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천만원짜리 기차표, 우리의 장밋빛 미래인가?
일본의 천만원짜리 기차표, 우리의 장밋빛 미래인가?
[기고] <중앙>의 왜곡된 '민영화 신화'…순진하거나 무지하거나
일본의 천만원짜리 기차표, 우리의 장밋빛 미래인가?
지난 15일 <중앙>에 도쿄 특파원 발 일본 철도 관련 기사가 실렸다. '일본철도 독점해체 30년, 연 2조엔 적자에서 1조엔 흑자로 돌아섰다'는 기사였다. 기자의 이름을 딴 '제대로 읽는 재팬'이란 코너였다. 아쉽지만 코너 제목처럼 일본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한국과 일본 철도의 기본적인 차이점도 이해하지 못한 채 작성된 기사로 보여 일본 철도에 대해 몇 가지 말하고자 한다. 

독자들에게도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특파원 같은 직함을 가진 사람은 현지 사정에 정통하고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도 깊은 상태에서 기사를 작성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처럼 한국 국토부가 지속적으로 선전한 '독점 폐해'의 프레임으로 일본 철도를 보면 잘못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중앙>의 도쿄발 기사는 우에노역서 출발하는 초호화 침대열차에 대한 찬양에서 시작된다. 도호쿠(東北)지방·홋카이도(北海道)를 3박 4일간 운행하는 10량 편성에 34명 정원의 관광열차 '트레인 스위트 시키시마(四季島)’'가 33명의 승객을 싣고 5월 1일 첫 운행을 했으며 9월까지 325편의 열차 예약 경쟁률이 22대 1 이었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호화 특급 열차는 일본의 관광 인프라와 철도 인프라가 결합되어 나타난 것으로 일본철도의 독점체제 해체와는 관련이 없다. 

3박 4일의 여행에 2인 1실 기준 95만엔(950만 원), 최고 115만엔(1150만 원)을 지불할 수 있는 열차의 성공은 철도의 나라 일본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만든 것이다. 

한국에도 전국투어 고급 관광열차가 있다. 코레일의 자회사 코레일 관광개발이 운영하는 해랑이라고 불리는 열차다. 특수제작 된 관광전용열차로 열차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2박 3일간 전국을 도는데 2인 기준 244만 원에서 290만 원의 비용이 든다. 그러나 일본과 달리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과연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전망도 불투명하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의 열악한 관광 인프라와 철도 노선의 한계 때문이다. 초호화 열차를 타고 가서 정선에서 레일바이크 체험을 하거나 경주 불국사를 구경하는 식의 프로그램으로는 이용객이 모일 리가 없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290만원으로 2박 3일간 철도 전국일주를 하느니 유럽여행을 가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법 하다. 

필자는 지난 11일 저녁 퇴근시간 우에노역 호화 침대 열차가 출발하는 승강장에 직접 가봤다. 침대열차 탑승자 대기실은 공항의 1등석 승객 라운지만큼 멋지게 꾸며놓았다. 전용 승강장 입구는 귀족들이 성문을 통과하는 기분이 들 것 같이 럭셔리한 인테리어로 치장해 놨다. 선로 하나를 사이에 둔 옆 통근 열차 승강장에는 하루의 일과를 마친 후 피로에 젖어 퇴근길을 서두르는 회사원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경제대국 일본이라도 퇴근길 서민들에게는 승강장의 간극보다 더 큰 간극이 호화특급열차와 통근열차 사이에 존재했다. 

▲ 초호화 열차 시키시마호가 출발하는 우에노역 승강장 입구. ⓒ박흥수


기본 사실부터 틀린 기사…일본 철도, 지역 독점 체제

<중앙>의 기자는 일본국유철도(JNR)의 거대 독점체제가 1987년 민영화를 계기로 JR 7개사로 전환되면서 흑자경영의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고 말한다. 이어서 강성노조의 파업이 사라지고 경영혁신이 이루어지면서 대규모 부동산 개발과 역사의 상업시설화로 흑자를 낸 철도회사들의 수완을 칭찬하고 있다. 일본 철도의 성공(?) 사례를 따르기만 하면 한국철도도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을까?  

