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50주년을 지배한 '이명박근혜' 그림자
아세안 50주년을 지배한 '이명박근혜' 그림자
[아시아 생각] 4강 중심외교, 아세안 외교로 보완해야
아세안 50주년을 지배한 '이명박근혜' 그림자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한반도 위기에 대한 외교적 해법의 모색이다. 전통적 4강 외교와 함께 동아시아 차원의 역학관계에도 주목해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자 간 직접적인 갈등을 회피하며 북핵 문제에 있어 공조를 모색하는 양상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이를 전략적 협상 도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29일에 필리핀에서 개최된 아세안 정상회의는 설립 50주년을 자축하고 공동체를 향한 협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실제 정상회담을 지배한 이슈는 남중국해 문제와 한반도 문제였다.


▲ 아세안지역포럼(AFR)는 6자 회담이 중단된 현재 북한이 참여한 유일한 다자체 기구다. ⓒasean.org


전통적 중립성 탈피한 아세안의 변화에 주목해야 


남중국해를 둘러싼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중국 등 당사국 간 분쟁의 평화적 해결 모색은 아세안의 오랜 과제이다.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통해 남중국해 분쟁의 당사국을 자처하는 과정에서 필리핀과 베트남의 중국과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지난해 7월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인공섬 건설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며 필리핀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했다. 그러나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등장은 이전 정권이 일관되게 추진한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한 중국견제 전략의 변화를 가져왔다. 두테르테는 인권 문제와 관련 미국과 각을 세웠으며 친 중국 행보를 보이며 투자 등의 실익을 챙기고 있다.

올해 의장국이 필리핀임을 고려할 때 이번 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아세안은 유화된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아세안 의장국은 정상회의 의제 설정과 최종 의장성명서의 도출에 있어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번 의장성명서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묘사나 비난의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두테르테는 의장 성명서 발표 이후 필리핀 내 정박 중이던 중국 군함을 방문했다. 그러나 아세안 회원국 간 이해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의견 도출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미국의 일정정도의 용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된다. 

 
남중국해 사안과는 달리 한반도 위기와 관련 북한에 대한 비판에는 바로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하루 전에 열린 아세안외무장관회의는 별도의 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심대한 우려(grave concerns)'를 표명했는데 이는 정상회의 의장성명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정상회의에서는 한반도 긴장 심화가 북한의 행위에서 비롯되었음 명시했다. 그간 아세안 관련회의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특정 상황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한반도 차원의 평화적 노력을 희망하는 수준에서 입장을 표명해왔던 것에 비해 이번 아세안의 입장은 북한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동남아 현지 전문가들은 북한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1991년 남북한 유엔가입 이전에 남북의 치열한 외교적 각축장이었다. 아세안 설립 이후로는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 중국, 일본, 호주, 인도, EU 등 주요 국가들을 대화상대국으로 만들어 협상력을 높였다. 한국은 전두환 정권하에서 대화상대국 관계를 추진하였는데 이는 정권의 정통성을 보완하고 대북 압박의 수단으로 삼으려했다.


1981년 아세안 5개국 순방은 이러한 전략에서 추진되었다. 당시 관련 외교문서들은 타 대화상대국에 비해 경제력이 미약한 한국이 북한 견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이에 정치적 부담을 느낀 아세안 국가들이 사실상 한국의 대화관계 수립 제안을 거절하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당시 대화상대국 관계 개설에 실패한 한국 외교부는 자체적으로 '아세안의 푸대접 사례'란 제목의 내부 공문으로 아세안에 서운함을 성토한 바 있다. 이후 냉전해체와 한국의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한-아세안 대화관계가 수립될 수 있었다. 아세안이 정치적 민감성에 대해 집단적으로 중립성을 유지하는 기조에 대한 한국정부의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명박 정부가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추진한 대북견제 외교의 실패는 대표적 사례이다.

북한도 아세안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며 공들여왔다. 전통적으로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등이 있다. 2000년부터 ARF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아세안과 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을 체결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북한의 총 무역액 중 동남아시아의 교역비중은 약 10%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전통적 우호 국가들의 지지를 기대하며 아세안과 대화상대국 관계 설립을 제안했으며 2016년 리수용 현 북한외무성 장관은 아세안 5개국을 방문했다.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에 앞서 아세안의장국에 보낸 서한을 통해 북한은 작금의 한반도 상황이 전쟁직전의 상황임을 알리고 긴장해소를 위한 아세안국가의 협조를 요청했다.

아세안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의 변화는 미중간 갈등의 사이에서 헤징전략의 도구로 한반도 사안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위협과 더불어 실리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세안은 미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하는 상황이다. 남중국해 문제는 이러한 아세안의 딜레마를 상징하는 것으로 최근 수년간 아세안 회원국 간 이견이 확대됨에 따라 아세안정치안보공동체의 실현에 있어서도 심각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대북공조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필리핀의 국내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로 아세안은 나름의 명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5월 4일 아세안 외무장관과 회동한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아세안 국가들에 북한과의 관계를 ' 최소화'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지금 당장 미국의 이해가 남중국해보다 북한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를 위해 아세안을 활용하여 동아시아적 포위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도이다. 아세안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며 북한을 비판하며 미국과 중국의 이해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아세안의 이러한 변화는 몇 가지 점에서 문제적이다. 우선적으로 아세안이 강조하는 중심적 역할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주요 강대국을 포함하며 동아시아 협력을 주도해온 아세안은 중립원칙을 지키며 강대국의 영향력에서부터 자유를 추구했다. 이는 섣불리 균형자(balancer)역할을 자처하지 않았고 기계적 중립을 고집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갈등 당사국의 민감한 사안을 다루지 않고 지속적 신뢰구축의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강대국들로부터 고른 구애를 받아왔다. 


이번 조치는 아세안이 강대국의 이해를 수용하며 스스로 균형 잡고자 했던 관행을 훼손했다. 둘째, 한반도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단호한 입장과 더불어 대화의 채널을 회복할 필요성이 있다. 6자회담이 중단된 상태에서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다자체인 ARF는 정치적 부담 없이 당장의 활용이 가능한 대화채널이다. 이번 입장변화는 전통적 의장국의 중립원칙과 상충된다.

이러한 아세안의 입장변화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북한 고립을 추구한 아세안외교가 영향을 미쳤음도 부정할 수 없다.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한반도위기 해결을 우리가 주도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위한 다양한 대화채널을 사전에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4강 외교뿐만 아니라 아세안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이다.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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