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레브의 청년정치 실험은 왜 서울에 닿지 않는가"
"자그레브의 청년정치 실험은 왜 서울에 닿지 않는가"
[유라시아 견문] '스레츠코 호밧' 인터뷰 (下)
2017.09.03 17:22:36
"자그레브의 청년정치 실험은 왜 서울에 닿지 않는가"

☞'스레츠코 호밧' 인터뷰 (上) 바로 가기 : 미국판 적폐 청산 시도는 왜 실패했나?


3. 이행과 역행

이병한 : 2012년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에 발표한 논문을 몹시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1989년 이후 이행의 결과를 '발칸의 사막화'에 빗대었죠. 한국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이 있는데요.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라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이죠. 근래에는 '헬조선'이라는 말도 한창 유행했고요. 헬조선과 '발칸 사막', 문제의식이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으로 군사독재 이후 동아시아의 1987년 체제와 공산독재 이후 동유럽의 1989년 체제를 비교해서 생각해 보게 된 계기였죠.

스레츠코 :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군사적으로는 NATO 주둔, 외교적으로는 EU 가입. 유고 해체 이래 발칸의 총체적 경험입니다. EU는 동유럽 이행의 외부자가 아니었어요. 주체였죠. 서유럽이 동유럽을 교육시키고 훈육시키고 규율해갔습니다. 때로는 벌을 주고, 때로는 상을 주면서 감독하고 관리했습니다. 그 험난한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수료하면 EU 가입이라는 졸업식이 열리는 것입니다. 끝끝내 너희들도 "유럽"(WEST)이 되었노라 선별하고 인증해 주는 것이죠. '역사의 종착지'에 마침내 도달하였노라, 선발하여 승인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에 대화와 협상은 없었습니다. 일방적인 이식이 있었을 뿐이죠. 사실상 서유럽의 신식민주의 프로젝트였어요. 그 과정에서 가장 비참한 경험을 한 곳이 발칸입니다. 서방과 소련 사이에서 독자노선을 고취했던 유고의 유산이 완전히 부정됩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반주변부로 편입되면서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는 기지가 되어버렸죠. 사회주의 시절에 양성된 고급 노동자들을 저렴하게 활용하게 되면서 중심부의 이윤 축적에 일조한 것입니다. 즉 '이행'이야말로 발칸 국가들을 '약한 국가', '실패 국가'로 만들었음에도 '이행학'을 표방하는 사회과학자들은 거듭 오진하고 오판했어요. 자유주의-자본주의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했기에 모든 나라에 동일한 진단과 처방을 내린 것입니다. 마치 1970년대 남아메리카를 신식민화하면서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가동되었던 것처럼, 1990년대 이후 유럽의 신자유주의는 동유럽을 내부 식민지로 편입시키면서 작동한 것입니다.

이병한 : 그 시점이 참 묘하죠.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됩니다. 1999년에는 마카오가 포르투갈에서 중국으로 반환되고요. 저는 이 두 이벤트를 유럽과 아시아 간 대분기가 정상화되어가는 대반전의 상징으로 접수했는데, 바로 그 시기에 유럽 내부에서 중심-주변 관계가 복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마지막 식민지를 상실한 서유럽이 구사회주의 국가들을 내부화시킴으로서 성장을 지속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후반 탈식민 물결 속에서 폐기되었던 서구의 '문명화 사업'이 가로 늦게 재가동되었다고 할까요.

스레츠코 : 담론적으로도 유사한 지점이 있습니다. 20년이 지나고 30년이 다 되어가도 여전히 '이행'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해요. 미흡하다고, 불충분하다고 하지요. 그래서 브뤼셀에서 동유럽 각 나라들의 이행 지표를 만들어서 사사건건 개입하고 간섭합니다. 마치 19세기 이래 비서구를 향하여 '서구화'가 미진하고 '문명화'가 부족하고 '근대화'가 덜 되었으며 '민주화'가 충분치 않다고 말하는 것과 유사한 논법입니다. 발칸은 서구의 '최후의 식민지'이자 '최신의 식민지'였던 셈입니다. 동유럽 편입이 없었다면 EU는 북미와 동아시아와 경합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경쟁에서 후순위로 밀려났을지도 몰라요.

