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적폐가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 적폐가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장석준 칼럼] "'마지노선 민주주의'의 운명을 거부하라"
지금 적폐가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 완연한 가을이다. 몇 주만 더 지나면, 작년에 촛불 항쟁이 처음 시작되던 무렵이 돌아온다. 벌써 1년 가까이 된 것이다.

그 동안 참으로 많은 게 변했다. 대통령이 바뀌었고, 정당 지지율 분포가 뒤바뀌었다. 세월호는 인양됐고, 이 비극을 망각의 바다 속에 두려던 이들은 지금 감옥에 있다. 대한민국 역사의 주된 경로를 둘러싼 상식도 전과는 달라졌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쑥 들어가고 광주와 1987년이 부각된다. 이제는 다 새삼스러운 평가일 뿐이지만, 작년 이맘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미친 놈 취급을 당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난 1년 동안 세상이 뒤집히는 일이 있기는 했나 보다. 하지만 '뒤집혔다'고 말을 꺼내기에는 또 영 마뜩지 않다. 요즘 며칠 들어 특히 그러하다. 처음에는 박수 일색이던 새 정부 인선이 적폐 분자 재발굴이라는 이상한 방향으로 튀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난동과 바른정당의 위기 속에 새누리당 복원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북한 핵실험과 이를 빌미로 한 사드 배치는 한국 사회를 삽시간에 촛불 이전의 광경들로 되돌리는 것만 같다.

지난 1년의 대차대조표를 어떻게 셈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모처럼 불어오는 가을바람도 왠지 시원하거나 반갑기보다는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촛불은 마지노선 민주주의의 재확인?

물론 몇 달 동안 토요일마다 광장에 모였다고 해서 난마처럼 얽힌 한국 사회의 문제들이 눈 녹듯 풀려 가리라 기대한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소강 상태였던 북핵 문제가 위기로 치닫는다 해서, 정기국회에서 개혁 입법이 벽에 부딪혔다 해서 느닷없이 반혁명이 시작된 것 마냥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사실 촛불 '이후'를 둘러싼 실망은 우리가 봉착한 난제들 자체보다는 이에 맞설 새로운 힘이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데 있다. 지난 겨울에 광장에 모인 수백만 촛불은 이 나라 역사상 최대의 사회운동이었다. 이 정도 대중운동이 폭발하자 10여 년 반동의 세월도 종잇장처럼 무너져 내렸다.

탄핵 성사와 조기 대선 이후 이런 대중운동이 점차 수그러들 수밖에 없음은 누구나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이런 냉정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기대 하나쯤은 있었다. 수백만 명이 함께 모이는 일은 지속될 수 없더라도 그것이 수만 명, 아니 수천 명 규모는 보여주는 여러 사회운동들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기대였다. 30년 전 6월 항쟁 직후 노동자 대투쟁이 이어졌던 기억도 이런 기대에 힘을 보탰다. 그때 대공장에서 파업 투쟁이 폭발했듯이 이번에는 다양한 비정규직, 여성, 청년 등이 그때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제 목소리를 내지는 않을까.

그러나 탄핵 판결 후 반년쯤 지난 지금까지의 양상은 이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최저임금 인상 운동이 좀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촛불은 1987년 6월을 능가했지만, 촛불 이후는 1987년 여름에 비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상황을 어찌 봐야 할까? 며칠 전 나는 <경향신문>(8월 30일)에 실린 김윤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칼럼 "'마지노선 민주주의' 넘어서기"에서 현 상황을 더 없이 명쾌히 정리하는 표현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지노선 민주주의'다. 칼럼의 한 단락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마지노선 민주주의!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 → 촛불 → 대통령 탄핵 → 새로운 대통령 선출 → 일상으로의 복귀'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살피다 떠올린 개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나쁜 대통령을 유권자의 투표로 심판하기 위해서 촛불을 드는 '방어적 성격의 민주주의'라는 생각이다.

