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서적 사태의 교훈...'의리'로 망가진 출판
송인서적 사태의 교훈...'의리'로 망가진 출판
[표지 너머 책 세상 ⑤] 송인서적 부도 사태, 왜 일어났나?
2017.01.26 08:17:51
새해가 밝았습니다만, 출판계의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연초부터 출판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지난 3일 2000여 회원사를 둔 송인서적이 총 600억 원대에 가까운 규모의 부도를 냄에 따라, 출판계는 연쇄 부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송인서적은 출판사의 책을 구입해 시중서점에 공급하는 업체입니다(출판사는 인터넷서점과는 직접 거래합니다.). 

정부가 신속히 구제에 나섰지만, 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기반이 취약한 우리 출판 문화, 나아가 독서 문화 현실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일이라는 촌평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연쇄 부도 위험은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당초 '표지 너머 책 세상'은 새해를 맞아 정치의 계절에 맞는 책 추천의 시간을 가지려 했습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독서 현실을 보여주는 송인서적 사태를 짚고 넘어가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왜 서적도매상의 부도 하나 때문에 이토록 큰 난리인가' 궁금했던 분, 출판계 구조를 몰라 관련 기사를 봐도 뭐가 문제인지 와 닿지 않은 분께서는 아래 내용을 찬찬히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전문적 영역의 이야기이지만 일반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우리 출판 유통 구조 상황을 풀어 보았습니다. 

새해 벽두를 달군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도 간략히 짚어 봅니다. 새해 첫 표지 너머 책 세상을 방문하신 걸 환영합니다. 

▲ 송인서적 부도 사태를 찬찬히 알아 봅니다. 사진 왼쪽 장은수 편짐문화실험실 대표, 사진 오른쪽 이홍 출판기획자. ⓒ프레시안(최형락)


어음 결제 관행, 대형 부도로 폭발

-연초부터 출판계에 큰 이슈가 터졌습니다. 송인서적 부도 사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태 직후 송인서적은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올랐습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지난 15일 이 사태를 언급하며 "송인서적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가 공공도서관 도서구입 예산 등을 들여 피해업체 도서 재고분을 구입하며 연쇄 부도를 막고자 하고 있습니다. 출판업계에서도 단순히 도매상 하나의 부도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송인서적 사태가 얼마나 심각합니까?

장은수 : 송인서적 부도는 단순히 도매상 하나의 부도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출판계 연쇄 부도로 이어질까 우려됩니다. 

현재 송인서적 부도 규모는 부도 어음 100억 원, 은행 대출 50억 원, 보유 재고서적 40억 원, 서점 매출채권 210억 원, 출판사 매출채권 270억 원 수준으로 파악됩니다. 전체 670억 원 규모입니다. 

물론 출판 산업 전체로 보면 적은 금액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송인서적을 통해 거래하는 업체가 매우 많다는 데 있습니다. 무려 출판사 2000여 곳이 송인서적과 거래했습니다. 이중 오직 송인서적과 거래한 '일원화 출판사'가 500여 곳입니다. 이들은 거래 금액을 떼였을 뿐만 아니라, 당장 신간 유통에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서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동네서점 대부분이 송인서적과 거래했습니다. 물론 서점은 거래처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자면 여태 받은 책을 전부 송인서적에 보내고 다시 새로운 도매상과 거래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 드는 돈도 만만찮을 겁니다. 동네서점 대부분이 한 달 벌어 한 달을 버팁니다. 영세 서점이 거래처 이전 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상당한 부담일 수 있지요. 

송인서적 부도의 충격을 못 이기고 폐업하는 출판사나 서점이 생길 겁니다.

이홍 : 송인서적 부도는 일개 도매상의 사업 실패로 인한 사고가 아닙니다. 이런 상황이 오게끔 방치한 경영진의 무능과 도덕적 무책임을 따져야 하지만, 출판계에 누적된 문제가 집약된 사태로 보는 게 좀 더 넓은 시각일 것 같습니다. 유통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도매상이 무너졌다는 건, 모세혈관이 막히고 고장 났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피할 수 없습니다. 소매상(서점), 즉 시장이 그만큼 무너졌다는 얘기죠. 