일단 사실관계부터 바로 잡자면 일본 국유철도의 민영화가 독점체제를 해체한 것이 아니다. 6개 회사로 분리된 여객회사는 관할 구역을 나누어서 지역독점체제를 구축했다. 일본은 3개의 큰 섬과 혼슈라 불리는 하나의 큰 섬으로 나뉘어 있는데 3개의 섬에 각각 하나씩 철도회사를 두고 혼슈(본섬)도 3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철도회사를 두었다. 경쟁이란 '선택을 통한 배제'를 기본 원리로 하고 있는데, 일본은 이런 원리가 작용할 수 없는 구조다. 북쪽의 홋카이도 철도 이용객은 JR홋카이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고 남쪽의 규슈에서는 JR규슈 철도를 이용해야 한다. 본섬에서도 JR동해나 JR동일본, JR서일본 역시 각각의 관할 지역에서 철도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철도가 과다인력과 적자위기에 몰린 것은 역사적으로 두 시기였다. 하나는 1945년 태평양전쟁의 패전으로 아시아 각 지역에 있다가 귀국한 철도 종사자들을 일본 국철이 수용하면서였다, 두 번째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신간센 고속열차를 운영하면서 건설적자가 쌓이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도로 교통의 확산으로 철도 수송 증가율이 침체하는 시기와도 맞물렸다.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철도보유국에 닥친 운명이었다. 

철도적자는 모든 정부의 심각한 골칫덩어리였지만 일본 우익 정치권에서 보면 또 다른 측면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철도에 있었다. 바로 일본 진보세력을 대변했던 사회당의 주축 세력이 국유철도노조였다. 일본 철도 민영화는 구조개편을 통한 적자 탈피라는 과제와 진보세력의 일소라는 정치적 목적이 함께 관철된 정책이었다. 일본국철 민영화 이후 일본은 잘 알다시피 자민당 장기집권과 우경화 드라이브가 거세게 일어났고 그 결과물이 헌법 9조 평화 조항 폐기와 전쟁불사를 외치는 오늘 날의 아베 정권이다. 

왜곡된 '민영화 신화'…순진하거나 무지하거나 

일본철도가 민영화 이후 효율화 되었다는 것도 왜곡된 신화다. 국철 민영화를 위한 총비용은 장기부채 25조엔과 퇴직연금 부담액 5조엔 등을 포함하여 37.2조엔이 산출되었다. 이중 신간센 보유기구가 2.5조엔, 청산사업단이 25.6조엔을 인수하고 경영불안정이 예상되는 섬3개사에 대한 1.3조엔의 경영안정기금이 지원되었다. 

결국 29.4조엔(294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정부가 책임지면서 민영화가 이루어졌다. 22조가 소요되었다는 4대강 사업을 13번 하고도 남을 돈이다. 2010년 대한민국 정부 예산이 292조였다. 일본 국철 민영화가 1987년 단행되었으니 30년 전인 당시의 화폐가치로 따지면 일본철도 민영화비용은 훨씬 큰 금액이다. 결국 일본 철도는 민영화해서 효율화된 것이 아니라 효율화 시킨 뒤 민영화 과정을 겪은 것이다.

9일부터 일본철도 차량제작 현장을 동행한 JR동일본철도 노동조합 중앙집행위원이자 업무담당부장인 카즈노리 후카이시(深石和則) 씨는 일본철도 민영화는 노조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공격, 철도 부채의 해소 과정 속에서 진행된 것으로 노조의 양보와 전체 국민의 부담을 바탕으로 진행된 것임을 당시의 경험자로서 담담히 증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R3개 섬 회사와 JR화물철도 회사는 적자를 면치 못하였고 고속열차 신간센이 연결된 후에야 JR규슈가 흑자로 전환 되었다. 

그나마 일본 철도가 민영화 이후 본섬 JR3사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대도시 광역권과 수익이 보장되는 고속철도 노선 운영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앙일보 기자가 언급했듯 적자 지방선이 대폭 폐선 되었다. 수익성을 우선하는 민영기업이 적자노선을 감당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지방의 몰락이 가속화됐다. 한국철도도 적자노선의 운행을 대폭 줄이거나 폐선하고 돈 되는 고속열차만 운행한다면 빛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기자는 이와 같은 미래를 원하는 것인가? 

