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활짝 필 때, 독립 출판도 떴다
촛불이 활짝 필 때, 독립 출판도 떴다
[표지 너머 책 세상 ③] '나만의 이야기' 찾는 독립 출판
2016.11.30 11:25:34
지난해 출판계 최대 이슈가 도서 정가제 개정안이었다면, 올해는 독립 출판입니다. 올해 열린 대부분 책 페스티벌이 독립 출판 관련 기획을 전시한 게 생생한 사례입니다.

지난 2009년 시작된 독립 출판자들의 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이제 탄탄히 자리 잡았습니다. 지난 해 방문자 수는 약 1만3000여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올해에도 오는 25일부터 사흘간 독립 서점 유어마인드가 주최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일민미술관에서 열립니다. 해당 페스티벌 기간 수천 권의 독립 출판물이 판매되고, 사람들이 일찍부터 줄을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독립 출판 붐은 독립 잡지의 성공으로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잡지 시장이 추락하는 중에도 주류 미디어가 다루지 않던 세계를 과감히 다룬 독립 잡지는 어느 틈에 젊은 독자층을 공략해 나갔습니다. 지난 2011년 창간해 20대를 주요 대상으로 월간 발행되는 <잉여>는 매월 1000부 정도가 발행됩니다. 숱한 독립 잡지가 독립 서점과 만나 독자층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독립 출판물이 본격적으로 독자와 교류하게 됐습니다.

나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이들을 위한 강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독립 출판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한 전자책 제작 플랫폼이 나오는 등 관련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직접 콘텐츠 제작부터 디자인, 편집까지 해결 가능한 환경도 조성됐습니다.

이런 흐름은 외국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미국 아마존에 따르면, 이른바 대형 5개 출판사의 전자책 시장 점유율이 올해 들어 20%대로 추락했습니다. 반면, 독립 출판물의 점유율은 45%가까이 치솟았습니다. 전자책 시장이 독립 출판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뜻이죠. 한국의 전자책 시장 환경이 이 정도로 성숙하진 않았으나, 결국 한국도 점차 이런 변화를 따르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표지 너머 책 세상'은 세 번째 주제로 독립 출판을 다룹니다. 왜 독립 출판이 뜨는지, 독립 출판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독립 출판의 성장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대담을 정리했습니다.

이야기를 소개하기에 앞서, 독립 출판을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독립 출판물은 기본적으로 출판 법인에 속하지 않은 개인이 자유롭게 만들어 유통하는 모든 출판물을 통칭합니다. 이들 출판물은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받지 않았기에, 정식 출간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대형 서점에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 '표지 너머 책 세상'의 세 번째 이야기는 독립 출판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독립 출판과 인터넷 방송의 공통점은?

- 지난해 출판 업계 최대 이슈가 도서 정가제 개정안이었다면, 올해는 단연 독립 출판인 듯합니다. 책 읽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독립 출판 붐이라니 조금 의아합니다. 왜 독립 출판이 인기일까요?

장은수 : 독립 출판이 갑자기 인기를 끈 건 아닙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책이라는 미디어를 직접 만들어 왔습니다. 학생 때는 교지나 학회지를 만들었고, 모임 등에서는 회지나 동인지도 펴냈습니다. 요즘에는 동인지가 서브 컬처로 탄탄히 자리 잡았죠. 저도 어릴 적 교지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대학 때는 친구들과 문학 동인지도 했죠. 그 경험이 저를 출판으로 이끈 듯도 합니다. 어찌 보면 항상 글을 쓰고 편집을 하면서 살았던 거죠.

물론 현재 이야기되는 독립 출판의 의미는 예전과 다릅니다. 단순히 생산만 독립적으로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에게 판매하죠. 예전 독립 출판물은 자신들, 또는 주변 사람만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생산자가 곧 소비자였죠. 하지만 지금 독립 출판은 어느 정도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합니다.

- 그렇다면, 왜 그 동안은 독립 출판물이 대중에게 배포되지 않았을까요?

