕하세요.

김종배 : 바쁘셨을 텐데, 책 작업은 언제 하셨어요?

이강영 : 이 책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의 웹진 <크로스로드>에 '페르미 솔루션'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골격으로 다시 쓴 것입니다.

강양구 : 그럼, 작년(2015년) 물리통을 진행하기 전에 원고 집필을 끝낸 상태였군요?

이강영 : 그렇죠. 당시 한창 모아진 원고를 가지고 책 작업을 하던 중이었죠.

강양구 : 먼저 읽은 독자로서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정말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제가 이강영 교수님의 팬이에요. <LHC,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으로 한국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죠? 저도 그 책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쓴 과학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불멸의 원자>를 읽으면서 그렇게 자랑할 만한 책이 한 권이 또 늘었어요. 이 책도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 들더라고요.

김종배 : 어렵지 않았나요?

강양구 : 물론 어려웠죠. (웃음) 먼저 읽은 독자로서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나 낯선 용어가 나와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읽으라는 겁니다. 계속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책의 내용에 흠뻑 빠져듭니다. 처음에 읽을 때는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다 읽었어요.

김종배 : 사실 전문가가 아닌 대중을 위한 과학 책이잖아요. 하지만 우습게보면 큰 코 다칠 것 같은데요.

강양구 : 처음에 책이 어렵게 느껴지는데, 책의 구성 탓도 있는 것 같아요. 1부가 가장 어렵습니다. 난이도만 놓고 보면,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었던) 2부가 쉽고요. 출판사에서 차라리 2부를 앞부분에 배치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또 과학 책을 주로 사서 보는 독자의 입맛에는 너무 쉬운 책으로 여겨졌겠죠.

<빅뱅 이론> 물리학자 만나기란 어렵다?

강양구 : 우선 쉽게 읽을 수 있는 2부부터 얘기해 볼까요? 이강영 교수님 생각은 어떠실지 모르지만, 저는 이 책의 백미는 2부라고 생각합니다.

2부를 비롯한 이 책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물리학자 가운데 책의 표지에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의 얼굴을 실었습니다. 이 책의 초고를 연재한 <크로스로드> 꼭지 이름과 같죠? 페르미에 아주 강한 애착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이강영 : 예, 그렇습니다. 2부에 소개되는 물리학자의 첫 인물로 페르미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일 테고요.

강양구 : 우선 페르미가 누구인지부터 설명해 주세요.

이강영 : 페르미는 20세기가 막 시작할 때, 그러니까 1901년에 태어난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입니다. 피렌체 대학교를 거쳐서 로마 대학교 교수로 지내며 193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죠. 그러다 무솔리니 치하에서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부인의 외할머니가 유태인이었거든요. 그 때부터는 미국에서 만년을 보냈고요.

페르미는 핵물리학 분야에서 아주 많은 일을 했습니다. 우선 핵분열 실험을 가장 먼저 한 과학자예요. 당연한 수순으로 미국에 가서는 1942년에 최초의 실험용 원자로를 만들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원자 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고문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밖에도 현대 물리학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죠.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물리학자를 꼽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과학자죠. 실제로 1999년 말 <타임>이 20세기 각 분야의 중요한 사람을 뽑았는데, 페르미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함께 가장 중요한 물리학자로 꼽혔습니다. 이 정도만 들어도 페르미가 중요한 물리학자라는 데는 감이 올 거예요.

강양구 : 단지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고 페르미를 좋아하신 건 아닐 텐데요.

이강영 : 그럼요. 과학의 다른 분야에서는 이례적인 일입니다만, 20세기 초에 들어서면 물리학은 이론 물리학과 실험 물리학으로 나뉩니다. 당장 저는 이론 물리학자예요. 그런데 페르미는 이론과 실험 두 부문에서 모두 세계 최고였습니다. 평생 자기 손으로 실험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아인슈타인과 대조되죠.

강양구 :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페르미 솔루션도 설명해 주시죠.

