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은 본능에서 출발한다
입양은 본능에서 출발한다
[격월간 민들레] 입양특례법 재개정이 필요하다
입양은 본능에서 출발한다
왜 입양하려는 걸까

딸 민이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얼마 후 입양 생각을 했다.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생각은 잠시나마 숨 쉴 틈을 주는 듯했으나, 그게 답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심한 상처를 치료하지 않은 채 붕대로 둘둘 감아놓은 느낌이었다. '가슴속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아이를 이용하려는 게 아닌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다.

어느 날, 동생이 하는 말에 가슴이 덜컥했다. "입양을 한다면 아들이 어떨까? 딸을 입양하면 민이와 자꾸 비교하게 될 것 같은데…." 당연히 여자아이를 입양하리라 생각하고 있던 나는 동생의 말에 숨겨진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딸의 사랑스러움을 기대한 건 민이의 모습을 다시 찾아보려는 갈망을 뜻했다.

보육원 봉사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곳 수녀님께 고민을 말했다. "입양하고 싶은 생각은 크지만 이런 마음으로 해도 될까요? 더 치유하고 기다려야 하나요?" 수녀님이 답했다. "자녀의 죽음을 겪은 부모님이 성급히 입양을 하는 건 좋지 않지요.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예비 입양부모들은 일종의 자기 검열을 거친다. '아이 입장을 우선 생각하지 않고 내 욕심으로 입양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내가 낳은 자녀에게 형제를 만들어주고 싶어 입양한다면 비윤리적인 걸까? 더 좋은 부모에게 가야 할 아이를 내가 입양해서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들은, 입양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힘든 일이고 대단한 사명감을 가져야 가능하다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이기심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결혼과 출산도 누구나 자신의 욕심으로 한다. 내 이웃이 나보다 잘 살고 인품이 훌륭하다고 해서 출산의 기회를 그쪽에 양보하겠는가? 입양 역시 자식을 키우고 싶은 이기심에 바탕을 두는 게 당연하다.

오로지 이타심과 봉사정신으로 입양한다는 생각이 파국을 불러오는 경우도 보았다. 보육원 봉사를 다니던 한 독실한 신자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삶에 부족함이 없다고 여겼지만 신앙에 따른 선행을 하고자 아이를 입양했고, 양육 과정에서 아이와 심한 갈등을 겪다가 결국은 조기 유학을 보내게 되었다. 지금도 그는 성인이 된 자녀를 원망한다. "그토록 많은 것을 주었는데 왜 아이가 저렇게 된 거지?" 많은 것을 주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한다. 그건 바로 '나는 너를 원해서 입양했다'라는 저변의 동기를 인정하고, 부모 자식 간 진심을 공유하는 일이다. 입양은 자선도 신앙의 실천도 아닌, 적당히 이기적인 보통 사람들의 선택이란 걸 깨달았다면, 그래서 아이의 심한 반항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이렇게 큰 사랑을 베풀었는데 네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라는 오만함 앞에 자녀가 잘 자라기는 힘들다.

동생의 말에 따라 남자아이를 입양하겠다는 생각으로 정보를 찾다 보니, 우리나라 입양아동들의 성비가 독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장애아나 남자아이들의 많은 수가 해외로 입양되고 있었다. 딸이 키우기에 더 수월하다는 통념 탓이리라. 아들의 경우 유아 시절에 부모의 육체적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한 건 대체로 사실이지만, 육아 전반에 걸친 에너지 총량은 아들딸 모두 같지 않을까?(우연이지만, 내가 속한 입양가족모임 '물타기연구소'의 구성원들은 모두 아들을 입양했다.)

불임이라서 입양했다?

입양가정 전체 통계에서 불임부부가 큰 비율을 차지한다는 이유로 '흔한 입양 동기'는 불임이라 못 박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불임이라서, 유산되어서, 사별을 해서…. 남다른 사연이 있는 이들이 입양을 차선책으로 택하는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므로 낳은 자녀가 있다거나 불임이 아닌 이들이 입양을 하면 칭송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불임이란 말로 입양 동기를 묶는 순간 그 안에 있는 다양한 배경들은 무시된다. 누군가에게 결혼 동기를 물었을 때 '미혼이라서 결혼했다'는 답을 듣는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불임이 입양에 앞선 상황이나 조건은 될 수 있으나, 전적인 동기라 말하는 건 지나치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거치는 복잡한 과정에 대해, 생물학적 원인에만 초점을 두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모든 입양의 최종적인 동기는 무엇일까? 당연한 얘기지만 '자녀를 원하기 때문'이다. 입양가족의 대화 중 "엄마가 아기를 낳지 못해서 널 입양했어"라는 말이 문제가 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임신할 수 있었다면 입양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뜻이 되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불임인 어느 한국인 부부가 서구의 한 나라에서 살다가 한국에 잠시 돌아왔을 때, 지금껏 전혀 겪지 않았던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했다고 한다. 그 나라에서는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 시험관 시술은 해봤느냐?" 꼬치꼬치 묻는 일이 없을뿐더러,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상한 취급을 받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일상적으로 이런 무례함이 자행된다. 어쩌면 불임에 따르는 고통의 상당 부분이 사회적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불임을 '무능력'과 연결하여 열등감을 갖는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은 인식의 틀을 바꾸어 극복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왜 제때 안 하느냐", "왜 아이를 안 낳느냐", "둘째는 왜 안 낳느냐" 등 혈연 중심주의에 소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까지 가세하여 이 사회에는 경솔한 말이 넘친다.