이병한 : 유럽 내부의 제3세계, 라고도 하겠습니다.

스레츠코 : 실제로 제3세계형 부패도 심화되었지요. 유고인이면 누구나 누리던 무상교육과 무료의료의 혜택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기본권이 박탈되었죠. 모든 것이 돈을 주고 지불해야 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되었어요.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그 이행 과정에서 최대의 수혜를 입은 집단이 구 공산당 세력들이라는 것입니다. 유고 아래서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했던 부패한 공산당 간부들과 관료들이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민주주의의 주역'으로 변신합니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이식시키죠. 공공재를 유지하자고 해도, 부의 재분배 정책을 건의해도 모르쇠입니다. 공산주의 시절로 돌아가자는 거냐?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죠. 즉 구유고의 고위 간부들이 신유럽의 지배계급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유고의 지배층들이 가장 먼저 유고를 배신했습니다. 유고 시절이라면 국가 반역죄로 다스렸을 '국유자산 매각' 또한 '민영화'와 '구조조정'이라며 프레임을 전환시켜서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 각광받게 되거든요. 그들만이 '유고인'에서 '유럽인'으로의 이행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병한 : 역설적인 것은 유고 해체와 유럽 통합의 물결이 2008년을 기점으로 유럽 내전으로 역전된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유고 내전에서 유럽 내전으로의 '역행'이라고 할까요? 유고의 공화국들이 분리 독립해가려던 것처럼, 지금은 선거 때마다 EU 탈퇴가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유럽을 '영구 내전'(Permanent Civil War)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하셨죠? 탁견입니다.

스레츠코 : 유럽 전역에서 EU는 붕괴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난민과 테러로 신음하고 있어요. 갈수록 유럽 시가에는 경찰이 아니라 군대가 투입되고 있지요. 군사력이 상시적으로 가동되지 않으면 체제가 유지되지 않는 무장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구 내전'은 이미 유럽의 신상태, 뉴노멀이에요. 국가 간 전쟁이 없다고 해서 평시가 아닙니다. 유럽을 누비고 다니는 상층계급과 국가와 지역에 고착된 하층계급 간의 항상적인 내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EU의 해체는 필연이라고 생각한 것이 2014년이었어요. 공교롭게도 2015년부터 파리와 브뤼셀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테러가 빈발하죠. 2016년에는 기어코 브렉시트까지 발생하고요. 저는 2010년대의 EU를 1980년대의 소련 및 동유럽에 빗대어 보아야 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해요. 소비에트연방에 이어 유럽연합도 해체되고 있는 것 아닌가? 소련은 70년 지속했습니다. EU는 아직 3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병한 : 매우 흥미로운 독법입니다. 탈냉전이 아니라 영구내전이라는 관점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각과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 분은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라고 말씀하시죠. 1989년 체제가 극적으로 종언을 고하고 있는 셈입니다. '역사의 종언'의 종언이죠.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저는 비로소 '열린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이행이라고 하는 목적론적 역사 서사에서 해방되고 있는 것이죠. 다른 역사의 돌파구가 마침내 열린다고 할까요. 역시 가장 앞장서서 '열린 역사'의 출로를 탐색하고 있는 당사자이십니다.