어음 결제로 대표되는 전근대적 관행도 당연히 문제였고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출판사의 취약한 경영 구조는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적된 세 가지 문제(시장 침체, 어음 결제 관행, 취약한 경영 구조)에 더하여 주먹구구식의 물류 관리가 상황을 눈덩이처럼 키웠습니다. 

-세부적 문제를 하나씩 짚어 보죠. 송인서적 부도의 중요 원인으로 어음 결제 관행이 꼽힙니다만, 자세한 속사정을 알기란 어렵습니다. 송인서적과 출판사 거래가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설명해 주세요. 

이홍 : 어음 결제 관행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위탁거래부터 알아야 합니다. 

출판사가 '우리 책을 대신 팔아 달라'며 제작한 책을 도매(송인서점, 북센 등), 소매 서점(대형서점, 동네서점)에 위탁하고 책 일정 부수를 보냅니다. 책 홍보업무까지 서점에 맡긴 셈입니다. 그리고 장부상 거래를 일으킵니다. 이게 위탁거래입니다. 

출판사 거래처에 총판도 있습니다. 도매는 소매상에 책을 공급하는 일종의 단순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인 반면, 총판은 도매와 달리 계약에 따라 독점적인 판매 대행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독자는 이와 같은 유통 과정을 거쳐 서점에 깔린 책을 삽니다. 책이 정상적인 유통 흐름을 따라 판매되고, 그만큼의 판매대금이 정확히 돌아온다면 굳이 어음 결제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점이 팔린 책값만큼 출판사에 주지 않습니다. 이해가 잘 안 되실 겁니다. 

예를 들어 A출판사가 도매상인 송인서점에 500부, 직거래 소매서점에 100부의 책을 위탁했다고 합시다. 책은 실제로는 단 한 부도 (소비자에게) 팔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장부상으로는 600부의 매출이 기록됩니다. 실제 판매와 장부상의 매출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까지는 위탁거래의 속성상 어쩔 수 없다손 쳐도, 문제는 다음부터입니다. 

출판사는 판매 대금 수금 시 (이미 서점에 위탁한 책의 가치를 반영하려 하므로) 앞으로의 판매 기대치를 대입하거나, 유명 저자의 출간 계획 등을 반영해 서점 계산치보다 더 큰 규모를 원합니다. 서점 입장에선 실제 판매 가치와 차이가 발생하죠. 출판사와 (도매) 서점의 대금 평가액 차이를 메우는 결제 방식이 어음입니다. 

빈손으로 회사에 복귀할 수 없는 출판사 영업사원은 어음이라도 받아들고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어음은 다시 출판사가 인쇄소 등 다른 거래처에 지불수단으로 사용합니다. 도매상 어음을 바탕으로 한 결제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이뤄진 겁니다. 

출판사는 꾸준히 책을 만듭니다. 이에 따라 위탁거래 실적이 계속 쌓이죠. 수백, 수천의 출판사와 거래하는 송인서적의 거래 내역은 자연히 복잡해집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어 책의 정확한 판매 집계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송인서적이 실제 책 거래 내역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소리입니다. 

정산이 안 되니, 처음부터 문제였던 어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부정확하게 발행됩니다. 주먹구구식 거래가 이뤄지죠. 이 문제가 쌓이면서 감당하지 못할 만큼 손실 규모가 커졌습니다. 

▲ 출판계의 오랜 관행은 송인서적 부도라는 대형 사태로 이어졌다. 사진은 지난 5일 송인서적 하역장의 모습. ⓒ연합뉴스


출판 집계가 안 된다?!

-어음 결제도 문제지만, 책 판매 집계가 안 된 게 중요하군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죠? 책의 정확한 판매 현황을 출판계가 집계하지도 못한다니, 믿기 어렵습니다. 

장은수 : 출판사-도매서점-소매서점을 잇는 일관된 도서판매통합데이터시스템이 없기 때문입니다. 각자 방식대로 판매 부수를 계산하는 와중에 판매 데이터 차이가 발생합니다. 거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선 곳은 판매 부수를 과다 계상하고, 약한 곳은 판매 부수보다 적게 판매된 것으로 계상하기 쉽죠. 서로 생각하는 판매 데이터가 차이 나니까, 몇 달 후까지 팔릴 것을 대충 예상한 부수를 기준으로 주먹구구식 어음 결제가 이뤄질 수밖에요. 

