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있으니 우리도 핵무장?
북핵있으니 우리도 핵무장?
핵무기 준비 단계, 전략적 선택 필요하다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다섯 차례 핵실험을 한 북한 김정은 정권이 계속해서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자 보수층을 중심으로 우리도 핵무장을 하자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를 자처하는 자유한국당은 핵무장이 당장 어려우면 전술핵이라도 다시 도입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를 당론으로 채택하겠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한국에 '핵 의병당'(核義兵黨)이 하나 탄생되는 셈이다.

게다가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이제는 미국 서부지역까지 도달할 수 있을만큼의 사거리를 확보한 것으로 보여 미국의 대북한 위협 인식 또한 높아졌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역시 그 위협에서 나온 자위적 조치의 일환이라는 것이 워싱턴의 주장이다.

국제사회도 북한 제재에 적극적이다. 유엔안보리는 북한 '화성-14'형 발사 실험에 역대 최고로 평가받는 대북 제재 결의안 2371호를 만장일치로 신속하게 채택했다. 중국이 제재 결의안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이행하느냐에 따라 제재의 성패가 갈리겠지만 북한으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부담이 되는 또 하나의 제재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인가는 물음에 절대 다수의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2016년 9월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실험을 하고 핵무기를 탑재할 미사일 개발도 향상되고 있는 마당에 김정은 정권이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런 선례도 없다.

북한은 지상과 해상을 오가면서 미사일 시험발사를 간헐적으로 시도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될수록 보수층을 중심으로 국내 핵무장 주장은 핵무기의 정치·군사·경제적 타당성 분석과는 별개로 탄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 지난 7월 28일 밤 북한이 발사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인 '화성-14'형 ⓒAP=연합뉴스


한국의 핵능력 현주소

일반적으로 핵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핵연료 주기와 이를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어디까지 확보했느냐에 따라 달리 평가된다.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핵연료 주기 기술은 크게 재처리와 농축으로 나눈다.

재처리 공법은 원자로를 가동하면서 남게 되는 사용후핵연료를 통해 재처리 시설(공장)에서 무기급 핵연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고농축은 우라늄-235의 함유량을 무기급으로 높이는 것을 일컫는다.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가동 중인 원자로의 농축 정도는 2~5%인 반면에 무기급 농축 정도는 90%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한미원자력협력협정과 국제 규약 등에 따라 24기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음에도 재처리와 농축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핵무기 원료 확보 여부와 별개로, 핵무기 설계나 제조와 관련해서도 한국의 기술적 연구와 개발은 아직 초보 단계에 이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보 공유의 확대로 핵무기 제조에 대한 기술과 정보들이 이전보다 확대되어 있기는 해도 원하는 폭발력을 얻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핵무기 제조에 약 1300여 명의 기술자와 500여 명의 과학자가 필요하다는 유엔 보고서도 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6년 한국원자력연구소에는 약 천 명의 원자력 전문가들이 있었으며, 박사 학위 소지자 250명 중 56명이 '핵 과학' 분야에 관여하기도 했다. (참고로 1960년대 스웨덴 핵무기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는 350여 명이었다.)

현재 관련 연구소는 확대되었으며 그동안 서울대학교, KAIST 등 15개 대학교 원자력 관련 학과에서 배출한 인력도 수만 명에 이른다. 1950년대 10여 명의 원자력 공학도가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서 세미나 형태로 원자력 양성을 시작한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룬 셈이다.

한편, 핵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무기체계(전투기, 미사일 등)는 오래 전부터 확보되어 있기에 핵확산이 실제 이루어질 경우 운반체계의 장애요인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비무기급 핵분열성 물질과 무기급 핵분열성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요소 등을 확보(technical hedging)하였다고 해도 이를 실제 무기화(weaponization)로 옮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결국 북한 핵위협의 대안으로 핵무장을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공론을 국민들로부터 어떻게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핵무장과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그리고 한미원자력협력협정

국내에서 핵무장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부상한 시점은 1970년 7월 닉슨 행정부가 주한미군 7사단 철수계획을 한국 정부에 일방적으로 통고한 후였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결정을 저지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국방과학연구소와 무기개발위원회를 통하여 독자적인 군수물자 조달과 생산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당시 무기개발위원회가 만장일치로 핵무기 개발에 동의한 것으로 훗날 밝혀졌다. 이에 핵무기 개발의 일환으로 1972년 프랑스로부터 핵연료재처리 시설을 구입할 것을 논의하였으며, 주한미군 철수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어 1975년 4월 베트남이 패망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1975년 6월 12일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핵무기를 처음으로 언급하였다.

박 대통령은 미국이 전술핵을 철수할 경우 한국은 자체적인 핵능력을 개발해야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동년 6월 25일 <워싱턴 포스트>(WP)와 인터뷰에서 한국 국방과학연구소로 하여금 핵무기에 관한 연구를 수행할 것을 지시했다는 <뉴스위크>(Newsweek)지의 보도를 부인하면서도, 동시에 주한미군 철수 시 한국은 핵무기 개발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옵션을 고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북한 도발에 대한 억지책이자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양수겸장의 전술이었다.

1974년 인도 핵실험에 놀란 미국은 한국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강력한 저지 활동을 펼쳤다. 1975년 말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재처리공장을 구입하려는 한국의 계획을 취소하게끔 다각도의 압력을 행사하였으며, 그 결과 박정희 정부는 1976년 1월 구입계획을 포기하게 된다.

1976년 11월 대선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카터 행정부가 들어서자 또다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대두되었다. 1977년 5월 철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자 박 정권은 미국이 전술핵을 철수할 경우 한국은 핵확산금지 조약(NPT)에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 핵무기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핵무기에 대한 논의는 수면 아래로 사라지게 된다.