스레츠코 : 저는 2015년 1월 그리스에서 시리자가 승리한 것이 다른 역사를 열어가는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보았습니다. 저 또한 석 달 내내 그리스 전국을 누비며 시리자 지원 연설을 하며 선거를 도왔죠. 발칸의 대반전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리자가 표방했던 대안적 체제는 만들어지지 못했어요. 이전 정부보다 더 가혹한 구조조정안을 승인하고 맙니다. 권력은 시장에 있더군요. 주권은 아테네가 아니라 브뤼셀에 있었고요. 그들이 그리스의 숨통을 쥐고 정책을 좌지우지합니다. 외부 세력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죠. EU의 속성을 절감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또한 정작 지지자들의 의사와 희망과는 다른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여실했습니다. 즉 대의 민주주의는 이미 지구촌 어느 나라에서도 작동하지 않는 신기루입니다. 일국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처럼 일국 민주주의 또한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브렉시트는 그 절망감의 표출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병한 : 그래서 이제는 국제주의 정치 운동을 하시는 거죠? 그간의 진화 과정이 참으로 흥미로워요. 자그레브 대학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는 거리정치에서 그리스의 신생좌파정당을 지원하는 현실정치로. 그리고 그 현실정치의 좌초 속에서 일국정치를 거두고 국제정치로 투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첫 산물이 DiEM 2025(The Democracy in Europe Movement 2025)이죠? 그리스의 재정부 장관이었던 야니스 바루파키스와 공동 발기인입니다. 


▲ DiEM 2025에 참가한 스레츠코 호밧과 야니스 바루파키스. ⓒ스레츠코 호밧



4. DiEM 2025

스레츠코 : EU와 IMF가 요구하는 구조조정안을 받아들였을 때, 그리스 친구들이 치프라스 총리와 시리자를 배신자로 비난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그렇게 뜨겁게 하나가 되어 다른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했던 동지들이 싸늘하게 등을 돌렸습니다. 물론 외압에 굴복하고 만 치프라스와 시리자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너무 뚜렷했어요. 그리스를 빚더미에 앉혀놓고 옭아 메고 있는 초국적 세력의 힘이 너무나 강했습니다. 시리자와 연대할 수 있는 또 다른 초국적 세력의 기반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통감했던 것이죠. 일국 사회주의는 20세기만큼이나 21세기에도 필패합니다. 그런데도 일국의 신생진보정당이 좌초했다고 하여 그 지지자들은 너무도 성급하게 원론에 입각하여 가혹한 비판을 가했어요. 그들의 낭만적 환상을 현실 정치에 투사해서 실상을 왜곡한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Ocuupy 운동, 아랍의 봄, 시리자에 대한 이른바 진보논객들의 논설을 다시 검색해보세요. 얼마나 쉽게 뜨거워졌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냉정하게 돌아섭니다. 벤야민이 꼬집었던 '좌파 멜랑꼴리'에 젖어드는 것이죠. 견고한 현실 정치에 부딪혀서 망가지고 멍들고 가는 동료들을 감싸 안아주기는커녕 더 아프게 더 매섭게 질타합니다. 그리스는 현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구성하는 200여개 국가 가운데 일국일 뿐이에요. 그 중에서도 사이즈가 크지 않은 소국입니다. 이 소국의 정권을 접수했다고 해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모순이 일소될 수는 없는 것이죠. 스페인에서 포데모스가 집권해도, 영국에서 코빈의 노동당이 집권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EU와 결별하는 브렉시트 같은 역방향의 '쇼크 독트린' 또한 해법은 아닐 것이고요. 그리스에서도 플랜 B로 그렉시트, 즉 EU 탈퇴와 유고존 이탈을 진지하게 궁리했어요. 그러나 저는 회의적입니다. 유고를 보십시오. 유고연방은 경제도 튼튼했고,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비동맹외교라는 소프트파워도 갖추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석권하는 세계화 물결에 휩쓸려버리고 말았거든요. EU 밖에서도, 유로존 외부에서도 자본주의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국제주의로, 새로운 국제주의로 물꼬를 터야 합니다. 