장은수 : 예전에는 독립 출판물을 불특정다수 독자에게 배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유통망이 확보되지 않았으니 대중에게 알리는 게 불가능했죠. 알릴 수 없으니 판매도 불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독립 서점 등을 통해서 유통이 가능합니다. 또한 기술의 발달로 만인이 만인과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에 접어듦에 따라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대중에게 내 책을 홍보하는 게 가능합니다.

홍보와 유통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제 남은 문제는 제작 기술뿐이죠. 판매가 가능한 수준의 디자인이나 인쇄 문제를 개인이 어느 정도까지 해결 가능하냐는 겁니다. 이 역시 가능해졌습니다. 독립 출판 기법을 가르치는 강좌가 늘어났고, 관련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도 손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나의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홍 : 독립 출판은 인디 밴드와 마찬가지로 개인 혹은 소규모 팀이 기획부터 제작, 유통 전반을 스스로 진행하는 출판 시스템입니다. 대중성이나 상업성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 기타 소규모 출판과 특별히 경계 지어지는 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출판은 아날로그 감성을 따릅니다. 현대 사회가 디지털 환경으로 재편됐지만, 대부분의 독립 출판은 기본적으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옛 감성을 따라 제작됩니다. 예전에는 각자가 가진 이 감성이 서랍 안에 머물렀지만, 이제 기술의 진보 덕택에 서랍 바깥에서 다른 이와 만날 수 있게 됐죠.

물론 영미권의 예에서 보듯이 디지털 환경 바탕의 독립 출판이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으로 시도되고 자리 잡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셀프 퍼블리싱 플랫폼인 눅 프레스(NOOK Press)나, 비록 소수에게만 혜택이 주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아마존의 KDP 작가들의 예에서도 보듯이 작가 중심의 플랫폼 구조도 이미 낯설지 않습니다. 시매워즈의 설립자인 마크코크는 "2020년에 전자책 시장에서 독립 작가가 50%의 점유율을 차지"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건, 단순히 기술이라는 환경적 변화만으로 독립 출판 붐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 독립 출판 붐의 원인을 설명할 다른 이유도 있나요?

이홍 : 기술의 진화는 개개인의 자기 표현 욕구를 자극합니다. 초연결 사회에 들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고, 콘텐츠 생산자가 될 수 있죠. 소셜 미디어와 기능적인 플랫폼 서비스를 활용하면 되니까요.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환경이 결합해 일어난 변화입니다.

주목할 점은 독립 출판이 생산자와 소비자(독자)의 간격을 좁혀줄 수 있다는 겁니다. 기존 출판 시스템은 이를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했습니다. 철저하게 생산자 중심 방식이었죠. 서점과의 거래만 원활하다면 운영에 문제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독립 출판은 생산자와 독자의 밀착성 여부가 지속성의 관건입니다.

- 그 말씀을 들으니 유튜브, 아프리카TV와 같은 온라인 1인 미디어에서 인기를 끄는 BJ가 떠오르네요. 이런 온라인 스타의 등장과 독립 출판 흐름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나요?

장은수 : 일정 정도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인터넷 방송도 보통 사람의 자기 표현에 기대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독립 출판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인터넷 방송은 다수 대중을 상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른바 먹방 프로그램이 대표적이죠. 반면 독립 출판은 소수 미디어의 속성을 강하게 띱니다. 독립 출판의 대상도 분명 대중입니다만, 엄밀히 말해 '취향이 같은 불특정다수' 입니다. 산업적으로 말하자면 철저히 틈새시장을 공략한다고 할까요.

어차피 독립 출판이 산업적으로 내는 수익은 크지 않습니다. 대부분 독립 출판물은 권당 300~1000부 정도 발행됩니다. 하지만, 독립 출판은 그간 조직을 갖춘 출판사들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소셜 미디어와 함께 성장하는 독립 출판

- 말씀을 듣다 보니, 기술 변화와 언론 환경 재편의 상관관계가 떠오릅니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각 언론사가 인터넷 뉴스 서비스를 시작했고, 새로운 인터넷 미디어도 출현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대형 포털이 뉴스 서비스 사이트로 확고히 자리 잡았죠. 최근에는 모바일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변화로 1인 미디어가 새로운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격변이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의 변화입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사 수익 기반이 크게 흔들리는 부작용도 생겼고요.

