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가 옳다
추미애가 옳다
[기고] 보수 언론의 '헨리 조지' 때리기는 허수아비 치기
추미애가 옳다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국회 연설이 북한의 핵실험과 사드 배치 이슈에 묻혀서 너무 아쉽다. 참으로 놀라운 연설이었다. 추 대표는 그 연설에서 청와대의 소득주도성장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지대개혁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말 그대로 "근본적인 문제 제기"였다.

잘 알려졌다시피, 청와대의 정책이 터하고 있는 이론은 '소득주도성장론'이다. 임금생활자와 자영업자들, 주로 저소득계층의 '소득수준 향상 → 소비 증가 → 투자 증가 → 성장률 제고'가 청와대의 머릿속에 있는 논리다. 최저임금 인상과 재벌개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이런 틀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추 대표는 '지대개혁'을 하지 않으면, 하위계층의 늘어난 소득을 특권층이 지대라는 형식으로 가로채 가기 때문에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지정의가 경제 성장을 이끈다는 추 대표의 주장

추 대표의 연설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성공적인 농지개혁에 대한 언급이다. 1950년 3월에 단행한 농지개혁을 통해 자영농이 두텁게 형성되었고, 이것은 내수시장 육성과 교육열 향상을 이끌었다는 것, 결과적으로 이것은 성공적인 산업화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토지정의가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토지정의란 무엇인가? 토지정의를 다른 말로 하면, 평등한 토지권 정신이다. 인간이 만들지 않았고 그 양을 늘릴 수 없는 토지에 대한 권리는 모두가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것이 토지정의 정신이다. 농경사회에서 토지정의 정신의 구현 방법은 모든 농민이 골고루 토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추 대표는 이런 정신을 일정 정도 구현한 농지개혁이 성공적인 산업화에 기반이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정의는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다.

'지대추구' 강화가 불평등의 원인

그러나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인구의 도시 집중화를 거치면서 지가 급등을 경험하게 된다. 겸하여 토지소유 편중이 심화되었고 그 과정 중에 발생한 엄청난 불로소득이 소수에게 쏠리게 되었는데, 추 대표는 이런 잘못된 행태를 정치와 행정이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추 대표는 매년 300조 원이 넘는 토지 불로소득이 발생했다고 주장했지만, 토지+자유연구소에 따르면, 2007~2015년 동안 GDP의 30% 이상의 불로소득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의 거의 대부분을 토지 과다소유 법인과 개인이 향유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토지 불로소득이 불평등과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토지 불로소득은 단지 토지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얻는 소득이다. 그런데 이 토지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비생산적 경제활동이라는 점을 우리는 인식해야만 한다. 토지를 소유한 개인과 법인에게는 엄청난 이익이겠지만,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개인과 법인에게는 반대로 손해가 된다.

불로소득의 다른 이름은 지대(地代)이다. 전통적으로 지대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이익으로 정의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각종 특권에서 나오는 모든 이익을 정의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사회는 특권 중의 특권인 토지 특권 외에도 정규직 특권, 대기업 특권, 수도권 특권 등 온갖 특권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지대 개념의 유용성은 한국 사회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안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대라는 안경을 쓰고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면 고통스러운, 파편화된 현실의 조각들을 하나의 총체성 속에서 배치·파악할 수 있게 되고 해법도 찾을 수 있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추 대표는 우리 경제가 '지대 추구의 덫'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주체들이 생산적인 노력보다 특권을 통한 불로소득을 노리는데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경제 주체들이 생산적 노력보다 불로소득을 낳는 특권을 추구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시장은 왜곡되고 불평등은 심화되며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창의와 모험의 정신은 사그라지게 된다.