▲ 스레츠코 호밧과 알렉시스 치프라스. ⓒ스레츠코 호밧


이병한 : DiEM 2025의 공동 창립자가 구유고 태생 청년 활동가와 그리스의 재정부 장관 출신이라는 점은 상징하는 바 큽니다. 올 하반기로 예정된 야시스 바루파키스의 신간은 제가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책이기도 한데요. EU와 IMF, 유럽중앙은행들과 그리스 사이의 협상 과정을 날것으로 폭로하는 내용이죠. 독일이나 프랑스 등 기성의 강대국이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소국에서부터 유럽을 재구성한다고 할까요? 신발칸주의와도 무관치 않겠죠?

스레츠코 : 유럽과 아랍 사이에 발칸이 자리합니다. 아랍의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는 길에 발칸이 있습니다. 서유럽이 '민주화'를 명분으로 아랍에 전쟁을 수출하면(=나토군이 개입하면), 아랍에서 서유럽으로 난민을 수입하는 구도에요. 그 난민길이 발칸 루트인 것입니다. 대개 지중해에서 배를 타고 건너와 육지에서 기차로 갈아탑니다. 터키와 그리스,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최종적으로는 독일까지 이르는 것이죠. 2015년 한해만 발칸루트에서 실종된 어린이가 만 명을 넘는다고 해요. 어디서, 어떻게 사라졌는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굶어죽었을 수도 있고, 사창가로 팔려갈 수도 있고, 장기 판매용으로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겠죠. 그들이 죽음의 발칸루트를 따라 자그레브에 도착하면 저도 봉사활동에 나가요. 시장에 가서 제 호주머니가 허락하는 만큼의 음식 보따리를 싸들고 가죠. 그들에게 희망을, 사람의 온기를 전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NATO의 동방확대를 저지시키지 못한 원죄를 회개하는 의례이기도 하고요. NATO의 폭격이 가장 먼저 이루어진 곳이 바로 이곳 발칸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만으로는 난민 위기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악독한 이들마저 있어요. 오스트리아 국경까지 차로 태워준다고 하면서 30분 거리를 빙빙 돌고 돌아서 난민들의 쌈짓돈을 갈취해가는 택시 기사들도 있거든요. 이 또한 일국 단위에서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국경 통제를 강화한다고 해서, 난민 유입을 막는다고 해서 아랍의 전쟁이 그치는 게 아니니까요. 아랍의 열전과 유럽의 내전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주의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입니다. 난민 위기를 초래하는 지구적 우파(Global Right)와 난민 위기를 국경 봉쇄로 봉합하려는 일국적 우파(National Right)에 동시에 저항할 수 있는 지구적 좌파(Global Left)를 기획해야 합니다.

이병한 : 범발칸주의, 신발칸주의가 그 초석이다?

스레츠코 : 2011년 크로아티아에서는 석 달이 넘도록 저녁마나 시민들이 행진했습니다. 현존 체제와 기성정치 모두를 비판하는 운동이었죠. 2012년과 2013년에는 슬로베니아에서 총 봉기가 일어났어요. 우파 정권을 붕괴시키는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2013년에는 불가리아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일어납니다. 수주에 걸쳐 부패한 정치계급과 언론기업들을 성토했습니다. 루마니아에서는 2010년 이후로 상시적으로 시위가 진행 중입니다.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운동이죠. 2014년에는 보스니아에서도 총파업이 일어났어요.

이병한 : 지금 나열하신 사례가 다 본인이 참여한 것이죠? 국경을 넘나드는 전문 시위꾼입니다. (웃음)

