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동물복지, 농장동물 위해 100년간 토론하다
유럽의 동물복지, 농장동물 위해 100년간 토론하다
[작은것이 아름답다] 고통 없이 살고 죽을 권리
유럽의 동물복지, 농장동물 위해 100년간 토론하다
농장동물은 낯선 공간으로 이동할 때 큰 두려움을 느낀다. 이동할 때 밀도와 이동거리는 동물의 고통과 직결된다. 대부분 처음 이동하는 농장동물이 겪는 공포와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동물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모든 동물은 '고통 없이 살고 죽을 권리'가 있다.

두려움과 고통에서 자유로울 권리

1824년 영국에서 첫 동물보호단체가 생긴 뒤 독일을 포함한 여러 유럽 국가들 내에서 동물보호 운동이 활발히 이뤄졌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동물보호 운동뿐만 아니라 동물복지 연구를 기반으로 한 동물보호 정책과 법이 다양하게 제정됐다. 동물복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럽 시민 의식과 사회적 분위기는 세계에서 모범이 되고 있으며 유럽의 동물복지 법 규정과 정책은 다른 국가들에게 동물복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1979년 영국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rm Animal Welfare Council)는 인간이 사육하는 농장동물 복지에 있어 동물의 5대 자유를 제시했다. 이는 한국의 동물보호법 제 3조, 동물보호의 기본원칙 제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동물복지를 적용한 운송과 도축 과정은 동물의 5대 자유 가운데 '통증, 부상, 질병으로부터의 자유'와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가 연관돼 있다.

독일의 많은 동물복지학자들은 이러한 자유가 제공될 수 있는, 현실 가능한 도축장 환경에 대해 조사하는 동시에 도축장에서 동물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연구했다. 그 결과물이 다양한 법규와 정책의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통 산란계는 부화하고 1년 4∼6개월 정도를 살며, 육계는 부화하고 30∼35일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돼지는 보통 육돈으로 사육되는 하이브리드종 경우 체중이 100킬로그램 정도에 도달하면 도축된다. 이정도 체중이 되기까지 약 6개월 정도가 걸린다. 닭은 살면서 두 번 정도 차량 이동을 하는데, 부화장에서 사육장으로 옮겨질 때와 사육장에서 도계장으로 옮겨질 때이다. 대부분 육돈은 살면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건 한번이다. 축사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특정 몸무게에 도달해 도축장에 옮겨질 때가 바로 그 한번이다.

이때 동물들은 낯선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동물에게 직접 체벌이나 거친 핸들링을 하면 매우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심지어 처음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멀미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낯선 동물들과 함께 승차한 탓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급정차나 급제동 때문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특히 동물 이동시에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는 차를 탈 때와 내릴 때 높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다.

동물복지에서 고통과 두려움을 최소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농장동물들이 운송되는 과정과 도축되기 직전에 어떻게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지 많은 고민들과 연구가 진행됐다. 특히 사회적인 동물에게 자신의 눈앞에서 다른 동종이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엄청난 공포를 일으키는 일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물 앞에서 동종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법조항이 한국 동물보호법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규정에도 명시돼 있다.

▲ 동물의 고통과 두려움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건 동물에 대한 예의에서 출발한다. ⓒpoliticalanimal.org.uk


100년 연구를 통해 동물과 마주하다

독일 동물보호법(Tierschutzgesetz)은 기본법, 한국의 헌법에 해당하는 법률로 공포됐다. 동물보호법에 딸린 하위법으로 동물보호농장동물사육법, 동물보호도축법, 동물보호동물운송법, 동물보호개법이 있다. 동물보호도축법에는 도축장 동물 관리, 도축장 내 근무자 자격 조건, 움직임을 제한하는 동물 보정, 동물을 기절시킬 때 준수해야 하는 최소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 이는 유럽연합의 '도축 시 동물보호 규정(Council Regulation No. 1099/2009)'을 기반으로 제정됐다.

동물이 도축장에 도착해 내릴 때 하차대의 각도가 20도를 넘어서는 안 되며, 계류장에서는 깨끗한 마실 물이 충분하게 제공돼야 한다. 상자에 담겨 운송된 동물은 차에서 내린 뒤 2시간 안에 도축하지 않을 경우 마실 수 있는 물을 반드시 주어야 한다. 동물이 도축장에 도착해 6시간 안에 도축하지 않을 경우 적정한 사료를 주어야 한다. 동물 특성상 함께 계류된 다른 동물의 성별, 나이, 출신에 따라 서로에게 공격성을 보인다면 분리해 계류하도록 한다.

