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율 개선'? 수퇘지가 애를 배길 바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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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의 인사이드] 고용형태 공시제, 이대로 좋은가?

2012년 9월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에서는 이색적인 회의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정부를 대표해 나온 고용노동부 차관은 "입법 취지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실행이 담보될지 우려됩니다"라며 계속 난색을 표한 반면, 민주당과 정의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의원들까지 "고용정책기본법에 반드시 담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논란이 된 조항은 이날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 의견 일치로 통과되었고, 이후 9월말 환노위 전체회의 통과, 법사위 통과,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른바 '고용 형태 공시제'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듬해인 2013년 6월에 시행령과 시행 규칙이 제정됨으로써 제도로서의 꼴을 갖추게 된 고용 형태 공시제 시행에 따라 2014년부터 상시 고용 인원 300인 이상 사업장은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를 공시하게 된다. 공시를 하지 않는다고 벌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올해로 3년째 공시 의무 사업장의 99% 이상이 공시에 참여하고 있어 이제 안착 단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파견·용역·사내 하청 등 간접 고용 비정규직 규모도 공시

이날의 회의 분위기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기 위해 전후 맥락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논란이 된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은 야당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것이었다. 19대 총선 직후 새롭게 새누리당 원내 사령탑으로 선출된 이한구 의원이 대표발의자로 나섰고, 함께 서명한 28명의 의원 명단에는 당시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다시 말해 야당이 발의하고 새누리당이 거든 양상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발의하고 야당은 특별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면 정부를 대표해 나온 노동부 차관은 왜 난색을 표했을까?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보면 노동부 차관은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나 이 조항을 고용정책기본법에 담기보다 기간제법과 파견법에 담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날 여야 의원들 모두 그 방식에 반대했다. 기간제법과 파견법에 공시제 내용을 규정할 경우 중요한 비정규직 고용 형태 하나가 공시대상에서 빠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파견 노동자를 제외한 용역․도급․사내 하청 등 간접 고용 비정규직 대부분이 빠지게 된다. 이들은 고용 형태로 보면 기간제로도, 파견으로도 분류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인사이드 경제' 독자들은 이 시점에서 또다른 의문을 던질 법하다. 아니, 그런 멀쩡하고 합리적인 주장을 새누리당 의원들이 펼쳤다고? 정부가 난색을 표하는데도? 사실이다. 의문이 난다면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고용정책기본법을 검색한 후 2012년 9월 18일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찾아 읽어보시라.

(참고로, 정부는 고용 형태 공시제의 연혁을 설명하면서 문제의 법안심사소위 날짜를 9월 17일로 기록하고 있는데, 정부가 오기한 것인지 의안정보시스템이 오기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여하튼 둘 중 하나는 날짜를 잘못 적은 것임에 틀림없다. 제도 도입에 난색을 표했던 정부 측의 오기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본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태도 역시 전후맥락을 살피면 이해 못할 내용이 아니다. 불법 파견 대법원 판결에도 꿈쩍 않는 현대차에 항의하며 판결 승소자인 최병승 조합원을 포함해 2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철탑에 오르는 등 사내하청을 비롯해 간접 고용 비정규직 문제가 점차 사회적 의제로 올라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심을 정책으로 반영할 줄 아는 정치인은 드물지만, 눈치 빠른 정치인들이라면 사회 저변에 흐르는 민심을 읽을 줄 아는 법이다. '비정규직의 고통과 좌절'이라는 사회 현상을 눈치 빠르게 읽어내며 "비정규직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공약을 2002년에 내걸 줄 알았던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처럼, 2012년에 눈치 빠른 정치인은 박근혜였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4월 총선 직후 구성된 19대 국회가 개원한 첫날은 5월 30일이었다. 개원과 동시에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한구 의원이 대표발의자로 나서고 박근혜 대통령이 함께 서명한 법안 2개가 발의되었다. 하나는 앞서 얘기한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이고, 나머지 하나는 (우리가 흔히 사내 하도급법이라 알고 있는) '사내 하도급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정안이었다.

다시 말해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세력은 이른바 '사내 하도급'이라 표현되는 간접 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2012년 총선과 대선의 핵심 쟁점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이다. 물론 사내 하도급법은 대기업 불법 파견에 면죄부를 주려는 본질을 갖고 있었지만, 새누리당은 이를 외형상으로는 사내하청 노동자 처우개선 내용을 담은 것처럼 포장할 필요가 있었다. 고용 형태 공시제 도입 논의과정에서 공시 범위에 '사내 하도급'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 이해되는 대목 아닌가.