앞서 두 분은 기술 변화로 인해 독립 출판 시장이 형성됐음을 설명하셨어요. 그렇다면, 독립 출판도 기존 출판 산업을 흔들 수 있을까요?

장은수 :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겁니다. 아마존의 자가 출판이 대표적이죠. 전자 출판에서 기성 출판사의 지위를 넘어섰습니다.

실제 우리는 이미 독립 제작자가 새로운 콘텐츠를 자유롭게 유통하면서 경제적 문제도 일정 정도 해결하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카카오의 스토리펀딩이나 텀블벅 같은 소셜 펀딩 사이트를 이용하면 쉽게 독자를 모을 수 있고, 기본 독자를 확보한 상태에서 종이책 출판이 가능해집니다.

대형 포털의 웹툰이나 웹소설 사이트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이들 콘텐츠의 대부분이 아직 독립적인 책으로까지 만들어지진 않습니다만, 대중은 이들 사이트에서 책으로 담길 가능성이 높은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그 결과, 연간 수백 억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독립 출판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미 독립 출판 생산물은 우리 생각보다 더 다양한 통로로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홍 : 인디 뮤지션이라고 해서 추구하는 음악이 반드시 상업적이지 않은 건 아니죠. 비상업적이란 전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소비하는 계층과 시장이 흔히 말하는 다수 대중과 다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독립 출판이 꼭 비상업적인 건 아닙니다. 시장의 크기와 타깃이 다를 뿐입니다. 바꿔 말하면, 독립 출판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가 충분하다는 뜻이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시끄럽죠. 신뢰를 잃은 공중파 뉴스의 헤게모니를 JTBC 같은 종편이나 인터넷 매체가 넘겨받았습니다. 많은 이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뉴스를 봅니다. 이들 매체를 마이너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기존 언론 보도는 신뢰하지 않지만,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뉴스를 신뢰하는 이는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정보 중에는 개인이 임의로 짜깁기한, 편파적이라는 기성 언론 보도보다 신뢰도가 훨씬 떨어지는 정보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감정적으로 신뢰하려는 태도를 보입니다. 바로 연대성에서 비롯된 동질감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은 나의 관심사를 집중적으로 보여줍니다. 당연히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정보니 언론 뉴스든 지인의 정보든 같은 수준으로 신뢰하죠. 모바일 환경에서 정보는 관계망에 따라 특화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연대성과 동질감이 바탕인 관계와 신뢰를 키워드로 꼽을 수 있는 이 욕구가 독립 출판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독립 출판물이 독립 서점 위주로 유통되는 이유에는 산업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있지만, 정서적·문화적으로 그래야 한다는 점도 꼽을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정반대로 주류 출판이 독립 출판을 흡수하진 않을까요? 다시 언론의 예를 들면, 최근 주류 언론의 두드러진 변화는 누리꾼 반응을 정리하는 단신 기사를 작성한다는 점입니다. 누리꾼이 콘텐츠 생산자가 되자, 기성 언론은 아예 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대중 콘텐츠를 흡수합니다.

장은수 : 매스미디어는 매스(mass, 대중)를 대상으로 제작됩니다. 매스미디어의 대상인 대중은 듣기만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중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내 의견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인 소셜 미디어는 다릅니다. 소셜 미디어에는 매스가 없습니다. 이제 누구나 미디어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자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매스미디어가 설 자리는 사라집니다. 지금 주류 매체가 누리꾼의 의견을 반영하는 건 주도적 흡수가 아니라 변화에 따르고자 하는 수동적 움직임입니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독립 출판이 붐을 일으킨 이유도 바로 매스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나와 취향이 같은 독자가 다른 미디어의 도움 없이 나와 곧바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목소리를 내면 독자도 이에 반응해 자기 목소리를 냅니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타인은 내 책의 독자이자, 홍보가이자, 판매자이자, 기고자입니다.