주로 대통령 심판의 권리를 양보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쟁취 및 수호의 경계로 삼고,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과 약자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은 삶의 현장에서 각자 맞서 싸우거나 적응해야 할 사적인 문제라 여기는 민주주의다. 이런 민주주의에서 사적인 문제는 공적 공간인 촛불의 광장과 거리에서 다루어서는 안 되며, 다룰 수도 없다. 옳음과 그름을 판정하기엔, 또 촛불의 대의로 삼아 내기엔 너무나 내밀하고 복잡하기에 그러하다."

이 나라 시민들은 '마지노선', 즉 대통령의 무능과 실정, 독주가 임계치에 이를 경우에만 주권자로서 직접 행동에 나선다는 진단이다. 이명박은 이 마지노선의 턱밑에서 놀면서도 이를 건드리지 않는 곡예를 부렸다면, 박근혜는 마치 최후방어선의 좌표가 어디인지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 시민들의 분노 깊숙한 곳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그래서 오랜 동면에 빠졌던 민주주의가 촛불의 장관으로 깨어났다.

하지만 마지노선 민주주의라는 진단이 옳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은 여기까지다. 대통령을 바꾼 뒤에 시민들은 예전처럼 수동적 방관자로 돌아선다. 관심을 놓지 않는다 하더라도 새 대통령을 응원하는 정도다. 개혁의 무거운 책무는 모두 새 대통령의 몫이 된다. 탄핵을 요구하던 만큼의 열기로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은 손에 꼽을 정도다. 노도와 같던 민주주의는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하기만 하다. 안타깝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것이 촛불 이후 한국 민주주의에 딱 들어맞는 묘사다.

과연 우리는 매뉴얼 없이 삶의 방식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마지노선 민주주의라 이름 붙일만한 양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뜸 떠오르는 것은 대통령 중심제에 길든 정치 문화다. 미국식 대통령제에 유학(儒學) 전통이 결합되면 이런 민주주의가 태어나는 게 아닐까.

국가와 개인 사이를 채울 시민사회 조직들이 촘촘히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일지 모른다. 특히 자산과 권력이 적은 이들일수록 일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조직 통로가 없다. 그래서 불만이 누적되기만 하다가 거의 주기적으로 중앙권력 교체로 폭발한다.

그런데 이런 이유 말고도 '마지노선'이라는 비유 자체에서 우리를 비추는 거울을 발견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마지노선은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프랑스가 구축한 대독일 방어선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호전을 경험한 프랑스 육군은 참호를 파는 대신 거대한 콘크리트 요새들을 짓고 이들을 만리장성마냥 길게 이었다. 두 번째 세계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 병력 대다수가 마지노선에 버티고 앉아 독일군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전격전을 통해 배후를 친 독일군에게 고스란히 포로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패전이었다. 그래서 '마지노선'이라는 이름이 붙는 모든 비유는 뭔가 조롱의 냄새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후대의 시선이고, 독일군 포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군은 나름 진지했을 것이다. 그들의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 방어선 말고 다른 지형에서 벌어질 모든 불확실한 전투의 회피였다. 지난 번 전쟁보다 더 발전한 기동전 장비들로 전투를 벌였을 때 어떤 양상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물며 승리의 보장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전투에 임하느니 콘크리트 요새들을 지키는 쪽이 마음 편했을 것이다. 이곳만 지키면 조국이 무너지는 일 따위는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전투 기회를 피한 이들에게는 마지막 방어전의 기회 또한 오지 않았다.

웬 난데없는 전쟁사 복기인가. 마지노선 민주주의의 밑바닥에 깔린 심리가 어쩌면 실제 마지노선에 버티고 앉았던 프랑스군 병사들의 심리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에 역사상 가장 장쾌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부하는 우리는 실은 지금 수많은 진짜 전투들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음번에는 ‘마지노선’ 따위는 없을 텐데도, 다가오는 전투들을 외면하고만 있는 것 아닌가?