스레츠코 : 공통점이 있습니다. 유고 시절의 '공공재'를 수호하는 투쟁이에요. 공유지였던 공원과 공유 자원이었던 강과 산과 공유재였던 전기와 철도 등 기간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거드는 것은 각지에서 평의회를 만드는 사업입니다. 시민의회를 가동시키는 것이죠. 여기서 논의하고 제기된 의제를 지자체가 수용하는 쾌거도 몇 차례 거두었습니다. 2014년 보스니아의 사례가 가장 감격적이었어요. 유고 해체 이후 가장 탈정치적이었던 보스니아에서 정치의 재활성화에 성공한 것입니다. 보스니아의 변화에 범 발칸적 연대성이 발휘된 것 또한 의미심장하고요. 민족주의를 동원하여 각국을 통치했던 엘리트들에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별 국가들로 한정되지 않는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브뤼셀에서 내리 꽂는 정책이 아니라 새로운 공론장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죠. 기성의 언론이나 정당, 노동조합, 시민단체와도 다릅니다. 그래서 정당과 노조와 NGO를 압박해가면서 대의정치를 교정해 갑니다. 시위(Protests)와 시민의회(Plenums)와 정당(Parties) 간 역동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비제도적인 운동정치와 제도권 정당정치 사이에 중간 제도로서 시민의회가 창조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병한 : DiEM 2025의 목표는요?

스레츠코 : 다른 민주주의, 다른 국제주의를 통하여 다른 유럽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제가 신국제주의를 표방할 때 명백하게 ‘유고의 후예’로서 발언하는 것입니다. 유고의 실험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목전의 EU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창조적 수단으로 더욱 심화시키고 전 유럽적 지평으로 확산시켜 보는 것이라 할까요? 2015년이 유고연방 출범 70주년이 되는 해였어요. 동시에 유고가 해체된 지 25년이 되는 시점이기도 했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원점(Year Zero)에서 탄생했던 유고로부터 현재의 유럽을 재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병한 : 2015년은 제가 유라시아 견문을 시작한 해이기도 합니다. 반둥회의 60주년을 기념한다는 속뜻도 있었고요. 티토는 반둥회의에 참석한 유일한 유럽 정상이었죠. 인도의 네루와 이집트의 나세르와 중국의 저우언라이와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트와 뜻을 모은 유일한 유럽인, '유고인'이었죠. 그런 점에서 유고는 서구는 물론 소련과도 확실히 달랐던 것 같아요. 다른 유럽과 다른 아시아가 새롭게 재회하는 유라시아의 회동이 언제나 가능할지 궁금해집니다. 그런 '다른 역사'의 장이 열리기 위해서라도 DiEM 2025이 꼭 성공했으면 하고 바라고요.

스레츠코 : 정당 없는 운동은 무력합니다. 운동 없는 정당은 실패를 반복합니다. 운동하는 정당으로, 국제주의적 정당으로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도 직접 뛰어보려고 해요. 각개 사안에서 그리스의 시리자나 폴란드의 Razem, 덴마크의 Alternative 등과 협력하는 한편으로 유럽 최초의 범유럽적 정당이 되어볼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 슬레보예 지젝과 스레츠코 호밧, 그리고 올리버 스톤. ⓒ스레츠코 호밧



이병한 : 자그레브, 뉴욕, 아테네에 이어 이제는 브뤼셀을 점령하러 가시는 거군요.(웃음) 2025년이 기대됩니다. 혹시 크로아티아 대선에 나가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지젝이 슬로베니아 대선에 출마한 것이 1990년이었죠. 너무 이른 시기였던 것 같고요. 올해 세르비아 대선에서 신유고주의 표방하는 20대 후보가 출마한 점이 무척 신선하던데? 때가 오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스레츠코 : 베오그라드 가면 항상 만나는 친구이고 동지죠. 저도 지원 유세하러 두 번 갔습니다.

이병한 : 2025년이면 그 친구는 30대, 본인은 40대가 되나요? 유고 내부의 앙숙이었던 크로아티아의 40대 기수와 세르비아의 30대 신성이 합심해서 21세기 유고를 출범시키고 그 동력으로 EU를 개조하는 2025 운동까지도 완수시키는, 그래서 '유럽인민공화국'을 만들어내는 꿈도 꾸어볼만 한데요? 유로피안 드림 2.0이라고 할까?

