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가짜뉴스'에서 벗어났나 했더니 곧…"
"공산당 '가짜뉴스'에서 벗어났나 했더니 곧…"
[유라시아 견문] '리샤르드 레구코' 인터뷰 (上)
2017.09.09 18:36:07
"공산당 '가짜뉴스'에서 벗어났나 했더니 곧…"

1. 바르샤바의 사대부

그는 1949년생이다. 폴란드 사람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태어났다. 그 공산국가가 무너진 것이 마흔(1989)무렵이다. 돌연한 사태가 아니었다. 당사자였다. 청년시절부터 반체제 운동에 가담했다. 자유연대노조와 긴밀하다. 198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웬사가 정치적 지도자였다면, 리샤르드 레구코(Ryszard Legutko)는 사상적 지도자였다. 계절마다 자유연대노조의 지하잡지(방주, 方舟)를 발간했다. 기획자이자 편집자로서 폴란드 민주화 운동에 이바지한 것이다. 그가 논점을 잡고 논쟁을 주도하며 이론을 가다듬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정치사상 연구소를 창립한다. 연구와 교육, 출판 활동에 진력했다. 천성이 학인이다. 공부하는 사람이다. 굳이 전공을 꼽자면 고대 희랍철학이다. 그 중에서도 정치철학을 깊이 공부했다. 그리스 사상 전문가로서 폴란드에서 첫 손에 꼽힌다. 플라톤을 폴란드어로 번역한 장본인이며, 소크라테스에 대한 책도 여럿 썼다. 강단의 교수로만 그치지도 않았다. 현실에도 깊이 참여했다. 폴리스에 진출한다. 폴란드 상원 의원이 된 것이 2005년이다. 대변인을 맡아 글을 쓰고 말을 했다. 2007년에는 교육부 장관도 된다. 나라의 백년대계를 책임졌다. 폴란드에만 머물지도 않았다. 현직 유럽의회 의원이다. 지금은 바르샤바보다는 브뤼셀에 머무는 기간이 더 길다. 내가 만나 뵌 것도 브뤼셀이었다.


직책이 달라져도 천성이 변하지는 않는다. 정치의 와중에 학문을 병행했다. 세상을 다스리면서 공부를 지속하는 사대부, 경세가이다. 본인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폴란드(와 동유럽)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탐구했다. 궁리와 성찰 끝에 뜻밖의 결론에 다다른다. 40년 살았던 공산주의 사회와 30년 경험한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놀랍도록 유사하다고 했다. 현상적인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공산당 간부들과 그 체제에 부역했던 이들이 민주화 이후 신흥 지배층으로 이행한 것은 동유럽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혹자는 공산국가 시절의 행정 경험 탓이라고 했다. 체제가 달라져도 경력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혹은 공산시절에 축적해둔 자원이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동한다고 했다. 왕년의 명성으로 표를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유덕한 사람보다는 유능한 사람이, 유능한 사람보다는 유명한 사람이 더 유리했다. 구공산당원들이 자유민주주의자 혹은 사회민주주의자로 변신하여 기성의 지위를 유지한 것이다. 체제는 변했으되, 지배층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깊이 파고든다. 철학적으로, 사상적으로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한 뿌리를 공유한다고 했다. 쌍생아이고 쌍둥이라는 것이다. 양자 모두 유토피아를 지향한다. '역사의 종언'을 향해 거침없이 진군한다. 각자의 체제가 전 세계를 석권하는 영구혁명을 염원한다. 더불어 영구불멸, 영생을 소망한다. 그래서 공히 사회 전 영역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간다. 국가부터 가족까지, 정부부터 민간까지, 대/소, 상/하, 공/사를 가르지 않고 속속들이 파고든다. 총체적인 이데올로기이다. 그만큼이나 전투적이다. 어떠한 타협도 절충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단과 이반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산주의도 자유민주주의도 전체주의적이다. 열린사회가 아니라 닫힌 사회, 꽉 막힌 사회가 되어간다.