이홍 : 얼핏 생각하면 어음 결제가 출판사에 불리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송인서적에도 불리합니다. 그 이유를 알아볼 차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태까지 출판사 영업 관행을 짚어야 합니다. '의리'에 따라 대충 계산하고 마는 관행이 뿌리 깊습니다. 

출판사가 도매상과 거래할 때 어음계산서에 더 큰 금액 기재를 원함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자연히 연줄, 인맥도 동원합니다. 어차피 책의 정확한 판매 실적도 없는 상황에서 어음 결제가 일어나니, 이를 대충 처리하는 게 가능하죠. 친한 출판인이 "이번 책 대박이니 많이 쳐 주세요" "형님, 저희 자금이 부족한데 1000만 원만 더 주세요"하면 도매상이 알아서 그에 따르는 관행이 생겼습니다. 

자연히 도매서점은 실제 책 판매액보다 더 큰 돈을 출판사에 줬습니다. 거래 구조로는 분명 도매서점이 출판사에 빚지는 어음 결제 구조인데, 실제로는 출판사가 미래의 이익을 미리 당겨쓰는 구조가 고착화했습니다. 어음 결제는 (현금 할인으로) 그 차이를 메우는 결제 방식이었습니다. 

-위탁거래가 낳은 출판계 거래 관행의 불합리함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여겨집니다. 왜 이처럼 비상식적인 관행이 생겨났는지 여전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장은수 : 일부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위탁거래는 기본적으로 훌륭한 제도입니다. 위탁거래는 책을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지식문화재로 보는 인식을 반영한 제도입니다. 

출판업계에는 '일단 출판사가 만든 모든 책을 독자에게 선보이자'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이를 제도화한 게 위탁거래입니다. 출판사가 만든 책을 모두 서점 진열대에 올려놓은 후 독자의 선택을 받고, 팔린 부수만큼 출판사에 대금을 지불하되, 안 팔리면 반품하는 수순을 밟는 데 출판업계가 합의했습니다. 사실, 이런 방식은 출판이 아닌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위탁거래가 없다면 서점이 어떤 책을 가져갈까요?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는 큰 출판사의 책, 이름난 저자의 책만 가져갈 겁니다. 신생 출판사가 만든 책, 어려운 전문 서적은 서점 판매대에 아예 노출되지 않을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지식 사회에 필요한 책이 독자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사장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합의가 위탁거래 관행을 낳았죠. 

위탁거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판매통합시스템을 동시에 갖춰야 했습니다. 출판계에 만연한 전근대적 의리의 관행이 이를 가로막았습니다. 이 때문에 책의 정확한 매출 집계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어음 결제 관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송인서적 부도 사태의 핵심은 '출판사와 서점이 실제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책의 다양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투명한 거래 관행이 뿌리내리려면 출판계 통합전산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네요. 

장은수 : 그렇습니다. 

▲ '으리'가 꼭 좋지만은 않습니다... ⓒ팔도



'의리'로 포장된 비합리적 경영

-그런데, 도매서적 업체 중에서 왜 유독 송인서적만 문제가 생겼을까요?

장은수 : 송인서적이 특히 전근대적이었다고 봐야겠죠. 앞서 말한 의리 관행이 특히 심했습니다. 이번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송인서적에 있습니다. 

이홍 : 송인서적과 거래하는 일원화 출판사가 많았던 이유도 '의리'로 포장되는 송인서적 특유의 끈끈함이 유독 강했기 때문입니다. 자본이 없고, 경영 능력이 떨어져도 '좋은 책 내 보자'는 의지로 시작한 출판사에 송인서적은 의리 있는, 인간적 도매상이었죠. 다른 도매상은 안 받아주는 책을 송인서적은 다 받아주거든요. 물론, 합리적 경영 원칙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출판사에는 전근대적 도매상이었고요. 

장은수 : 이처럼 전근대적 경영을 지속하면, 구조적인 불안정성이 상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매상이 현금 결제를 틀어막는 식으로 운영하니, 이에 딸린 출판사 경영도 급한 돈줄부터 틀어막는 구조로 고착화할 수밖에 없죠. 