기존 출판이 독립 출판에 배워야 할 점도 바로 이것입니다. 독립 출판물로 이름을 알린 이들을 자세히 보시면 홍보를 잘 합니다. 1인 방송 BJ가 자기 홍보를 잘 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셜 미디어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기본적으로 '소셜해야' 합니다.

이홍 : 방금 말씀하신 내용을 '독립 출판의 역설'로 정리해도 될 듯합니다. 독립 출판은 주류적 취향에서 벗어났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이가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에 기댑니다. 역설적이죠. 독립 출판은 독립 서점과 마찬가지로 사람 사이의 관계망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 독립 출판물은 나만의 책을 원하는 이들과 소통한다. ⓒ프레시안(최형락)


독립 출판 주인공은 30대 여성?

- 페이스북의 관계망은 결국 내 지인, 내 또래,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독립 출판물 구매자 역시 '대체로 이러하다'는 식으로 카테고리화가 가능할까요?

이홍 : 예전 블로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을 때 '와이블로그'란 말이 유행했습니다. 아내가 만드는 블로그라는 뜻인데, 대체로 전업 주부가 관심 가질 꽃꽂이나 인테리어, 자수 등의 정보에 특화된 블로그를 일컬었죠. 이들이 주로 30~40대 중산층 여성이었습니다.

지금 독립 출판계에서 주목할 만한 집단 역시 30~40대 여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표현이 좀 거칠지 모르지만, 이들은 정치나 경제 구조의 리더는 아닐지 몰라도 문화 소비의 주도층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 모로 사회적 의의를 갖는 대목이라고 봅니다.

장은수 : 구매 집단의 크기가 크지 않으므로 이를 유의미한 통계로 설명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다만, 출판계 사람으로서 경험적 관찰 결과를 대략적으로 말해본다면, 저 역시 대체로 30대 여성을 주된 독립 출판 생산자이자 소비자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점은, 주류가 아닌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을 독립 출판 집단(생산자와 소비자)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주류 미디어가 나의 취향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할 때 내가 직접 내 취향을 알려야겠다는 욕구도 생기고, 내 취향에 맞는 메시지를 찾겠다는 욕구도 생기죠.

주류 미디어가 내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는 그들의 광고주가 아니니까요.

주류 미디어는 간단히 말해 번들 미디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플러스 사이즈 패션쇼 모델로 데뷔한 김지양 씨가 '한국인이 보기에 뚱뚱한' 사람도 아름다움을 주장하며 만든 독립 잡지 <66100>(여성 사이즈 66 이상, 남성 사이즈 100 이상을 상징하는 제호)과 날씬한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는 주류 패션 잡지를 비교해 보죠. 결국 주류 잡지 콘텐츠의 대부분은 광고입니다. 기사도 전부 광고입니다. 여기에 온갖 상품을 끼워 팔기 하죠. 이런 성향은 이제 TV 드라마, 주류 언론으로까지 확대됐습니다. 당장 최근 언론계의 중요한 화두가 네이티브 광고 아닙니까? 우리는 여러 드라마가 과도한 PPL로 비판받은 걸 기억합니다.

대자본의 광고가 덮어버린 주류 미디어는 소수 취향을 가진 이를 결코 만족케 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주류 미디어에 소외된 이들이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었죠. 하지만 이제는 가능합니다. 독립 출판이 생겼으니까요.

- 여태 얘기된 내용을 정리하면, 독립 출판의 조건을 대체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은수 :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 자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기존 출판 자본의 작동 원리에서 벗어나야 하죠.

둘째, 주류 시선으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기성 매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생각을 존중받고 싶다는 욕구를 담을 수 있고, 이에 호응하는 독자와 교류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주류 미디어에서는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습니다.