문제는 자신과 유전적으로 닮은 2세를 갖고자 하는 본능을 부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 본능이 불변의 진리인지도 의심스럽지만, 혈연이 아니면서 유전적 유사성을 보이는 경우는 어떤가. 입양가족들 중에는 서로 닮은 부모 자식들이 많다. 예전에는 기관에서 비슷한 외모를 가진 아기를 연결해주는 경우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우연히 맺어졌는데 닮은 경우도 흔하다. 생활환경을 공유해서 닮아가기 때문이라며, 이를 '영혼의 유전자'라고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이도 있다.

▲ 자원봉사자가 입양될 아기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두는 일

나는 자녀 사별과 이혼을 겪은 후 독신자 입양을 했다. 동생 부부가 가까이 살면서 입양 과정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의 아픔에 함께했던 직장 동료들은 자신의 일인 듯 걱정을 했다. '부부가 입양을 해도 힘들 텐데 어떻게 독신자 입양을 하겠다는 건지, 그냥 혼자서 자유롭게 여행 다니며 사는 게 어떨지' 조심스레 조언을 하곤 했다. 그러나 연로하신 아버지는 내 입양 의사를 듣고 딱 한마디 하셨다. "네 뜻대로 해라. 다만 잘 알아보고 해라. 큰 복이 될 수도 있고 화가 될 수도 있으니…."

나는 입양가족모임 사이트를 검색하며 많은 글들을 접하고 공부했다. 입양을 쉬쉬했던 옛날과 달리 사명감을 가지고 입양을 홍보하는 가족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비 입양부모들이 주변의 반대가 극심해서 고민한다는 얘기도 접했다. 흔한 반대의 말들을 추려보면 이렇다. "내 자식 키우기도 힘든데 남의 자식을 어떻게 키우려고? 기껏 키웠다가 '친부모' 찾아간다면 어떡할래?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야. 누구 피인 줄 알고 키우겠다는 거야? 사람 천성은 바뀌는 게 아니야. 나중에 입양 사실을 알고 나쁜 길로 빠지면 어쩔 건데?" 등.

아들 다엘의 초등학교 입학 후 입양 사실을 알게 된 한 학부모가 대뜸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대단하시네요. 나는 내 자식 키우기도 힘든데…." 다엘이 내게 한순간이라도 남의 자식인 적이 있었던가? 수많은 말들의 홍수 속에서 일일이 대응을 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속에 똬리 틀고 있는 편견부터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이 세상에 오는 길은 다양하기에 축복이나 사랑이 아닌 범죄의 결과로도 태어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 태어난 생명이라도 생명 자체로 귀하게 여길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핏줄이나 천성에 대한 편견은 막장 드라마뿐 아니라, 오랜 세월 수많은 신화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머리 검은 '짐승'이 아닌 '사람'을 거둬야 한다는 사실이다. 친구들과 만든 입양모임 물타기연구소는 모성애와 입양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모성애는 때로 본능일 수 있으나 입양은 언제나 본능에서 출발한다.'

다른 건 몰라도 건강하면 된다?


입양을 앞둔 부모들의 요구 중 "다른 건 몰라도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혈액형이나 성별에 집착하는 것보다 언뜻 유연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건강 역시 온전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입양 기관에서는 아이의 건강을 엄밀히 진단하여 정보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임신 중 생모의 열악한 상태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 난감한 고민이 시작된다. 발생할지도 모르는 앞으로의 문제들에 대해 걱정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다엘을 입양하기 전 동생, 어린 조카와 함께 입양가족 캠프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뇌병변 장애아를 입양한 한 어머니의 얘기를 들었다. 중증 장애를 가진 아기를 위탁하여 키우던 중, 그 아이를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번민의 날들을 보내며 '하느님, 저 어떡하실 거예요?'라고 기도했다 한다. 결국 아이를 입양하고 힘든 재활치료 가운데에도 웃음으로 함께하는 삶에 대해 들려주었다. 캠프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동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언니가 입양하는 아기한테 혹시 장애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난 아무래도 회의적인데…." 사별을 경험한 내가 또 아픔을 겪게 될까 봐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난 감수할 수 있어." 여덟 살 된 조카도 웃음을 머금고 따라 말했다. "나도 감수할 수 있어!"