스레츠코 : 2025년에 꼭 다시 만나죠. 그때는 클럽으로 불러내지 않겠습니다.(웃음) 


▲ 스레츠코 호밧과 줄리안 어산지. ⓒ스레츠코 호밧


5. Reset Eurasia

마지막으로 문자를 주고받은 것은 7월 8일이다. 나는 캄차카 반도 사할린에 있었다. 언제 발칸반도에 있었던가 까무룩 해질 만큼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극동에 다다랐던 무렵이다. 그 친구는 함부르크였다. G20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고 한다. 현장 사진 몇몇도 보내주었다. "DiEM 2025" 깃발도 나부낀다. 여전히 동분서주 왕성하다. 열정적이고 정력적이다.


베오그라드에 머물며 발칸의 최신 동향을 살피면서 너무 모르던 일들이 많아서 짐짓 놀랐다. 나름 국제소식에 해밝은 편이라고 여겼다. 한때 월간지의 국제면을 기획하면서 외국 신문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읽어낼 수 있는 외국어가 점점 늘어나면서 정보 소스의 폭은 더욱 넓어졌다. 매일 두어 시간 이 나라 저 나라 언론을 서핑하며 스크랩하는 것이 주요 일과이다. 그런데 유독 발칸은 사각이었다. 대단히 흥미로운 실험이 전개 중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 솔깃할만한 움직임도 많건만 좀체 깜깜이다. 아마도 영미권 주류 언론에 거의 소개가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공론장에서 유통되는 외신이라는 것이 영미권 기사의 번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돌연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10대 경제국이자 무역대국이라고 한다. 세계와 교류하면서 이만큼 성장한 것이다. 나 역시 그 혜택을 한껏 누린다. 한국 여권만큼 여행하기 좋은 여권도 드물다. 그런데 물류는 일방적이다. 문류(文流)는 형편없다. 물자만 오고갈 뿐, 사상은 나누지 않는다. 베오그라드에서 한국 화장품을 살 수는 있어도, 자그레브의 청년정치 실험은 서울에 가닿지 못한다. 그래서 정보 생산과 유통에서 속국적 상황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아직도 독일과 프랑스, 영국 중심으로 유럽을 파악하는 것부터가 후졌다. 19세기말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답습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것도 사건과 사고 따라가기에 급급할 뿐, 맥을 잡고 졸가리를 세우지 못한다. 아는 게 힘이라고 했다. 스마트파워라고 한다. 정보와 지식 생산에서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를 독자적인 눈으로 읽는 주견을 세워야 한다. 언론의 자성을 촉구하는 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지 싶다. 국가적 과제이다.

2017년 발칸 견문에서 단연 부러웠던 대목은 신세대의 등장이다. 시대교체와 세대교체가 긴밀하게 연동되고 있다. '1989년 체제'의 주역들, 동유럽 사회주의를 허물고 '민주화'를 이끈 세대들이 물러나고 있다. 지난 25년의 '이행'에 문제의식을 품고 있는 다른 세대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그들이 기성의 '민주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새 정치'를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발칸에서 두어 달, 한국을 멀리 지켜보며 다소 의아스럽기도 했다. 촛불혁명이라는 유례없는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촛불세대의 등장은 요원하다. 촛불 이후의 주인공은 어쩐지 '그때 그 사람들'이다. 1987년 체제의 주역들, 역전의 용사들이 속속 권좌에 복귀하고 있다. 공론장에서도 1990년대의 논객들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1980년대산 사회과학과 1990년대풍 감수성으로 무장한 이들이 2017년을 접수하고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저 기라성 같은 선배들조차도 낡았다! 늙었다! 하면서 도전하는 차세대의 패기가 아쉽다. 발칸에서 만난 여러 지식인들 가운데 스레츠코를 단독 꼭지로 삼기로 최종 결정한 까닭이기도 하다.


