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2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최종 변론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출석을 거부했다. 정확한 이유는 내놓지 않았으나, 박 대통령 대리인단 내부에서도 박 대통령 헌재 출석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거부 방식도 희한하다. 서면을 통한 게 아니고, 유선 전화를 통해서 일요일 오후 늦게 헌재에 통보했다. 여러모로 '격'에 맞지 않는 일들, 앞뒤 안맞는 행동들이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헌재 출석 거부에는 몇가지 복선이 있다. 첫째, 박 대통령 출석이 헌재 심판이나 특검 수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만큼 박 대통령의 '대처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헌재 출석 여부 결정에 앞서, 대리인단이 박 대통령에 대한 신문을 할 것인지 여부를 헌재측에 질의한 데서 드러난다. 박 대통령에게 질문을 하면 출석하지 않을 것이고, 질문을 하지 않는다면 출석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헌재 재판관이나 국회 측 소추위원의 질문에 대처할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그간 기자회견도, 검찰 조사도, 특검 조사도 거부했다. 그리고 정규재TV와 같은 개인 인터넷 방송에 출연, 자신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표출했다.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박 대통령에 대한 신문에서 "2014년 4월 16일에 무엇을 했는지 말하라"는 질의가 제기될 수 있다. 그간 박 대통령은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세월호 관련 질문이 나올 때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굿판', '밀회설'과 같은, 언론조차 다루지 않는 루머를 끄집어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본인을 '가짜 뉴스'의 희생양으로 포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잔기술'은 헌재에서 통하지 않는다.
둘째, 탄핵 심판 불복을 위한 사전 포석이다. 친박계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헌재 정수인 9명이 아닌 8인 재판관 체제에서 진행되는 탄핵 심판은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8인 체제 재판 자체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법은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7명 이상이라는 말은 재판관 1~2명이 공석이 될 가능성을 미리 상정해 놓은 것이다.
원 의원의 주장은 결국 탄핵 심판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자유한국당이 "정치권은 탄핵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2월 13일, 정우택 원내대표)"는 입장에서 "8인 체재는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2월 26일, 원유철 의원)"고 뒤집은 것 역시 입길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 8인 체제 심판에도 승복해야 한다더니, 갑자기 8인 체제 심판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박 대통령이 김평우 변호사를 영입하면서 '불복'의 징후는 더욱 또렸해졌다. 김 변호사는 그간 대리인단의 입장을 뒤집고 뜬금없이 "탄핵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정세균 국회의장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물론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간 박 대통령 변호인들은 '탄핵 소추 사유'의 헛점을 파고들며 "국회의 주장은 탄핵 사유로 부족하다"는 주장에 매진해왔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이런 기조를 정면으로 뒤집고 뜬금없이 "탄핵 절차 자체가 문제"라는 논리를 제기했다. 그리고 "탄핵이 인용되면 내란이 날 것"이라고 재판부를 협박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주말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무조건 (헌재 결정에) 승복해라. 이게 조선시대입니까"라고 말하며 탄핵 심판 불복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박 대통령의 헌재 불출석도 '헌재의 탄핵 심판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헌재 불출석은 신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탄핵 심판 불복을 위한 사전 포석이 결합된 결과물로 보인다. 탄핵 반대 집회에 나선 '친박 단체'들의 태극기 시위대에 불복의 논리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해 수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친박 시위대'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제다. 끝내 '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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