생모가 태교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산전관리도 안 했을 것이라는 염려는 당연히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입양가족은, 임신 중 음주 흡연 전력이 있는 생모에게서 태어난 자신의 아이들이 건강히 잘 크고 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오히려 나이 많은 자신에 비해 젊은 생모에게서 태어나 그런지 건강하다는 말과 함께. 온갖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하는 이에게 새로운 길은 열리지 않는다.

다엘이 입양되기 전에 있었던 보육원에는 늘 아기들의 감기약이 쭈르륵 세워져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집단시설에서 아기들이 커야 하는 현실이, 생모의 산전관리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시설에 오래 있는 아이들일수록 면역력이 떨어져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건강이 걱정된다면 과거의 생모 전력을 염려할 게 아니라, 입양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여 시설 아닌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먼저다. 어린 시절 감기를 많이 앓았던 다엘은 지금 튼튼한 소년으로 잘 자라고 있다. 좀 더 빨리 입양했다면 더 튼튼했을 것이다.

입양특례법 개정을 요구하며

다엘을 처음 만난 건 보육원 봉사활동에서였다. 당시 생모의 입양동의서가 없었기 때문에 다엘은 입양 대상 아동이 아니었다. 보육원 원장이 각고의 노력 끝에 생모를 찾아 입양동의서를 받고서야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당시 독신자 입양이 처음 실시된 때라서 보육원 측에서는 탐탁지 않았겠지만, 동생 부부가 만일의 경우 자신들이 입양할 수도 있다며 서류를 제출하는 등 정성을 다하자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 당시는 행정기관에 신고만 하면 입양 절차가 종결되던 시절이었다(지금은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따라 법원허가제의 엄격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2012년 8월부터 시행된 입양특례법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입양을 위해서는 먼저 생모가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예비 입양부모는 심신의 건강, 범죄 전력 여부, 재산 및 신용도, 최종 학력 등 다방면에 걸친 증빙서류를 준비하여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헤이그 국제 아동입양협약은 원(原)가정 양육을 첫 번째 원칙으로 하고, 차선으로 국내 입양을, 그리고 해외 입양은 최후의 수단으로 하며 국가가 모든 절차를 통괄하도록 했다. 현행 입양법은 이 협약에 충실하기 위한 전제다.

ⓒ민들레


이렇게 이상적으로 보이는 법과 국제협약에 충실하면 희망이 보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는 비극적이다. 출생신고를 두려워한 미혼모들의 영아 유기, 해외 입양 축소와 국내 입양의 까다로운 절차로 인한 입양 지연, 그 결과 시설에 넘쳐나는 아이들이 비극적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제도는 바뀌었으나 대중의 인식은 제자리인 데서 비롯된 결과이다. 미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에는 성을 바라보는 엄숙주의와 혼외 출생자에 대한 전근대적 차별이라는 가치관이 녹아 있다. 낙태와 피임, 성 윤리에 대한 솔직한 담론과 미혼모에 대한 대폭적 지원 등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국제 기준의 법만 강조한다면, 희생되는 것은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아이들이다.

입양가족모임에서는 청소년 미혼모가 원한다면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도 입양을 의뢰할 수 있도록 입양특례법 예외 조항을 만들 것을 요구해왔다. 출생신고를 피하려는 미혼모들에 의해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숫자가 폭증하자, 이는 입양특례법 탓이 아니라 언론에서 널리 다룬 탓이라며 베이비박스를 폐쇄할 것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쯤 되면 그 편협함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한 교회의 목사와 봉사자들은 탯줄이 그대로 붙은 채 들어온 아기를 씻기며 눈물 범벅이 되었다고 한다.

해외 입양인들의 알 권리도 중요하고 미혼모의 양육권도 중요하다. 그러나 미혼모가 되었다고 학업 포기를 종용 받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비난과 모욕을 당하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냉정히 파악하는 게 먼저다.

지금처럼 엄격한 절차를 따라야 했다면 다엘은 결코 입양될 수 없었다. 까다로운 절차 자체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제도의 밑바탕에 있는 편협하고 경직된 원칙주의를 짚어보고 싶다. 입양 인식이 일천한 한국 사회에서 국제 기준만 주장하기 전에, 시설의 집단 양육에 맡겨진 아이들의 실태를 제대로 살펴봤으면 좋겠다. 입양부모들은 내 아이가 입양되지 않았다면, 집단 보육시설에서 성장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아찔함을 느끼곤 한다. 하여 우리는 앞으로도 입양특례법의 재개정을 요구하고 의식 개혁을 촉구하는 데 앞장설 것이다.

베이비박스 :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상자. 유기되는 아기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juin999@hanmail.net 다른 글 보기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