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의 목숨보다 택배가 더 중요한가
집배원의 목숨보다 택배가 더 중요한가
[과로死회] 오토바이 사고에 과로사...집배노동자의 현실
언론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만 우체국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11명 사망했다고 한다. 이는 과거보다 크게 나빠진 결과이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좋았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2011년~2013년까지 3년간 우정사업본부 소속 노동자의 사망 재해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3년간 총 25명(비정규직을 포함하면 27명)이 공무상 재해로 사망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업무상 사망만인율과 비교했을 때 2배가량 높은 수치이다. 주요 사망 원인은 교통사고와 뇌심혈관계질환인 것으로 나타난다. 교통사고의 경우 사망만인율(死亡萬人率)이 전체 노동자와 비교할 때 연도별로 130배~500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뇌심혈관계질환 또한 사망만인율의 경우 연도별로 비교할 때 5배~7배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급류에 휘말리는 것과 같은 사고성 재해도 마찬가지로 30배나 높다.

어떻게 이렇듯 천문학적인 재앙이 이 노동자들에게 일어난 것일까? 그것도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꾸준히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을까? 이 참혹한 상황이 최근에 와서 더욱 퇴행하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끊이지 않는 질문을 쏟아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이 노동자들은 소위 공무원이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의 처지는 다른 노동자들보다 낫다. 일단 '철밥통'이라 불리며 고용안정을 확보하고 있고 임금 등 근로조건도 다른 중소 영세 사업장보다 나은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업무상 안전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러한 이유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여주듯이 '낙수효과'를 드러내고자 함이다. 공공부문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하고 더 나은 근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민간부문 노동시장을 견인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집배원은 예외인 것이다.

일반 노동자 집단보다 5배~7배가 높은 뇌심혈관계질환 사망만인율의 원인은 단연코 장시간 노동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집배 노동자들은 최장 15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겸배'(동료 집배원이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그 동료의 일까지 하는 행위) 노동도 일반적으로 존재해 주당 노동 시간이 법정 노동 시간의 두 배를 훌쩍 넘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끔찍한 노동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 업무가 체신업이므로 통신업에 포함되어 근로기준법 59조에 따른 노동 시간 특례업종으로 구분되어 노동 시간 상한의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복무규정' 제9조에서는 "공무원의 1주간 근무 시간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으로 하며, 토요일은 휴무(休務)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토요일에도 택배는 배달된다. 이렇듯 뒤죽박죽인 현행 법 체계가 이들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반 노동자 집단보다 130배~500배 높은 교통사고 사망만인율의 원인 또한 장시간 노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장시간 노동은 직접적으로 뇌심혈관계질환과 정신질환을 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수면장애, 집중력 저하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곡예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장시간 노동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일반 노동자 집단보다 30배나 높은 사고성 재해 사망만인율의 경우는 과도하게 엄격한 작업장 스트레스(성과주의)의 결과라고 판단된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설이 내린 날 위험을 무릅쓰고 택배나 우편물을 배달해야 하나? 노동자의 목숨보다 택배나 우편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 하게 발생한다. 하나는 사업장의 성과주의 운영시스템의 작동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시간에 일을 그만큼 하지 않으면 끝없이 쏟아지는 배달 물량이 차고 넘쳐 언젠가는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집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은 모든 사망재해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적절한 인력의 배치와 더불어 강한 규제를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집배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를 강력하게 요구하지 못했으며 더 나아가 국민들은 이런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TV에서는 농사일을 거들어주는 집배노동자, 글을 읽지 못하는 촌로에게 편지를 대신 읽어주는 따뜻한 이웃으로의 집배노동자 모습만을 담아 내보낸 것이다. 이제는 이 죽음의 행렬을 끊어내야 한다.
naeori@pressian.com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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