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국 과학 교사의 필독서!"
"이 책은 한국 과학 교사의 필독서!"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마법의 용광로>
2016.10.10 07:43:05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별과 원소 생성' 강연을 앞둔 시점이었다. 단독 강연이 아니라 '빅 히스토리'라는 큰 제목을 걸고 하는 시리즈 강연 가운데 두 꼭지를 내가 맡은 것이다. 일종의 교사 연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강연 준비는 다 되어 있는데 교사들이 이 주제와 관련해서 참고할 만한 (읽었으면 하는) 책을 한 권 소개하고 싶었다. 교사들이 읽고 학생들에게도 소개해줄 만한 정도의 책 말이다. 난이도도 적당해야 하고 가독성도 높아야 할 것이다.

문득 책 한 권이 생각났다. 지은이 이름은 잘 모르겠고 제목에 '용광로'가 들어가는 것으로 기억되는 책이었다. 옮긴이는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옮긴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용광로 어쩌구 하는 책을 교사에게 추천할 만한가?' 그리고 '이 책에 별 내부에서의 원소 생성 이야기와 초신성 폭발 과정에서의 무거운 원소 생성 이야기가 담겨있는가?' 정도의 내용의 문자였다. 답 문자가 왔다. '교사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그리고 '번역한 지 오래되어서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정도의 내용을 담은 문자였다.

옮긴이의 말을 일단 믿고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내 책꽂이에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처음 받았던 날의 상황이 기억이 났다. 보통 책을 받으면 이리저리 살펴보고 목차도 보고 그런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이 책을 펼쳐 보지도 않았었다. 아이들을 대상을 한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표지의 그림이 아이들 풍인 것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내 편견이 작동한 탓일 것이다.

책을 펼쳐서 이리저리 훑어봤다. 내가 원하던 책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심지어 이 책의 띠지에는 '영국 과학 교사들의 필독서'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내가 갖고 있던 또 다른 편견을 발견했다. 독일어로 쓰인 책을 번역했을 것이라는 아무 근거도 없는 편견. 물론 이 책을 옮긴 사람의 배경이 이런 편견을 만들어내는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 <마법의 용광로>(마커스 초운 지음, 이정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마법의 용광로>(마커스 초운 지음, 이정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가 바로 그 책이다.

막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문자가 왔다. '책을 읽으면서 틀린 곳이 있는지도 살펴봐 달라'는 옮긴이의 문자였다.

당신이 내쉬는 모든 호흡마다 별 깊숙한 곳의 부글거리는 용광로에서 벼려진 원소들이 배어 있다. 별이 폭발해 10억 개의 태양보다 더 밝게 타오르며 우주의 공간 속으로 흩뿌린 원소들이 당신이 꺾은 모든 꽃잎마다 들어 있다. 당신이 읽은 모든 책에는 별 사이로 부는 바람을 타고 불가사의한 시공간의 심연을 날아다니는 원소들이 스며있다.

프롤로그의 첫 문장이다. '벼려진'을 '버려진'으로 잘못 읽었다. 잠시 첫 문장부터 잘못된 것을 찾았다고 기뻐했었다. '10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초신성 폭발을 묘사하는 문장이라면 10억보다는 1000억이 더 어울리는 숫자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문에 어떻게 표기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숫자 자체를 특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엄청나게 밝아진다'는 의미면 족할 것이다.

옮긴이는 '벼려진'이라는 단어를 썼다. 어떤 영어 단어를 이렇게 번역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들어진'이나 '생성된' 정도의 내용에 해당하는 단어였을 것이다. 문득 이 단어가 맛깔스럽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벼리다'로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온다.

벼리다
[동사]
1. 무디어진 연장의 날을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다.
2. 그리고 '마음이나 의지를 가다듬고 단련하여 강하게 하다.
유의어: 갈다

뜨거운 별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원소를 묘사하기에 아주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마법의 용광로> 전체에 걸쳐서 이 단어가 적절한 곳에 적절하게 쓰이고 있다. 멋지다.

사실 프롤로그 첫 문장이 바로 내가 강연에서 교사들에게 전하려고 메시지를 압축해 놓고 있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은 뜨거운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거나 초신성이 폭발할 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뿐 아니라 우주 만물을 이루는 원소가 다 그렇다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점성술사들은 별이 우리의 삶을 통제한다고 이야기해 왔다.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생각은 옳았다. 20세기에 이르러 과학의 발전 덕분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우주의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리 육체는 모두 별의 먼지로 만들어졌다.

결국 우리들의 고향은 별의 뜨거운 내부였다는 자각을 교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다. <마법의 용광로>도 궁극적으로는 천문학자들이 개발한 '인간은 생각하는 별 먼지'라는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우주와 태고 적부터 지금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장엄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우주적 기원에 대한 놀라운 진실을 밝혀냈는지, 즉 원자를 벼린 마법의 용광로를 어떻게 발견했는지는 아직 들어보지 못한 위대한 과학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사실 원자 이야기와 별 이야기, 이 두 이야기는 한데 얽혀 있다. 다른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 하나도 없다. 별은 원자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고 원자는 별이라는 퍼즐을 푸는 해답이기 때문이다.

<마법의 용광로>는 우리가 어떻게 '별 먼지'가 되었는지, 누가 그런 사실을 알아냈는지, 그것이 왜 중요한지 같은 이야기를 꼼꼼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원자'라고 하는 키워드를 통해서 하나하나 차분하게 '벼려내고' 있다는 데 있다. 옮긴이는 또 다른 문자에서 이 책을 번역할 당시 원소의 생성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번역을 했었다고 고백했지만 내가 보기에 번역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가독성도 좋다.

이런 책을 뒤늦게나마 만난 것은 행운이다. 그 강연에서 이 책을 자신 있게 교사들에게 소개했다. 안심하고 '우리는 별 먼지'라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춰서 개괄적인 이야기를 전할 생각이다. 자세하고 세세한 이야기를 맛볼 기회는 교사들이 <마법의 용광로>를 읽으면서 느낄 수 있도록 내 강연에서는 좀 양보할 생각이다.

이 책이 '영국 과학 교사들의 필독서'를 넘어서 '한국 과학 교사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면 한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나도 많이 배웠다. 모르고 있던 많은 내용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당혹스러웠던 내용을 <마법의 용광로>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도 엿봤다.

<마법의 용광로>를 만난 것은 시쳇말로 정말 '대박'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책이 한 권 더 생겼다. 언젠가 누구는 '통일은 대박'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내게는 그 구호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박'이다.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