이강영 : 이론과 실험에 두루 밝았던 데서 알 수 있듯이, 페르미는 항상 실용적인 자세로 가능한 한 간결한 것을 좋아했습니다. 또,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추구했어요.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해서, 간단한 계산만으로 핵심적인 해답을 구했죠. 당연히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이렇게 페르미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적절한 가정으로 단순화해서 자세한 계산 없이 답을 어림해 내는 것을 페르미 솔루션이라고 부릅니다. 페르미 솔루션을 구하도록 만들어진 문제를 '페르미 퀘스천'이라고 하고요. 한 기업의 입사 면접 질문으로 나와서 유명해진 사례가 있죠. '시카고에는 피아노 조율사가 몇 명이나 있는가?'

김종배 : 물리통 진행하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교수님은 페르미 못지않게 폴 디랙(Paul Adrien Maurice Dirac)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이강영 : 궁금한 사람이죠. 그라면 세상을 어떻게 봤을까, 이런 궁금증이 드는 과학자가 바로 디랙입니다.

강양구 : 이 책에 실린 여러 글 가운데 과학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글이 딱 하나 있어요. 바로 디랙 이야기죠.

김종배 : 디랙은 양자 역학 이론을 체계화하는 데 중요한 공을 세운 과학자입니다. 그런데 여자를 무서워하는 '모태 솔로'였어요. 그런 디랙이 사랑에 빠졌다고요?

이강영 : 맞습니다. 책에도 소개했듯이 사랑에 빠진 남자의 열정이 가득 담긴 러브레터를 남겼죠. 다행히 디랙의 사랑은 해피앤딩이었죠. 사랑한 여자랑 결혼했거든요.

강양구 : 많은 사람이 '물리학자'라고 하면 괴짜를 떠올립니다. 인기 미국 시트콤 <빅뱅 이론>의 등장인물 셀던이 바로 그런 괴짜 물리학자의 한 본보기일 것 같아요.

이강영 : 그런데 정작 물리학자 가운데 셀던 같은 괴짜를 찾아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괴짜 천재 과학자 이미지의 원형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만 하더라도 여자 문제에 관한 한 셀던 같은 모습과는 달랐거든요.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유명한 리처드 파인만도 괴짜와는 거리가 먼, 엄청나게 활기찬 사람이었죠.

강양구 : 이 책에 나온 과학자 가운데 셀던의 이미지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디랙입니다.

이강영 : 맞아요. 디랙이 셀던이 연기한 괴짜 물리학자의 이미지에 제일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런 디랙이 사랑에 빠진 거죠. (웃음)

▲ 버징가! 인기 시트콤 <빅뱅 이론>의 셀던은 이른바 '너디한', 괴짜 물리학자 캐릭터로 큰 인기를 모았다. ⓒ미국 CBS


과학의 사회적 책임

강양구 : 저는 로버트 윌슨(Robert Rathbun Wilson)에게도 눈이 가더군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 가운데, 원자 폭탄 실험이 성공하자 환호하는 동료 사이에서 유일하게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죠. 원자 폭탄이 가져올 사회적 의미를 숙고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던 겁니다. 윌슨은 중요한 업적도 많이 남긴 물리학자죠?

이강영 : 특히 가속기 전문가로서 현대 물리학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죠.

강양구 : 저는 윌슨이 '가속기가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 국회의원에게 '국가 안보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대답하며 했다는 말이 굉장히 감동적이었습니다.

"가속기는 좋은 화가, 뛰어난 조각가, 훌륭한 시인과 같은 것들, 즉 이 나라에서 우리가 진정 존중하고 명예롭게 여기는 것, 그것을 위하여 나라를 사랑하게 하는 것들과 같습니다. 이 가속기는 우리나라를 직접 지키는 일에 쓰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155쪽)

강양구 : 이강영 교수께서도 개인적으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같은 문제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물리학자로 살아가다 보면 어떻습니까?

이강영 : 윌슨과 이 책에 나오는 물리학자 여럿이 참여했던 맨해튼 프로젝트는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지금은 과학자의 특정 연구가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곧바로 사회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더구나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이 갈수록 전문화하기 때문에 과학자가 현장에서 내 연구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지를 고민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현장의 과학자가 윌슨처럼 과학의 사회적 의미를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데는 이런 구조적인 영향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천재' 과학자란 없다?

김종배 : 이 책에 소개된 물리학자 이야기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열패감도 느껴집니다. 모두 천재예요. 노력형 물리학자는 없습니까?