폴란드는 동유럽의 대국이다. 인구가 4000만을 헤아린다. 오래 체제 이행의 모범세례로 간주되었다. 이행학의 교본이 폴란드였다. 그런데 그는 폴란드가 공산국가에서 민주국가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좌파 전체주의에서 우파 전체주의로 이행했다는 것이다. 도발적인 주장이다. 파격적인 견해이다. 나는 몹시 솔깃했다. 자유주의만큼 근본주의적 속성이 강한 이념이 없다는 의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갈수록 민주주의가 교조화 되고 있다는 혐의가 깊어지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자유주의 근본주의', '교조적 민주주의'라는 말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따옴표를 붙이지 않고는 쉬이 내뱉기 힘든 말이었다. 매번 쓸까말까, 지울까말까 한참을 고민한다. 어디까지나 견문 중에 길어 올린 직감이고 직관이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이 분은 경험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긴히 말씀을 청해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인으로서의 경륜과 학자로서의 통찰을 통째로 빌리고 싶었다.

▲ 자유연대노조 출범 30주년 기념 포스터. (가톨릭 사제가 전면에 그려져 있다.)ⓒwikipedia


2. 반공주의와 반-반공주의

이병한 : 1989년 전후의 폴란드 및 동유럽을 성찰하면서 매우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반공주의와 반-반공주의(Anti-Anticommunism)죠. 개념 풀이부터 시작해볼까요?

레구코 : 1970년대 처음으로 서유럽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공산국가 폴란드를 벗어나서 서구사회를 관찰할 수 있었죠. 저는 당시 폴란드 정권에 몹시 비판적인 '반공주의자'였어요. 그때로서는 실현 가능한 최선으로서 서구를 모델로 삼았죠. 그런데 정작 서구에서 만난 친구들은 반공주의에 호의적이지 않더군요. 당연히 공산주의에 적대적일 것이라는 제 예상이 어긋났습니다. 도리어 공산주의에 유화적이고 동정적이었어요. 비판적인 지식인일수록 더욱 그러했습니다. 반-반공주의, 라는 말은 그때 처음 떠오른 발상입니다. 반공주의에 반대하며 자신의 폭넓은 식견과 유연한 태도를 자부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소련이나 동유럽에도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았어요. 도리어 반공주의 정책을 구사하는 자신들의 정권에 더 비판적이었죠. 그래서 1956년 헝가리와 폴란드, 1968년 체코에서 일어난 봉기에도 딱히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소련의 동유럽 관리를 암묵적으로 인정했다고 할까요? 동유럽의 '민주화' 움직임이 냉전의 안정성을 동요시킨다고도 여겼지요. 혹은 동유럽에서마저 '우파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오히려 걱정하는 듯 보였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인상 비평에 그쳤죠. 반-반공주의에 대해 더욱 깊이 사고하게 된 것은 역시나 1989년 이후입니다.

이병한 : 1989년 동유럽 민주화의 수혜를 입은 세력이 반공주의자가 아니라 반-반공주의자였다는 주장이 흥미롭습니다.

레구코 : 1980년대 서유럽에서는 NATO가 주도하는 핵발전소 건설이나 미사일 배치에 반대하여 수십만의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1989년 소련의 패권에 저항하며 일어난 동구 혁명에는 꽤나 소극적이었어요. 서구의 평화 활동가나 생태주의자들, 진보적 단체들이 거의 동참하지 않았죠. 내 일이 아니라 남 일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서구는 동구의 혁명을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경험합니다. TV 화면을 통해 지켜본 것이죠. 심지어 서베를린 사람들도 그러했어요. 동베를린 사람들이 담장을 허물고 있는 모습을 소파에서 시청했습니다. 장벽 건너편에서 환호하며 동구 혁명에 동참한 이들은 극히 소수였습니다. 헝가리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전복되고 있을 때에도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환영하는 인파는 무척 드물었습니다. 오히려 우려와 불안이 주조였다고 할까요? 다시 말해 한쪽만의 일방적인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동/서 냉전이었는데, 동쪽만 '탈냉전'으로 진입한 것입니다.