일본철도가 성장하는데 더 중요하게 작용한 요인은 시설과 운영이 통합된 상하통합형이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철도의 경우 시설과 운영이 분리되다 보니 기관간의 중복 기능에 따른 비효율은 물론 사업 분야에 대한 다툼, 선로사용료를 둘러싼 갈등과 잡음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독점을 해체하고 경쟁을 도입하면 일본처럼 철도가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순진하거나 무지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 도쿄역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고속열차 신간센, 도쿄역의 하루 이용객은 100만이 넘는다. ⓒ박흥수


도쿄역 이용자 100만…항공모함 보고와서 투덜

한 가지 더 부연하자면 6개로 나뉜 JR여객회사 중 하나인 JR동일본의 영업키로는 약 7000킬로미터이다. 3700여 킬로미터 정도에 불과한 한국철도 전체 영업 킬로미터의 두 배에 이른다. 일본의 전체 철도망은 사철까지 포함해 27000킬로미터에 이른다. 항공모함을 보고 와서는 배안에 은행도 있고 탁구장도 있고 편의점도 있고 병원도 있는데 왜 해안경비대 배안에는 약국조차 없냐며 투덜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자는 일본철도가 부동산 개발과 역사 상업화 등 부대수익으로 큰 수익을 얻는 다고도 한다. 민영화된 일본철도의 경영마인드가 출중함에 비해 한국철도의 무능이 대비되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철도는 부동산 개발에 나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시설은 철도시설공단의 소유로 운영회사인 한국철도공사가 수익사업 개발에 나설 수가 없다. 기존 건물에 시설공단의 사용허가를 받아 철도공사가 운영을 하더라도 약간의 용도 변경이나 업종 변화에도 당장 소송이 붙는다. 

또한 한국의 현실에서 철도 회사가 부동산 개발에 나서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은 실패에 따른 대가만 더 크게 할 수 있다. 파산한 용산 개발 사업이 잘 보여준다. 인구절벽시대의 도래와 구매력 감소가 지속되는 한국 사회다. 일본철도 인프라와는 체급이 다른 한국철도가 부동산 개발에 나서는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다. 역사 상업화 등 부대사업 또한 마찬가지 이다. 

도쿄 우에노 역은 늘 인파로 북적인다. 최고의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신주쿠 역은 하루 400만이라는 세계 1위의 열차 승하차 기록을 갖고 있다. 저녁 퇴근길 JR 신주쿠 역사에 서면 사람들의 파도가 물결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배후 인프라에서 상업시설 임대사업은 JR의 중요한 수익창구가 될 수 있다. 하루 착발 열차가 4000편에 달하는 도쿄역 이용자도 100만이 넘는다. 이케부크로, 시부야, 우에노 등 수백만이 늘 붐비는 역사에서의 부대사업은 철도를 매개로 하는 확장된 사업 분야의 하나이다. 

반면 한국에서 제일 붐빈다고 하는 서울역의 유동인구는 2016년 기준 지하철 1, 4호선과 공항철도 승하차인원 17만1000명에 서울역 하루 승하차인원은 9만3700여명에 불과하다. 전국 제1의 역이 이런 사정인데 지방 역들은 말할 것도 없다. 풍부한 유동인력위에 지탱되는 일본 주요 도시 철도 역들의 현실을 외면한 채 한국도 이를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황새를 따라잡으라고 뱁새를 채찍질하는 것과 다름없다. 

세계 모든 나라의 문화와 역사는 상대성이 있다. 어느 하나의 잣대로 옭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자기중심적 가치로 상대를 제단해서는 실체에 접근할 수 없다. 근대 산업시대를 연 철도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일본 철도 차량 제작 공장 몇 군데를 실사하기 위해 도카이도(東海道)선의 양대 도시인 오사카에서 도쿄를 거쳐 서해안 끝의 니가타까지 열차를 타고 이동 했다. 

이 과정에서 오사카 역 기둥에 붙어 있는 오사카-도쿄간 고속열차 신간센 할인 안내 포스터를 봤다. 기본운임 1만4010엔을 3명 이상 예약하면 할인을 해준 다는 것이었다. 서울-부산 거리보다는 약 100여 킬로미터 먼 거리이지만 한 사람이 도쿄 오사카를 왕복할 경우 2만8000엔, 우리 돈으로 28만원에 달하는 열차요금을 내야한다. 필자가 구입한 한국-일본간 왕복 항공권 22만원 보다 비싼 요금이었다. 중앙일보 특파원이 극찬한 일본철도의 현주소다. 

그동안 철도산업은 국토부가 줄기차게 시도한 경쟁체제를 통한 효율화란 허상아래 좌표를 잃고 허덕였다. 이제 새 정권이 출범하면서 한국 사회는 개혁의 길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철도 개혁의 성공은 분리된 수서 고속철도의 재통합과 더불어 운영과 시설의 통합적 구조를 달성하느냐에 달려있다. 개혁에는 늘 반대가 따르기 마련이다. 철도민영화와 경쟁체제를 주도면밀하게 밀어붙였던 국토부와 보수언론의 세련된 협력 작전에 새 정부가 현혹당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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