이강영 : 제가 노력형이죠. (웃음)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보통 뛰어난 물리학자를 보고 천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어렸을 때부터 일등만 했던 물리학자는 별로 없습니다. 물론 그들 대다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죠. 하지만 그들이 자랄 때만 하더라도 지금 우리나라처럼 모든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던 시대가 아니었거든요.

김종배 : 그래도 보통 사람으로서 이 책에 나오는 물리학자처럼 되기를 기대하는 건 상상이 안 되는데요.

이강영 : 디랙만 하더라도 초등학생 때는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못했어요. 영국 브리스틀 대학교를 다니면서 비로소 수학에 소질이 있음을 알게 되죠.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천재 (괴짜) 과학자에 가장 가까운 디랙조차도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두각을 보인 사람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에밀리오 지노 세그레(Emilio Gino Segrè)라는 물리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과학사에 관심이 많아서 말년에 책을 많이 썼어요. 그가 '물리학자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으므로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볼프강 파울리(Wolfgang Ernst Pauli)와 같은 과학자는 '물리학을 하지 않았으면 뭘 하면서 먹고 살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죠.

반면에 세그레는 네덜란드 물리학자 헨드릭 안톤 로렌츠(Hendrik Anton Lorentz)를 놓고서는 '대사를 시켰어도 잘했을 것'이라고 평합니다. 그러니까 로렌츠는 물리학 외에도 다양한 방면에 자질이 있었던 겁니다. 실제로 로렌츠는 20세기 전반기 물리학의 발전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솔베이 학회'를 다섯 번 정도 주최하죠.

어쨌든 모두 물리학이 적성에 맞았으니 잘하고 이토록 훌륭한 업적을 남겼겠죠. 하지만 그들이 천재여서 그런 업적을 남겼다는 데는 동의하지 못하겠어요. 

강양구 : 천재 얘기가 나오니 떠오르는 과학자가 있습니다.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입니다. 책에서는 반신반인으로 칭하죠.

이강영 : 폰 노이만은 극단적인 예입니다. (웃음)

그런데 폰 노이만도 고등학교 과정을 다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물론 김나지움(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의 중등 교육 기관)에 다닐 때 일찌감치 수학에서 두각을 드러냈습니다만, 어쨌든 정규 과정을 남보다 앞서지 않고 똑같이 마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천재는 어릴 때부터 남보다 크게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렇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두드러졌던 물리학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만 해도 어릴 때부터 특별히 두드러진 천재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천재, 천재 하면서 다른 길을 강요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강양구 : 맞습니다. 천재 소리를 들으며 조기 교육을 받은 이들이 실제로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닌데요.

김종배 : 물리통을 진행할 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물리학자로 이휘소 박사를 소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휘소 박사는 조연으로만 몇 번 등장합니다.

이강영 : 이휘소 박사도 이 책에 소개되는 물리학자의 대열에 당당히 들어갈 정도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아마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노벨상을 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노벨상을 탄 과학자에 필적할 만한 업적을 남긴 분으로 기억됩니다. 

우리는 모두 불멸한다

김종배 : 이제 조금 골치 아픈 얘기를 해볼까요? 이 책 1부는 물리학적 의미에서 죽음이란 무엇인지를 얘기합니다. 아주 신선했어요.

이강영 : 죽음은 물리학이 아니라 생물학에서 정의해야 할 일입니다. 다만, 저는 이 죽음이라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를 물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해 봤어요.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은 부패입니다. 부패라는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면서 미생물이 우리 몸을 소화하기 시작합니다. 물리학적으로 보자면, 시체를 이루던 분자가 다른 분자로 변화하죠. 

강양구 : 죽음을 물리학적으로 다룬 글이 이 책의 제목('불멸의 원자')과 같습니다. 왜 원자가 불멸하나요?

이강영 : 예를 들어, 죽은 자를 화장했다고 해보죠. 우리의 몸은 생전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원자는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분자 구조는 바뀌지만, 탄소(C) 같은 그 안의 원자는 그대로입니다. 없어진 것도, 새로 생긴 것도 없습니다. 이 불멸성이야말로 원자의 중요한 속성입니다.