2013년부터 도축장 내 동물이 기다리는 공간의 근무자, '기절·방혈·적출' 관련 모든 근무자들은 독일 동물보호도축법 4조항과 유럽연합 규정 1099/2009 7조항에 따라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독일은 지자체마다 설치된 동물검역, 식품 위생, 동물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수의국에서 도축장 근무자들에게 자격증에 필요한 현장 교육을 한다. 교육과정은 소, 돼지, 양, 염소, 말 과정과 가금류 과정, 토끼 과정으로 나눠져 있다. 필요에 따라 동물마다 적용하는 차량 핸들링, 관리, 보정, 기절, 방혈, 매달기 분야에 대한 시험을 거친다. 교육을 신청할 때 참여자는 도축할 때 어떤 분야, 어떤 동물, 어떤 기절에 대한 시험을 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한 동물종 수에 따라 마취와 관련된 이론교육을 3~6시간 받는다. 교육을 마친 뒤 수의국에서 필기, 구두, 실습 시험을 치른다. 시험에 모두 합격하면 독일 동물보호도축법과 유럽연합 규정에 따라 거주하는 곳 담당 수의국에서 자격증을 받게 된다.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100년 넘는 시간 동안 농장동물에 대한 예의를 바탕으로 사람답게 이용하기 위한 다양한 내용을 지속해 토론했다. 이를 바탕으로 동물복지학자들은 현실 가능한 방안을 연구를 통해 제시했다. 현재 많은 나라들의 동물복지 정책은 이런 과정을 통해 마련됐다.

동물의 감정을 존중하는 이동과 도축

종종 도로에서 개방된 화물트럭에 농장동물을 싣고 이동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동할 때 밀도와 이동거리는 동물의 고통과 직결된다. 열악한 기후상태에 그대로 노출된 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비좁은 상태로 이동할 때 동물이 겪는 두려움과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2013년 개정한 국내 동물보호법 제9조에 동물운송에 관한 규정이 있다.

'운송 중인 동물에게 적합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고, 급격한 출발·제동으로 충격과 상해를 입지 않도록 할 것, 동물 운송차량은 운송 중에 동물이 상해를 입지 않고, 급격한 체온 변화, 호흡곤란 같은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출 것, 병든 동물, 어린 동물 또는 임신 중이거나 젖먹이가 딸린 동물을 운송할 때에는 함께 운송 중인 다른 동물에게 상해를 입지 않도록 칸막이 설치 같은 조치를 할 것, 동물을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동물이 들어있는 운송용 우리를 던지거나 떨어뜨려서 동물을 다치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 운송을 위하여 전기몰이도구를 쓰지 말 것.'

문제는 동물보호법에 규정한 운송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데 있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는 농장을 빼고는 대부분 먼 거리를 고통 속에 이동한다. 동물의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이동은 태어나 짧은 생을 사는 농장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무엇보다 우선 이동 차량의 규격과 구조를 정해야 하고, 무진동차량 같은 동물복지 차량이 도입돼야 한다. 동물 운송을 맡은 운전자가 규정에 따라 이동하도록 교육하고 의식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아울러 동물이동 관련 내용을 더욱 세심하게 법령으로 규정하고 유럽 수준의 체계를 갖춰야 한다.

도축도 동물보호법 10조 동물복지 도축체계에 따라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도축해서는 안 되며,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한 방법에 따라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며,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다음 도축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동물복지 도축장은 도축과정을 일일이 모니터링 해야 하고, 기존 도축장보다 많은 도축 인력이 배정돼야 한다. 정부는 이산화탄소 기절법을 유도하지만, 민간 도축업체들은 비용 때문에 대부분 전기를 쓴다. 조금만 더 배려해도 동물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도축예약제'를 통해 늦게 도착한 동물들이 화물트럭에서 물이나 사료도 먹지 못하고 사흘 넘게 기다리는 고통을 덜 수 있다.

최근 국제 사회에서도 세계동물보건기구(OIE), 국제표준화기구(ISO)를 중심으로 동물복지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동물복지를 실천하지 않는 도축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수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도축장 현황은 포유류 86개소, 가금류 62개소이다. 이 가운데 동물복지 도축장은 4곳뿐이고, 제주에 2곳이 추가될 예정이다. 갈 길이 멀다. 정부가 도축장을 전수 조사해 동물복지 도축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현재 동물복지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책 제안과 확립에 필요한 동물복지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다. 이윤만을 앞세우면 동물복지는 불가능하다. 동물에 대한 예의,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생명은 어떠한 존재든 '행복하게 살고 고통 없이 죽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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