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떠나보내는 애도가 시작됐다
노무현을 떠나보내는 애도가 시작됐다
[김경욱의 데자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그리고 <노무현입니다>
2017.06.01 08:08:53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2016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날에 개봉했다. <노무현입니다>는 2017년 5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한 날에서 이틀 뒤에 개봉했다. 우연인지 의도인지 알 수 없지만,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의미심장한 날에 개봉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대한민국이 완전히 바뀌었다. 

단적인 예로 두 영화의 개봉상황의 차이를 들 수 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군소영화사인 모멘텀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을 했고, 전국 66개 스크린에서 개봉을 했다. 반면, 이창재 감독의 인터뷰(<씨네21> 2017/05/15)에 따르면, '<노무현입니다>는 처음 기획하던 당시에는 투자자를 구할 길이 없었던 영화'였고,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할 때까지 'M프로젝트'라는 가제를 달고 있었는데, CGV아트하우스가 배급을 했고 전국 774개 스크린에서 개봉을 했다. 여기에는 두 영화의 질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그것이 11배 이상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두 영화의 개봉 사이에, '박정희의 시대'가 가고 '노무현의 시대'가 왔다. 포스터에서도 그 차이가 확연하다(포스터1과 2 참고).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라는 카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 대신 초상화를 사용했다. 그리고 여기에 꿈의 실현을 기원하는 풍등을 더했다. <노무현입니다>는 '4번의 낙선, 지지율 2%의 만년 꼴찌, 대선후보 1위가 되다'는 카피에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썼다. 꿈이 현실이 된 듯, 그림이 사진이 되고 우울해 보이던 표정이 크게 웃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 포스터 2.


두 편의 영화에서, 먼저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정치인, 노 전 대통령과 백무현 씨를 다루었다. 만화가 백무현 씨가 <만화 노무현>을 출판했고,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여수에서 출마했으나 노 전 대통령처럼 낙선했다는 점 말고는 두 사람 사이의 공통점은 별로 없어 보인다. 비교하면서 구성할 내용이 많지 않다보니,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가 삼분의 이 이상을 넘는 불균형이 초래되었다. 백무현 씨의 이야기는 사족이 되어 버리고 만 셈이다. 여기에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기획 자체에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깊은 울림을 준다. 노 전 대통령 묘지 클로즈업으로 시작한 카메라가 풍등처럼 점점 위로 올라가면서 마침내 봉하마을 전체를 조망한다. 여기에 '지난 600년 동안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다 죽임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이제 불의에 맞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자'는 내용의 그 유명한 노 전 대통령의 연설이 울려 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역시 기득권에 저항하다 결국 비극을 맞이한 장본인이 되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있으나 한 줄기 희망처럼 언뜻언뜻 햇살이 비친다. 이 이미지와 사운드의 몽타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가면서 남겨 놓은 메시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영화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한 구절로 시작한다. 

"최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구절의 콘셉트에 더 적절한 영화는 <노무현입니다>이다. 이 영화는 2002년, 1~2%의 지지율에 불과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가 되는 과정과 그와 가장 가까웠던 인물들이 그를 회상하는 인터뷰 장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최고의 시간과 그의 사후, 최악의 시간을 대비하는 구성이다. 다시 말해서, 관객이 어느 한 지역의 경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승리하는 장면을 보고 기뻐하려고 하면, 바로 그의 죽음을 상기하는 인터뷰가 등장하는 식이다. 장면은 다이내믹한 경선과정을 통해 재미를 주고(정치인 노무현), 인터뷰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와 함께 감동과 슬픔을 자아내는 것이다(인간 노무현). 

이러한 일종의 충돌몽타주의 절정은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장면 다음, 리무진에서 영구차의 매치커트로 장례식 장면이 연결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관객들은 롤러코스터처럼 희망에서 절망으로 추락하는 듯한 충격에 빠진다. 이 때 관객들은 지금까지 차마하기 어려웠던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 잘못이었던 것일까?' 여기에 노 전 대통령이 혼자 길에서 유권자들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외면당하는 마지막 장면이 더해진다. 그러면 그를 외롭게 방치하면서 결국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더욱 증폭된다. 이 영화의 편집 순서를 뒤바꾼다면, 그 정서적 효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러므로 이 영화의 전략은 관객층이 협소한 다큐멘터리가 대중적으로 소구하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이후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완전히 생략한 채, 두 장면을 연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여기서 진짜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는 생략되고 남은 자들의 죄책감만 남겨졌다. 이러한 여러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제 시간에 도착했기에 갖게 된 의미에 주목하고 싶다.

이 영화는 노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마주한 인터뷰이들 또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일화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글썽거리며 때로는 눈물 때문에 인터뷰를 중단하면서 이야기를 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감추려고 눈은 울고 있는데 억지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 시간과 정서를 다시 보는 것이 너무 싫고 괴로워서 애써서 안 보려 한다. 노무현을 역사 속 한 인물로서만 자꾸 보려고 한다. 내 인생 속에서 그를 보면 나는 정서적으로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힘이 든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인터뷰에서처럼,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우리를 그렇게 힘들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죄책감이다. 죄책감이 너무 심하면 고인과 정서적으로 연관된 사건을 회상하거나 진술할 수 없고, 슬퍼하지도 못한다. 애도작업은 진전되지 못한 채, 트라우마도 치유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인터뷰이들은 고인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하고, 관객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한다. 올해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유족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울 수 있다는 건 애도작업의 하나이자, 치유의 시작이다. 

"떠나보내려 한다고 해서 떠나보내지는 게 아니에요. 떠나보낼 때가 되면 저절로 떠나가는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도가 어느 정도 마감되는 건 사회가 바로 잡혀질 때, 그 애도의 기간이 종료 되리라고 봐요."

유시민 작가의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 비로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우리들의 애도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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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