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덕'에 가려진 중국의 알맹이 '상앙의 채찍'
'공자의 덕'에 가려진 중국의 알맹이 '상앙의 채찍'
[장현근의 중국 사상 오디세이] 법을 지배한 남자, 상앙(商鞅)

천년고도 시안(西安)을 가면 진시황의 무덤뿐만 아니라 한당(漢唐) 시대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다. 여유가 되어 화산에 오르면 그 장엄함에 감동하게 된다. 그 외에도 시안에는 가볼만한 곳이 많다. 시안시 창안(長安)구는 주나라의 수도 호경(鎬京)이 있어 세계 역사상 최초로 서울 경(京)자를 지명으로 가진 곳이다. 연접한 북쪽엔 진(秦)나라의 수도였던 셴양(咸陽)시가 있고 동쪽으로는 그 셴양을 건설한 상앙(商鞅)의 봉지였던 상뤄(商洛)시가 있다. 상뤄에는 상앙 광장과 거대한 상앙의 석상이 있다.

진시황은 훌륭한 전략가이자 전술가였으며 위대한 정치지도자였다. 그의 통일이 없었다면 오늘날 중국은 많은 나라들이 병존하는 유럽처럼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의 정치와 전략의 상당 부분은 그보다 백여 년 앞선 상앙이란 위대한 개혁정치가에게서 비롯되었다. 위(衛)의 공족 출신인 상앙은 여러 사상을 섭렵했으나 일종의 정치행정학인 형명(刑名)학을 특히 좋아한 천재였다. 누가 이익을 바라지 않으며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랴. 상앙은 이러한 사람의 성정을 정치에 십분 활용하여 불과 20년도 안 되는 짧은 세월에 약한 진나라를 최대 강국으로 성장시켰다.

사마천은 상앙의 역사적 공로를 인정하고 특별히 긴 <열전>을 남겼으나 각박하다는 평가를 빼먹지 않았다. 유학자들에 의해 오랫동안 나쁜 사람 취급을 받았던 상앙은 20세기 초에 와서야 재평가되었으며 중국역사상 가장 뛰어난 6대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칭송받기도 한다.

나는 상앙과 그의 추종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상군서>를 읽을 때마다 중국과 같은 큰 나라를 움직이는 내밀한 법칙은 공자와 맹자의 덕을 겉포장으로 삼고 상앙과 한비자의 법을 속 내용으로 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상앙의 석상. ⓒFanghong



부국강병의 길

성공한 정치가의 길을 걷기 위해선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뜻이 맞는 동지를 만나야 한다. 특히 자신을 알아봐주고 믿고 맡기는 실력 있는 주군을 만나는 인연이 중요하다. 상앙 정치개혁의 성공은 모두 그와 비슷한 나이의 진효공(秦孝公)과 관련이 있다. 진효공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주면 땅을 나누어주겠다는 초현령(招賢令)으로 상앙을 얻음으로써 당대에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상앙은 손에 <법경>을 들고 가보로 내려오던 보검 한 자루를 메고 국경을 넘었다. <상앙열전>에는 그가 발탁되는 장면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총신에게 돈을 써서 독대 자리를 마련하고 과거 이상 정치로 설득하는데 군주는 졸기만 한다. 다시 만나 왕도정치를 설득하였으나 효공은 이해하지 못했다. 세 번째 만나 패도를 얘기하자 군주가 크게 움직이더니 다시 만나자고 한다. 네 번째 만나 부국강병의 길을 설명하자 "공은 얘기를 나누면서 방석 밖으로 무릎이 나오는 것도 몰랐다. 며칠을 얘기하고도 싫증을 내지 않았다." 두 젊은이는 먼 미래의 도덕사회보다 당장의 부강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상앙은 임용 3년 만에 1차 변법(變法)을 단행했다. 연좌제, 장년 남자의 분가, 군공포상제, 농업장려와 상공업 억압, 20등 작위제도 실시 등이었다. 7년 뒤의 2차 변법은 첫째, 남녀를 구별하고 부모자식이 같은 방에 거처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풍속개혁을 단행했다. 둘째, 봉건을 폐지하고 전국을 31현으로 나누어 중앙집권을 도모했다. 셋째, 토지 등급과 생산량에 따라 세금에 차등을 두는 토지개혁을 단행하여 조세평등과 세수증대를 도모했다. 넷째, 도량형을 통일했다. 개혁 과정에 부딪친 엄청난 반발과 도전을 상앙은 철저히 법 집행으로 해결했다. 한나라 때 유향은 <신서>(新序)에서 이 과정을 이렇게 말한다.

"상앙은 온 몸을 바쳐 딴 생각을 품지 않았으며, 오직 공으로 처리할 뿐 사적인 일은 돌아보지 않았다. 백성들로 하여금 안으로는 농경과 직조에 전념하여 국부를 달성토록 했으며, 밖으로는 전쟁을 통한 혜택을 중시하여 용사가 되도록 권장했다. 법령이 내려지면 반드시 실천했다. 안으로는 귀족이나 총신에게 아부하지 않았으며, 밖으로는 관계가 멀다고 차별하지 않았다."