이병한 : 서쪽은 탈냉전 한 것이 아니다? 혹은 냉전적 세계관을 지속한 것이다?

레구코 : 동유럽 사람들도 곧 체감하게 됩니다. 1990년부터 서유럽 여행 붐이 일거든요. 그런데 막상 서구에 가면 반응이 석연치 않았어요. 냉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뜻뜨미지근한 반응이었죠. 남루한 행색의 동구 여행객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결코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서구의 부를 앗아가는 기생적 존재들, 혹은 노동시장의 잠재적 경쟁자라고나 할까?

이병한 : 1990년대 폴란드 문화사를 다룬 책을 보니까 폴란드인의 이미지가 지극히 남성적이더군요. 배관공과 수리공? 서유럽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안내 포스터도 '섹시한 배관공'이 주인공이었습니다. 근육질의 노동자 이미지로 국가를 선전한 것이죠. 서구의 여리여리한 교양인 남성과 대비되는 우락부락한 폴란드 남성상이랄까. 매우 독특한 젠더 정치학이 동/서 유럽에서 가동되었구나 싶었습니다.

레구코 : 1989년 동구 혁명으로 폴란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합니다. 그러면서 반-반공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해가게 되죠. 기왕의 공산주의자들이 서유럽의 반-반공주의자들과 협력하여 동유럽의 반공주의자들을 제어해 갑니다. 저와 같은 반공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로의 이행에 장애물로 간주되었어요. 왕년의 공산주의자들이 기왕의 경력과 이력을 파쇄하고 새로운 정치경제적 현실에 재빠르게 적응해갑니다. 전직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열렬한 현직 자유민주주의자들로 탈바꿈하죠. 구체제의 공범자들이 신체제의 선봉대이자 파수꾼이 되어간 것입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가 1면에 박혀 있던 신문이 하루아침에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신문으로 변모하더군요. 구공산당 세력들이 주도하는 유사-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났다고 할까요? 1917년의 별이 지고 1789년의 별이 뜬 것입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동구의 공산주의는 본디 공유하는 바가 많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닮은 구석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이 이행의 최후 승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이병한 : 서구의 반-반공주의자와 동구의 (구)공산주의자 간에 '대연정'이 이루어지면서 유럽이 통합되어간 셈인데요. 역사관부터 흡사하다고 하셨죠?

레구코 :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목표를 공유합니다. 이른바 근대화 프로젝트이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나두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공유합니다. 현존하는 세계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득하죠. 낡은 것은 새 것으로 교체시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끓어오릅니다. 소위 진보사관이죠. 역사는 진보한다. 더 나아진다. 그 증거가 바로 공산주의다. 혹은 자유민주주의다. 나아가 진보하지 못하는 국가나 문명까지도 진보시켜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타오릅니다. 왜? 역사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죠. 마르크스의 장례식에서 엥겔스가 했던 추도사가 상징적이에요. '다윈이 자연의 법칙을 발견했다면, 마르크스는 역사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기념해요. 마친 자연선택의 진화론처럼 역사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법칙의 이름으로 폭력혁명을 용인했던 것입니다. 미래로 가는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선의에 터했으니까요. 공산주의자들이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투쟁으로 역사가 진보한다고 말하는 만큼이나, 자유민주주의자들은 권위에 대한 자유의 투쟁으로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합니다. 군주와 귀족과 교회와 투쟁하는 또 다른 진보서사를 확립하죠.

이병한 : 진보적 역사관은 특정한 인간관으로 귀결된다고 하셨습니다.

