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때리기' 편승한 청와대의 자기부정
'문정인 때리기' 편승한 청와대의 자기부정
국내 정치 논란에 북핵 정책 전환 포기했나?
2017.06.19 18:10:24
'문정인 때리기' 편승한 청와대의 자기부정
"문정인 특보의 개인 의견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 국방부 문상균 대변인이 입을 맞춘 듯 19일 똑같은 입장을 내놨다.

보수언론과 야당으로부터 융단 폭격을 받고 있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이른바 '워싱턴 발언'에 청와대와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일제히 선을 그은 것이다.

오는 29일~30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 특보' 직함을 가진 그가 미국의 심기를 건드려 한미 관계에 파열음을 냈다는 게 일부 언론과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비판하는 요지다. 이들은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면 한·미 군사훈련과 미군의 전략 자산 전개를 축소할 수 있다"고 한 문 특보의 발언이 북한이나 중국 입장에 경사돼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 특보의 이 같은 입장은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선 새로운 얘기가 전혀 아니다. 앞서 문 특보는 5월 20일자 <중앙일보> 칼럼에서 "'핵·미사일 개발 동결'을 협상의 입구로 삼고 '핵 폐기'를 그 출구로 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역시 대북 정책에서 변화 흐름을 지속적으로 보여왔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실패로 규정하며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여러 차례 공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홍석현 대미 특사단과 만나 자신의 대북 정책으로 '최고의 압박과 관여'를 표방하며 "현재는 압박과 제재 단계에 있지만 어떤 조건이 되면 관여 정책으로 평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북한이 모든 핵 프로세스와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때까지는 아니다." 

북한이 신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한 국제 사회의 압박을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앞두고 나온 헤일리 대사의 이 발언은 즉각적인 관심을 끌었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핵 폐기, 즉 비핵화에 관한 우선적 조치를 취해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꿔 핵-미사일 실험 중단, 즉 동결을 전제로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진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들도 당시 헤일리 대사의 발언을 일제히 보도했다. 대부분의 보도 방향은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접근법이 변화하고 있다는 쪽에 맞춰졌다. 일거에 북한 핵을 폐기시킬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핵 동결론이 힘을 얻고 있다는 미국 외교가의 분위기도 소상하게 전했다. 

헤일리 대사의 발언은 문정인 특보가 언급한 '단계적 비핵화 프로세스'와 사실상 다를 게 없다. 나아가 적지 않은 언론들이 헤일리 대사의 발언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정부 간의 북핵 접근법의 간극이 더욱 좁혀졌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덧붙이기도 했다.

내용상 차이가 없는 헤일리 대사와 문정인 특보의 발언을 보도한 언론들의 태도가 이처럼 상반된 까닭은 제재 일변도로 내달려온 박근혜-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새 정부에서 전환되는 조짐이 보이자 그 자체를 불온시하는 시각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 문정인 특보 ⓒ프레시안(최형락)


익명을 요청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가 이야기 한 북핵 해결 방안과 다르지 않는데 왜 이 발언이 문제가 되나. 한미 엇박자라는 기사까지 나오는 걸 보면서 경악했다"고 했다. 그는 문정인 특보의 워싱턴 발언을 꼬투리 잡은 언론 보도들을 "국내정치적인 목적"이라고 단언하며 이 같이 말했다.

문정인 특보의 발언에 새 정부 외교안보 라인이 총동원돼 진화하고 해명한 점도 오히려 문재인 정부 북핵 정책의 기조가 후퇴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학자로서의 개인 의견"이라는 선 긋기를 넘어 "한미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이라고 '문정인 때리기'에 편승했다. 책임 있는 고위 관계자를 통해 문정인 특보에게 경고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언급했던 북핵 접근법을 자기부정한 모양새가 됐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북한의 핵 동결이 충분히 검증된다면 거기에 상응해서 우리도 한미 간의 군사훈련을 조정하거나 축소하는 등 상응하는 조치를 단계별로 취해질 수 있을 것"이라며 "북미 관계가 정상화돼 여러 제재 조치에서 벗어나고 또 평화협정을 통해 북한 체제를 보장받는다면 핵에 지출한 비용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북한이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정인 특보의 워싱턴 발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발언이다.

결국 청와대의 '문정인 발언 부정'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내 정치적 논란에 대한 진화 차원을 넘어 향후 북핵 문제에서 문재인 정부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외교적 발목을 잡게 될 자충수를 뒀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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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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