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국경의 섬
일생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국경의 섬
2017년 10월 섬학교 <가거도 2박3일 추석연휴특집>
2017.08.16 22:02:59
일생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국경의 섬

한국 최서남단의 섬. 중국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섬, 가거도. 과장이지만 그만큼 중국과 가까운 국경의 섬이란 뜻이지요. 그래서 가거도항의 이정표도 국제적입니다. 중국 435km, 필리핀 2180km, 서울 420km 등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서울보다 중국의 상해가 가깝습니다. 쾌속의 여객선으로도 목포항에서 4시간 30분이 걸리는 머나먼 뱃길이니 가기 쉽지 않은 섬이지만 일생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아름다운 섬이기도 합니다. 


10월의 섬학교(교장 강제윤, 시인·섬여행가) 제64강은 추석 연휴 기간인 10월 6(금)∽8(일)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신안 가거도(可居島)로 갑니다. 가거도에 들어서면 한국도 중국도 모두가 아득한 먼 나라일 뿐, 가거도는 또 다른 섬왕국처럼 느껴집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를 이방의 신세계. 깊어가는 가을,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우기 위해 그 먼 섬으로 떠나보지 않으시렵니까(하루 한 번뿐인 여객선이 아침 일찍 출항하는 관계로 서울 출발은 10월 5일(금) 밤 12시입니다^^).

▲이방의 먼 섬나라로 떠나온 느낌이 들게 하는 가거도항 초입ⓒ섬학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0월 답사지인 <가거도>에 대한 설명을 들어봅니다.

"애야 술배야
술배 소리로 퍼질 때
멸치야 멸치야
너는 죽고 나는 살자
애야 술배야
애야 술배야"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

자연산 신화

가거도 대리마을, 식당 주인은 자연산 미역에 대한 자랑이 한창이다. 어딜 가나 사람들의 자연산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자연산이 돈이 되고 자연산이 맛있고 건강에도 좋다는 믿음 때문이다. 사료를 먹이고 가두어 키우는 어류의 경우 자연산에 대한 선호는 근거가 있다. 하지만 미역이나 다시마, 톳 같은 해초들까지 무조건 자연산이 좋은 것은 아니다. 굴이나 홍합 등의 조개류도 그렇다. 이들은 바닷물에 포자만 담가두면 스스로 자라는 것들이다. 자연산이나 양식의 구별이 무의미하다. 실상 이들의 경우 자연산이냐 양식이냐보다는 얼마나 깨끗한 물이나 갯벌에서 자랐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해초는 해독작용이 뛰어나다. 수질 정화에도 해초는 일등 공신이다. 해초는 사람 몸의 독을 제거하는데도 유용하다. 그런 만큼 해초는 그 몸 속에 많은 독을 지니고 있다. 수질이 나쁜 해역에서 자란 해초는 자연산이든 양식이든 몸에 좋을 까닭이 없다. 청정한 바다의 해초는 양식이든 자연산이든 나쁠 까닭이 없다. 그러므로 가거도 미역이 좋은 것은 자연산이라서가 아니다. 물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환상처럼 펼쳐지는 가거도 항리마을 섬둥반도ⓒ섬학교


소흑산도가 아니라 가거도

한국 최서남단의 섬, 가거도. 쾌속의 여객선으로도 목포항에서 4시간 30분 뱃길,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136km나 떨어진 머나 먼 낙도다. 중국의 상하이와는 직선거리 435km, 서울과의 거리와 거의 같다. 그래서 가거도에서는 중국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속담이 농담처럼 전해진다. 그래서 가거도항 부근의 이정표도 국제적이다. 필리핀 2180km, 서울 420km 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섬은 일제에 의해 소흑산도라 이름 붙여졌으나 해방 이후에야 본 이름을 되찾았다. 옛 기록에는 가거도가 아니라 우이도가 소흑산도였다. 서남해의 어업 전진기지로 어부들에게는 친숙한 섬 가거도에 뭍의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다. 영화와 방송 등을 통해 소개된 뒤 방문객이 급증했다.

가거도에는 대리, 항리, 대풍마을 등 세 개의 자연부락이 있다. 가장 큰 대리마을의 대로변은 식당과 여관, 낚싯배 운항 등의 관광 수입에 기대어 산다. 앞자리를 차지한 것은 대부분 이재에 일찍 눈이 트인,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다. 뒷자리에 사는 노인들은 해초와 후박나무 껍질 등을 말려다 팔지만 수입은 크지 않다.

“우리가 오라고는 안 했지만 오늘 같은 날 멀미하고 그라면 괜히 우리가 미안하고 그거이 있드라고요.”

