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것? 절대 나쁘지 않습니다
나이 드는 것? 절대 나쁘지 않습니다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나이 듦의 선물
두어 해 전부터 건강 걱정과 일상의 환기 필요성을 느껴 새로 운동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도관에 나가 운동을 하고 틈틈이 배운 것을 복습하고 있지요. 그러던 중, 올해 들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침 시간에 여유가 생겨 20대에 심취했던 운동의 기본동작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10년 넘게 했던 운동이건만 몸은 그 때가 아니어서, 기억 속 이미지와 실제 구현되는 동작은 거리가 한참이었습니다. 그나마 진료시간을 잘 못 알아 일찍 오신 어르신이 계시면 그 날은 반갑게 쉬곤 했지요. 

그러기를 몇 달 하다 보니 몸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문득 '이 동작에 이런 원리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당시 선생님들이 보여주고 말씀하신 것들이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20대에는 힘과 속도에 묻혀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이 들어 속도와 힘이 떨어지자 하나씩 구분되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발견이 이어지다 보니, 요즘은 가끔 컴컴한 진료실에서 혼자 씩 웃곤 합니다. 20대에는 승부에서 상대를 이기는 즐거움에 빠졌다면, 이제는 저 자신을 알아가는 재미가 꽤 괜찮습니다. 

인간의 유전자 서열을 밝히는 프로젝트가 완료되었을 때부터 예상된 일이었지만, 최근 생물학 연구의 큰 화두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늙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 주제는 사회가 형성되고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인간의 오랜 고민이자 욕망이긴 합니다.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연구가 축적되면서 불로초 수준의 환상이 유전자 조작, 줄기세포의 이식, 젊은 피의 수혈, 그리고 장기의 교체와 같은 모습으로 점점 구체화되고 있지요. 특히 오래 살아 자연스레 암이나 치매와 같은 대표적인 노인병에 걸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불로(不老)를 향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춰 이 분야 의료산업 또한 성장 일로에 있고요. 

개인적으로 지금의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는 한계 수명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수명 한계를 늘리려는 연구에는 별 관심이 없고, 나아가 반대하는 쪽입니다. 다만 어떻게 하면 삶을 질을 현격히 떨어뜨리고 큰 고통을 주는 결정적 질환의 발현을 최대한 늦출 수 있느냐는 연구에는 관심이 큽니다. "한 번에, 이것만 하면!" 하는 식의 해결책이나 밑도 끝도 없는 젊음을 향한 탐닉보다는, 일상에서 밥 먹듯 소소하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과 완만하고 천천히 나이 들어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한의학이 언급하는 건강법이 이러한 나이 듦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한의학에도 자발적 노력 말고 진시황의 불로초처럼 먹어서 해결하는 방법이 존재합니다. 과거 사람들이라고 편한 방법을 추구하지 않았을 리 없지요. 불로장수의 비방(秘方)이나 단약(丹藥)이라고 불리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진시황 이래 성공한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이른바 불로초들이 건강 유지에 일정한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무턱대로 먹으면 도리어 해가 되기도 하지요), 노화를 한방에 해결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천천히 늙어 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한 음식, 제대로 된 호흡, 그리고 몸과 정신을 골고루 자극하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현재를 즐기라'는 말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언뜻 보면 나이 들수록 모든 면에서 예전만 못한 것 같지만, 모든 현상에는 음양이 존재하듯 더 나아지는 부분이 분명 존재합니다. 

특히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자신의 몸과 감정의 흐름에 관한 이해도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몸과 감정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가져오는 결과를 생각하면, 이 두 가지만 효과적으로 다루어도 좋은 건강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됨은 자명합니다. 또한 자신에 관한 이해가 깊어진 만큼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도 줄어들어, 적은 에너지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젊은이의 넘치는 기운이 크게 부럽지 않지요. 최고의 낚시꾼이 바늘 하나만 쓰듯, 삶의 목표를 향해 정밀타격을 할 수 있으면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삶에 건강은 함께 따라 올 확률이 높지요. 

여성의 갱년기가 또 하나의 상품시장이 되어 버린 것처럼, 현대 사회는 삶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 짓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욕망하도록 부추깁니다. 아마 노화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부추김이 더욱 가열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 듦은 치료해야 할 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입니다. 

『여섯 살 때 모든 것을 그리고자 하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쉰이 될 때까지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일흔 이전에 그린 그림들은 모두 별 가치가 없다. 
일흔 세 살이 된 이제야 자연이 갖는 진정한 모습, 그리고 동물, 식물, 나무, 새, 물고기 그리고 곤충의 더 깊은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여든이 되면 조금은 더 나아가게 될 것이다.
아흔이 되면 나는 사물의 신비를 꿰뚫게 될 것이다. 
백 살이 되면 틀림없이 훌륭한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백살에 열 살을 더한 나이가 되면 내가 그리는 모든 것, 그것이 선이 되었든 점이 되었든 간에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 될 것이다. 
나만큼 오래 사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 약속을 잘 지키는지를 살펴봐 주기를 부탁한다.』
- 호쿠사이(北斎)가 일흔다섯에 쓴 글(1835)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은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당초 다음 글은 10월 4일 발행 예정이었으나, 추석 연휴로 인해 10월 11일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께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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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