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과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문재인 정부의 과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김윤태 칼럼] 불평등이 문제다 (4)
문재인 정부의 과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마태복음〉의 포도밭 우화가 유명하다. 포도밭 주인은 장터의 일꾼들에게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포도원에서 일하게 했다. 그가 오후에 나가 보니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장터에 있어 그들도 일하게 했다. 주인은 해질 무렵에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또 발견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왜 하루 종일 일거리도 없이 여기에 서 있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우리를 써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주인은 그들에게도 포도밭으로 가라고 말했다. 저녁이 되자 포도밭 주인이 관리인을 시켜 마지막에 온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자,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은 자기들은 더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그들은 집주인에게 불평했다.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했습니다. 그런데도 땡볕에서 하루 종일 고생한 우리와 그들을 똑같이 대우합니까." 그러자 주인은 "나는 당신에게 잘못한 게 없소. 당신은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나와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몫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마지막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과 똑 같이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단 말인가"라고 말했다.

인간의 평등한 가치

포도밭의 우화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우화에는 인간이 평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분명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오후 늦게야 일한 사람의 노동시간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주인이 동일하게 준 품삯은 하루를 살 수 있는 생활임금일 수 있다. 더욱이 늦게 일하기 시작한 사람들도 게으른 것이 아니라 아침부터 일할 기회를 기다렸다. 이런 점에서 누구나 일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의미를 보여 준다. 오늘날 최저 임금도 노동하는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임금을 정한 것이다. 나아가 국가는 모든 국민이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19세기 영국의 예술비평가이자 사회사상가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Unto the last man)>에서 모든 사람이 국가의 직업훈련학교에 들어가 일하고,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자리에서 일하고 정해진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일한 노동 분야별 임금의 평등화를 지지했으며, 오히려 임시직 노동자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궁극적으로 러스킨은 높은 생산성이나 이익이 경제활동의 최고선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러스킨은 "생명이 없는 부(wealth)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사랑과 환희와 경외가 모두 포함된 총체적인 힘이 바로 생명"이라고 말했다. "가장 부유한 국가는 최대 다수의 고귀하고 행복한 국민을 길러내는 국가이고, 가장 부유한 이는 그의 안에 내재한 생명의 힘을 다하여 그가 소유한 내적·외적 재산을 골고루 활용해서 이웃들의 생명에 유익한 영향을 최대한 널리 미치는 사람이다." 포도밭의 우화에서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라는 책 제목을 인용한 것은 바로 그의 사상을 보여 준다. 그의 무덤의 묘비명도 책 제목과 같다.

사회적 평등과 복지국가

플라톤의 <국가>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만인의 평등을 주장하는 사상은 오랜 세월을 거쳐 왔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과정은 20세기 중반 복지국가의 등장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는 정부의 정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복지국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권리를 누리기 위해 온갖 어려움 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해 쟁취한 것이다. 유럽과 미국의 보통선거권, 노동조합의 권리, 8시간 노동제, 최저임금제는 노동자의 투쟁으로 획득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실업보험,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의 법제화는 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을 수용하려는 정치적 합의의 결과다. 모든 국민을 위한 보통교육, 아동수당, 무료 직업훈련을 실행하기 위한 누진적 소득세의 도입과 사회복지예산의 증액도 모두 의회에서 결정했다. 

지난 100년 동안 인류의 역사에 볼 수 있듯이 복지국가의 발전은 정치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세상에는 "정치가 싫어", "투표에 관심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더 좋은 복지를 누리기 위해서는 정치에 관심에 갖고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국민의 요구를 실현할 방법은 오로지 선거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시 <바이마르 헌법 제2조>에서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그런데 나와서 어디로 가지?" 하고 물었다. 정치에 참여해 권력을 갖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런 점에서 2010년 한국의 지방선거 이후 많은 사람들이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선거에서 복지 공약이 주요 의제로 떠오른 것은 긍정적 신호다. 복지가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에 사는 모든 국민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2016년 '촛불 혁명'과 2017년 '장미 대선'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등장하면서 국민의 목소리가 커지고 새로운 개혁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 정부의 과제

2017년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더 나은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71.7%가 세금을 추가 부담할 뜻이 있다고 답했다. 그럴 의사가 없다는 응답자는 26.2%에 불과했다. 복지에 대한 국민의 긍정적 태도가 증가한 이유는 경제 자유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사회적 위험과 그에 따른 불안이 커졌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구조조정과 조기퇴직으로 직장을 잃으면 자신의 생활비, 자녀 교육비, 의료비를 해결하지 못해 절박한 궁지에 몰릴 수 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증가로 젊은이들의 앞날이 우울하다. 인구 고령화와 가족 구조의 변화 때문에 가족 부양에도 대안이 시급하다. 복지국가를 향한 열망은 곧 사회적 불안의 급증을 드러낸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외부의 공포에 맞서는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라면 복지국가는 내부의 공포에 맞서는 '사회 안보'(사회보장)을 위한 것이다.

아직도 보수 언론과 학자들은 복지 확대가 좌파의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보편적 복지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선별적 복지가 좋다는 사람이 있고, 현 단계에서 고부담 고복지는 어렵다고 말하면서 '중부담 중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보편적 사회보험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1940년대 영국과 스웨덴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1만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한국은 거의 3만 달러 수준이고, 경제 규모가 세계에서 열한 번째다. 아직도 복지국가가 되기에 이르다는 사람은 1970년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기에는 이르다던 논리에 동의하는 것과 같다. 조세 부담율과 복지 재정의 수준은 경제력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고부담 고복지'를 추구해서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복지가 교육과 직업훈련으로 고용 가능성을 높이고, 보건・보육・요양 등 삶의 질을 높인다면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된다.

복지국가와 정치적 합의

복지와 경제가 선순환하는 나라는 기업의 경쟁력과 노동생산성이 높고, 산업 평화와 사회통합도 잘 이루어 낸다. 보수적 학자와 정치인은 복지 재정을 늘리고 세금을 인상하면 기업에 부담을 주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하지만, 복지 제도가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사회보장의 혜택이 증가하면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아질 수 있다. 북유럽 국가와 독일을 보면 보편적 사회보장과 높은 생산성은 긍정적 상관관계가 있다. 사회복지는 노사 갈등을 비롯한 사회 갈등도 줄일 수 있다. 복지가 적은 사회에서 오히려 갈등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복지가 발전한 국가의 사회통합과 개인의 행복 수준이 높다. 그래서 서유럽에서는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이 모두 복지국가를 지지한다. 한국의 정치권도 초당적으로 복지국가를 발전시키는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이 글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김윤태의 <불평등이 문제다: 대한민국 99%의 내일을 위한 전략>(휴머니스트, 2017년)을 보기 바랍니다.
기사를 끝까지 읽으셨다면…

인터넷 뉴스를 소비하는 많은 이용자들 상당수가 뉴스를 생산한 매체 브랜드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온라인 뉴스 유통 방식의 탓도 있겠지만, 대동소이한 뉴스를 남발하는 매체도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은 독립·대안언론의 저널리즘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저널리즘에 부합하는 기사에 한해 제안 드립니다. 이 기사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주신다면, 프레시안의 언론 노동자, 콘텐츠에 기여하는 각계 전문가의 노고에 정당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쓰겠습니다. 프레시안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언론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다른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