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도 보도 못한 정치'의 끝은 어딘가요?"
"'듣도 보도 못한 정치'의 끝은 어딘가요?"
[강양구의 친북] <듣도 보도 못한 정치>
<프레시안>이 올해(2016년)로 창간 15주년이 됩니다.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만, 그래도 축하할 건 해야죠. 18일 조합원, 독자, 필자 등을 모시고 창간 15주년 기념행사를 조촐하게 엽니다. JTBC <썰전>의 히어로였던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참여해 다음 대통령을 상상해 보는 수다의 자리도 마련했습니다.

<프레시안> 울타리 안에서 연대의 힘을 확인하고 싶은 청취자께서는 주저 마시고 오는 18일 금요일 7시까지 홍대입구역 근처 가톨릭청년회관으로 와 주십시오.

지난 12일 100만 촛불이 광화문에 모인 벅찬 광경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흥분되었습니다만, 다른 한 편으로는 고개가 갸우뚱해졌습니다. 우리는 왜 광장의 이 뜨거운 열기를 제도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데 번번이 실패할까요? 새로운 정치의 바람은 왜 항상 배신당하기만 할까요?

가끔씩 정치에 몰입하신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정치는 민주당이냐 국민의당이냐, 혹은 문재인이냐 안철수냐 같이 이미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의 문제로 환원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 우리는 세계가 찬탄을 마다하지 않는 정치적 열정을 광장에서 보여주면서도, 그 열정을 새로운 정치로 투사하지 못할까요?

오늘은 우리처럼 엉망진창이 된 현실 정치를 뒤집어엎고, 제도 안팎에서 새로운 정치를 실험한 사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정치 스타트업 와글에서 펴낸 <듣도 보도 못한 정치>(이진순·와글 지음, 문학동네 펴냄)가 오늘 함께 읽어볼 책입니다. 이 책을 가지고 같이 얘기를 나눠볼 분은 더미래연구소 홍일표 사무처장입니다.

지난 14일 마포구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홍일표 사무처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했습니다.


▲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프레시안(최형락)


신생 정당 약진 돋보이는 유럽

강양구 : <듣도 보고 못한 정치>를 읽고서 도움말 주실 분은 홍일표 박사입니다. 홍 박사는 참여연대, 희망제작소, 한겨레경제연구소 등에서 일하셨고, 19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도 활동하셨습니다.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습니까? (웃음)

홍일표 : 딱 하나만 택하라면 가장 젊을 때 일했던 참여연대를 꼽겠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이니까요. 그곳에서 만 6년 일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즐겁게 일했어요.

강양구 :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도 있습니까?

홍일표 : 국회의원 보좌관은 다시는 안 하고 싶습니다. 19대 국회에서 만 4년간 일했습니다. 정말 큰 경험이었습니다.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봤고, 제도권 정치의 흐름을 가까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복하라면 다시 하고 싶진 않습니다. 정말 힘듭니다. 국회의원과 보좌관이 여러분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합니다. (웃음)

강양구 : 함께 일한 국회의원은 힘들게 안 했습니까?

홍일표 : 김기식 전 의원실에서 4년간 일했습니다. 김기식 전 의원은 제가 참여연대에서 일할 때 처음 맞은 직속상관이에요. 제가 참여연대 정책실 간사일 때 정책실장이었죠. 그 위의 사무처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이고. 정책위원장이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었어요. 세 분한테 많은 것을 배웠죠.

김기식 전 의원만 하더라도 일 많이 하고, 잘 하시기로 유명한 분이잖아요. 의정 활동도 돋보이게 잘했고요. 참여연대 시절 6년을 포함해 김 전 의원과 10년을 함께 일하면서 저도 많이 성장했죠. 

강양구 : 이제 책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은 <듣도 보도 못한 정치>를 가지고 새로운 정치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책은 스페인,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등에서 시작된 새로운 정치 세력화 과정을 설명합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아이슬란드의 해적당이 그 주역인데요.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은 이번에 최초로 로마 여성 시장을 배출한 정당입니다. 포데모스는 스페인 원내 제3당이 됐고요. 해적당도 지지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모두 신생 정당인데, 실제로 영향력은 어떻습니까?