전두환 정권을 이어받은 노태우 정권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구상하게 된다. 1991년 여름과 가을 사이, 한미 양국은 하와이에서 남한 내에 배치된 전술핵 철수와 관련하여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노태우 정부 김종휘 청와대 안보수석과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국방차관 폴 월포위츠가 각각 대표로 나섰다.

이 회담의 결과로 부시 대통령은 1991년 9월 27일, 남한 내의 전술핵 철수를 공식 발표했다. 노태우 정권은 이를 이어받아 같은 해 12월 18일 '대한민국 어디에도 어떤 형태로든 핵무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핵 부재를 선언했다.

북한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핵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간 실무 대표 접촉이 크리스마스도 지난 1991년 12월 26일부터 31일까지 판문점에서 비밀리에 열렸다. 여기서 북한은 그동안 주장해 오던 비핵지대화 주장을 철회하고 우리가 마련한 비핵화 선언에 응하면서 합의에 이르게 된다.

이어서 1992년 1월 20일 남한의 정원식 총리와 북한의 연형묵 총리가 서명하고 남북고위급회담 6차 회담에서 서명한 문본을 교환하면서 2월 19일 자로 정식 발효됐다. 비핵화공동선언은 이후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핵무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족쇄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아킬레스건이 됐다.

예상대로 미국은 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협상에서 비핵화공동선언을 마치 암행어사 마패처럼 꺼내들고서 한국이 재처리와 농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냐고 압박해왔다. 한국 정부도 비핵화공동선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15년 6월에 개정된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을 또 다시 개정하지 않는 한 한국이 미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 미국산 우라늄을 자체 재처리하거나 농축할 권리를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정된 원자력협정 내용을 제대로 보았다면 현행 협정을 변경하지 않은 채 (원자력 에너지를 연료로 사용할 뿐 핵무기를 탑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핵' 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 언급은 북한 핵위협에 효과적인 헤징으로 기능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탈핵을 표방한 정책에 혼선만 더할 뿐이다.

현실적 방안 : 헤징(hedging) 능력 강화

'절대무기'(absolute weapon)로 불리는 핵무기에 대응하는 현실적 방법은 선제공격을 당하고서도 2차 공격(최소 억지력)까지 가능한 핵무기를 확보하는 일이다. 한국이 이러한 능력을 북한처럼 비밀리에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스라엘과 파키스탄에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핵무장 시도(sheltered pursuit)를 묵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예견되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공개리에 핵무장을 하겠다고 선언할 정치, 경제, 사회 환경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달리 말해, 핵무장 공론화를 통해 국내적 합의(숙의 과정)를 이끌어 낼 동력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념적 분란만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한국은 헤징(hedging : develop the option as a weapon)을 점진적으로 제고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 경로이다. 원자력 헤징은 실제 핵무기를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준비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단순히 핵무기에 관심이 있다는 의견 표명만 하고 비무기급 핵분열성 물질을 지니고 있으면 'technical(기술적) 헤징'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다 무기급 핵분열성 몰질과 핵무기에 대해 제한적이지만 이론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운반 체계까지 갖추고 있다면 'insurance(예방적) 헤징' 으로 불린다. 한국은 현재 이 정도 수준에 있다고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무기급 물질을 생산할수 있고 이론적 연구 제한도 받지 않고 국내 여론 대다수가 핵무장에 찬성하지만 실제 무기 제조 작업은 하지 않고, 핵 포기를 결코 하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선언하면 이는 'hard(강력한) 헤징'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란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지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아르헨티나(1968~90), 브라질(1953~90), 인도(1948~89), 이란(1974~현재), 리비아(1970~1981), 노르웨이(1946~62), 남아프리카공화국(1969~74), 호주(1956~73), 프랑스(1945~54), 이탈리아(1955~59), 일본(1954~현재), 루마니아(1960년대 후반~89), 대만(1967~74), 서독(1956~69), 유고슬라비아(1948~60), 이집트(1955~80), 이라크(1973~81), 이스라엘(1949~55), 파키스탄(1954~71), 스웨덴(1945~66), 스위스(1945~69) 등 많은 국가들이 택한 경로를 심층적으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동기(안보위협, 국가 위신, 국내정치 등)에 대한 연구가 다수를 이뤘다면 이에 못지않게 핵무기 기술 또는 무기화 경로에 대한 포괄적 정책연구도 중요하다.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거나 핵무기를 가지려고 했던 국가들의 경로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의 핵 위협에 상응하는 대칭적 핵무장 주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자칫 현재의 헤징 단계에서 핵무장(weaponization)으로 이어지는 도중에 예기치 않은 군사적 충돌 확률이 결코 낮지 않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위에 언급한 국가들이 종국적으로 선택한 경로까지 포함해서 비교연구가 올바르게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핵무장 좌표가 어디쯤 매겨져야 할 것인지가 합리적으로 도출될 것이다.
기사를 끝까지 읽으셨다면…

인터넷 뉴스를 소비하는 많은 이용자들 상당수가 뉴스를 생산한 매체 브랜드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뉴스 유통 방식의 탓도 있겠지만, 대동소이한 뉴스를 남발하는 매체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은 독립·대안언론의 저널리즘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저널리즘에 부합하는 기사에 한해 제안 드립니다. 이 기사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주신다면, 프레시안의 언론 노동자, 콘텐츠에 기여하는 각계 전문가의 노고에 정당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쓰겠습니다. 프레시안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언론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다른 글 보기
Today Head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