레구코 : 근대인, 근대적 정신의 핵심은 인간의 자각적 활동으로 더 좋은 세상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자기 확신, 신념에 가득 찬 인간형입니다. '나는 공산주의자다.'가 만병통치였던 체제에서, '나는 민주주의자다.'가 만사형통인 체제로 이행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역설은 공산주의도 자유주의도 인간의 삶에서 정치의 역할을 감소시키겠다고 약속한다는 점입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가 그리는 미래의 삶을 상기해 보십시오. 아침에 사냥하고, 점심에 낚시하고, 저녁에 문학 비평을 하는 정치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묘사됩니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국가 철폐를 주창하죠. 최소한의 행정만 남는 정치 없는 사회를 유토피아로 제시해요. 그래서 공산주의가 무르익으면 최소 수준의 행정만 남아서 식모도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도 흡사합니다. 탈정치화된 사회, 오롯이 시장 기제로 작동하는 사회를 이상향으로 제시하죠. 


그러나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것은 만사의 정치화, 만인의 정치인화였어요. 공산당은 사생활까지 사사건건 관할했습니다. 영혼까지 규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의 머리속까지 개입하여 종교를 지우고 과학(이라는 이데올로기)을 심었습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라고 했던 자유주의의 발화도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합니다. 얼핏 개개인의 주체성을 극대화한 표현처럼 들리지만, 그 결과는 사적인 부분까지 정치가 깊이 개입하는 것으로 귀착되죠. 국가가, 법원이 사생활 전반을 관장하게 됩니다. 인간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침대 속 성관계까지 어느새 법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양쪽 모두 국가권력이 갈수록 비대하게 팽창하는 것입니다. 반면으로 개인은 더더욱 위축되어가죠. 전례가 없는 수준에서 전면적으로 인간의 삶을 정치화시킨 것입니다. 감시사회, 통제사회, 사생활과 사영역이 사라져갑니다.

이병한 : 인간의 삶의 전면적 정치화는 전체주의로 이어집니다. 통상 공산주의, 자유민주주의, 전체주의를 분리해서 접근하는데, 공산주의도 자유민주주의도 전체주의적 속성이 다분하다고 주장하시죠.

레구코 :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저는 여전히 기억에 생생해요. 어떻게 사고할지, 어떻게 행동할지, 어떻게 판단할지, 무엇을 희망할지, 말하고 글을 쓸 때는 어떤 단어를 사용할지 그 모든 것이 사전에 정답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만사를 통제하는 사회이죠. 그리고 공산주의적 올바름에 입각한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만인을 개조시키려고 합니다. 이에 어긋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계급의 적'이니 '부르주아 속성'이니 하면서 딱지를 붙이고 혐오를 부추키죠.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사회도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대화와 관용, 다양성 등을 상투적으로 말하지만 자유민주주의만큼 전투적이고 비타협적이고 적대적인 사회가 없어요. 비자유주의적 요소들을 자신들을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할 뿐 아니라 인간성에 위배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합니다. 또 다른 방향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강박되어 있는 사회죠. 그리하여 정작 개개인의 개성을 말소시켜 버리고 마는 것이에요.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만들고, 비슷한 관점을 가지게 만들고, 비슷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며, 비슷한 언어를 쓰도록 만듭니다. 개성 없는 개인들을 양산시키는 것이죠. 군중사회, 대중사회가 되어갑니다. 당장 SNS에 접속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얼마나 획일적인 생각들과 언어들에 물들어 가는지. 그리고 다른 생각과 다른 언어들, 다른 감수성에 대해서 얼마나 적대적인 혐오감을 표출하는지.

▲ 리샤르드 레구코. ⓒ이병한


이병한 : 그래서 양쪽 모두 유일사상, 유일체제라고 말씀하십니다.