홍일표 : 최근에는 국내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고 이들의 동향을 보도하고 있는데요. 우리 생각보다 제도 정치 내에서 훨씬 큰 위상을 가졌습니다. 아이슬란드 해적당만 하더라도 지난 10월 말 총선에서 제2당까지 올라갔죠. 총선 직전에는 총리를 배출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강양구 : 아까 오성운동의 로마 시장 얘기를 했습니다만, 스페인에서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시장이 전부 포데모스 계열이더군요.

홍일표 : 맞습니다. 오성운동도 로마뿐만 아니라 토리노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을 배출했죠. 이미 '새로운 정치 운동' 시기를 지나서, 사회 내에 뿌리 내린 정치 세력이 됐습니다.

한국의 길거리 정치가 낸 성과

강양구 :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1990~200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시민운동의 활약상이 대단하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지난 12일의 100만 촛불 집회가 증명하듯이, 시민의 정치 참여 열기도 강합니다. 그런데 이런 제도 밖의 열정이 왜 기존 정치판을 흔들지 못할까요?

홍일표 : 조금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한국의 광장의 정치, 운동의 정치가 과연 이 책에 소개된 다른 나라 사례만큼 성과가 없었느냐? 이렇게 단정하는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광장의 정치, 운동의 정치가 새로운 정당 정치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낸 성과가 만만치 않습니다.

강양구 : 시민단체가 괜히 '준정당' 소리를 들은 게 아니죠. 1990~2000년대를 지나면서 시민운동이 제기한 여러 이슈가 법제도로 이어지는 성과가 있었죠.

홍일표 : 네. 시민운동이 많은 영역에서 성과를 냈습니다. 오히려 외국의 학자나 활동가는 우리나라의 사례를 보고서 부러워하는 대목이에요. 그들이 끊임없이 한국 사례를 조사하고자 한국을 방문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러니까, 오성운동이나 포데모스처럼 되지 못했다고 해서 꼭 성과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시민운동이 정당 정치로 나아가지 못했을까요? 저는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시민운동이 현실 정치에서 역할을 하는 데에 스스로 제약을 많이 만들었어요.

강양구 : 정치적 중립을 표방했죠.

홍일표 : 정당과의 연계에도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시민운동이 분명히 큰 성과를 올렸고 탄탄한 역량을 갖췄음에도 현실 정치에서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선거 제도와 같은 외부 요인이 시민운동의 정치화를 가로막기도 했습니다. 이 책이 다루는 여러 나라 가운데는 정당명부식 비례 대표제를 선거 제도로 택하고, 대통령제가 아닌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곳이 많습니다. 덕분에 신진 정치 세력의 의석 확보가 용이하죠. 또 국내 의회 진출에 앞서 유럽연합(EU) 의원이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제도 정치로 나아가는 경로가 다양입니다.

강양구 : 그 점이 중요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강조하지 않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스페인, 이탈리아, 아이슬란드가 전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또 정당명부식 비례 대표제를 채택했고요. 신생 정당이나 지명도가 낮은 정치인이 제도권으로 진입하기가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쉽죠.

▲ 스페인의 신생 정당으로 떠오른 포데모스를 지지하는 마드리드 시민의 모습. ⓒwikipedia.org


선거 제도 차이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

홍일표 : 주거권 운동가였던 아다 콜라우를 바르셀로나 시장으로 만든 선거조차 간접 선거였죠. 아다 콜라우의 '바르셀로나 엔 코무(Barcelona en Comú)'가 바르셀로나 의회에서 제1당이 되었고, 그렇게 배출한 의원 가운데 아다 콜라우가 시장으로 다시 지목됐습니다. 개인이 선거에 나가서 표를 얻어야 했다면 훨씬 시장 당선이 어려웠을 거예요.

강양구 : 박원순 시장이나 김기식 전 의원은 시민운동의 스타였습니다만, 지방 선거에 나가거나 국회의원이 될 때는 결국 민주당을 통해야 했죠. 그렇게 된 데 이처럼 제도의 차이가 컸음을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홍일표 : 그렇습니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실험을 통해 이른바 진보 정치 세력과 사회운동을 하신 분 일부가 의회에 진출했어요. 하지만, 그 실험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녹색당도 있습니다만, 아직은 제도적 성취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한국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장벽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높습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큰 정치적 에너지를 가진 나라이지만, 막상 현실 정치가 쉽게 바뀌지 않는 데는 이런 제도적 원인이 있습니다. 그걸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야 합니다.