이 심리가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만큼 촛불 이후에 열린 전장들은 안개 속이다. 주로 경제 사회 개혁의 전장들이다. 이들 영역에서 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수십 년 동안 정답으로 버텨온 매뉴얼들이다. 정부와 대기업의 엘리트와 관료형 조직들이 한 세대 가까이 집행해온 압축성장 매뉴얼들이다.

물론 완전한 수입산은 아니다. 약간의 창의력이 배합되기는 했다. 하지만 짜깁기 수준의 창의력일 뿐이다. 없던 걸 만들어낸 수준은 아니다. 미국식에다 일본식 혹은 만주국식을 오려붙여 편집한 매뉴얼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이 매뉴얼을 확신을 갖고 집행한, 어쩌면 마지막 권력이다. 탄핵 반대 집회를 수놓은 박정희 초상이나 성조기는 말하자면 이 매뉴얼의 표지였다.

우리가 돌파해야 할 경제 사회 개혁(탈신자유주의라 하든, 특권 철폐와 양극화 해소라 하든)은 이 매뉴얼의 최종 폐기 과정이다. 국정 역사 교과서와 함께 옛 매뉴얼들을 폐지 더미로 보내 버리는 일이다.

그러나 대체할 매뉴얼이 없다. 아니, 애당초 구 매뉴얼을 다른 어떤 매뉴얼로 대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스웨덴식에 독일식, 프랑스식을 버무려 대안 매뉴얼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압축성장의 매뉴얼에 맞서는 개혁은 매뉴얼의 빈자리를 우리 스스로 채워 나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없던 것을 만드는 수준의 작업이어야만 한다. 매뉴얼에 따라 사는 데 익숙했던 우리가 이제는 다르게 사는 방식을 직접 창안해야만 한다.

모두들 이 작업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다. 말로 쏟아내지 않아도 다들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얼마나 힘든 전투일지를. 그래서 일단은 피하고 보는 중이다. 임무를 떠넘기는 중이다. 정 안 되면 다시 마지노선(촛불 광장?)에 서면 되지 않겠냐며 애써 낙관을 가장하는 중이다.

그래서 김윤철 교수가 지적하듯, 경제 사회 개혁의 쟁점인 이른바 "사적인 문제"들은 "촛불의 대의로 삼아 내기엔 너무나 내밀하고 복잡"하다 치부하며 마지노선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촛불 원년 가을의 착잡한 감상이다.

개헌 토론으로 촛불 2막을 이어나가자

하지만 나는 한국 사회의 방향이 마지노선 민주주의 쪽으로 기울기는 했어도 운명이 이렇게 정해진 것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운명의 원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촛불 항쟁만 해도 그렇다. 현대의 혁명(혹은 준혁명)은 개혁만큼이나 장기전이다. 적어도 2020년 총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촛불의 '1단계' 평가도 내놓을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촛불 정세의 어느 국면 속에 있다.

그러자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전투들을 피하거나 미루기만 해서는 안 된다. 새 정부 관전평만 써서는 곤란하다. 탄핵 직후에 제2의 노동자 대투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약속한 개헌 일정이 있다. 개헌 토론이 그나마 새 국면을 열 기회가 될 수 있다.

헌법에 문구 몇 개 넣는다고 개혁이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토론이다. 헌법의 약속 안에 마땅히 추가해야 할 내용으로 참여 민주주의, 노동-사회권 강화, 탈핵, 평화 등을 이야기함으로써 경제 사회 개혁을 추진할 사회운동들의 불을 댕길 수 있다. 기존 매뉴얼 바깥에서 다른 삶의 방식을 만들어갈 용기와 의지를 북돋을 수 있다.

시민 참여 개헌 토론으로 촛불 2막을 이어나가자. 마지노선에서 파시스트 군대를 막지 못했던 그 나라는 시민들이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저항운동을 시작하며 비로소 설욕과 반격의 기회를 찾았다고 한다. 가상의 선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점들에서 싸움을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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