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옆집 티벳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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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현장] 느긋했던 그의 보폭이 더 느려졌다
2017.06.08 1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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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집 티베트 아저씨가 또 실직했다. 그래서일까 세상에서 가장 느긋했던 그의 보폭이 더 느려졌다. 뙤약볕 아래에서 그는 걷는 것이 아니라 걷는 폼으로 멈추어 있는 것 같다. 그는 왜 세계의 지붕인 자기의 조국에서 내려왔을까. 왜 여기 이 바닥까지 왔을까. 히말라야의 시리도록 푸른 공기가 그의 폐부를 상하게 했을까. 그는 조금만 걸어도 숨을 헐떡인다. 이 바닥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늦게 만나 결혼한 그의 부인은 말없이 미소 짓지만, 나는 그 웃음의 쓸쓸한 배후가 안쓰럽다. 이제 여덟 살 난, 그래서 늘 즐거운 그의 딸만이 히말라야 제비처럼 이 집의 혈관을 겨우 돌린다. 생계 앞에서 적막해진 한 가계가 더 할 수 없이 적막해지면 어떻게 하나. 우리 옆집 티베트 아저씨의 작고 낡은 승용차는 오늘도 뙤약볕 아래 움직일 줄 모른다. 

시작 노트

이곳에 사는 우리는 더러 홍진(紅塵)을 털기 위해 히말라야에 오르고, 그곳의 가난한 사람은 돈 벌어 이곳에 오니, 장자(莊子)의 붕새(鵬)가 무슨 소용인가. 각자 구하는 것이 달라도 얻을 것을 얻지 못하니, 남쪽 바다로 날아간 붕새는 무엇을 찾았을까. 세계의 지붕에서 세계의 바닥으로 내려온 우리 옆집 티베트 아저씨는 밤새 날갯짓하며 한 평 방이나 건너갈 수 있었을까. 생계의 납덩이가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에 나는 그가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기껏해야 밤새 자판을 두드리던 나는 어느 시냇물이나 지나왔을까. 꿈속에서 장자의 물고기를 보았다. 곤(鯤)이라는 이름의 물고기는 몇 천리나 되는 제 몸을 뻗은 채 “고작 여기 있는 거야?”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나는 이 바닥을 떠나지 않았으니 혐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옆집 티베트 아저씨에게 “고작 온 게 여기에요?”라고 묻지 않는다. 그에게 천국이었을 여기가 나에게는 지옥이니까. 지옥의 진실을 그가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그에게 묻지 않는다. 먼 길을 내려온 자는 말이 없다. 그는 적막이 직업인 사람처럼 점점 입을 다문다. 그는 다시 세상의 지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kakiru@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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