송인서적도 계속 이런 식으로 장사할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를 그간 송인서적은 공공납품으로 해소했습니다. 도서관, 군부대 등에 책을 납품해 현금 흐름에 숨통을 틔웠죠.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역서점 살리기 운동에 따라 도매상 대신 동네서점이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게 됐죠. 어떻게 보면 좋은 일입니다. 지역 서점에서 지역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니까요. 하지만, 송인서적으로서는 직접 납품처가 사라진 셈입니다. 납품권을 따낸 지역 서점이 송인서적에 과거에 비해서 불리한 조건으로 납품을 강요했습니다. 당장의 현금이 아쉬운 송인서적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따르다가 경영 환경이 더 어려워졌죠. 

이홍 : 이 사업을 노리고 지역에 기반한 소위 '페이퍼 서점'도 들어섭니다. 공공기관을 통한 책의 유통 이익이 출판계에 들어오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새 버리는 일까지 발생했죠. 

장은수 : 결국, 송인서적은 현금흐름 유지를 위해 공공납품을 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버티다 현금이 메마르자 부도났죠. 

-어찌됐든, 출판계가 가상의 미래 이익에 그간 의존한 건 사실이네요. 이는 실현되지 않은 미래가치에 돈을 매긴 주식거래나 부동산 거래를 연상케 합니다. 

장은수 : 간단히 말해 출판 산업의 거품이 이번에 터졌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간 출판계는 계속 신간을 내 실제 손실분이나 거품 발생분을 메우려 했습니다. 실제 판매 부수를 알 수 없으니까, 불안정한 예측에 기대어서 출판하는 관행이 반복되면서 거품이 커졌습니다. 그러다가 거품이 터져 버렸죠. 

-부동산 버블이 터졌다고 가정하면 더 이해가 쉽겠네요. 

장은수 : 산업 구조적 문제였을 뿐 투기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전제한다면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겠네요. 불투명한 위탁거래가 어음 결제를 부추기는 한편, 도서 시장에 신용이 부족한 출판사가 적지 않게 난립함에 따라 자연스레 도매상이 일종의 은행 역할도 떠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버블이 생겨났고, 결국 출판계 전체에 신용 위험이 커졌죠. 

사실 버블은 모든 산업에 조금씩은 존재합니다. 출판계의 경우 큰 문제는, 버블의 규모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겁니다. 통계가 정확하지 않으니 지금의 경기가 버블인지 아닌지 알 방법이 없죠. 다시 강조하지만, 출판 산업의 실제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송인서적 부도의 핵심은 '책의 위기'

-송인서적 사태가 단순히 한 도매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송인서적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출판계, 언론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일반 독자층도 이 소식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인터넷 포털에 실시간 검색어로 오르기도 했죠. 뉴스 독자의 관심이 많으니 관련 기사도 그만큼 더 쏟아졌습니다. 조금 의외로 여겨집니다. 

장은수 : 사람들이 그만큼 송인서적 부도 사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증거죠. 사람들이 책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옵니다만, 실은 사람들의 삶에 책이 매우 중요함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무시하고 이번 사태를 이야기해선 안 됩니다. 시민이 책의 위기에 관심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태 해결의 방향 역시 '송인서적의 부도 해결'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위기에 빠진 독서 문화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당장 현금 흐름이 막힌 출판계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죠. 이에 관한 조치는 정부에서 적절하게 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긴급자금 대출을 넘어 책의 위기를 해결할 방도에는 아무도 관심 없습니다. 지금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가지 않으면, 다음에 위기는 또 찾아올 겁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6일 50억 원 규모의 출판기금을 활용해 피해업체에 저리 대출과 보증 만기 연장 등의 지원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15일에는 30억 원을 추가 지원한다고 밝혔다. 20억 원을 출판 콘텐츠 창작 지원금으로 활용하고 피해 출판사 도서 10억 원 어치를 구매하는 내용이다.)

이미 20년 전에도 송인서적이 부도난 적 있습니다. 당시 정부가 긴급자금을 투여하면서 내세운 조건이 출판 유통 현대화였습니다. 어음 결제 그만하라는 거였죠. 초반에는 출판계가 변화에 따르나 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 초 호황이 다시 찾아오고, 인터넷 서점이 들어와 도매 거래 비중이 줄어들자 다시 출판계가 어음 결제 관행에 빠졌습니다. 