식당 안주인의 말씀이 따뜻하다. 오래 전부터 가거도 근해는 유명한 참조기 어장이었다. 1960년대 말 연평도나 칠산어장의 조기가 멸종된 후에도 가거도를 비롯한 흑산도 바다에서는 조기가 잡혔다. 그 시절 가거도는 또 파시로 성황을 이루었다. 여름철이면 멸치와 조기 등을 잡으러 전국에서 몰려온 수천 척의 배가 가거도와 흑산도 일대 바다를 뒤덮었다. 가거도에 어선들이 들어오면 가거도 여인들은 양동이에 물을 이고 어선에 물을 팔러 다니기도 했다. 근래에는 멸치가 잘 나지 않는다. 대신 불볼락(열기)이 많이 잡힌다. 불볼락은 배를 따서 냉동한 뒤 목포의 상회로 보낸다. 하지만 어민이 받는 가격은 보잘 것 없다. 이익은 늘 중간상의 몫이다.

▲힘은 세지만 저 싸우지 않는 초식의 소들처럼, 인간도 초식의 삶을 살면 평화로워질까


저 싸우지 않는 소들처럼

대리마을 비탈진 언덕을 넘어 항리마을까지 걷는다. 해안도로는 신안군에서 가장 높은 독실산(639m) 허리를 휘감고 비교적 곧게 뻗어 있다. 7월의 한낮, 대기권을 뚫고 쏟아져 내리는 직사광선을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황망하게 큰 바다의 청옥처럼 푸른 물빛과 나무들이다. 길 중간 중간 지칠 만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그늘을 드리워주는 구실잣밤나무 고목들, 독실산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감로수는 나그네의 오아시스다.

항리마을의 집들은 비탈에 서 있다. 길은 가파르고 갯것을 해오는 주민들도 힘에 겨워 몇 번이고 주저앉는다. 보찰을 따서 광주리에 담아오던 노인도 길가에서 잠시 쉬어간다. 거북손, 도깨비발톱이라고도 하는 보찰은 게살보다도 부드럽고 달다.

“2구는 바람이 시원해. 1구는 뜨거서 못살아요.”

노인은 유독 자기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가거도2구 항리마을. 마을 끝에서 길게 뻗어 나간 섬둥반도는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배경이 됐던 곳이다. 방목중인 소떼가 더위 피할 곳을 찾다가 바람 잘 통하는 해안가 절벽에 몰려 앉아 쉬고 있다. 햇살은 따가워도 바람이 워낙 시원하니 녀석들도 견딜 만할 것이다. 11마리. 어미 소와 송아지들 모두가 엎어져 잠이 들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다. 저 큰 덩치의 소들이 오로지 초식만으로 살아간다. 초식의 식습관이 저들의 성격을 온순하게 만들었으리라. 저 싸우지 않는 소들처럼 사람들도 핏물 뚝뚝 떨어지는 육식의 습관을 버리고 초식의 삶을 살게 된다면 지구가 좀 더 평화로워지게 될까.

“저렇게 쫄막쫄막한 데다 감재 하나씩 심어서 삶아 묵고”

가거도1구 대리마을 뒷길, 노인은 그늘에 앉아 말린 톳을 다듬고 있다. 앞길은 상가 건물들로 도회지 같다. 뒷길에는 오래된 골목길과 옛집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거기 눌러 사는 사람들은 다들 노인이다.
“여서 태어나 갖고 옛날에 나가도 못하고 주저앉아 사요. 도망갈 맘이 꿀떡 같아도 여서 걸려 논게 나가도 못하고 이렇게 사요.”
가거도는 섬 전체가 가파른 산이다. 마을은 모두 옹색한 산비탈에 자리 잡았다. 농토는 희귀하다.
“어디 밭이 있어야지. 저렇게 쫄막쫄막한 데다 감재 하나씩 심어서 삶아묵고 그랬어요. 지금은 좋아졌소.”

