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의 진실 "사람한테 뿌릴 순 없으니 모기한테…"
살충제의 진실 "사람한테 뿌릴 순 없으니 모기한테…"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침묵의 봄>
2016.10.17 07:08:11
신문을 뒤적거리다 아직 그의 음식을 맛보지는 못했지만, 글맛이 빼어난 줄은 익히 알고 있는 이가 쓴 글이 있기에 찬찬히 읽었다. 그 어떤 전문가가 쓴 글보다 공감이 갔고, 마음이 아팠다. 이야기인즉슨 이랬다.

동네에 월남전 참전 군인이 있었다. 술 취하면 행패 부리기 일쑤였다. 한동안 안보였는데 고엽제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유명한 DDT 이야기도 했다. 이 잡는다고 옷을 다 벗게 하고 뿌려댔다. 예전에 학교 앞에 있는 문방구는 오늘로 보면 불량식품 전시장이었지 않은가. 알록달록한 색깔로 유혹했던 사탕이나 과자에는 '적색2호'라는 인공 색소가 들어 있었다.

글쓴이의 아버지는 학원 같은 곳의 내부 공사를 했던 모양이다. 기존 시설을 철거하고 새롭게 내부를 장식하는 일을 하다 보니 노랗고 까슬까슬한 보온재를 마스크도 쓰지 않고 다루는 날이 잦았다. 아버지는 나중에 폐암을 앓다 돌아가셨다. 동네 친구랑 삼겹살을 구워 먹을 적에 동네 공사판에서 주워온 슬레이트를 불판 삼았다. 담배는 어떤가. 한때는 몸에 좋은 약으로 여겼잖은가. 그래서 아기가 있는 방에서도 태연하게 줄담배를 피워댈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 요리하는 글쟁이는 이 짧은 글 끝에서 이렇게 물었다.

"치명적인, 지금은 '어떻게 그런 일이'라고 해야 할 유해 물질이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암을 유발하고 사람을 죽이는 물질이라고 해서 이제 모두 금지되거나 경원시된다. (…) 고엽제, DDT, 적색2호, 유리 섬유, 슬레이트, 담배. 한때 '아무 이상 없는' 물질이었다. 저 물질이 몸에 해롭다는 건 시간이 흘러서 알게 됐다. 의심이 가면 기다려야 한다. 당장 써도 문제가 없다고, 괜찮다고 말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 구절을 읽으며 아프게 떠오른 일은, 옥시로 상징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였다. 안심하고 써도 되고, 오히려 더 좋다는 말만 믿었다 어린 생명을 잃거나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말았다. 문제가 터졌을 적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사용을 중단하도록 한 게 아니라 은폐하고 조작하느라 바빴다. 피해는 더 커졌고, 절망은 더 깊어졌다. 개명한 시대에도 이런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돼 가는 꼴로 봐 돈 몇 푼 쥐여 주고 끝내자는 심보다. 이 일에 관련한 과학자. 기업인, 관료, 언론인이 다 석고대죄해야 할 일이건만 말이다.

가슴 아픈 일은 또 하나 있다. 일찌감치 살충이라는 이름으로 살생을 저지르는 현실을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했던 책이 있었다. 당연히 협박과 모략으로 지은이는 치도곤을 당했다. 그런데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 덕분에 미국에서는 1969년에는 환경정책법이, 1970년에는 지구의 날을 제정했다. 그리고 미국 안에서 DDT를 제조하는 일이 금지되었다.

▲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에코리브르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이 나왔던 것은 1962년이었다. 이 책에 대해 린다 리어는 이렇게 평했다.

"과학과 기술이 이윤과 시장 점유율에 전념하는 화학 업계의 시녀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잠재적 위험에서 대중을 보호하기는커녕 책임 메커니즘조차 수립하지 않은 채 새로운 화학 제품의 발매를 허용했다. 카슨은 물리적으로 피할 수도,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는 화학 제품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지 않는 정부의 도덕적 권한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그러면 무엇 하느냐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에 광범하게 일어난 일이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졌으니!

시린 가슴을 쓰다듬으며 책으로 들어가 보자. <침묵의 봄>의 '눈'에 해당하는 곳은 8장 '새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이다. 이장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봄을 알리는 철새들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지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때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가득 찼던 아침을 맞는 것은 어색한 고요함뿐이다. 노래하던 새들은 갑작스럽게 사라졌고, 그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던 화려한 생기와 아름다움과 감흥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너무도 빨리 사라져버렸다."

