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강원 홍천에 자리 잡다
청년들, 강원 홍천에 자리 잡다
[귀농통문] 농도상생 마을공동체 '밝은누리'
청년들, 강원 홍천에 자리 잡다

서울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내려 지선버스를 타고 종점 즈음 인수동에 내립니다. 따로 마을을 표시하는 울타리나 팻말 같은 게 없지만, '밝은누리(인수동 터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북한산 아랫마을입니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마을 이웃들과 섞여서, 청년들, 가정들이 아이 데리고 걸어서 밤마실 다닐 수 있는 거리에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아침 인사를 나누며 마을 어린이집이나 마을 초등학교로 향하면, 마을 밥상에선 밥상지기들이 점심 준비를 시작합니다. 어린 아기를 키우는 육아 주체, 마을에서 필요한 일들 찾아서 하는 사람,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 등 마을에서 지내는 이들은 물론, 지나다 들른 북한산 등산객, 주변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인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점심 밥상을 찾아옵니다. 저녁에는 어린이들이 또래들, 부모, 이모 삼촌들과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밥을 먹고, 도심에 있는 일터로 갔다가 퇴근하고 돌아온 직장인들이 밥상을 나누며 하루 피로를 풀고 기운을 전환합니다. 건강한 식재료를 들여와 식당 전반을 운영하는 밥상지기가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돌아가며 밥상 뒷정리를 돕고, 때때로 김치 담그기나 마늘 까기, 효소 담기, 대청소 같은 큰일들은 마을 울력으로 힘 모아 함께합니다.


▲ 마을밥상 풍견(인수동 터전). ⓒ최소란


비혼여성, 비혼남성들이 도시에서 시작한 '밝은누리'

'밝은누리'는 25년 전 청년 학생들이 모여서 시작했습니다. 학자금, 생활비 대기 쉽지 않은 학생들이 비혼여성들끼리, 비혼남성들끼리 한집에서 사니 따로 집 마련이나 불필요한 대출, 소비, 적금에 허덕이지 않아도 되고, 날마다 밥도 함께 챙겨 먹고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청년 학생 때 품었던 문제의식이나 깨달음을 놓지 않고 삶으로 일관되게 이어갈 수 있고, 진로나 이직, 독립, 연애, 결혼에 대한 고민도 혼자 끙끙대기보다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었지요. 공동체 집에서 생활하면서 스스로 살림하는 역량도 기르고, 이사나 도배, 내부 장식, 집수리 등도 외부 전문 업체에 맡기지 않고 힘 모아 해결합니다.

그렇게 살다 누군가 짝꿍을 만나 혼인을 하게 되면, 마을 친구들이 기획단을 꾸려 혼인 잔치를 준비합니다. 신부와 신랑 둘이 한 몸 되어 살아갈 삶을 다짐하고 축복하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예식 상품을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아름답고 흥겨운 잔치가 마련됩니다. 가족과 지인들은 물론 초대받은 손님들 모두 소외되지 않고 즐거움 나누고 돌아가도록 주차 안내부터 예식순서, 잔치 밥상까지 마을 사람들이 도맡습니다. 시간 내고 마음 내어 크고 작은 역할로 수고해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은, 신혼부부가 더 생기 있게 살아가도록 지켜주겠지요.

아이를 품고 낳고 기르는 과정도 가정뿐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생명의 경이로움을 몸으로 느끼고 깨닫는 과정으로 함께 통과해갑니다. 임신·출산·육아를 여성만의 또는 가정만의 일로 여길 까닭이 없지요. 부모가 너른 품으로 작은 생명을 돌볼 수 있도록, 격려의 눈빛을 보내주고, 엄마와 아빠를 따라 날마다 마을밥상이 와서 배밀이 하던 아기가 어느덧 아장아장 걸으며 첫 돌을 맞이하면, 마을사람들 함께 돌잔치를 합니다. 부모와 아이가 어떤 나날을 보냈는지 잘 아는 친구들은, 아이가 살아갈 삶과 세상에 대한 바람을 담아 돌잡이 선물과 공연을 선사하지요.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르지 않고 우리 아이들로 함께 키워가는 정성이 모여 마을 어린이집, 마을 초등학교가 생겨났습니다. 아이들은 가정 울타리 넘어 삶으로 가르치는 마을 이모와 삼촌에게 배우고, 교육과 일상이 동떨어지지 않은 마을이라는 관계망을 토대로 신나게 자라갑니다. 때때마다 열리는 잔치는 아이들 배움을 갈무리하며 성장을 확인하는 찰나이기도 하고, 어린이와 어른 모두 한껏 어울려 놀면서 함께 사는 기쁨과 고마움 나누는 자리기이도 합니다.


▲ 마을에서 태어난 아기 첫돌 잔치. ⓒ최소란


대안적 생활양식으로서 農都 상생공동체를 꾸리다

혁명의 불꽃은 광화문 촛불에서부터 타올랐지만, 집회 이후 전철 타고 흩어진 뒤 먹고(식), 입고(의), 쉬고(주), 놀이하는(락) 일상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 속속들이 침투하는 강력한 힘을 거슬러 대안적 생활양식을 만들 수 있는 장이 '마을'입니다. 집에 있는 책과 책장을 한 데 모아 함께 공부하는 마을 서원을 만들고, 자동차를 공유해서 쓰고, 마을사람 누구나가 주인공인 마을 신문을 펴내고, 상상력과 재능을 모아 꿈을 현실화하는 마을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든든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소비산업 문명의 한계를 넘어 생의 근원인 땅, 생산하는 삶을 찾아 농촌으로 향했습니다.