강양구 :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나 그에 준하는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죠.

홍일표 : 특히 이 책이 주목하는 것처럼 새로운 정당, 새로운 정치 신인이 기성 정치에 도전하거나,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하려면 제도의 영향력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스페인도 양당 정치 구도가 오래 됐습니다. 어쩌면 한국보다 더 강고한 양당 정치 역사가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제3당 이상의 지위를 신생 정당이 획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점을 함께 고민해야 저들 나라의 정치 실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강양구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포데모스, 오성운동, 해적당의 지지율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습니다. 해적당은 한때 여론조사에서 50%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기도 했더군요. 스페인은 프랑코 군사 독재 이후 보수 양당 구도가 매우 굳건했음에도 최근에는 신당 포데모스가 강하게 치고 올라오고 있고요.

이런 문제 제기는 어떨까요? 한국에서는 모두가 기성 정치를 욕하지만, 정작 유권자 시민 스스로가 기성 정치의 바깥에서 대안을 찾는 데는 인색합니다. 결국은 기성 정당으로 돌아오죠.

홍일표 : 저도 그 점을 고민해 봤습니다. 왜 우리는 저들처럼 되지 않을까.

우선 이런 점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거론된 스페인, 이탈리아 등을 보면 현실 정치의 이념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중도 좌파 정당, 심지어 공산당까지 존재했습니다. 우리 현실과는 차원이 다르죠. 우리는 공산당은커녕 진보 정치도 실험 수준에 불과하니까요. 시민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두 개 정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정권 교체(1997년)를 경험한 것도 20년이 채 안 됩니다. 그러니까 나의 정치 지향이 현실 정치에 반영되는 경험의 역사가 일천해요. 기성 정치가 아닌, 그 이상의 대안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경험 자체가 없었어요. 한국의 상황을 이탈리아 등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차원도 있습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우리나라는 대안 세력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여론이 강합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시민운동은 정치적 중립을 내세웠죠. 그러다 보니, 기성 정치가 싫더라도 이를 대체하는 다른 정치 세력이 성장할 수 없었죠. 사회운동은 아예 제도 정치 영역 밖에서의 변화를 꾀했고요. 물론 진보 정당 운동이 계속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러니 우리도 새로운 정당 운동이 본격화하려면 좀 더 많은 정치적 경험을 쌓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정치 스타 이전에 좋은 정당부터

강양구 : <듣도 보도 못한 정치>에서 여러 차례 반복하는 주장이 '스타를 기다리는 게 우리의 지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신 이 책에 소개된 대안 정당의 시스템을 주목하자고 말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정당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항상 새로운 정치에 걸맞은 새로운 리더가 존재했어요.

오성운동에는 코미디언 출신의 걸출한 대중 정치인 베페 그릴로가 있었고, 포데모스에는 대학 강사 출신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라는 스타 정치인이 있었죠. 바르셀로나 엔 코무에도 자신이 셋집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는 주거권 운동가 아다 콜라우가 있었고요. 모두 대중운동을 통해서 성장해 새로운 정치의 상징이 된 인물입니다.

이런 대목이 우리의 경험과 비교가 되더군요. 이명박 정부 때 새로운 정치를 내세우며 떠오른 인물이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입니다. 그런데 안 전 대표가 주목받은 이유는 사실 성공한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이었어요. 이 책에서 소개된 대안 정치인이 만들어지는 모습과는 참으로 다르죠.

한국에서 새로운 정치에 걸맞은 새로운 리더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 이런 고민이 들더군요.

홍일표 : 사실 우리나라에도 하승수 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과 같은 분이 있습니다.

강양구 : 지난 총선에서 종로에서 녹색당 후보로 나오셨죠.

홍일표 : 하승수 전 위원장이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정리해서 이 책의 한 장으로 넣으면, 이 책에 실린 외국의 스타 정치인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단지, 하승수 전 위원장은 현실 정치에서 뭔가를 보여주지 못했을 뿐이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지는 못했으니까요.

실망할 건 없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이에 저항하는 거대한 대중운동의 경험이 유럽에서 쌓이기 시작합니다.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이 응축되면서 대규모 행동으로 표출했는데, 이 과정에서 두드러진 그룹이 생기죠.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 정치에 진입합니다. 대략 시작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까지 짧게는 3~4년, 길게는 5~6년 정도가 걸렸죠.