가벼운 죄도 무겁게 처벌하라

이론과 현실정치 모두에 능하기는 참 어렵다. 일생을 분주히 살아온 상앙은 틈틈이 자신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글을 썼다. 어쩌면 효공이 약속을 지켜 상(商)과 어(於)지역 15읍을 봉지로 내려주어 제후인 상군(商君)이 됨으로써 여유가 생겨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상군서>를 보면 그가 치밀한 공부와 엄격한 법치에 모두 능했음을 알 수 있다.

부강의 핵심은 인구 유입이다. 인구가 많아지면 세원이 늘고 노동력이 증가하고 군비증강에 유리하다. 제자백가의 정치 주장은 사실 인구유입이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상군서>는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주장을 한다. (1) 역사는 본디 끝없이 바뀌므로 정치, 사회의 각종 제도 또한 새로운 추세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 (2) 세상이 바뀌면 행해야할 도리도 달라져야 한다. 인구가 많고 사회가 복잡한 오늘날엔 법과 관료와 군주를 통해 통치해야 한다. 인의니 예악 따위는 버려야 한다. (3) 사람은 상을 좋아하고 벌을 싫어하므로 군주는 삶, 배부름, 편안함, 즐거움, 출세, 작록, 부귀로 상을 주고 죽음, 배고픔, 힘듦, 괴로움, 수치모욕, 형벌, 빈천으로 벌을 주어야 한다. (4) "이익이 땅에서 나올 때 백성들은 있는 힘을 다해 농사를 짓고, 명예가 전장에서 나올 때 백성들은 죽기 살기로 싸운다."(<개색>편) 오직 농사와 전쟁만 노래하게 해야 한다. (5) "법은 국가의 저울이다"(<수권>편)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존망의 원인이다."(<수권>편) 일체의 사적인 길을 막아야 한다. (6)군주는 입법권과 행정권을 장악하며 힘으로 백성들의 존중을 받아야 한다. "힘은 강함을 낳고, 강함은 위엄을 낳으며, 위엄은 덕을 낳는다."(<근령>편) (7) 백성은 통치대상일 뿐이다. "백성들이 법을 통제하면 그 나라는 혼란하다. 법이 백성들을 통제하면 그 군대는 강해진다."(<설민>편) 백성을 무지몽매하게 만들어야 한다. (8) 형을 무겁게 하라. "가벼운 죄에 무거운 형벌을 행하면 가벼운 범죄도 생기지 않는다."(<설민>편) (9) 지식은 부국강병의 해충이다. "농사와 전쟁에 참여하는 백성이 천이고 <시경>, <서경>에 능한 사람이 하나라면 천 명이 모두 농전에 태만하게 된다."(<농전>편) (10) 법을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법관은 "천하의 스승이 되어 만백성으로 하여금 법 저촉으로 인해 위험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정분>편)

상앙은 가벼운 죄도 무겁게 처벌하면 백성들이 누구나 재앙을 피하고 복을 취하는 자치의 이상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렇게 될까? 법을 지키고 고통을 감내하여 부국강병을 이루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상앙은 사람의 생각이 각기 다르며 행복이 꼭 부강에만 있지 않으며 정치의 묘미는 그 다름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데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상앙의 법과 군주에 대한 한없는 존중은 다수인 신하와 백성들에 대한 비하를 전제하고 있다. 문명을 움직이는 동력이 다수 인간들의 상상력과 문화에 대한 이상이며, 사람에겐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이 있음을 상앙은 믿지 않았다.

상앙이 개혁과정에서 보여준 공정하고 철저한 법 집행은 미덕이다. <전국책>이란 책엔 병든 효공이 상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상앙은 사양했다. 법에 입각해 사적인 욕심을 채우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개혁은 언제나 개혁대상의 반발을 부른다. 상앙의 융통성 없는 획일적 법 집행은 그 자신에겐 독이 되었다. 효공 사후 반란을 구실삼아 거열(車裂)형에 처해졌으나 그를 변호하는 사람은 없었다.

▲ 거열형에 처해지는 상앙. <신열국지> 명대 판본에 실린 삽화. ⓒwikimedia.org


상앙은 억울하게 죽었으나 그의 법은 중국의 기초가 되었다. 범법자에 대한 밀고와 연좌제도, 호주 중심의 가족제도, 공무원등급제를 창시한 사람이 상앙이다. 군현제와 중앙집권적 군주전제를 다진 인물이기도 하다. 상앙이 통일시킨 도량형은 중국 경제체제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상앙은 오직 국가와 민족, 경제와 안보를 위해 군주와 법의 독재를 외쳤다. 요즘에도 어디서 많이 들어보는 말이다. 채찍은 빠른 효과가 있지만 잠이 깨면 문제는 더 악화되어 있으며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니어서 끝내는 정권을 위험에 빠뜨린다. 결국 정치란 사람들의 다름을 긍정하는 많은 공론의 장과 지성의 비판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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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길림 대학교 문학원 및 한단 대학교 등의 겸임교수이다. 중국문화대학에서 '상군서' 연구로 석사 학위를, '순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가 사상의 현대화, 자유-자본-민주에 대한 동양 사상적 대안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 사상의 뿌리>, <맹자 : 이익에 반대한 경세가>, <순자 : 예의로 세상을 바로잡는다>, <성왕 : 동양 리더십의 원형>, <중국의 정치 사상 : 관념의 변천사>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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