노인은 젊어서 남편을 잃었다. 남편은 고기잡이 나갔다가 변을 당했다.
“애들 아빠는 여기 다 오다가 빠져 죽었어요. 젊은 사람들은 헤엄처서 살았는데.”
노인은 어려서부터 잠수질을 하며 살았지만 사십 대에 그만뒀다. 가거도 방파제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노인은 쭉 공사장 인부로 살았다. 가거도 방파제 공사는 30년만에야 끝났다.
“독 틈에다 감재 심어서 캐 갖고 낮에 묵고 저녁에 묵고 배고파 못 살았소. 보리가 없으께. 언제 한 번 쌀밥 한 그릇 묵어보까 했는데 인제 쌀밥 묵고 죽겠소.”
논은 전무하고 섬에 밭도 거의 없으니 보리농사도 쉽지 않았다. 가장 많은 보리농사가 10가마를 넘지 못했다. 대부분은 고작 두세 가마. 한 가마나 닷 말 농사가 전부인 집도 흔했었다.
“할마이들은 살기가 힘들어요. 도시 모냥 청소부 같은 것도 못하고. 일거리가 있어야제.”
지금도 노인들의 삶은 팍팍하다. 해초 조금 뜯어다 말려 내는 것밖에는 달리 소득이 없다. 배를 부리거나 관광업으로 돈을 버는 것은 일부의 젊은 사람들뿐이다.

가거도는 오래전부터 밭에다 곡식 대신에 후박나무를 심었다. 후박나무 껍질이 한약재로 팔리며 소득이 좋았던 때문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중국산의 유입으로 그마저 힘들다. 노인도 후박나무 껍질을 말려 놨지만 판로가 없어 걱정이다.
“왜 그란지 모르겄소. 농협에서 싸나 비싸나 폴아주면 좋은디. 어째 요새는 안 폴아주요. 말께나 하고 똑똑한 젊은 사람들은 잘도 포는디. 우리 같은 할마니들한데는 안 사가요. 옛날이 살기는 더 좋았소. 단체심도 있고. 젊은 사람들 즈그만 살라고 눈에 삐란 불 쓰제. 이런 할마니는 안 도와주요.”
섬이든 뭍이든 농어촌은 젊은 층과 노인들 간의 빈부 격차가 가장 큰 문제다.

이즈음은 여름 휴가철이라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이 제법 많다.
“자식들은 보고 싶어도 못가고. 돈 없으께.”
노인은 여름 휴가철이 되도 오지 못하는 자녀들이 몹시 그립지만 쉽게 섬을 벗어날 수가 없다.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은 내내 그러할 것이다.
“놈의 자식들이 와도 그냥 맘이 설레요.”
올 수 없는 자식들 때문에 마음이 짠한 노인은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반갑다.
“길을 건너도 왔는데 물 한 잔 하란 말도 못하고 미안하요. 깜빡깜빡 잊고 그라께 할마니제. 젊어서는 놈더러 뭘 묵으란 말도 잘 하고 그랬는디 인자는 늘 잊어부러요.”

“신안군 흑산멘 오돈멘 아니냐
억울타 가거도 뚝 떨어졌다.
가게산 무너져 편질이나 되어라
내야 발로 걸어서 육지 한번 가보자”

사람살이가 고단해 <멸치잡이 노래> 등 유난히 노동요가 많이 전하는 섬 가거도. 노인은 톳을 손질하며 그 어렵던 시절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린다. 가거도 독실산이 무너져 바다를 메우고 평평한 길이 나면 발로 걸어 육지에 한 번 가보자. 배를 타고 목포에 가려면 꼬박 이틀씩 걸리던 시절이었다.

노인뿐이랴. 가거도 사람들의 외롭고 힘든 섬살이의 설움을 이겨내게 해준 것이 노래다. 거거도를 비롯한 서남해 섬 지방에서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나 초상날 같은 특별한 날이면 모두들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그렇게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극복했다. 그것을 ‘산다이’라 했다. 다 같이 모여서 노는 일종의 소리공동체다. 산다이란 말은 일본말에서 왔다고도 하고 전통연희인 산대(山臺)놀이의 일본식 표현이라고도 한다.

비금도의 ‘밤달애’나 진도의 ‘다시래기’도 산다이의 일종이다. 섬지방에서는 지금은 산다이가 행해지는데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사람들이 모이거나 술 한 잔 나누게 되면 산다이가 벌어진다. 민요도 하고 대중가요도 한다. 담헌 홍대용은 “정을 말로 한 것이 노래”라 했다. 섬사람들은 그렇게 노래를 부르며 정을 나누고 살아온 것이다.

“놈의 자식들이 와도 그냥 맘이 설레요.”
이 먼 섬에 살면서 노인은 서울에는 가보셨을까.
“아직 서울을 당 안 가봤소. 그래도 관광은 예닐곱 번 다녔어라. 어디어디 갔등가, 글씨를 모릉께 잘 모르겄고. 대전도 가고 제주도 가고, 부곡온천도 가고.”
노인은 뭍으로 여행을 가면 무엇이 좋을까.
“좋은 것은 뭐가 젤로 좋냐면 남이 해준 밥 묵고 놀고 그랑께 젤로 좋습디다. 맨날 천날 일만 하다가.”
노인은 경치 구경보다 평생 처음 남이 해준 밥을 먹고 일을 쉬고 놀 수 있었던 것이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이제 노인에게는 그런 생애의 휴가가 몇 번이나 더 남은 것일까.

