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김재철 바보'라고 했더니 자르더라"
김어준 "'김재철 바보'라고 했더니 자르더라"
파업 11일차 MBC노조, 'MB 블랙리스트' 추가 사례 폭로
2017.09.14 15:41:28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 물을 마실 때마다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서울 상암동 MBC사옥 1층 로비에 걸려 있는 현판 글귀로 안광한 전 MBC사장이 걸어놓았다. 한 마디로 내부 구성원들에게 '니들 월급 주는 사람이 누군지 기억하라'는 엄포나 다름없다. 

음수사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따 만든 정수장학회에 내린 휘호다. 음수사원은 정수장학회의 핵심 기치다. 그 정수장학회는 MBC를 창업한 고(高) 김지태 씨의 부일장학회를 강제로 빼앗아 설립한 것이다. 애초 이름은 5.16장학회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었다. MBC 지분 30%를 가진 게 정수장학회다(나머지 70%는 방문진 소유). 이쯤 되면 안광한 전 사장이 박근혜 정권 시절 '음수사원'을 현판 글귀로 내건 것은 섬뜩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MBC 구성원들은 박정희와 육영수, 박근혜를 생각하라는 말인가?

최근 폭로된 '방송예술계 MB 블랙리스트'와 음수사원을 연관시키면 더욱 무서워진다. 앞서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원세훈 전 원장 재임 초기인 2009년 7월, 국정원이 김주성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주도로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 정부 비판 성향의 연예인이 특정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도록 압박했다고 밝혔다. 

프로그램 퇴출 실무는 방송사들이 맡았다. 지난 9년 동안 MBC 사장 및 간부들이 청와대 입맛대로 연예인들을 퇴출한 셈이다. MBC 사측은 자신들의 실질적 인사권을 쥔, 즉 '내 자리를 보전해 주는 사람'의 근원이 어디인지, 누구인지를 명확히 인지한 셈이다. 그들의 하수인으로서 MBC 경영진은 공영방송을 훼손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임명된 안광한 전 사장은 김장겸 현 사장, 이명박 정권에서 임명된 김재철 전 사장과 함께 MBC를 망친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간 풍문으로만 떠돌던 'MB 블랙리스트'가 확인되면서 MBC본부는 구체적으로 이 문건이 MBC 내부에 어떻게 작동했는지 조사했고 총파업 11일째인 14일 서울 상암 MBC 사옥 로비에서는 그 결과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예능, 드라마, 라디오 부문 현업 PD들이 자기들이 겪은 사례를 증언하는 자리였다. 


"김제동 씨와 둘이 많이 울었다"

이날 자리에는 조준목 예능방송PD가 참석했다. 그는 2009년 방송인 김제동 씨를 MC로 하는 파일럿 프로그램 <오마이텐트>를 제작했다. 하지만 당시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 프로그램은 정규 편성이 무산됐다. 이를 두고 외압설 등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조 PD는 당시 안광한 편성국장의 반대로 프로그램 정규 편성이 무산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 PD는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김제동 씨가 블랙리스트에 올라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폐지한 듯하다"고 말했다. 

"당시 <오마이텐트>를 기획할 때, MC로 당연히 김제동 씨를 생각했다. 술도 잘 마시고 산에도 잘 다녀서 프로그램 성격과 잘 맞았다. 그런데 그를 MC로 섭외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당시 일밤 MC를 할 때였고, 그 전전해에는 KBS 방송연예 대상을 받기도 했다. 3~4번인가 새벽에 집까지 찾아가서 만나달라고 했다. 결국, 곱창집에서 소주를 마셔가면서 억지로 섭외에 성공했다. 