셋째, 우애를 담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독립 서점의 조건으로 거론한 것과 같은 지점입니다. 독립 출판물을 왜 만들겠습니까. 나와 취향이 같은 이를 만나고 싶어 만듭니다. 독립 출판을 통해 파편적으로 흩어졌던 개인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저는 독립 출판을 '사람이 보이는 출판'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홍 : 와이블로그가 결국 광고 블로그로 변질됐다는 점을 짚어야 합니다. 현재 많은 독립 출판물이 여행, 취미 등의 소재에 머무릅니다. 이들 소재는 대자본에 포섭되기 쉽습니다.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도 어렵습니다. 조금 더 가치 지향적인 독립 출판이 늘어나야 합니다.

물론 독립 출판이 영속성을 전제하지는 않습니다만, 개인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으로 보면, 취미 수준을 넘어서는 출판물이 더 늘어나야 독립 출판 저변이 탄탄해질 것입니다.

- 여태 우리는 독립 출판의 전반적 특징을 살펴봤습니다. 한국보다 앞서 외국에서는 독립 출판이 이미 거대한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마존 전자책 시장에서 독립 출판이 승승장구하는 게 대표적 사례죠. 외국의 독립 출판 흐름을 간략하게나마 짚어볼 수 있을까요?

장은수 : 아마추어적 독립 출판물은 아닙니다만, 영국 잡지 <모노클(Monocle)>의 성공 사례는 참고할 만합니다. 광고로부터 독립성을 지키고, 주류 미디어 기사를 사오지 않으며, 글로마드(glomad, 글로벌 부족, 세계를 누비는 비즈니스맨으로서 국적 의식이 약하고 대중적 취향을 따르지 않는 이들)를 대상으로 하는 기사를 작성한다는 점에서 <모노클>은 일정 정도 독립 출판의 가치를 공유합니다. 프로가 만드는 독립 출판 잡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모노클>은 영어로만 발행하고, 런던과 뉴욕, 토론토, 도쿄, 홍콩 등 대도시에 '모노클숍'을 만들어 정기구독자를 대상으로 한 여러 프로그램과 상품 판매를 독자적으로 진행합니다. 종이 잡지 판매로 매년 35%씩 성장해 출판계의 관심을 모은 잡지입니다.

<모노클>의 성장은 글로마드가 탄생했기에 가능합니다. 독립 잡지가 소셜 미디어와 함께 성장한 것과 궤를 같이합니다. 한국의 <매거진 B> 역시 어느 정도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독립 출판은 쉽게 목소리를 얻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달에 기여합니다. 사진은 지난 12일 열린 100만 촛불 집회 현장. ⓒ사진공동취재단


독립 출판이 민주주의 키운다

- 이제 독립 출판의 사회적 의의를 짚어 보죠. 독립 출판이 한국 출판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지식 기반을 넓히리라는 게 사회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의의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요?

장은수 : 맞습니다. 독립 출판은 표현의 자유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지난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펴냄), <체르노빌의 목소리>(김은혜 옮김, 새잎 펴냄) 등을 쓴 벨라루스 출신 언론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문학상을 탔습니다. 올해 뮤지션인 밥 딜런이 이 상을 타 화제가 됐습니다만, 지난해 역시 문학가가 아닌 언론인이 상을 탔죠.

스베틀라나의 책은 목소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책은 목소리가 없던 약자에게 목소리를 부여해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독립 출판의 사회적 역할과 같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낼 수 있다면, 그간 여러 현실적 제약에 가로막혔던 우리의 온갖 생각이 활자화됩니다. 목소리가 없었던 사람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민주주의는 더 성장합니다.

이홍 : 독립 출판물을 위한 플랫폼 중 하나인 더 북 소사이어티에서는 '대형 서점에서 파는 책은 안 판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더 북 소사이어티는 독립 출판사인 미디어버스가 운영하는 서점인데요, 독립적인 출판과 서점의 연결 예를 보여주는 좋은 표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다양성의 증진을 위해 아주 좋은 자세입니다.