강양구 : 그러고 보니, 결국 실패로 끝나긴 했습니다만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입한 것도 2000년 창당 이후 4년 만인 2004년이었네요.

홍일표 : 맞습니다. 이제 독자 정당 운동을 갓 시작한 녹색당 같은 진보 정당이 과연 유럽처럼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만, 벌써 성패 여부를 따지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앞으로 녹색당이 성장하면서 어떤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 가는지 살피는 게 중요하리라고 봅니다. 

하나 더 언급하자면, 기존 정당이 바깥으로부터의 압력으로 인해 새로운 정당으로 거듭날 가능성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두 가지 모두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양구 : 스타 정치인의 부정적인 영향도 눈에 띄더군요.

홍일표 : 맞습니다. 오성운동이나 포데모스 모두 아래로부터의 의사 결정을 부단히 강조했음에도 실제로는 결국 리더의 존재감에 영향 받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요.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도 던져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의 정당은 왜 시스템에 의한 의사 결정이나 정당으로서의 자기 활동이 부족한가, 심지어 왜 부재한가, 이런 질문이요. '한국의 정치인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한국의 정당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스타 정치인은 바로 그런 정당의 활동 가운데 나오는 것이고요.

▲ 지난 12일 열린 100만 촛불 집회는 한국 길거리 정치의 역량을 선보였다. 앞으로 한국은 이 열망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이냐를 긴 시간을 두고 고민해야 한다. ⓒ사진공동취재단


좋은 정치인 양성하려면?

강양구 :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정당이 사실 우리가 봐 온 정당과 아주 다릅니다. 오성운동의 경우, 직업적 정치인이라는 정의 자체를 배격합니다. 3선을 못하도록 금지하는 내규가 있죠. 이번에 로마 시장이 된 비르지니아 라지는 중앙당에서 선거 자금을 지원하지 않아 본인이 일일 피자 가게를 열어 선거 자금 모금 행사를 할 정도였죠.

홍일표 박사께서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셨습니다. 오성운동과 같은 정당이 우리가 지향할 대안 정당의 모습일까요?

홍일표 :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업 정치인을 금지하는 내규는 오성운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조직에서 실재합니다. 일본의 생활클럽연합회 등 생활협동조합에 기반을 둔 정치 운동 그룹에서도 채택하는 방식입니다. 누구든지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취지죠. 이런 방식의 실험은 당연히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특정한 누군가만 정치를 할 수 있고, 특정한 집단만이 정치인을 배출한다면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직업 정치인을 원천적으로 배격하거나, 정당이 후보 당선을 위해 재정 지원을 하지 않는 식의 실험은 그 정당이 존재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이탈리아의 경우 정치인 부패가 워낙에 문제되는 상황이니까요.

다만 제가 정치를 경험하고 연구한 바에 따르면, 정치인의 부패나 특정 집단의 정치 독점 문제, 직업으로서의 정치인 현상은 조금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정치인의 역할이 여러 가지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게 행정부 감시죠. 수많은 이익 단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도 있고요.

강양구 : 그런 역할을 아마추어리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죠.

홍일표 : 네. 아마추어리즘에 근거한 정치를 한국 현실에서 선택하기 쉽지 않다고 봅니다. 다른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강한 관료 주도 행정 국가인 한국의 의사 결정 구조를 더 민주화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대변되도록 하려면 일정 수준의 경험과 역량을 갖춘 정치인, 혹은 정당의 역할이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의원실이 전문성을 갖춰서 일하는 방식입니다. 미국 방식이죠. 하원 의원, 상원 의원과 보좌진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정당이 정치인의 역할을 보완하고 보충함으로서 다른 차원에서 프로페셔널을 보장하는 거죠.

강양구 : 초선 의원을 보면 답답한 경우가 많아요. 보통 정치권에서 소위 전문직이었던 분을 초선 의원으로 영입하는데, 이 분들이 과연 민의를 대변할 준비가 되었느냐는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냥 '인턴 국회의원'으로 4년간 국회가 어떤 곳인지 경험하다, 재선하지 못하면 또 다른 인턴 국회의원으로 교체되어 버리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물론 초선 의원이라고 다 똑같지는 않죠. 이번 국회에 초선으로 입성한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오랫동안 서민 금융 활동을 하셨고, 성과도 남기셨죠. 말 그대로 서민 금융 전문가죠.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악성 부채 탕감을 위해서 큰 성과를 내셨고요. 서민 여럿을 빚의 고통에서 구하셨죠.