김종배 : 그렇다면, 물리학적 관점에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 겁니까?

이강영 : 원자 수준에서는 그렇습니다.

강양구 : 우리가 죽더라도, 우리 몸을 구성한 원자는 지구상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거군요.

▲ 우리 선조는, 물리학적 의미에서 불멸의 존재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강영 :
그렇습니다. 마릴린 먼로의 몸을 이룬 원자, 카이사르의 몸을 이룬 원자, 더 거슬러 올라가 네안데르탈인의 몸을 이룬 원자도 지구상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자 가운데 어떤 것은, 예를 들어 먼로의 몸을 이뤘던 원자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우리 몸의 구성 요소가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테죠.

강양구 : 이 책 앞부분의 주요 내용이 현대 물리학이 새롭게 발견한 세상의 구조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부분을 친절하게 설명한 과학 책이 드물어, 그만큼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과학 기사를 쓰면서 느낀 점입니다만, 원자 단위 아래로 내려가면 많은 분이 어려워하시더라고요. 현대 물리학이 바라보는 세상의 구조에 관해 간략히 설명해주면 어떨까요? 

이강영 : 만물이 원자로 이뤄졌다는 건 상식이니 다들 아실 겁니다. 원자는 한가운데에 원자핵이 있고, 주변은 전자가 공전하는 형태의 구조입니다. 가운데 태양이 있고, 주변에 행성이 공전하는 태양계를 연상하시면 쉽죠.

강양구 : 원자핵의 크기가 어느 정도나 됩니까?

이강영 : 원자핵의 크기는 원자의 1만 분의 1 정도입니다. 원자가 여의도만하다면 원자핵은 골프공 정도 크기일 겁니다. 아주 작죠. 그런데 원자 질량의 대부분은 원자핵입니다. 원자핵이 원자의 모든 성질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원자핵은 우리가 '플러스(+)'라고 부르는 양전기를 띕니다. 전자는 '마이너스(-)' 음전기를 띄죠. 원자핵이 가진 양전기를 완전히 상쇄할 만큼 많은 전자가 주변에 있습니다. 그래서 원자 전체는 중성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끼리는 전기적인 힘을 서로 주고받지 않습니다.

강양구 : 이제 모두가 어려워하는 원자핵 단위 아래로 내려가 볼까요?

이강영 :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뭉친 상태입니다. 공 여러 개가 뭉친 이미지를 상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양성자와 중성자가 많이 모여 있으면 뭉치는 힘이 약해져요. 우리가 바닷가에서 젖은 모래로 공을 만든다고 생각해 봅시다. 모래를 너무 많이 뭉치면 공이 만들어졌다가도 한쪽이 툭 떨어지잖아요.

이렇게 툭 떨어지는 현상이 핵분열이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툭 떨어진 조각이 바로 방사선입니다. 특히 우라늄의 경우에는 양성자 92개가 뭉쳐 있는 상태로, 불안정해서 깨지기 쉽습니다. 핵발전소나 핵폭탄의 원료로 우라늄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강양구 : 이제 양성자로 넘어가죠.

양성자는 양전기를 띄고, 중성자는 이름 그대로 전기를 띄지 않습니다. 양성자의 숫자로 원자 번호를 매기죠. 가장 가벼운 원자인 수소는 양성자 하나를 가지고 있어서 원자 번호가 1번입니다. 우라늄은 양성자가 92개가 있으니 원자 번호가 92번이죠. 원자의 질량은 여기에 중성자 수를 더한 것이고요.

김종배 : 양성자에서 멈추죠. (웃음) 양성자 밑으로 더 파고들어가는 건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둡시다.

강양구 : 여기서부터 시작인데…. (웃음)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만, 이 책에 나오는 현대 물리학의 중요한 발견 상당수가 이론이 먼저 나오고, 이론에 부합하는 실험 결과가 뒤따라 나오는 식으로 이뤄졌습니다. 2011년 12월에 발견된 힉스 입자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이미 1960년대에 그 존재가 예측되었으니까요.

