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단지 '응원부대'가 아니다
국민은 단지 '응원부대'가 아니다
[기고] 새 정부 성공의 열쇠는…
국민은 단지 '응원부대'가 아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우리 주변의 많은 것이 바뀌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국회를 비롯해 언론, 경찰 등 전반적으로 요지부동 전혀 바뀔 기미가 없다. 도대체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는 무엇일까? 무엇부터 바뀌어야 실타래처럼 엉킨 이 난국을 풀어낼 수 있는가? 깊은 성찰과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제 시작일 뿐

최근에 개최됐던 서울시민 미세먼지 대토론회나 '광화문1번가' 등 시민 제안의 형식은 바람직하다. 다만 그러한 단발성 토론이나 온라인상의 제안 수용 등의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며, 반드시 제도화돼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철저히 결여돼 있다. 모든 정치 과정에서 시민들은 지속적이고 제도적으로 배제된다. '양손잡이 민주주의' 이론으로 유명한 필립 슈미터 교수는 "한국의 사례는 정치세력들이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타협한 결과다"라고 단언한다.

시민의 의사는 오로지, 6월 항쟁 당시 그 무덥던 여름 최루탄과 경찰폭력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거리에 나서거나, 아니면 지난겨울 혹한의 광화문광장에 몇 달 동안을 계속 모이도록 만든 것처럼 가장 시민들을 힘들게 하는 집회나 데모라는 형식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러고도 군중이 해산한 뒤 별다른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굴종이냐 궐기냐의 선택만 강요된다.

비유하자면, 박정희-박근혜 왕조체제를 지역에 토대를 둔 지역귀족(사실은 지역토호가 더욱 정확한 용어다)들이 연합해 간신히 몰아낸 형국이다. 루소는 정부의 형태를 군주정과 귀족정 그리고 민주정을 구분했는데, 우리는 아직 민주정에 도달하지 못한 귀족정의 단계일 뿐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부터 만들어나가야 한다.

국민에게 권력을 넘겨라. 그리고 제도화하라

신고리 5,6기 원전공사의 중단 여부가 시민배심원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소식은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좋은 뉴스다. 이러한 방식으로 시민들의 참여와 주체적인 정책결정이 이뤄지는 것이 곧 민주주의다. 다만 이러한 뉴스가 더 이상 '일회성' 뉴스로 끝나지 않도록 반드시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법률로 뒷받침됨으로써 제도화돼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국회를 비롯해 감사원, 대법원, 정당 등등 국가의 공공 시스템과 기관 중 자기의 명칭에 부합하는 위상을 지니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상호 견제와 공정한 회계감사 시스템은 거의 발견할 수 없다. 본말전도와 허장성세 그리고 곡학아세의 전시장일 뿐이다. 직업공무원집단이 대응성(responsiveness)을 지니지 못하고 시민사회의 요청에 민감하지 못하면 특권집단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관료집단이 특권화하면 관료집단 내부에 그 특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발호해 파당과 분열이 발생하고 국민을 경시하는 등 민주주의 이념에 반하는 경향이 출현하게 된다. 지난 정권에서 한 고위관료의 "개돼지 발언"은 결코 우연히 나온 말이 아니다. 우리 한국이 나라다운 나라가 되지 못하는 매우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사회에서 '공정'과 '정의'를 구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헬조선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더욱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왜곡된 그 독점적 권한을 끝까지 행사하고, 그것을 월권 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 구조에서 엄청난 기득권(그것은 대개 사대주의와도 연결돼 있다)을 차지하는 재벌과 거대정당, 국회, 대법원, 검찰을 비롯해 국정원, 명문대학 출신, TK 등 우리 사회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기득권 집단은 한 치의 양보는커녕 오히려 기득권을 극단적으로 강화시키고 그 권한을 남용해왔다. 부(富)만이 아니라 학력과 직업까지 세습되는 이러한 객관 조건 하에서 전체 사회가 그야말로 적나라한 약육강식의 '만인 대 만인'의 살벌한, 그러나 승패는 이미 정해진 전쟁이 전개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가 을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으로 명령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사회"가 된다. 오늘의 '헬조선'은 이렇게 해 이룩됐다.

세계 역사상 지속적으로 동족을 노비로 삼아온 사례는 우리 역사에서 두드러진다. 세계 역사상 노비는 대체로 침략과 정복에 의한 이민족으로 충원됐다. 유사한 역사 전통을 지닌 중국도 송나라 시대에 노비제는 기본적으로 폐지됐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외국에 대한 정복과 침략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민족을 노비로 삼을 기회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동족을 가장 비인간적인 형태인 노비로 삼아온 것은 우리 전통의 지극히 부정적인 측면이고, 이러한 극단적 차별의 좋지 않은 관행이 존재해왔다는 점에 반드시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헬조선'이라 칭해지는 오늘의 극단적 현상에 이러한 토양이 작동되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리해 우리 사회의 전진과 공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득권층의 반성과 양보가 그 필수불가결의 전제다. 사회가 극단적으로 양극화돼 빈곤층이 확대되면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지고 기득권층 본인을 비롯한 가족들 역시 범죄의 직접적인 표적물로 될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공존'과 '사회복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주권주의의 실현이 민주주의의 요체이며, 새 정부 성공의 열쇠다

촛불시민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이뤄진 새 정부는 정말 성공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땅에 '보수'도 아닌,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고 망국적인 세력의 집권과 같은 어이없는 참사와 비극이 또다시 재연(再演)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


새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국민에게 지금보다 훨씬 많은 권력을 넘겨야 한다. 헌법이 천명한 바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주의야말로 민주주의의 요체이며, 새 정부 성공의 열쇠다. 국민이 단지 응원부대나 박수부대로 치부돼서는 결코 안 된다.

재벌이나 기득권층에만 독점되는 이익이 국민에게 공정하게 균점될 수 있는 공정 경제가 이뤄져야 하고, 동시에 국가 권력의 주인으로서 국민주권주의가 실현돼야 한다. 국가 주요정책 결정에 국민들이 보다 많이 참여해야 하고, 정부와 국회 등 국가운영 주체의 선출과 담임에도 보다 많이 참여하고 개입해야 한다. 그리고 환경문제 등 자신의 주변 문제 역시 국민들이 참여하고 결정하는 제도가 보장돼야 한다. 국민주권주의와 국민의 자치권이 효율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 본연의 임무다. 이것이 민주주의이며, 이야말로 시대착오적 반민주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방어력이다.

이렇게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를 실현시켜내고 그 민주주의와 국민에 의존하는 것, 이것이 새 정부 성공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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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1970년대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으며, 1998년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2004년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회도서관 중국담당 해외자료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중국사인물열전>(2018), <광주백서>(2018), <대한민국 민주주의처방전>(2015) , <사마천 사기 56>(2016)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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