제윤경 의원 같은 전문성이 있는 분은 계속 재선, 3선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게 공익적으로도 좋은 거죠. 무조건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을 배격하는 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홍일표 : 그렇습니다. 중요한 건 정치인의 충원 경로입니다. 이른바 정치 선진국을 보면, 정치인 훈련을 일찍부터 합니다. 정당인으로서 자질을 미리 요구받죠. 반면, 우리는 오히려 정치와 연관이 없었다는 점이 새로운 정치인의 중요한 자질처럼 이해되는 역설적 상황에 처했습니다.

정당에 가입 원서를 내는 게 정치인이 되는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이해되는 정도입니다. 정치를 안 했다는 이유로 정치인이 된다는 게 아이러니하죠.

강양구 : 극명한 사례가 미국의 현직 대통령과 새 대통령 당선자가 아닐까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고등학생 때부터 민주당 청년위원회에서 활동했습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는 기성 정치와 무관하게 살다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트럼프와 비슷하죠.

홍일표 : 결국 정당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을 보면 신생 정당이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투명한 의사 결정 경험을 통해 어떻게 광장의 정치를 제도 정치에 반영되도록 했는지가 정리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정당이 시민의 정치적 경험에 도움을 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물며 당원에게조차 그렇습니다.

제가 녹색당 창당 발기인을 맡으면서 짧게나마 녹색당에 몸담았습니다. 녹색당은 당원에게 끊임없이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보냅니다. 오늘은 종로구에서 당원 학습이 있으니 와라, 내일은 어디서 무슨 행사가 있으니 와라는 식이죠. 

지금은 제가 더불어민주당 당원입니다. 그런데 최고위원 투표 같은 일정 외에는 당에서 평당원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가 있다는 식의 안내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내가 소속된 당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평당원을 대상으로 어떤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지, 어떤 교류의 장을 만드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러니 당원이라도 당에 일체감을 갖거나, 당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죠. 한국의 정당이 새로운 정치인 충원뿐만 아니라 당원에게 정치적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광장에 흩어진 힘을 제도 정치로 받아들이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시민의 정치 참여 보장해야

강양구 :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이 주로 이 책의 앞부분 내용과 관련 있습니다. 뒷부분은 디지털 기술로 민주주의를 키우는 재미있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읽어보시면 무릎을 칠만한 사례가 많습니다. 홍 박사께서도 이 책을 지은 와글과 함께 재미있는 실험을 하고 계시죠?

홍일표 : 네. 이 책을 저술한 와글이라는 스타트업과 제가 속한 더미래연구소, 그리고 시민 단체 출신 국회의원이 결성한 연구 모임 시민정치포럼이 시민의 입법 요구안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입법 요구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청원이나 아는 의원실을 통한 의원 발의죠. 정부에 계속 민원을 넣는 방법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셋 모두 쉽지 않습니다.

입법자이자 주권자인 국민이 법에서 이토록 멀어진 건 말이 안 되죠. 조금 더 쉽게 우리가 생각하는 입법 과제를 국회에 전하고, 국회의원은 이를 받아 법안을 발의하게끔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번 실험이 바로 이를 쉽게 하는 시도입니다. 이 책 뒷부분에 여러 가지 형태의 시민 참여형 애플리케이션이 소개되는데, 이를 한국 상황에 맞게끔 만들어보자는 거죠.
 
올해(2016년) 들어 몇 달간 준비 과정을 거쳐 '국회톡톡(toktok.io)'이라는 웹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했습니다. 이 앱을 통해 누구나 특정 법안에 관한 의견을 내고, 1000명 이상이 이에 동의하면 해당 사안은 해당 상임위 의원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이 의견에 반응해 함께 하겠다는 상임위 의원과 1000명 이상의 지지자가 매칭 됩니다.

매칭 후에는 민주주의 실험 커뮤니티 '빠띠(parti.xyz)'가 만든 플랫폼을 통해 의원과 시민이 실제 입법에 필요한 내용을 채웁니다. 지난 달 론칭해서 아직 입법적 성과를 내진 못했습니다만, 몇 가지 사안은 1000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 해당 상임위 의원과 매칭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리라 확신합니다.