마냥 잘 통하지만은 않았다. 아마도 5년 전, 미국에서 만났으면 궁합이 더 맞았을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진보'에 대한 강박을 덜어낸 편이다. 전통문명이나 종교에 훨씬 더 너그러워졌다. 얼핏 5년 전의 나를 보는듯한 기시감도 일었다. 체제론은 빼어난데, 문명론은 부박하다. 논리는 아쌀한데, 가슴을 울리지는 않는다. 이성은 촉발하는데, 영성을 고무시키지는 못한다. 1989년 이후의 ‘이행’사 또한 20세기 100년사, 나아가 유럽문명 1000년사에 포개어 사고하지 못한다. 나는 발칸의 분열에도 유럽의 균열에도 천 년 전 동/서 교회의 분리가, 반천 년 전 신/구 교회의 분화가, 유럽과 아랍, 유라비아의 모순에도 1500년 전 기독교와 이슬람의 분열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방향으로 질문을 던지면 대답이 영 시원치 않았다. 오히려 생뚱맞다는 표정이었다. 2025년의 다른 발칸, 다른 유럽을 전망하고 준비하기 위해서도 유럽사 재인식은 불가결한 과제라고 생각하는데, 그 친구는 크게 수긍하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타박할 것은 없겠다. 5년을 더 기다려보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발칸을 떠나기 전, 선배 노릇 좀 했다. 훈장 짓에 훈수 질을 아끼지 않았다. 신발칸주의, 신유럽주의, 신국제주의에 정작 알맹이가 부실하거나 실체가 없는 것 같다며, 동아시아의 '천하(天下)'나 이슬람의 '움마(أمة‎‎)'라는 관념을 공부해볼 것을 권했다. 대안적 EU를 구상하는데 뜻밖의 영감을 선사해줄 수도 있다며, 책도 몇 권 추천해주었다. 지구 우파를 지구 좌파로 교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좌/우 전환에 그친다. 그보다 더 심원한 수준에서 동/서 사이에, 고/금 사이에 대반전을 도모하기를 권장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연대 사업도 함께 펼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런데 석 달이 되도록 별말이 없는 걸보면 흥미가 솟지 않는 모양이다. 원체 바쁘신 몸이라.

티토가 유고의 수장에 오른 1945년, 53살 때이다. 스레츠코는 올해 '겨우' 34살이다. 20년을 내다보는 긴 호흡의 절차탁마를 당부했다. 나로서는 내심 2025년도 너무 이르다고, 조급하다고 여긴다. 부디 무르익었으면 좋겠다. 2035년, 2045년 이 친구가 도달해 있을 경지를 지켜보는 것도 큰 낙이 되지 싶다. 짧게는 동유럽의 1989년 체제와 동아시아의 1987년 체제를 '더불어' 극복해 가는데, 길게는 19세기 유럽과 아시아의 대분기 이래 200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시정하고 유라시아의 대통합을 일구는데 까지. 유로피안 드림 2.0과 아시아몽을 합류시킴으로써, '멋진 신세계'에서 '더 멋진 구세계의 환생'으로 이행하는 Reset Eurasia를-대서양과 태평양에서 유라시아로의 대반전을 함께 작당하고 모의하고 싶다.싱싱한 영건에서 채워지지 않는 해갈은 노인의 지혜에서 구했다. 폴란드의 철학자(士)이자 정치인(大夫)을 만났다. 유럽의 사대부 격이다. 사회주의/공산주의 시절과 자유주의/자본주의 시대를 30년씩 두루 겪어낸 60년 관록이 빛나는 성찰로 결실을 맺은 어르신이다. 새 정치, 청년정치만 감싸고도는 것도 편향이다. 원로의 말씀을 청해 들었다. 다음 주에 소개한다.


▲ 스레츠코 호밧. ⓒ스레츠코 호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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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동아시아 현대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논문보다는 잡문 쓰기를 좋아한다. 역사가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박은식과 신채호를 역할 모델로 삼는다. 뉴미디어에 동방 고전을 얹어 아시아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Digital-東學' 운동을 궁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