독서 기반이 탄탄해지기 위해서는 다루는 주제와 출판 형태가 다양해야 합니다. 독립 출판이 우리 사회에 유의미하게 생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술 발달로 우리 사회가 더 긴밀히 엮일수록 독립 출판의 가치가 출판의 주류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장은수 :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독립 잡지가 지난 2013년부터 발행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입니다. 지난 2014년 5월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 계획안이 통과했습니다. 이에 따라 사라질 운명에 처한 이 아파트 단지의 사람과 역사, 풍경을 기록하는 잡지입니다. 이 단지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 만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주류 미디어가 담을 수 없습니다. 오직 잡지만이 담을 수 있는 이야기 형태입니다. 독립 잡지가 우리 사회, 역사, 사람에게 기여하는 바가 얼마나 큰가를 웅변하는 사례입니다. 이런 작은 다양성이 모두 사라진 세계는 결코 좋은 세계가 아닙니다.

- 독립 출판 저변을 넓히려면 우리 사회에 글쓰기 풍토가 탄탄해야 할 텐데, 조금 부족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학교 수업은 논술 위주가 아니라 단답형 풀이 위주고, 인문학 토양은 갈수록 불안정해지죠. 독립 출판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사회적 노력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이홍 : 굳이 저변 확대를 위한 제도적 프로그램을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공화국 시민으로서 배운 기본적 교양에 읽기와 쓰기가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우리 교육 과정이 단순 암기식인 만큼, 개별적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면 좋겠죠. 실무적인 내용만 보면, 출판의 A부터 Z까지 가르쳐주는 강좌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장은수 : 책을 낼 준비가 된 사람을 대상으로 기획 감각을 살려주고, 제작에 관련한 각종 문제들을 극복하도록 도와주고, 책을 홍보하는 방안을 알려주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체로 독립 출판 관련 강좌를 보면 ▲ 독립 출판의 이해 ▲ 기획과 레이아웃 ▲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 인쇄와 제작 실습, 유통 및 홍보 정도입니다. 기존 출판사에는 익숙하지만, 실제 책을 내려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 홍대 입구의 독립 서점 짐프리 강좌는 6주 만에 실제 책을 출판하는 과정으로 이어지더군요. 매우 실무적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홍 : 글쓰기 강좌도 많습니다. 그만큼 내 이야기를 남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크다는 증거죠. 제가 아는 한 강좌 프로그램 기획자도 글쓰기 강좌만 잘 된다고 하시더군요.

- 직접적인 활성화 지원 프로그램은 필요 없다손 치더라도, 독립 출판 독자 저변을 키우는 지원이 이뤄진다면 좋지 않을까요?

장은수 : 공공 도서관이 독립 출판을 도울 수 있습니다.

각 지역의 공공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곳이 아닙니다. 지역 사람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는 기록관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공 도서관에 가 보면 지역의 삶과 문화를 스스로 기록해 만든 책은 거의 없고, 전국적으로 판매되는 책들만 주로 존재합니다. 몇몇 잡지 외에는 지역의 삶을 지역민의 손으로 기록한 기록물을 찾기 어렵죠.

앞서 독립 출판이 민주주의 신장에 큰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이 차원에서 지역 도서관이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지식 아카이브'의 미래상을 갖고 독립 출판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공 도서관은 자연스럽게 독립 출판의 지원자이자, 마을 역사의 기록자가 될 겁니다. 이런 움직임을 촉진할 공공 강좌 역시 공공 도서관이 만들 수 있겠고요.

지역 언론 역시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사가 마을 미디어 육성 기관이 된다면, 민주주의 함양이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죠.

이홍 : 지역 독립 출판에 과감히 나설 사람도 필요합니다.

장은수 : 마을 기록자, 생활 기록자를 육성할 필요가 있죠. 특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수록 우리 삶의 편린, 나아가 소소한 우리 이웃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굳이 공공이 독립 출판에 관해 고민하려면, 이런 방향의 생각을 키워갈 필요가 있습니다.

