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은 수영 못한다"…이제는 버리자!
"흑인은 수영 못한다"…이제는 버리자!
[이종훈의 영화 같은 스포츠] 시몬 마누엘의 위대한 승리
2016.08.21 18:56:25
"타잔의 여러 가지 능력 중에서 미국과 아프리카의 흑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능력은 다름 아닌 수영이다. 올림픽에 나오는 수영 선수들 중에 흑인 선수가 없는 것에서 보듯이, 흑인은 유전적으로 수영에 불리한 신체 조건을 갖고 있어 수영을 잘하지 못한다.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강물 속으로 주저 없이 뛰어들고, 물살을 힘차게 가르며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타잔의 모습은 흑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1980년대 초, TV 외화 <타잔>의 광팬이었던 내가 읽었던 언론 기사의 한 구절이다. 이와 함께 이 기사는 "역대 타잔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배우는 조니 와이즈뮬러이며, 와이즈뮬러는 올림픽 남자 수영 자유형에서 금메달 5개를 딴 미국의 수영 영웅"임을 예시로 들며, 타잔을 연기하려면 수영 능력이 탁월해야 한다는 부연 설명도 했다. 이 글을 읽은 후, 나는 종종 친구들과 함께 TV로 타잔을 보며 "흑인은 수영을 못하기 때문에 밀림에서는 타잔이 왕이고, 최고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떠벌리곤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남자 수영의 스타는 단연 미국의 매트 비욘디였다. 비욘디는 자유형 50미터, 100미터, 200미터, 접영 100미터, 계영 400미터, 혼계영 400미터 등에서 6관왕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던 선수다. 지금으로 치면 마이클 펠프스 정도의 주목을 받았다. 대회 5일차에 열렸던 남자 접영 100미터 결승전에서 비욘디는 전문가들의 예상에 걸맞게 반환점을 도는 순간부터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80미터 지점에 이를 때쯤에는 금메달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 10미터를 남겨둔 90미터 지점에서 다른 레인의 한 선수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면서 비욘디와 거의 동시에 결승 터치패드를 찍었다. 그 선수는 수리남의 앤서니 네스티였다. 판독 결과 0.01초 차이로 네스티가 비욘디보다 먼저 들어온 것으로 발표되자 네스티는 환호성을 질렀고, 전 세계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 세계가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네스티가 유전적으로, 인종적으로 수영을 잘 할 수 없다고 알려진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흑인 선수가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서두에서 언급한 타잔에 관한 기사 구절이 떠올랐고, 뭐가 맞는지 잠깐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 이후 근 20여 년 동안 접해온 언론 기사와 자료들은 한결같이 "인종별 신체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흑인은 백인이나 황인에 비해 뼈의 밀도와 근육의 밀도가 높아 부력이 약해 물에 더 쉽게 가라앉기 때문에 수영에 불리한 체형을 갖고 있다. 이것이 흑인 수영 선수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라는 내용으로 가득했다(지금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런 내용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포츠평론을 시작한 이후, 특히 올림픽 기간이 되면 방송과 지인들이 가끔 "왜 흑인 수영 선수는 찾아보기 힘드냐?"고 질문했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유전적, 인종적 문제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릴 적의 경험으로 인해 "그럼 네스티는 뭐지? 네스티는 돌연변이인가?"하는 의문을 마음 한켠에 갖고 있었음에도, 흑인이 수영을 못하는 이유를 인종적 문제로 설명하는 주장은 한결같이 데이터, 즉 과학이라는 포장지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011년 어느 날 별 생각 없이 본 <헬프(The Help)>라는 영화에서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이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1960년대 흑인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룬 이 영화에는 과거 미국 백인이 흑인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영화에서 백인 상류층 가정의 안방마님으로 나오는 힐리는 흑인 가정부인 미니가 자신의 화장실을 썼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자신이 쓴 화장지에 볼펜으로 체크를 하고, 매일같이 화장지의 변화를 검사한다. 그리고 어느 날, 미니는 너무 급한 나머지 힐리의 화장실을 썼다가 해고된다. 당시 백인에게 흑인은 화장실도 함께 사용할 수 없는 존재, 즉 병을 옮길 수 있는 더러운 세균 덩어리였다.

▲ 영화 <헬프>는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인종 차별의 폐해를 고발한다.


BBC에 따르면, 미국에서 수영은 192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스포츠로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미국은 수영 최강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즉, 미국에서 수영이 스포츠로서 커다란 인기를 끌고 꽃을 피웠던 시기는 백인이 흑인은 화장실도 함께 쓸 수 없는 세균덩어리로 인식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화장실도 같이 쓸 수 없는 흑인이 수영장에서 백인과 함께 수영할 수 있었을까? 없다.

1960년대 미국 사회는 흑인이 수영장 풀 안에 들어오면 소독해야 한다며 물속에 염산을 뿌리기도 했던 곳이다. 당시 흑인들에게 수영은 배울 기회가 없는 백인의 스포츠였을 뿐만 아니라, 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흑인이 수영을 못한 이유다. 흑인이 유전적, 인종적인 이유로 수영을 못한 게 아니라, 배우지 못해서, 배울 기회가 없어서 못한 것뿐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흑인 선수로는 최초로 수영 금메달을 딴 네스티는 수리남 출신이지만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엘리트 수영 교육과 훈련을 받아 1984년 LA 올림픽부터 수리남 수영 국가 대표로 활약했다. 즉, 네스티는 어릴 적부터 엘리트 수영 교육과 훈련을 받을 기회를 누린 흑인이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미국 수영 국가대표였던 컬런 존스 역시 어릴 적부터 엘리트 수영 교육과 훈련을 받아온 흑인이다. 이번 리우올림픽 여자 자유형 1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딴 시몬 마누엘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른 백인 선수들처럼 어릴 때부터 수영을 배울 기회를 가졌고, 수영이 좋아서 수영장에서 열심히 노력해 온 선수라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너는 흑인인데, 왜 수영을 하니?"라는 편견 가득한 말들을 참고 견뎌내야 했다는 것뿐이다.

"나를 '흑인 수영 선수'가 아니라 그냥 '수영 선수'라고 부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올림픽 여자 수영 역사상 첫 번째 흑인 여성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라, 2016 리우 올림픽 여자 자유형 100미터 수영 금메달리스트인 시몬 마누엘은 지금도 인종적 편견에 갇힌 모든 이에게 세상을 바로 보라고 호소했다.

▲ 시몬 마누엘이 11일(현지 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올림픽 수영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자유형 100미터에서 리우 올림픽 첫 공동 금메달을 따고 기뻐하고 있다. 그는 캐나다의 페니 올레크시아크와 함께 올림픽 신기록인 52초70의 성적을 기록했다. ⓒAP=연합뉴스


뱀발 : 한때 LA 다저스의 전설적인 단장이라고 불렸던 알 캄파니스 전 LA 다저스 단장은 1980년대 TV 토크쇼에서 "흑인은 야구 감독에게 필요한 자질이 부족하다. 머리가 나빠서 야구 감독을 못 한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가 단장직에서 쫒겨나는 동시에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끝장내버렸다. 조만간 "흑인은 인종적으로 수영을 잘 할 수 없다"는 말은 알 캄파니스의 망언에 버금가는 말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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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스포츠가 좋아서 스포츠 전력분석 일을 하다가 현재는 기고와 방송활동을 업으로 삼는 스포츠평론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무한경쟁과 승리의 스포츠'보다는 '휴식과 힐링의 스포츠',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보다는 '나를 응원해주는 스포츠'라는 관점으로 스포츠를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자칭 색다른 스포츠평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