이강영 : 20세기에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역사적으로 대부분 중요한 발견은 당연히 실험을 통해서 이뤄졌어요. 우연히 발견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원자핵이 대표적입니다. 갈수록 이론이 예측하고 실험이 입증하는 경우가 늘고 있긴 합니다만, 우리가 검출할 수 있는 물질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우연한 계기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사례입니다만, 지난해(2015년) 말 현존하는 가장 큰 가속기인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 Large Hadron Collider)에서 새로운 물질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여태까지 입자가 존재한다고 생각되지 않던 영역에서 특이한 신호가 포착됐죠. 이 발표 이후, 올해 초부터 약 4개월 동안 이 현상을 설명하려는 논문 300여 편이 쏟아졌습니다.

만약 이 입자가 실재한다면, 기존에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물질입니다. 이런 입자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은 당연히 있습니다.

과학은 철학의 근거

김종배 : 이제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 보죠. 물리학적 관점에서 세계란 무엇입니까?

이강영 : 물리학자에게 세계는 원자가 여러 가지 형태로 모여 있는 곳이죠. 참, 여기서 '세계'는 지구입니다.

김종배 : 지구 밖으로, 그러니까 우주로 범위를 넓히면 어떻게 됩니까? 

이강영 : 크게 달라지진 않습니다. 다만, 우주로 나가면 훨씬 극단적인 상황에서 원자가 불멸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별이 진화하다가 최후를 맞는데, 그 중 덩치가 큰 별은 초신성이 되어 폭발합니다. 이때가 지금 현재 우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높은 에너지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런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는 원자가 파괴되거나,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김종배 : 물리학적 관점에서 원자의 결합 또는 해체가 죽음이라면, 이 세상에 소멸이 있습니까?

이강영 : 원자 수준에서 소멸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책 제목 그대로 불멸입니다. 

김종배 : 물리학에 획기적인 진전이 일어날 때마다, 철학에서도 변화가 일어났죠?

강양구 : 20세기 초반에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라는 현대 물리학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 이론이 당대 지식인에게 큰 영향을 줬습니다. 그 영향의 흔적이 현대 철학의 여러 분야에 남아 있고요. 물론 어떤 과학자는 철학자의 과학 이해가 아전인수라고 못마땅해 하기도 합니다만. 

이강영 : 대표적인 사례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죠. 칸트 철학은 뉴턴의 물리학을 기반으로 발전했다고 하니까요.

20세기 물리학이 분명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했죠. 다만 이 이야기가 철학에 충분히 반영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철학자가 아니니까요. 상대성 이론의 경우에는 지금은 철학자도 그 의미를 잘 이해하시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양자 역학은 다르죠. 심지어 물리학자 가운데도 '양자 역학을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를 놓고서 논란이 있어요. (웃음) 

현대 물리학 입문서

강양구 : 이제 마무리 할 시간입니다. 평소 과학 책을 자주 접하지 않은 독자가 과학 책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고만고만한, 남들이 다 읽는, 특정 분야에 편중된 과학 책만 반복하는 패턴이 계속됩니다. 저는 그런 분에게 <불멸의 원자>를 추천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현대 물리학의 개념, 논리, 사람에 익숙해집니다.

그 이후에 다른 책을 잡는다면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참에 <불멸의 원자>로 현대 물리학 세계에 입문해보기를 권합니다.

김종배 :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습니다만, 의외로 물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세계란 무엇인가, 나아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 <불멸의 원자>(이강영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강양구 : 이 책도 그렇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 지식을 습득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 저 같은 경우는 전쟁 중에 핵분열을 발견된 과학자들이 저마다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윌슨 같은 매력적인 과학자도 만날 수 있었고요.

미학이나 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본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놓고서 숙고할 수 있을 테고, 또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질문도 던져볼 수 있겠죠.

이강영 : 우리나라에 좋은 과학 책이 많습니다. 다만 저는 이 책에서 다른 과학 책에서 잘 거론하지 않은 현대 물리학의 성과, 특히 원자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소개해 보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오늘도 얘기를 못했습니다만 양성자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어디서도 잘 가르쳐주지 않거든요. 

강양구 : 이 책을 읽고서 꼭 양성자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살펴봅시다. (웃음)

김종배 : 오늘 이강영 교수를 모시고 <불멸의 원자>라는 책에 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강영 : 감사합니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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