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의 '국민안식년제'를 다시 생각한다
안희정의 '국민안식년제'를 다시 생각한다
[민미연 포럼] 노동의 쉼표 안식년, ‘고용보험’으로 보장을!
안희정의 '국민안식년제'를 다시 생각한다

19대 대통령선거 경선이 한참이던 지난 3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경선 후보인 안희정 충남지사의 공약 발표가 큰 사회적 파급을 미쳤다. 바로 10년 근속한 직장인에게 안식년을 부여하는 '전국민 안식제'였다.

안희정 지사는 "과로 시대에서 쉼표 있는 시대로 바꾸자"며 '삶이 있는 일자리'를 위한 전 국민 안식제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2~3년 임금 동결"과 "임금 동결 재정 감축분으로 신규채용 및 비정규직 지원"을 하며, 안식년제 도입은 "공무원, 공공부문부터 시작해 주요 재벌기업을 거쳐 민간기업으로 확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비록 안희정 지사는 대선경선에서 탈락했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으나, 안 지사가 주장한 '안식년제'의 도입은 과로노동사회를 바꿀 소중한 대안이었으며, 현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로 반영되길 희망한다.

▲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3월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민 안식제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안희정식 안식년제는 제도 실현 과정에 있어 여러 한계점을 갖고 있다.

일단 순서가 잘못됐다. '사회적 피로도가 위험 수준'인 당사자는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안 지사의 안식년제는 공공 부문부터 도입하기 시작, 10대 재벌, 상호출자제한 그룹군, 금융기관 순으로 확대한다고 했다. 이렇게 될 경우 급여나 고용안정성이 압도적으로 좋은 노동계층부터 먼저 수혜를 입는다.

둘째, 임금동결 수준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안 지사가 임금동결로 제시한 사례는 1,000인 사업장, 평균연봉 6000만 원인 직장이다. 우리나라는 중위임금이 월 200만 원 남짓이고 평균연봉은 약 3200만 원 수준이다. 일단 절대다수 직장인이 몰려있는 중소기업은 임금수준이 낮은데, '동결' 운운하는 건 정말 웃긴 일이다. 예를 들어 10인 정도 되는 소기업의 평균임금이 넉넉하게 월 300만 원이라 한다면 3.5%의 임금인상분 2년을 동결해봤자 만들 수 있는 돈은 월 210만 원이다. 210만 원으로 안식년 예산은커녕 신규채용도 버겁다.

셋째, "좋은 건 공공부문부터"라는 잘못된 관점이다. 안식년이라는 발상 자체는 동의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 "좋은 건 공무원부터"라는 폐습이 또 반복됐다. 주5일제 도입이 십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약 60%에 달하는 노동자가 주5일 근무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안식년이 도입되더라도 중소영세사업장까지 확장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지 모른다. 


이는 "공무원의 처우를 좋게 만들면 이게 전체 민간기업에 확산된다", "재벌이 잘되면 낙수효과가 발생해 중소기업이 좋아진다"처럼 허구이다. 사실 경제구조에서 슈퍼갑인 공공부문 임금이 오르면 자기들 인건비 부담 증가로 각종 용역비만 깎이고 이 비용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수많은 용역수행, 납품업체들의 채산성은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넷째, 중소기업 평균근속연수는 2.4년! 안 지사는 10년 근속 시 1년 안식년을 얘기했다. 물론 5년에 6개월 등 유연성을 두고 도입한다지만 기본적으로 안희정식 국민안식제는 한 직장에서의 '장기근속'이 전제이다. 알바천국이 10인 이상 중소·중견기업 29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5 중소, 중견기업 채용계획 및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중견기업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2.4년이라고 한다. 10인 이하 사업장에만도 수백만이 근무하니 이들을 포함하면 더 짧아질 것이다. 부산광역시 공무원 퇴직자 평균근속연수 30.5년이란 통계에서 보여주듯 공공부문/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 간 근속연수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렇듯 안 지사의 발상은 철저히 안정적인 직장인과 공무원 등 상위 정규직 노동자의 시각에 맞추고 있다. 앞에 제시한 사례(1000인 기업체, 연봉 6000만 원)나 '공무원부터 한다'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 말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안식년 부여 기준은 자발적이건 비자발적이건 '이직'이 일상인 상황에서 특정 직장 소속과 상관없이 해당 노동자의 '노동기간'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첫째, 안식년 부여 여부는 '고용보험 가입 10년' 등 직장이 아닌 노동기간을 기준으로 잡아야 한다.