ⓒ연합뉴스


고용 형태 공시제 도입 취지 : 대기업 비정규직·사내 하도급의 직접 고용·정규직화 유도

고용 형태 공시제의 도입 자체는 칭찬해줄 만한 일이다. 게다가 간접 고용 비정규직 규모까지 공시하도록 한 것은 중요한 진전이다. '인사이드 경제'는 기본적으로 잘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부족한 지점이 무엇인지를 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제 이 제도의 도입 취지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고용 형태 공시 홈페이지나 정부의 각종 자료를 보면 고용 형태 공시제는 "비정규직과 사내 하도급의 확산에 따른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화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근로자의 고용 형태를 공시하여 기업이 자율적으로 고용 구조를 개선하도록 하기 위해" 도입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은 이한구 당시 의원 대표발의로 성안된 고용형태기본법 개정안에도 포함되어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도 유사한 설명이 붙어 있다. 즉, 제도가 목표하는 핵심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고용 구조를 개선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고용 구조를 어떻게 바꾸는 걸 개선이라고 보는 걸까? 위 설명에 따르면 "비정규직과 사내 하도급의 확산에 따른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화"를 바꾸는 걸 개선으로 본다는 것이다. 비정규직과 사내 하도급 확산을 막고 규모를 줄이는 것이 이 제도의 도입 취지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공시에 포함시킨 사내 하도급 확산 쪽에 상당한 역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기업들에 고용 형태 공시제를 안내하면서 임대 매장 노동자의 경우 공시의무 사업주와는 독립된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하므로 공시에서 제외해도 된다고 설명하면서 다음의 얘기를 덧붙여 놓았다.
* 병원의 매점, 제조업체의 프랜차이즈 식당, 백화점 매장 등이 해당되며 공시 대상으로 포함하여도 직접 고용 가능성은 낮음.

임대 매장 노동자의 경우 공시 대상에 포함해도 직접 고용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고용 형태를 공시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직접 고용'을 유도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이른바 사내 하도급을 비롯해 간접 고용 비정규직까지 공시 대상으로 포함시킴으로써 이들을 직접 고용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해 고용 구조를 개선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애초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은 "대기업 고용 형태 공시 제도 도입"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현 정부가 생각한 고용 형태 공시제의 효과는 주로 '대기업'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시 의무 사업주가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제한된 것 역시 그런 취지로 읽힌다. 아무래도 직접 고용 전환의 여력이 있는 쪽은 대기업이라 본 것이다.

정리하자면 고용 형태 공시제 도입의 취지는, 대기업부터 비정규직․사내 하도급 규모를 축소하고 정규직 내지 직접 고용 전환을 유도해 고용 구조를 개선한다는 것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이런 취지는 "대기업 상시·지속적 업무 근로자 정규직 또는 무기 계약직 전환 유도"라는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과도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도입 취지에 맞게 시행되고 있나

지금까지 설명한 도입 취지만 보면 수긍할 만한 부분이 상당히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에 맞겠다. 그럼 우선 지난 3년간 고용 형태를 공시한 기업 전체의 공시 결과를 놓고 한번 따져보도록 하자.

아래 표는 매년 노동부가 고용 형태 공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보도 자료를 토대로 구성해본 것이다. (다만 보도 자료에 있는 표현 중 "기간 없음"은 '정규직'으로, "소속 외 근로자"는 '간접 고용'으로 표현을 바꾸었다.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바꿔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단위 : 천 명)

전체 노동자

정규직

(비중)

기간제

(비중)

간접 고용

(비중)

2014

4,364

2,738

(62.7%)

748

(17.1%)

878

(20.1%)

2015

4,593

2,834

(61.7%)

842

(18.3%)

918

(20.0%)

2016

4,737

2,905

(61.3%)

900

(19.0%)

931

(19.7%)


수치는 모두 보도 자료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으되, 비중은 '인사이드 경제'가 다시 계산했다. 노동부 보도 자료에도 나름대로 비중 계산을 해놓았으나, 이상하게도 위 표처럼 계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기간제를 합한 ‘소속 근로자’ 합계를 구한 뒤에 소속 근로자 대비 정규직 비중과 기간제 비중을 계산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사이드 경제'는 '소속 근로자'와 '소속외 근로자'를 모두 합해 '전체 노동자' 합계를 구한 뒤에, 전체 노동자 대비 정규직 비중, 기간제 비중, 간접 고용 비중을 계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렇게 나타내놓고 보니 노동부가 왜 구태여 다른 계산법을 택했는지 느낌이 팍 온다.