▲가거도가 국경의 섬이란 사실을 일깨워주는 이정표ⓒ섬학교


섬학교 제64강 10월의 섬학교 <가거도>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0월5일(목)
밤 12시 서울 출발(밤 11시 5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 지하철역 6번 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섬학교> 버스(온누리여행사) 탑승바랍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64강 여는 모임

10월6일(금)
04:00 목포 도착
-목포 섬센터에서 휴식
-아침식사(목포 남도밥상)
-목포항 출발
-가거도 도착
-점심식사(가거도 섬밥상)
-가거도 첫째날 걷기(약 10km)
대리-샛갯재-섬둥반도고개마루-항리마을-망부석-항리마을-샛갯재-대리숙소
-저녁식사 겸 뒤풀이(자연산 회와 해산물)
-자유시간 및 취침(남해장. 다인실)

10월7일(토)
07:00 기상. 아침산책
-아침식사(섬밥상)
-가거도 둘째날 걷기-독실산 트레킹(약 10km)
대리-김부연하늘공원-땅재전망대-달뜬목-방공호-매바위-삼거리-독실산-샛갯재-대리마을
-점심식사(섬밥상)
-휴식, 자유시간
-대리마을 탐방
-저녁식사 겸 뒤풀이(자연산 회와 해산물)

10월8일(일)
06:00 기상. 아침산책
-아침식사(섬밥상)
-대풍리마을 차량 투어 혹은 자유탐방 택일(차량 투어시 추가 비용 발생)
-점심식사(섬밥상)
-가거도 출항
-목포 도착
17:30 서울 향발. 제64강 마무리모임
*상기 일정은 현지 사정에 의해 일부 변경될 수 있습니다.

▲10월의 섬학교 <가거도> 답사지도 Ⓒ섬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가벼운 등산복/배낭/등산화. 풀숲에선 반드시 긴 바지), 모자, 선글라스, 식수, 윈드재킷, 우비,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또는 손전등), 세면도구, 세수수건, 멀미약,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승선용 신분증을 꼭 지참하세요(지참하지 않으면 승선할 수 없습니다).

▷참가신청 하신 후 참가비를 완납하시면 참가접수가 완료되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드립니다.
▷섬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섬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강제윤 교장선생님이 쓴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섬을 걷다> <걷고 싶은 우리 섬> <어머니전> 등 섬 답사기를 참고하면 섬 여행의 의미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섬학교]

강제윤 교장선생님은 섬왕국 전라남도의 <가보고 싶은 섬>가꾸기 자문위원이며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으로, 섬들의 고유한 문화와 가치를 지키고 보존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1988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로 등단했습니다. 서남해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뭍으로 이주해 살다 성인이 된 뒤 다시 고향 섬으로 돌아가 10여 년을 살았습니다. 보길도 시절에는 하천 정비를 명목으로 보길도의 숲과 하천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막아냈고,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파괴하고 대형 댐을 건설하려는 토목세력에 맞서 33일간 단식으로 섬을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2005년 보길도를 떠난 뒤에는 한국의 모든 유인도(500여 개)를 걸어서 순례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11년째 섬들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00여 개의 섬을 걸었고 여전히 섬을 걷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섬을 걷다> <통영은 맛있다>, 한겨레에 <섬에서 만나다>를 연재했습니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은 맛있다> <어머니전> <섬을 걷다>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보길도에서 온 편지> <숨어사는 즐거움> <올레, 사랑을 만나다>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자발적 가난의 행복>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섬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우리는 모두 바다로부터 왔습니다. 지구 최초의 생명이 바다에서 잉태됐듯이 우리 또한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바다에서 생명활동을 시작합니다. 생명의 원천인 바다. 바다를 보면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 평온함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바다, 그래서 프랑스어 ‘어머니[mère]’에는 ‘바다[mer]’가 들어 있고 한자의 ‘바다[海]’에는 ‘어머니[母]’가 들어있습니다. 원초적 기억이 언어를 통해 우리의 기원을 암시해 줍니다. 어머니의 품처럼 너른 바다. 우리가 섬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실상은 바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닐는지요.