둘째, 공무원도 '안식년'을 누리고 싶다면 고용보험에 가입해 같이 혜택을 받는 방식으로 해야한다

셋째, 저임금과 불안정에 '피로도'가 가장 심한 중소기업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부터 시작해야 한다.

넷째, 고용이 불안정한 분들을 위해 고용보험 10년 이상 가입자 중 '자발적, 비자발적 여부와 상관없이, 최소 1년 이상, 구직활동 의무규정 없는 더 많은 실업급여액'을 보장하는 '구직급여 특례제도'를 신설해야 한다.

일명 '구직급여 특례제도'가 도입된다면 짧은 단위로 계속 직장을 옮기던 분들도 10년을 채웠을 때 1년 정도 여유를 갖고 비록 실업 상태지만 국가가 보장하는 안식년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한 고용보험 예산 확대는 필수다. 총 노동기간을 중심에 둔 안식년제 도입을 계기로 지나치게 낮은 우리나라 고용보험 예산을 늘려야 한다.

최근 OECD 통계를 살펴보면 GDP 대비 실업급여 예산이 벨기에 3.6%, 스페인 3.5%, 덴마크 2.2%인 반면 한국은 0.3%에 불과하다. 실업자 중 1년 이상 실직상태인 비율이 벨기에 48.3%, 덴마크 24.4%, 스페인 41.6%이지만 한국은 0.4%다. 이렇듯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회사를 떠나면 기를 쓰고 바로 재취업한다. 단지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세계적으로 부지런해서? 한국의 직장인은 회사의 노동조건이 너무 좋지 않거나, 망하거나, 기타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두더라도 여유를 갖고 미래를 준비할 최소한의 보장이 전무하다. 스스로 사표 쓴 이에겐 단 한 푼의 실업급여도 허용하지 않는다.

고용보험 강화는 안식년 도입 문제를 떠나 노동자와 구직자에게 '열악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특히나 노동조합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한국에서 든든한 고용보험은 곧 '노동자&구직자의 협상력'이며, '블랙기업'을 퇴출시킬 유력한 방안이다.

이를 위해 고용보험료율 인상, 공무원 등의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 등을 과감히 추진하길 희망한다. 단적으로 현재 고용보험 의무가입이 아닌 공무원, 교사, 사립학교 교직원, 직업군인 등이 고용보험에 가입한다면 연간 1조 8000억 원이 넘는 보험료 추가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들은 임금수준이 높고 고용이 안정되어 있어 고용보험 강화에 큰 도움이 된다.

'안희정의 국민안식제' 기본 정신은 한국사회의 잘못된 노동 현실을 바꾸는데 소중한 제안이다. 그러나 각종 노동조건의 향상과 삶의 질을 높이는 많은 제도들이 당초 의도와 다르게 '좋은 직장'에 다니는 이들만 혜택을 입고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육아휴직 3년이나 산전산후급여 임금 100% 보장, 육아기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 등 모성보호 제도들도 '공무원'에게 적용된 지 긴 시간이 흘렀지만 제도의 혜택은 여전히 '공무원'에만 멈춰있다. 이렇듯 "좋은 건 공무원부터"라는 관료집단과 정치권의 인식 역시 흔히 말하는 '적폐'이지 않을까?

고용보험 가입기간을 바탕으로 한 안식년제 도입은 '쉼표가 있는 노동'을 다수의 노동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안식년제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되길 희망하며, 노동계 차원에서도 '고용보험 강화'를 노동의 핵심과제로 제시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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