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니치 감독이 만든 <분노>
자이니치 감독이 만든 <분노>
[김경욱의 데자뷔] 한국사회와 공통점을 발견하는 <분노>
2017.04.20 16:19:27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관객이 가장 적은 시기이기 때문인지, 대선을 코앞에 둔 정치의 계절이기 때문인지, 눈에 띄는 한국영화가 별로 없다(물론 가장 핫한 영화로 김어준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더 플랜>이 있기는 하다). 그런 가운데 자이니치(재일교포) 감독 이상일의 <분노>가 제목이 주는 강렬함으로 관심을 끌었다. 

영화는 무더운 여름, 도쿄 교외의 주택가에서 평범한 부부가 무참히 살해된 현장에서 시작한다. 형사들은 방문에 희생자의 피로 '怒(분노)'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걸 발견한다. 도입부의 잔혹하고 엽기적인 설정은 범인과 범행의 동기 그리고 글자의 의미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사건이 발생하고 1년의 시간이 흐른 뒤,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신주쿠의 게이 사우나에서 매춘을 하는 나오토, 하마사키 어촌에서 일하는 과묵한 외지 청년 다시로, 오키나와의 호시 섬에서 기거하는 다나카. 이들은 모두 과거 이력이 불분명한 미스터리한 인물들이다. 영화는 이들의 에피소드를 계속 교차편집으로 나열하고, 여기에 텔레비전을 통해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몽타주를 제시하면서, 그 가운데 누가 범인인지를 놓고 거의 마지막까지 관객들과 내기를 벌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관심은 다른 데 있다.

<악인>의 원작자인 요시다 슈이치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이야기에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이치하시 다쓰야 사건(영국인 여강사를 살해한 후, 수차례 성형을 거듭하며 2년 7개월 동안 도피 행각을 벌인 일본판 페이스오프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이 사건에서 2년 반에 걸친 범인의 도주 행보나 범행 자체보다 공개수사 후에 물밀듯이 밀려든 수많은 제보 쪽에 더 큰 관심이 쏠렸다. 길에서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정도라면 몰라도 자기와 친밀한 사람까지 의심하게 되는 '사건의 원경(遠境)'에 마음이 어수선하고 술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 바로가기 : 분노)

그러므로 영화는 진짜 범인에 대한 관심보다 친밀한 사람에 대한 믿음을 놓고 내기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오토는 도쿄의 샐러리맨 유마를 만나고 그의 집에서 동거하게 된다. 한편, 다시로는 아이코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통해 공개수배 된 범인과 가장 닮은 인물은 나오토와 다시로이다. 유마는 친구들의 집에 동일한 수법의 도둑이 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다음 나오토가 거짓말을 하자,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된다. 아이코 역시 점점 다시로를 의심하게 되어 결국 경찰에 신고를 한다.

유마의 경우에는 나오토를 성매매로 만나게 되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믿지 못한다. 또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나오토의 존재마저 부정하게 된다. 그는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 못한다"는 말을 했지만, 결국 자신이 편견에 빠져 나오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코의 경우에는 자신이 성매매를 했던 트라우마가 장애가 된다. 아버지 요헤이는 그런 딸을 평범한 남자가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에서 다시로를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에피소드에도 편견에 따른 의심이 문제가 된다. 

나오토와 다시로의 에피소드가 '믿음(의 복원)'을 주제로 하고 있다면, 공개수배 된 범인과 가장 닮지 않았지만 결국 범인으로 밝혀지는 다나카(본명은 야마가미)의 에피소드는 그 뒷면을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계속 범인과 범행의 동기에 대해 궁금하게 하면서도 끝내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대신 추측하게 만든다.

사건 당일 날, 다나카는 일터인 공사현장을 찾아 헤매다 파견회사에 확인 전화를 한다. 담당자는 "저번 주 현장이었다"며 사과도 없이 비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낯선 장소에서 길을 잃은 다나카는 더위에 지쳐 어느 집 앞에 망연자실하게 앉아있게 된다. 그 때 집으로 돌아온 주인여자는 그에게 차가운 음료수를 건네는데, 그 결과 살해당한다. 다나카는 '남을 무시하고 냉소하는 재미로 사는 인간'이며, 그의 행동에서 분노조절장애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왜 그의 분노는 자신을 비웃은 공사현장 담당자가 아니라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여자로 향했을까? 타인에 대한 냉소를 통해 소소하게 분노를 표출하며 우월감을 느꼈던 그는 그녀의 친절에서 자신이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실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다나카는 호시 섬에 은신하던 중에 놀러온 고등학교 이즈미와 타츠야를 알게 된다. 이즈미와 타츠야는 다나카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세 사람은 번화가인 나하에 놀러 가는데, 이즈미가 미군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다나카와 타츠야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 광경을 숨어서 보고만 있는다. 이즈미를 걱정하며 자책하는 듯했던 다나카가 그 사건을 냉소의 대상으로 치부하자, 타츠야는 '믿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다'면서 그를 살해한다. 이 분노에는 배신감뿐만 아니라 강간을 막지 못한 자신의 죄책감이 더해진 것 같다. 그런데 이즈미의 입장에서 보면, 믿었던 두 남자에게서 완전히 배신당한 셈이 된다. 그녀의 분노는 바닷가에서 절규하는 모습으로 표출된다(그녀의 모습은 노(怒)라는 한자를 형상화한 것 같다(사진1). 이와 대조되는 장면은 다시로와 다시 만나 신뢰를 회복한 아이코의 모습이다(사진2). 유마는 나오토의 죽음과 그의 진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사진3).)

▲ 사진 1.


▲ 사진 2.


▲ 사진 3.


위의 인터뷰에서 요시다 슈이치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 것처럼, <분노>는 보편적인 현대인의 믿음과 사랑, 배신과 분노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다른 많은 소재들 가운데 특히 오키나와라는 공간의 설정과 그곳에서 미군들에 의해 자행되는 강간의 문제, 이에 대한 이즈미의 대처방식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무언가 일본사회의 증후 같은 느낌을 준다. 

이즈미는 "경찰에 신고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면서, "아무리 울고 화를 내도 아무도 몰라준다. 싸울 자신도 없고 그렇게 해도 변하는 건 없다"고 말한다. 집안에서 강간사건을 인지한 주민은 그저 창문의 커튼을 닫아버린다. 아이코도 비슷한 말을 한다. "그 숍(성매매 장소)에서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울어도 소용없었다." 또 타츠야는 아버지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에 관련된 반대시위를 하는 걸 싫어하면서,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게 있을까?"라며 냉소한다.

여기에는 사회전반의 적폐가 쌓이면서 그것이 개인의 사적인 피해와 분노로 표출되는 일본사회에 대한 절망이 엿보인다. 아마도 지난해에 보았다면,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서 많은 공통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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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