레구코 : 각자 대안은 없다고 말한다는 것도 공통점이죠.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가능한 변화란 더 안 좋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각 체제를 수호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역사의 퇴보이자 퇴행일 뿐이죠. 공산주의 시절, 공산주의가 무너지면 사회는 계급 착취로 얼룩지고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와 파시즘이 판을 치는 생지옥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어떤가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몰락하면 권위주의와 파시즘과 신정 정치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위협하죠. 양쪽 모두 겁박하고 협박합니다. 그래서 대안적 해결책을 찾는 것을 금지시키고 봉쇄해 버려요. 이치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성찰의 가치조차 없는 것처럼 치부하죠. 공산주의 체제에서 공산주의에 도전하는 사람(반공주의자)과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에 회의하는 사람(반민주주의자)은 인류의 역사와 성취에 대한 모욕이라고 간주합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자유민주주의자들의 마음이 왕년의 공산주의자들처럼 딱딱하게 굳어갑니다. 어떠한 다른 담론도 체제도 가능하지 않다며 현재를 고수하는 수구파로 전락해가는 것이죠. 지금 서구의 사회과학 담론들을 보세요. 대단히 한정된 언어들을 수십 년 째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새 말이 등장하지 않아요. 아니 새 말이 허용되지가 않아요. 철두철미한 검열 체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사할 수 있는 말, 상상할 수 있는 범위가 철저하게 한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시절이 그랬습니다. 제가 지식인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어휘가 당의 지침으로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죠.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한 지금도 크게 다르지가 않습니다. 

이병한 : 매우 흥미로운 관찰입니다. 저도 언젠가부터 '교조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게 되었는데요. 더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서, 가르치려고만 드는 이들 같아서였습니다. 자족적인, 자만하는, 나아가 자폐적인? 자칭 진보적인 사람들이 진화론적 발상에서 가장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부단하게 적응해가는 것이 진화라는데, 정작 진보를 맹목하는 이들이 진화를 거부하고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레구코 : 공산주의 시절 가장 유쾌하지 못한 기분이 리얼리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가상 속에서 살아간다. 거짓 세계 속에서 연극하며 살아간다. 말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죠. 프로파간다와 현실 간의 낙차와 괴리를 매일 같이 실감하게 됩니다. 현실을 곡해하는 환영 속에서 살아가는 기분이란 몹시 불쾌한 것이에요. 그래서 1989년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짐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현실 세계 속으로 진입한다고 하는 쾌감이 있었죠. 공산당과 선전기구들의 '가짜뉴스'에서 해방된 "탈진실(Post-Trust)시대"로 이행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객관적인 진실로 세워진 진짜 세계로 이행한다고요. 언론의 자유가 넘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객관적 정보가 넘쳐나는 리얼한 세계.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곳이더군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실생활을 장악해갔습니다. 높은 기대가 낙담으로 암전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습니다.

이병한 : 재밌는 발상입니다. 1989년 동구가 '탈진실 시대'로 먼저 진입하고, 2016년 서구도 또 다른 '탈진실 시대'로 진입했다고 볼 수도 있을까요? 동구가 서구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구가 동구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는 군요. 소비에트연방의 해체(1991)에 이어 브렉시트 등 유럽연합의 좌초를 목도하고 있기도 하고요. 사회주의의 좌절에 이어 자유주의도 쇠락해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0세기를 규정했던 좌/우라는 잣대가 과연 얼마나 더 유효한 것인가 되물어보게도 되고요. 자연스럽게 유럽의회 경험을 청해 듣고 싶습니다.

