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게임을 만들다가 갑자기 죽었다
그는, 게임을 만들다가 갑자기 죽었다
[과로死회] ③ '크런치 모드' 압살당하는 게임업계 청춘들

발암시간

얼마전 넷마블에서 게임 개발자가 연이어 돌연사했다. 과로사로 추정된다. 해당 업체는 "돌연사를 과로와 연관지을 근거가 없다"고 못 박지만, 과로사 추정이 유별날 게 없을 정도로 게임업계의 장시간 노동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장시간 노동이 새로운 게 아님에도 '지금' 갑작스럽게 개발자들이 쓰러진 이유는 뭘까? 우리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오래된 관행에 새로운 위험 요인들이 덧대어지면서 발생한 사고라고 유추할 수 있다. 개발 환경의 변화가 노동자의 건강 문제로 어떻게 연결되고 외화되는지 짚어봐야 하는 대목이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잇단 사망 사고를 예외들이 우연히 겹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연적인 예외라고 하더라도 노동자의 죽음 자체가 그 조직·환경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상징적 징표임을 감안할 때, 더욱이 망자의 연령대가 20~30대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또한 사망 사고가 여러 번 반복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잇따른 노동자들의 죽음과 조직의 구조적 문제 간의 연관성을 추적해봄은 지극히 상식이다.

통상적인 사망률에 비추어 보아도 우연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나 큰 사건이라는 지적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순환계통질환(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에 의한 20~30대의 사망률이 십만 명당 10명 미만인 것에 비추어 볼 때, 위 사망 사건의 사망률은 십만 명당 60명을 훌쩍 넘는 높은 수치이기 때문이다

크런치 모드에 압살당하다

'크런치 모드'라는 말이 있다. 업계 은어로 출시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길게는 수개월 동안 야근+밤샘을 반복(해야)하는 일 패턴을 말한다. 발암물질처럼 암을 유발하는 시간, '발암시간'이 있다면 한두 달씩 야근+밤샘을 반복하는 크런치 모드 같은 업무패턴일 것이다. 업계에서는 야근+밤샘 노동으로 악명 높은 업체를 구로의 등대, 판교의 등대라고 꼬집는데, 인터뷰에서 "우리'도' 등대"라는 구술은 게임업계에 야근+밤샘 노동이 얼마나 관행화되어 있는지를 말해준다.

게임 노동자들은 드라마에 나올법한 장시간+연속 노동(야근에 밤샘의 반복)을 '당연한 일상'처럼 무덤덤하게 표현한다. 기괴한 정도의 장시간 노동에 대해 특이한 모습이 아닌 일상적인 풍경이라며 무덤덤히 내놓은 답변 또한 장시간 노동의 일상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게임 노동자들은 '발암시간'에 항시 노출되어 왔다.

그렇지만 게임업계에서 장시간 노동은 '당연한 것' 또는 일종의 '감내 과정'으로 여겨지곤 했다. 개발자들은 "예전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예술혼"과 "헝그리 정신"을 불태웠다고 구술한다. 일종의 장인 노동 같은 인고의 과정처럼. 한두 달 동안 2~3일씩 밤샘을 안 해 봤으면 "아직 개발자 되려면 멀었다"고 농을 건네기도 한다. 여기서 긴 시간 노동은 '어쩔 수 없음'이라는 필연의 논리도 아니요, 억압 기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지금보다 개발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었고 개발 프로세스상의 자율성이 높았으며 근저에는 성공 신화가 넓게 깔렸었기에 장시간 노동이라는 문제는 문제화의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새로운 위험들이 덧대졌다

그런데 최근 개발 환경이 급변했다. 주력 플랫폼이 변화하면서 개발 과정도 달라지고 개발자의 태도나 상태도 변했다. 이러한 가운데 장시간 노동의 '가혹함'은 그 정도를 더해 가면서 게임 노동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감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 오랜 관행에 '새로운 위험들'이 덧대어지면서 죽음의 행렬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물론 이런 감내의 한계치가 법적 기준을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됐다.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주력 플랫폼이 변화하면서 달라진 지점들을 보면, 개발 주기가 상당히 짧아졌다. 유행 속도도 빨라졌다. 라이브 단계도 짧아졌다. 그만큼 노동자에게 부담으로 여겨지는 크런치 모드의 빈도가 잦아졌다. 업데이트 주기도 이전보다 짧아졌다. 예전엔 이벤트가 계절마다 한 번씩이었지만, 지금은 언제나 이벤트 기간이라고 말할 정도다.

한편, 시장 변화, 유행 변화,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빨라져 개발 프로세스 또한 변화를 모색해야 함에도 여전히 중앙 통제식 프로세스가 고수되고 있다.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시장·유행·기술의 변화를 흡수하는 방식이 아닌 기존의 중앙 통제식 관리가 계속되는 실정이다. 또한 개발의 가속화로 개발자의 '부품화' 경향이 높아졌다. 대박 신화도 희미해지고 있다. 더욱 잦아진 야근+밤샘 노동에 대한 보상도 '포괄임금제'란 이유로 전무한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개발사와 퍼블리셔 간의 관계가 불공정하게 흐를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출시하려면 퍼블리셔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소작농화'되었다는 표현은 게임 시장 내 개발사의 위치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게임 개발 환경의 변화


게임업계의 관행적인 장시간 노동에 '잦아진 크런치 모드', '무리한 일정', '치열한 경쟁', '위험의 전가', '부품화',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 등 온라인에서 모바일로의 플랫폼 변화와 함께 야기된 새로운 위험 요소들이 덧대어지면서 장시간 노동의 폭력성은 더욱 커졌다. 게임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부담+스트레스의 결이 이전과 달라진 지점이다.

신자유주의적 과로사


턱밑까지 차오른 장시간 노동의 관행에 새로운 위험 요인들이 일종의 방아쇠처럼 작용하면서 과로사 위험을 격발시키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형태의 과로사(발전주의적 과로사)와는 다른 '신자유주의적 과로사'라고 이름 지을 수 있다. 과로 자살도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물론 죽음을 유발하는 수많은 복잡성을 고려하면 그 원인을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 장시간 노동+새로운 위험에 따른 죽음의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현상으로 분류해 면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혹자의 말대로 이 같은 형국에서 "제3, 제4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 개발자들의 죽음은 우연히 발생한 예외가 아니라 이러한 구조적 위험들에 노출되면서 발생한 필연적 비극으로, 개발자 모두의 현실, 게임업계 전체의 실태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죽음이 개발자들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과로로 인한 이름 모를 수많은 죽음들'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마크 저커버그도 페이스북을 한국의 개발 현실에서는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농담 섞인 반사실적 가정은 폭력적인 장시간 노동과 창조적 혁신이 양립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가)과로사예방센터'와 무료노동신고센터의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naeor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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