특권 없는 사회를 꿈꿨던 헨리 조지

토지 불로소득을 언급하면서 추 대표는 '사계절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를 호명했다. 헨리 조지는 특권의 핵심이 토지 특권이라고 보고, 이 특권이 낳는 지대를 환수하면 경제 효율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불평등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헨리 조지가 사계절의 경제학자로 불리는 까닭은 토지는 농경시대에도, 산업화시대에도, 정보화시대에도, 인공지능시대에도 그 중요성이 전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헨리 조지의 진단과 처방은 어디서나 어느 시대에서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토지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모든 역사는 언제나 어디서나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토지소유자들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예속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에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자영업자는 높은 임대료에 허덕이고 있고, 토지가 없는 가구는 높은 전월세 비용을 감당하느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사무실을 임대해서 쓰는 (벤처) 사업가도 높은 임대료 때문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반면에 다주택 보유자와 어마어마한 토지와 빌딩을 소유한 재벌 대기업은 가만히 있어도 엄청난 불로소득을 향유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헨리 조지는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추 대표가 헨리 조지의 핵심 주장을 설명하고 강조하니, 몇몇 주류 언론들이 헨리 조지를 공격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 살펴보면 대부분 허수아비 치기식 공격이다. 헨리 조지만큼 시장을 존중하는 학자도 드물다. 아이러니하게도 헨리 조지만큼 사유재산제를 옹호하는 사상가도 드물다. 지대 환수의 시장 친화성에 대해서 정 못 믿겠거든 일반균형 이론의 창시자 레옹 왈라스(Léon Walras)의 저작을 읽어보라. 그는 시장의 정상적 작동을 위해 지대 환수가 필수임을 역설했다.

지대에 높은 세금을 물리자고 하는 스티글리츠

추 대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의 "상위 계층 소득의 태반은 지대에서 나온다"는 말을 인용했다. 그런데 그가 불로소득인 지대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모든 종류의 지대에 높은 세금을 매기면 불평등을 완화할 뿐 아니라, 경제와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지대 추구 행위에 가담하려는 유인을 줄인다. 우파는 모든 세금이 왜곡을 낳는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지대에 대한 과세는 경제의 효율성을 증진시킨다."(<불평등의 대가>(스티글리츠 지음,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360쪽)

그렇다. 지대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면 불평등과 시장 왜곡은 방지되고 경제 효율은 높아진다. 그러므로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자는 지대 환수에 찬성하는 것이 맞다. 지대 환수에 반대하는 것이 반(反) 시장주의다. 진정한 시장주의자는 지대추구가 시장을 왜곡시키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이런 지대개혁(지대 환수)이 소득주도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左(진보)와 右(보수)가 만나는 지대개혁론

중요한 문제 제기와 놀라운 통찰에도 불구하고 연설문에 나타난 추 대표의 정책 처방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추 대표가 언급한 다주택자들에 대한 임대소득 과세와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강화는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지대개혁'에 걸맞는 정책을 도출하려면 보다 근본적 사고가 필요하다. '지대 추구의 덫'의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처방을 내려야 한다. 그렇게 해야 추 대표가 말했듯이 지대개혁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멈춰진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가장 위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진보의 대명사 조봉암 전 농림부 장관과 보수가 추어올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합작품이 바로 '농지개혁'이라고 한 부분이다. 맞다. 조봉암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농지개혁에 이승만의 역할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나아가서 오늘날 진보는 이승만의 긍정적 유산을 오늘에 계승하자고 보수를 설득해야 한다. 진보와 보수 모두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다시 말해서 시장의 왜곡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농지개혁 정신 계승을 고민한다면 지대개혁론과 만나게 될 것이다.
기사를 끝까지 읽으셨다면…

인터넷 뉴스를 소비하는 많은 이용자들 상당수가 뉴스를 생산한 매체 브랜드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뉴스 유통 방식의 탓도 있겠지만, 대동소이한 뉴스를 남발하는 매체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은 독립·대안언론의 저널리즘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저널리즘에 부합하는 기사에 한해 제안 드립니다. 이 기사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주신다면, 프레시안의 언론 노동자, 콘텐츠에 기여하는 각계 전문가의 노고에 정당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쓰겠습니다. 프레시안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언론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