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반전의 강박이 망치고 있다
한국영화, 반전의 강박이 망치고 있다
[김경욱의 데자뷔] <해빙>과 <싱글라이더>, 반전 영화의 명암
2017.03.24 10:38:57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른바 '반전영화'의 유행을 가져온 대표적인 사례로는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1995)를 들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식스 센스>(1999)가 있는데, 이 영화의 감독, M. 나이트 샤말란은 반전영화의 대가라고 할 만하다. 이 두 편의 영화는 관객을 완벽하게 속이는 '반전'의 아이디어를 통해 흥행 성공을 이끌어냈다. 아울러 영화를 보기 전 관객에게 '스포일러'를 누설하는 일이 영화감상을 망치는 해악으로 치부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그래서 개봉이 끝나기 전에는 영화평을 쓰기도 조심스럽게 됐다). 물론 기발하고 흥미진진한 '반전'의 아이디어가 흥행의 원동력이 되는 건 사실이겠지만, 한국영화의 경우, 일종의 강박증처럼 작용하는 부작용까지 있는 것 같다. 

이수연의 <해빙>과 이주영의 <싱글라이더>, 두 편을 예로 들어보자. 이 두 편의 영화는 여성 감독이 연출한 점, '중상류층 가부장의 몰락'을 소재로 한 점, 중·저예산 영화라는 점 등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해빙>은 스릴러 장르를 기반으로 반전의 아이디어를 가미한 영화이다. 강남에서 개원했다 실패한 내과의사 승훈은 경기도의 한 병원에 페이닥터로 취직한다. 그 신도시는 미제 연쇄살인사건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어느 날, 승훈은 자신이 세 들어 사는 정육식당의 정 노인의 수면내시경을 하다 살인고백을 듣게 된다. 이후, 그는 정 노인과 그의 아들 성근을 살인범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승훈 주변에 이상한 사건이 계속 벌어지다가, 그를 만나러왔던 전처가 실종 된다. 이렇게 영화의 4분의 3지점까지는 승훈이 연쇄살인범 부자에 의해 함정에 빠져 들어가면서 점점 위험이 증폭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승훈이 성근과 몸싸움을 하고, 경찰에 체포되면서 ‘반전’이 시작된다. 동일한 사건을 승훈의 주관적 관점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자, 승훈이 함정에 빠진 피해자가 아니라 연쇄살인을 저지른 가해자로 바뀌게 된다. 다시 말해서, 승훈은 병원 개원을 위해 사채를 쓰다 경영악화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사채업자를 죽이고 이혼한 아내마저 살해한 연쇄살인마였던 것이다.

여기까지 반전의 아이디어는 꽤 훌륭했다. 이를 통해, 감독이 "우리 사회의 몰락하는 중산층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늘어나는 중산층 범죄야말로 우리 사회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했다. 계층 간 이동이 힘들고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전만큼 살지 못할까봐, 이전의 위치를 유지하지 못할까봐, 그게 불안하고 두려워서 죄를 짓는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건 가치관의 전락이다"(<씨네21> 2017/03/09)라고 했던 주제가 드러난다. 또 희생자의 머리가 들어있을 것 같은 검은 비닐봉지를 맥거핀으로 잘 활용했고, 남인수/조경환이라는 인물의 등장도 그럴듯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영화는 또 다른 반전을 제시한다. 승훈이 감시 병실에 수감된 다음, 성근의 아들이 필리핀의 엄마를 찾아가는 불필요한 장면이 나오고 연결되는 장면은 정씨 부자가 연쇄살인범이며 승훈이 진짜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끝난다. 감독이 주연배우에게 어떤 주문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희생자에서 가해자로 여기서 다시 희생자로 바뀌는 반전에서 조진웅은 승훈의 정체성을 확정하지 못했는지 원래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애매한 연기로 일관한다.

▲ <싱글라이더> 장면


비슷한 문제를 <싱글라이더>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증권회사 지점장인 재훈은 부실채권 문제가 터지자 고객의 피해에 대한 책임감과 압박감에 시달린다. '기러기 아빠'인 그는 아내 수진과 아들이 살고 있는 호주로 떠난다. 영화의 마지막에 밝혀지는 반전은 재훈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자살을 했으며, 관객이 보았던 호주의 재훈은 유령이라는 사실이다.

감독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사는 사회적인 환경, 시스템이 결국 개인을 고립시킨다.  개인을 부추기고 경쟁시키고, 문제가 생기면 다시 재기할 수 없게 눌러버린다"(<씨네21> 2017/03/02)고 했는데, '반전'의 아이디어 너무 매몰되어 정작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많이 사라져버린 것 같다. 관객에게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데 집중하다보니, 또 반전이 드러난 다음에는 허술한 부분이 없도록 하는데 집중하다보니, 재훈이 호주에 와서 겪는 에피소드는 '수진이 이웃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지 아닌지'하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므로 재훈은 남편에게 닥친 재앙은 알지 못한 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아내와 아들을 지켜보면서, 희생자로 자리매김 한다. 그는 배신당한 남편으로서, 회한에 빠져 시종일관 슬퍼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남편이라면, 아들을 위해서라도 아내가 만나는 남자가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또 죽은 다음이라면, 자신의 인생 전체를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성찰하게 되지 않았을까? 조진웅의 경우처럼, 이병헌 역시 살아서 질투하는 남편처럼 보이게 하면서 사실은 죽은 남편의 연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이상한 점은 재훈의 눈에 비친 수진은 분명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는 남편을 포함한 가족 전체의 이민을 위해 바이올린 오디션을 본다. 그녀의 진실은 끝내 미스터리로 남겨지고, 공효진의 연기 역시 공중으로 떠 버린다.     

이 영화에는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왔다가 모은 돈을 모두 사기당하고 살해까지 당한 지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의 에피소드는 훨씬 더 풍부하게 전개되면서, 한국사회의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펼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재훈의 이야기가 아내의 바람에 머물며 깊이를 갖지 못하게 된 것처럼, 지나의 이야기 또한 반전의 아이디어에 소비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반전인지' 묻고 싶다. 심하게 말하면 영화 전체를 망치는 반전, 영화의 깊이를 가로 막는 반전을 통해 무엇을 얻은 것일까? 물론 이 문제는 전적으로 감독에게서만 비롯되는 건 아니다. 한국영화의 투자 환경에서, '반전이 있어야 재미가 있고 그래야 흥행이 된다'는 일종의 강박증이 팽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산의 규모에 관계없이 동일한 잣대로 투자가 이루어지는 환경에서는 중·저예산 영화마저 흥행공식에 매달리고 대규모 영화를 흉내 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작비의 크기만 다를 뿐 실상은 크게 다를 바 없는 영화들이 제작된다. 그렇다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같은 비용을 지출하면서 굳이 중·저예산 영화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스타가 더 많이 등장하고 카 체이스 씬 같은 액션이 풍부하게 펼쳐지는 블록버스터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한국영화의 다양성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 <라라 랜드> <너의 이름은.> <컨택트> 같은, 올해의 외국 영화 흥행작과 화제작의 경우를 보면, 블록버스터가 채우지 못하는 지점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대규모 한국영화는 킬링 타임 용 영화로 소비되고, 나머지 부분은 외국영화가 채우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영화가 모든 관객층을 다 끌어안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면, 한국영화의 미래 또한 밝지 않을 것 같은 염려 때문이다. 
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