강양구 : 1000명 이상의 지지를 얻은 제안의 내용이 궁금하네요.

홍일표 : 15세 미만 아동의 입원비를 무료로 하자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입사 1년 이하 신입사원의 연차 휴가를 제대로 보장하는 내용도 있고요. 최근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은 사안은 출산, 낙태 등과 관련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안을 개정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이 외에도 20건 정도의 의안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내용에 비춰 봐도 기술적으로 뒤지지 않습니다. 우리 사례를 영어로 잘 번역해 해외에 소개하면 충분히 주목할 만합니다.

역시 숙제는 실제로 법안 발의 후 법이 통과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 문제를 잘 해결해 실제로 좋은 성과를 얻는다면, 그간 시민단체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입법 운동한 것과 다른 경로로 국회와 시민, 국회의원과 시민이 함께 입법 활동을 해 나가는 모델이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강양구 : 법안 통과 시 가장 큰 걸림돌이 뭡니까? 정부입니까, 이해 당사자입니까, 상대편 당입니까?

홍일표 : 법안에 따라 다릅니다만, 간단히 말해서 전부 다 걸림돌입니다. (웃음) 이해 당사자건, 정부건, 상대 당이건, 반대 세력이 강한 경우 법안 통과는 어렵습니다. 이건 안 된다는 ‘비토 파워’가 존재한다면 거의 통과 가능성이 없어요. 이해관계자 중에서도 재벌, 대형 이익 단체 등의 정보력, 로비력은 아무래도 개인이나 사회적 약자의 그것보다 크기 마련입니다.

이른바 김영란법 등의 제한 장치가 만들어졌지만, 법적 제약 안에서도 접촉할 수 있는 범위의 차이가 큽니다. 이런 접촉면의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국회톡톡과 같은 신기술이 나오거나, 시민의 목소리를 정당이 직접 듣는 시도가 늘어나야 합니다. 한 가지 긍정적인 사례가 있죠.

▲ <듣도 보도 못한 정치>(이진순·와글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좋은 평가를 받은 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을지로위원회는 이른바 '갑을관계'에서 을에 해당하는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정당에 제대로 전달해 입법 성과를 내게끔 하는 중요한 실험입니다. 이 정도의 노력 없이는 현재 우리 사회의 세력 관계를 조정하면서 관련법을 통과시키기가 어렵습니다.

어쨌든 법을 통과시키려면 국회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소수 의원의 열성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이에 힘을 실어주는 건 역시 정당과 우리 사회의 목소리죠.

강양구 : <듣도 보도 못한 정치>에 나온 사례를 보고선 부러움이 많았는데, 말씀을 들어 보니 우리 정치권에서도 좋은 실험이 일어나고 있었군요.

홍일표 : 책을 읽은 직후에는 이 책에 나온 사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지금 한국 정치 상황이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정치' 자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주술이니 뭐니 하는, 정말로 듣도 보도 못한 정치를 경험하고 있죠. (웃음)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미 광장의 100만 촛불이 한 단계 진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상력이 필요할까를 고민합니다. 단순히 기존 정치 질서로 담을 수 없는 큰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걸 이미 우리가 압니다. 문제는 상상이 말만큼 쉽지 않다는 거겠죠.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의 하나는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하는 상상이 아니라, '이게 어떻게 가능했지' 하는 물음에 대답하는 사례를 보여준다는 겁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상상력을 키우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 때 이미 우리가 가진 자원이나 경험을 거꾸로 책에 소개된 사례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딱 시기적절할 때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강양구 : 한국 정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잘 정리한다면 정말 듣도 보고 못한 정치 사례를 외국에 소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회톡톡이 성공하면 다시 출연하셔서 성공 사례를 얘기해 주십시오. 오늘 강양구의 친북은 <듣도 보도 못한 정치>를 소재로 홍일표 박사와 함께 새로운 정치 가능성을 모색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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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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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보건의료·환경 담당 기자. 공부하는 기자, 시민의 편에 서는 기자가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논란, 에너지 문제와 먹을거리 위기 등의 기사를 썼다. <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밥상 혁명>(공저), <정치의 몰락>(공저)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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