출판 유통 현대화는 개별 업체가 할 일이 아닙니다. 강력한 정책 수단을 만들 수 있고, 이를 집행 가능한 공적 조직이 해야 합니다. 한국 출판계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나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이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간 안 했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개별 출판사를 위한 도서구매 지원책, 시설 지원책 정도만 낼 뿐이었죠. 

이 문제를 해결할 리더십 부재에 관해 출판계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나아가, 공적 조직인 진흥원과 문화체육관광부 관련자는 이번 사태를 책임지고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이홍 : 그간 출판계에서 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공모 때마다 출판계 전문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유통 구조 현대화를 이끌 리더십을 가지려면, 출판 산업 현실을 잘 아는 이가 원장에 취임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흥원 출범 후 2대째 원장이 나온 현재도 출판인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유통 구조 현대화 이야기가 20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통합전산망을 잘 구축하면 됩니다. 모든 책의 유통 흐름만 파악할 수 있으면 됩니다. IT 선진국이라는 한국이 여태 이런 시스템도 갖추지 못했다는 건 큰 문제입니다. 

▲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태는 정부가 국민의 사상을 어느 정도로 탄압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연합뉴스


블랙리스트, 현대판 분서갱유?

-연초 출판계를 술렁이게 한 사건은 송인서적뿐만이 아닙니다.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장이 출판계에도 번졌습니다. 유명 출판사와 작가까지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정부가 구태여 출판사까지 이렇게 적으로 보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장은수 : 출판 미디어에 관한 정부의 이해도가 얼마나 낮은 수준인가를 보여주는 사건이죠. 

출판은 기본적으로 소수 미디어입니다. 자연히 약자의 목소리, 소리를 듣기 힘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는 데 집중하죠. 출판은 다양한 자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공공의 균형을 도모합니다. 

이 다양한 목소리가 자신의 생각과 어긋난다고 정부가 출판계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부분 문인과 적잖은 출판계 관계자가 리스트에 올랐다고 봐야 하는데, 정말 화나는 일입니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가 이 블랙리스트를 토대로 특정 작가와 출판사 서적을 세종도서(옛 문화부 우수도서) 선정에서 배제했다는 사실이 특검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정부가 출판의 사상 검증에 직접 나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그간 세종도서 사업 자체를 반대해 왔습니다. 정부가 출판사 지원을 명목으로 사상 검열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 일이 이번에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정부와 진흥원이 관련 사태의 진상을 투명하게 조사해서 밝히고 철저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지요. 

이홍 : 최근 들은 세종도서 선정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얼마 전 출판사 사장들이 모여 자기 출판사가 낸 책 중 세종서적에 선정된 책 한 권당 10만 원을 술값으로 내기로 하고 술자리를 가졌다고 합니다. 기분 좋으니 많이 선정된 출판사가 술값 부담 더하자는 차원에서 보면 뭐 크게 문제될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지원 사업에 대한 인식의 문제입니다. 출판계가 사회적 목소리를 잘 내는 한편, 이런 생계형 지원 앞에서는 극도로 비굴해집니다. 정부 성향이 어떻든 지원은 받고 보자는 생각이 있습니다. 목돈 가지고 푼돈으로 찢어 지원하면서 '지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는 생색내기에 언제까지 우선은 받고 보자는 자세로 부역할 건지 진지하게 되물어야 합니다.

이번 정권 들어 세종도서 선정 사업에 블랙리스트가 영향을 미쳤음을 비판하겠다면, 블랙리스트는 그것대로 비판하면서 정부가 주는 혜택은 넙죽 받아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장은수 : 출판 전문가들은 공공도서관 도서구입비 확충을 전제로 세종서적 사업을 폐지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더 큰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정부의 지원 사업이 개별 출판사에만 돌아가고 마는 점을 고민해야 합니다. 정부가 할 일은 독자 대신 책 사주는 게 아니라, 좋은 책이 유통될 환경을 조성하는 겁니다. 
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기자가 되면 거지부터 왕까지 누구나 만난다고 들었다. 거지한테 혼나고 왕은 안 만나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