그때 편성국장이 안광한 전 사장이었는데, MC로 김제동 씨를 섭외했다고 하니 어떻게 데려왔느냐며 칭찬했다. 그리고 <오마이텐트> 기획서를 읽고는 시류를 잘 읽은 기획이라며 어떻게 이렇게 멋있는 기획을 했느냐고 찬사를 쏟아냈다. 그 후광으로 촬영을 시작했는데, 첫 방송에서 시청률이 13%나 나왔다. 당시 파일럿프로그램 중 제일 시청률이 높았다. 이건 당연히 정규프로 된다고 했다. 방송 다음날 아침, 아웃도어 협찬사에서 전화가 밀려왔다. 자기네가 먼저 프로그램 협찬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갔다. 방송 나래이션으로 윤도현 씨를 섭외했는데, 위에서 꼭 윤도현으로 해야 하느냐고 했다. 그때만 해도 블랙리스트 문건이 있는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전달력도 좋고, 각광받고 있기에 윤도현이 딱이라고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멍청한 짓이었다. 김제동에 윤도현이라니... 내가 못 알아챈 거였다. 

방송이 나간 이후, 이런 저런 말들이 들어왔다. 당시 안광한 편성국장은 시류를 잘 본 기획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기획이 모호하고 불투명하다고 말을 번복했다. 그리고 시청률이 높게 나온 것은 선제편성으로 이득을 본 거라고 깎아내렸다. 게다가 프로그램 제목도 문제 삼았다. 오마이뉴스를 연상케한다고. 그런데 캠핑장 정보 찾는 사이트 이름이 오마이텐트다. 

그러면서 외부 인터뷰 자제하고 조용히 있으면 다음 학기(가을 개편)에는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편성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끝이 났다. 김제동 씨가 밤에 제게 전화해서 많이 울었고 나도 많이 울었다. 우리가 그렇게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게 며칠 전 나온 'MB 블랙리스트'였다."

김어준 "김재철에게 사과 안 하자 프로그램 폐지"

지난 9년 동안 예능만이 아니라 라디오에서도 수많은 연예인과 방송인이 퇴출됐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김미화 씨, <시선집중>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 <두시의 데이트> 윤도현 씨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 씨도 당시 퇴출됐다. 

김어준 씨는 당시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DJ였으나 5개월 만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쫓겨났다. 팟캐스트 5위에 올라갈 정도로 인기있는 프로그램이었으나 후속 프로그램도 없이 프로그램 자체가 폐지됐다. 폐지 후 이 시간대에는 오전 11시에 방송된 라디오방송 드라마가 재방송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김어준 씨는 사전에 촬영한 영상을 통해 당시 자신이 어떻게 퇴출됐는지를 설명했다.  

"5년 전 일인데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PD연합회 행사 사회를 보면서 '김재철 MBC 사장과 김인규 KBS 사장 중 누가 더 바보인가'라고 물었더니 대다수가 '김재철'이라고 외쳤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다음날 라디오 녹음실에 세 명의 MBC 간부가 와서는 그 일 관련, 사과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사과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그런 게 MBC 사규에 어긋나면 나를 자르라'고 했다. '내가 MBC 프로그램에서도 아니고 다른 외부 행사에서, 자연인으로 내 이야기를 한 것인데 그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하면 못 하겠다'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며칠 뒤, 또 다시 그 세 명이 와서는 반드시 사과를 해달라고 했다. 나 역시 못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실제 여전히 김재철 사장이 바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프로그램 담당 PD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다른 곳으로 발령났다. 나는 올게 왔구나 싶었다. 프로그램을 없애는 수순으로 들어 가는구나 했는데, 이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결국, 내가 라디오본부장을 찾아가서 없앨 거면 공식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폐지한다고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당시 본부장은 프로그램을 없앤다고도, 안 없앤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MBC라는 규모의 회사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 프로세서가 매우 비겁하고 졸렬하다고 생각했다."
 
"내부자들에게도 민형사상 책임 묻겠다"

한편, 이날 자리에 참석한 김연국 MBC본부 본부장은 "‘MB 블랙리스트'는 (청와대에서) 지시를 받았어도 내부에서 실행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문서였다"며 "하지만 김장겸, 안광한, 김재철 등 내부인사들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그리고 그들은 그런 부역의 대가로 사장, 부사장, 지역 사장 등으로 발탁됐다"며 "우리는 연예인들과 함께 원세훈 전 원장만이 아니라 이들 내부자들에게도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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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기자 kakiru@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