공시 규모에 포함된 전체 노동자 중 정규직 비중이 2014년 62.7%에서 2016년 61.3%까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가! 그 중에서도 간접 고용 비중은 아주 소폭 줄어들긴 했으나 기간제 비중이 꽤 늘어나면서 전체 비정규직 비중을 높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니, 고용 형태 공시를 통해 비정규직․사내 하도급 확대를 막아내고 정규직과 직접 고용 전환을 유도해 고용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좋다. 백보 천보 양보해서 혹시 '대기업' 부문에서는 고용 구조가 나아졌을까를 별도로 따져보도록 하자. 노동부는 기업 규모별로도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직접 고용 노동자가 1000인 이상인 사업장만을 별도로 뽑아서 표를 정리해 보았다.

(단위 : 천 명)

노동자 합계

정규직

(비중)

기간제

(비중)

간접 고용

(비중)

2014

3,041

1,885

(62.0%)

456

(15.0%)

700

(23.0%)

2015

3,145

1,930

(61.4%)

492

(15.6%)

723

(23.0%)

2016

3,229

1,971

(61.0%)

524

(16.2%)

734

(22.7%)


위 표를 보아도 전체 통계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기업 부문이라 할 1000인 이상 사업장에서도 전체 노동자 대비 정규직 비중은 2014년 62.0%에서 2016년 61.0%로 지속적으로 하락한 반면, 기간제 비중이 늘어나면서 비정규직 규모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전체 통계치와 비교했을 때 정규직 비중이 더 낮고 간접 고용 비중이 더 높아, 고용 구조라는 면에서 보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해 더 나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대기업 부문부터 고용 구조를 개선한다는 취지는 잘 설정되었으나, 실제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허울 좋은 '자율 개선'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사실 도입 취지를 설명할 때 '인사이드 경제'가 자세히 다루지 않은 대목이 하나 있다. 비정규직․사내 하도급을 직접 고용 내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고용 구조를 개선하는 방식을 모조리 ‘기업의 자율 개선 노력’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공시 의무 사업주의 99% 이상이 공시에 참여하고 있다고는 하나, 고용 형태를 공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받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공시한다고 해서 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공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고용 구조 개선 또는 정규직 근로자가 크게 증가한 기업에 대해서는 일자리 유공 등 표창 등에 활용하는 방안 추진"하겠다고 문서상으로는 밝히고 있으나 구체적인 추진 계획이 나온 적도 없다.

기업의 자율 개선 노력? 공공 부문조차 정부가 지침을  내리고 대책을 강구해야만 고용 구조가 조금이나마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윤 추구를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는 기업 조직, 이윤만 보장된다면 파렴치한 범죄도 서슴지 않는 기업체들이 고용 구조를 '자율적으로' 개선한다고? 차라리 수퇘지가 애를 밴다는 말을 믿지, 어떻게 이런 걸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고용 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나쁜 고용 구조를 양산하는 기업에 분명한 '페널티(벌)'를 부과해야 한다. 회초리를 들지 않으면 절대로 말을 듣지 않는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 아니던가. 이러한 바탕 위에서 고용 구조를 상당히 개선하는 기업에 '인센티브(상)'를 부여하는 방식을 병행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제도 도입 취지는 거의 손색이 없는 것이었으나, '기업의 자율 개선 노력'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원칙을 세우면서 취지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제도가 자리잡고 만 것이다. 대선 공약집에 나온 공약을 이행했다고 대외적으로 선전이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애초 이 공약을 통해 실현하려던 목표는 전혀 달성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공시를 한다고 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공시를 안 한다고 벌을 받는 것도 아닌데 무려 99%가 넘는 사업주들이 공시에 참여한다? 이것도 좀 수상쩍지 않은가? 기업의 속성상 과연 제대로 정직하게 비정규직 규모를 공시할 것인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정확하게 공시했는지를 정부가 조사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 여기에도 제도의 함정이 놓여 있다. 이 지점은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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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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