독립 출판은 독립 정신 지켜야

- 독립 출판물을 더 많은 독자에게 알리는 방법은 없을까요? 통합 온라인 판매 사이트 설립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 각지의 뮤지션은 사운드 클라우드에 자기 곡을 올릴 수 있습니다. 무명의 음악가가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새로운 음악을 찾는 세계 각지의 이들에게 내 노래를 알릴 수 있죠. 독립 출판인이 내 작품을 자유롭게 올리고, 이를 판매할 수 있는 통합 사이트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독립 출판에 관한 관심도 커질 텐데요.

장은수 : 이런 사업은 결국 공적 미디어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의 간접적 지원도 가능하리라고 보고요.

이홍 : 우선은 독립 서점과 독립 출판의 상관관계가 더 커져야할 겁니다. 독립 출판 본연의 가치를 키우고 보전하는 게 지금으로선 더 중요합니다. 단위의 크기와 상관없이 독립 출판물을 위한 홍보와 판매에 집중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독립 서점 활성화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대형 서점으로의 진입이나 노출이 제한적인 상황이니까요. 다만, ISBN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겠느냐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생각처럼 쉽진 않으리라는 생각도 드네요.

장은수 :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ISBN에 관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ISBN은 간단히 말해 책에 붙이는 고유 식별 기호입니다. 모든 판본의 책마다 하나씩 ISBN이 붙죠. 이 기호에 기반해 주류 출판물이 유통됩니다. 그런데 현 ISBN은 1년에 1만 권의 책이 나올 때 만들어진 프로그램입니다. 미국에는 자가 출판이 활성화된 이후, 1년에 80만 권의 책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웹소설이나 웹툰의 출판화까지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책이 나옵니다.

공공 도서관, 언론이 독립 출판을 지원한다면 당장 ISBN을 붙이느냐 마느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ISBN을 부여한다면 독립 출판인도 출판 사업자가 되는 셈인데, 잘못하면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려면 사업자 등록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생업이 따로 있는 독립 출판인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이는 독립 출판을 1인 출판 사업으로 변질케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방식의 접근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홍 : 아무리 작은 규모라손 치더라도 독립 출판과 1인 출판을 분리해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죠. 1인 출판 사업자가 되는 순간 세금 문제부터 시작해 본격적인 출판 사업자 문제가 얽히니까요. 그리고 전자책 시장의 여러 플랫폼의 등장도 독립 출판의 구도를 만드는 그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의 형태가 일반적인 것과 다르긴 하지만 한글과 컴퓨터가 만든 '워프블' 같은 콘텐츠 배포 플랫폼은 개인 독립 출판을 넘어 기업이나 기관 등이 직접 필요한 전자책을 만들어 배포하게 하는 시스템입니다. 독립 출판이 주체와 규모나 콘셉트,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들며 다양한 형태로 진화 발전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결국 독립 출판의 정의를 되새기며 오늘 자리를 마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독립 출판은 독립 서점과 함께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미디어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는 대안 미디어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출판물로서 자리매김하는 순간, 기본 정신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릴 수 있습니다. 독립 출판인이 나의 목소리를 더 쉽게 낼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는 한편, 독립 출판이 공공의 가치를 더 키우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했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독립 출판은 주류 출판과 함께 우리 사회에 탄탄히 자리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개인이 글이나 이미지를 창작하고 독립적인 출판물로 만드는 일은 자아의 독립성을 표현하고 연대를 통한 공유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기대를 갖게 합니다. 기계식 금속활자 등장 이후 생산자 일방적으로 다량 복제에 맞춘 획일적 출판물은 시장을 확대하고 지식과 정보를 널리 전파했다는 공로에도 불구하고 한 권의 책이 갖는 고유성은 오히려 약화되었지요.

다양한 콘셉트와 개성으로 무장한 독립 출판물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상업 출판 시장의 대안이라는 기대는 성급하고 무리한 가설입니다. 다만, 뻔하고 흔한 나머지 소유 욕구를 자극하지 않는 기존 출판사의 책에 실망하고 떠난 독자들에게 책에 관한 특별한 시선을 제공해 줄 수 있다면 그 역할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출판의 다양성입니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