바다나 강, 호수 등의 물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를 섬이라 합니다. 한국에는 4,400여 개의 섬이 있습니다.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500여 개, 나머지는 무인도입니다. 한국은 ‘섬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섬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방송 매체 등을 통해 섬들이 소개되고 몇몇 섬들이 피서지나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섬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지만 소수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섬들은 척박함과 절해고도의 고독과 유배지, 그도 아니면 현실도피적인 낭만의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섬은 여전히 먼 곳으로만 느껴집니다. 수만 리 먼 나라들을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바로 우리 곁의 섬들을 멀게만 느끼는 것은 왜일까요. 단지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닙니다. 심리적 거리감이 더 큰 요인입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이어져온 육지 중심의 사고에 기인한 바 큽니다. 불과 이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육지 사람들은 섬사람들을 ‘섬놈’이라 부르면서 멸시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뿌리는 조선왕조의 폐쇄적인 해양정책에 잇닿아 있습니다. 본래 우리의 인식은 육지 중심의 편협한 틀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옛날 이 땅의 사람들은 바다를 이용해 세계와 소통했습니다. 세계로 향하는 통로로 기능했던 바다가 단절의 바다로 전락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입니다.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명나라의 해금(海禁)정책을 추종해 적극적인 ‘공도(空島)’정책을 폈습니다. 섬과 바다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바다와 섬은 육지보다 더욱 활력 넘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문명교류의 중심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면서 바다와 섬은 점차 잊혀지고 버림받은 공간이 됐습니다. 사람의 거주가 시작된 이후에도 섬은 유배지로 이용되면서 고립이 심화됐습니다.

해양왕국이었던 백제나 장보고의 청해진이 바다와 섬을 기반으로 세계와 소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1976년 거문도의 장촌마을 해변에서는 한(漢)나라 때의 화폐인 오수전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외딴 섬처럼 보이는 거문도가 실상은 고대부터 국제해상교류의 중간 기착지였다는 증거입니다. 지난 2000년에는 흑산도의 읍동마을에서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진 국제해양도시의 흔적들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고려시대 예성강 입구에 있던 벽란도는 개경에 출입하는 외국인들이 통관 절차를 밟던 국제무역항이었습니다.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우리는 바다와 섬을 통해 일본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 인도, 아라비아까지 소통했습니다. 이 땅이 세계를 향해 열려 있을 때 언제나 그 중심에는 바다와 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이 좁은 것은 알면서도 우리의 바다가 얼마나 넓은 줄은 잘 모릅니다. 오랫동안 좁은 땅에 갇혀 살면서 몸도 마음도, 시야도 폐쇄적으로 변해버린 까닭입니다. 섬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넓은 바다의 주인공인가를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섬에서 바라보면 대륙 또한 바다에 둘려 쌓인 큰 섬에 지나지 않습니다. 육지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충분히 크고 드넓습니다. 섬은 한없이 넓은 바다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섬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개방성과 열린 사고를 되찾기 위한 최적의 사유공간입니다. 물론 섬은 숙명적으로 외롭습니다. 하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외로움이나 슬픔마저도 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해학과 가락이 있습니다. 섬에서는 슬픔도 가락을 타면 흥이 됩니다.

오랜 세월 섬들은 제각각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곁에 있는 섬도 같은 섬은 없습니다. 하지만 외래문물의 유입으로 많은 섬들이 원형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멀지 않은 시간에 이 나라 많은 섬들이 사라질 것을 예감합니다. 이미 많은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었거나 연결되고 있습니다. 다리가 놓이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끝내는 소멸해 버릴 섬들, 섬의 풍경들. 더 늦기 전에 섬으로 가야 할 이유입니다.

몇 년째 걷기 열풍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존재’[動物]인 사람이 걷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걷기에 대한 열망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본능의 회복운동입니다. 걷기는 길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바 큽니다. 길의 본뜻은 무엇일까요. 한자 ‘길道(도)’자는 辵(착)과 首(수)로 이루어진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고(故) 신영복 선생님은 "辵(착)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이며 首(수)는 사람의 생각을 의미하니 길(道)이란 곧 사람이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이라고 풀이한 바 있습니다. 저는 그 뜻을 길이란 통로인 동시에 사유의 길이고, 사유를 통해 자신과 소통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길이란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러한 길의 정신을 구현하기에 섬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섬은 어느 곳보다 걷기 좋은 공간입니다. 아직까지 ‘섬길’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많은 걷기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섬은 부러 돈 들여 걷기 길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섬들은 그 자체로 최상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섬에서는 사람이 안심하고 걸으며 사유할 수 있습니다. 섬길을 걷는 일은 분명 이 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하는 소중한 토양이 될 것입니다. 섬으로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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