레구코 :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진단에 확증을 갖게 된 것이 EU 활동을 통해서입니다. 만약 유럽의회가 자유민주주의가 도달한 현시점 최고의 기구라고 한다면, 자유민주주의는 바람직한 이념도 아니고 아름다운 체제도 아닙니다. 불행히도, 그리고 매우 불쾌하게도 공산주의와 너무너무 닮아있습니다. EU와의 첫 대면부터 숨 막히는 정치적 독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수십 개 국가의 대표자들이 모인 회합인데도 모두가 동일한 언어와 논리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시절 처럼요. 모두가 현실세계의 오작동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가상현실을 창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요, 공산주의 시대 처럼요, 모든 이단자와 반역자에 대한 타협 없는 적개심과 적대성도 목도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 시절에도 그랬어요. 간혹 유럽의회 회의실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그러다 문득 아, 왕년의 모스크바가 이랬겠구나! 싶어져요. 비록 지금 몇몇 시행착오가 있지만 몇몇 나라에서 오작동이 발생하고 있지만, 결국은 그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종국에는 해피 엔딩으로 귀착될 것이다, 라고 맹종한다는 점에서 브뤼셀 관료들과 모스크바의 옛 관리들은 놀라우리만치 흡사한 것 같습니다. 물론 건물 밖 복도에서 또 사석에서 만나면 회의감과 불안감도 표출합니다. 하지만 정작 회의장 안에 들어가면 모두 정색하고 EU에 대한 신념을 충성 맹세하죠. 스스로 언어와 생각을 검열하는 것입니다. EU 도처에서 위기의 징후가 수시로 드러나는데도, 곳곳에서 모순이 표출되고 있는데도, 역사는 우리 편이라며 외면하고 있는 모습도 옛 공산국가들과 너무나도 닮았어요.

이병한 : 비유적으로 EU에도 '페레스트로이카'가 필요하고, '개혁개방'이나 '도이모이'가 단행되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레구코 : 글쎄요. 그런 반체제적 발상이 통용될지 모르겠습니다. EU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하여 민주주의적 가능성을 최소화시킨 기구입니다. 권력의 전이를 보증하는 기제가 없고, 유권자들의 의사가 EU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방법도 없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유럽의회가 EU 정부를 구성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마 유럽의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야당이 없는 의회일 것이에요.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유럽의회의 주요 의사결정은 기존과 다를 바 없는 지배 카르텔에서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유럽정부(European Commission)는 유권자의 결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유권자의 의사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과두체제이죠. 선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주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도 왕년의 소비에트연방과 무척 유사합니다. 


즉 EU는 민주주의와는 전혀 거리가 먼 기구입니다. 비민주적 제도라기보다는 초민주적인(Hyper-Democratic) 조직입니다. 유럽 전체를 자유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사명을 가진, 나아가 전 세계를 자유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의무를 가진 초민주적 기구이죠. 그래서 유럽 주요 국가들의 주요 정치인들도 전혀 민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EU에 대해서만은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에요. 초민주적인 기구의 사명에 수긍하고 맙니다. 왕년의 소련공산당처럼 ‘영구 혁명’을 수행하는 초역사적(Hyper-Historic) 조직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EU 헌법이 몇몇 국가들에서 부결되어도 리스본 조약으로 땜질 처방하고 기왕의 프로젝트를 재추진하는 것이죠. 일부 국가의 반론과 반기에도 아랑곳없이 진보를 향해 질주하는 것입니다. 프랑스 대선에 깊숙이 개입하고 헝가리와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내정에도 간섭하면서요. 이제는 일부 국가에서 국민들의 선택이 아니라 브뤼셀의 압력에 따라 정권이 교체되는 사례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소련 시절 브레즈네프의 '제한주권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프라하의 봄’을 진압했던 소련처럼 '아테네의 봄', '마드리드의 봄', '로마의 봄', '바르샤바의 봄'을 EU가 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병한 : 동유럽 국가들이 '제한주권'에 반기를 들고 사회주의 진영에서 이탈하여 소련에서 독립해간 것처럼 EU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레구코 : 이미 영국이 이탈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임계점을 지나면 '분리 독립'의 도미노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1989년도 한 순간 와르르 일어난 일이에요. 그러나 적어도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미래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수많은 단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재 유럽에서 EU를 대체하는 그랜드디자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단만 있고 처방전은 없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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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현대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논문보다는 잡문 쓰기를 좋아한다. 역사가이자 언론인으로 활약했던 박은식과 신채호를 역할 모델로 삼는다. 뉴미디어에 동방 고전을 얹어 아시아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Digital-東學' 운동을 궁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