침묵하는 봄이 왔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학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미국인들은 울새를 좋아한다고 한다. 이 새가 나타나면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다는 신호탄이어서 그랬다. 얼마나 좋아하면 울새가 돌아오면 늘 언론이 뉴스거리로 삼았겠는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울새가 돌아오지 않았다. 봄이 되어도 세상은 고요했다.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원인을 밝혀낸 이는 미시간 대학교의 조류학자 조지 월러스와 그의 제자 존 메너다. 메너는 1954년 울새의 개체 수와 관련한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그 많던 울새가 사라져 버렸다. 사달은 네덜란드느릅나무병 때문에 일어났다. 이 병은 1930년경 합판을 만들려고 유럽에서 들여온 느릅나무 목재에 숨어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균류 때문에 발생하는데, 나무껍질에 사는 딱정벌레가 다른 나무에 병을 옮긴다.

1954년, 미시간 대학교에서도 방제 작업이 벌어졌다. 소규모 작업이었다. 다음해에는 시 단위로 확대되었고, 매미나방과 모기 박멸 계획이 진행되면서 "각종 화학 약품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울새들이 돌아와 봄이 왔다고 지저귀었다. 그런데 두 해만에 죽어가는 울새가 발견되었다. 이 현상은 더 심하게 반복해서 나타나 아예 울새가 사라졌다.

살충제 업자들은 울새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대량 살포가 이루어졌다.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직접 피해를 주지는 않은 듯하다. 그런데 왜 울새가 죽었을까? 살충제가 묻은 느릅나무잎을 먹은 지렁이를 먹이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큰 지렁이 11마리면 울새를 죽일 만한 DDT가 공급되었다. 울새는 대략 1분에 한 마리씩 잡아먹는다,

10장 '공중에서 무차별적으로'에는 불개미 박멸 작업 이야기가 나온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불개미는 사람이나 농작물에 큰 해를 입히지 않는 걸로 되어 있다. 그런데도 미국 농무부는 1957년부터 불개미 퇴치 캠페인을 벌이고, 9개 주 2000만 에이커에 살충제를 뿌렸다. 그런데 이 작업이 벌어진 다음에 다양한 동물이 죽었다. 야생은 물론이고 애완동물까지 해를 입었다는 말이다.

문제는 가축 피해였다. 살충제에 오염된 먹이나 물에 노출된 가축이 큰 피해를 당했다. 살충제가 뿌려진 지 5개월 후에 생후 2개월 된 송아지에서 유독 물질이 발견되었다. 이 유독 물질이 어미젖에서 나온 것이라면, 인간이 마시는 우유에도 살충제 성분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지구라는 별에 사는 뭇 생명체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 어느 하나에만 영향을 미치는 정밀 타격이라는 말은 거짓 신화다. 그곳이 상처를 입으면 서로 연관된 다른 생명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연히 그 피해는 인간에게 돌아온다. 카슨이 살충제와 암의 연관성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카슨은 진정한 의미에서 생태학적 사고를 보여준 셈이다.

그럼, 당연히 드는 의문이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먼저 전쟁의 후과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화학전에 쓸 약제가 개발되었다. 그 가운데 몇 종은 곤충에 치명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하니, 인간이 먹거나 마시거나 바르면 죽을 화학 약품으로 인체 실험을 할 수는 없으니 곤충을 시험 대상으로 삼아서였다고 한다.

기업과 학계의 결탁도 한몫했다. 기업은 살충제 연구와 관련해 연구비를 퍼부었다. 이와 대척점에 선 생물학적 방제로는 이윤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여기에 오도된 과학주의를 덧붙인다.

"국가의 번성과 안전을 위해 우리는 과학과 기술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했고 과학에는 과실이 없음을 맹신했다. 그 결과 환경의 경고에는 귀찮아하며 별 신경을 쓰지 않지 않았다."

이 글의 들머리에 인용한 글은 10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가 GMO를 옹호한다는 발표를 보고 요리사 박찬일 씨가 쓴 칼럼이다. 겉으로는 과학의 이름을 내걸었지만, 속으로는 더 많은 이윤을 남긴 집단 때문에 지구라는 가이아가 신음하고 있다. 진정한 과학자라면, 괜찮다고 나부댈 일이 아니라 더 기다려보자고 해야 한다.

그것이 병마와 싸우면서도 화학 업체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진실을 전하고자 했던 레이첼 카슨의 뜻을 잇는 길이다. 정말, 침묵하는 봄을 맞이해야 정신 차릴 셈인가?
tyio@pressian.com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