공동체 귀농귀촌에 뜻이 모였습니다. 선발대를 꾸리고, 직장을 정리하거나 전근 발령을 내기도 하고, 집짓기, 농사, 교육, 밥상 등 역할을 나눠서 생전 해보지 않았지만, 막연히 해보고 싶던 일들에 뛰어들어 몸소 배우고 겪어가며 귀농귀촌을 준비해나갔습니다. 기금도 모으고, 강원 홍천 서석면에 터를 잡았습니다. 인수동 마을 초등학교에서 함께 배우며 자라온 아이들은 2011년 봄 문을 연 생동중학교로 첫 입학했습니다. 청소년들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마을을 토대로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며, 나 아닌 다른 생명과 관계 맺고 어우러져 사는 삶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식을 배우되 앎을 자기 삶과 연결 짓는 힘을 길러갑니다.

농촌으로 와보니, 근대산업화 이후 도시에 일방적으로 수탈되어온 농촌 현실이 보였습니다. 상품화된 농작물과 집짐승들은 생명력을 잃고 신음하고 땅은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익숙해진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농촌으로 옮겨올 순 없었습니다. 홍천터전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양변기를 없애고 작은 생태뒷간을 지었습니다. 오줌과 똥을 분리하여 발효시키면 싫은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훌륭한 퇴비가 됩니다. 인수마을에서도 밥상 부산물과 오줌을 모아서 보내주었습니다. 우리 몸에서 나온 것, 이랑에서 뽑은 풀, 산에서 퍼온 부엽토 등으로 밭 거름을 쓰고, 밭은 건강한 작물을 우리에게 내주는, 생명순환농법으로 하늘땅살이(농사)를 합니다. 이 땅에 대대로 내려온 토박이 씨앗을 곧뿌림(직파)하고, 또 수확 철이면 이듬해 뿌릴 씨앗을 받습니다. 다품종소량생산이기 때문에 땅 힘을 약화시키는 비닐 집이나 비료, 기계는 쓰지 않습니다. 마을에서 아이를 기를 때와 마찬가지로 몸소 밭 생명을 길러보지 않았다면, 우리 손으로 하늘땅살이 하지 않은 먹을거리를 사 먹을 때의 염치 같은 걸 떠올려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밝은누리'는 강원 홍천과 서울 인수동을 오가며 서로를 살리는 농도상생 마을공동체입니다. 지금도 주말이나 휴가 때면 인수마을 사람들이 (길 막히는 시간을 피해) 이른 아침부터 차를 나눠 타고 130km를 달려 서석마을로 옵니다. 하늘땅살이나 집짓기 같은 울력에서 보람 있는 땀방울을 흘리고, 구들방 장작도 패고, 산이나 들에서 따온 것으로 친구들과 맛난 참도 해 먹고, 심심함도 느끼며 며칠 동안 재충전하고 삶터로 돌아가지요. 또 주중에는 서울에서 직장 다니다가, 주말이면 서석마을에 와서 수업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2014년 문을 연 고등·대학통합과정 '삼일학림'은 청소년 학생과 성인 학생이 함께 배우는 대안 교육기관입니다. 얼밝히기(철학수신), 하늘땅살이, 집짓기, 마음닦기, 그밖에 다양한 지식교과 수업이 열리고, 스스로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설정하여 찾아가서 공부하기도 합니다. 청소년 학생 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를 포함한 성인 학생들도 더 잘 사는 삶이 무엇인가 질문을 품고 꾸준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 마을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지은 홍천 밝은누리 터전. ⓒ최소란


교육·문화·복지를 함께 해결하는 마을 만들기

저희 가정도 인수마을에서 서석마을로 이사 온 지 3년이 되었습니다. 마을을 일구는 앞선 발걸음, 자연과 조화 이룬 집들 한 채씩 지어나가는 모습, 밭에서 얻은 선물들로 차리는 소박한 밥상,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배움의 길 걷는 모습, 한 마을 사는 어르신들과 인정 나누는 모습들 보면서 선뜻 마음 낼 수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와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마을 친구들이 있기에 기쁜 일 슬픈 일 함께 나누며 서로 지켜주며 살고 있습니다. 시골 사는 재미 전해 듣고 이사 올 때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이들도 있지요. 귀촌해서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들과도 아이들 함께 키우며 폐교 위기의 분교를 살리고 있습니다.

전교생 스무 명인 작은 학교에 아이들을 함께 보내고, 학교에서 필요한 돌봄이나 배움, 일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아이들, 지역 아이들 함께 어울려 배우면서, 우리가 지금 옆에서 관계 맺고 있는 생명들과 정성스럽게 만나고, 자기 삶을 사랑하고 가꾸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대안학교를 해왔던 정신으로 지역학교를 일구어가는 것이지요. 학교 선생님들과 지역에서 살아오신 학부모님들과도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정감 있게 소통하면서 마을공동체 교육에 대한 공감과 신뢰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젊은이들이 당장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갈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도시에서의 직업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돈으로 환산되는 노동에만 자기를 끼워 맞춰 살지 않고 보다 능동적으로 꿈을 펼쳐갈 수 있습니다. 먹고, 입고, 쉬고, 어울려 놀고, 공부하고,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고, 사회 변화에 참여하고, 텃밭 가꾸고…. 우리 삶을 이루는 여러 가지 면을 생각하면 직장도 그 가운데 한가지일 뿐입니다. 살고 싶은 삶을 노후로 미루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한발씩 내디디면 됩니다. 도시에서 살되 농촌에 자기 삶의 근거를 두고 인수마을과 서석마을을 오가는 젊은이들이 농촌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농촌에서 함께 교육·문화·복지를 함께 해결하는 마을 공동체를 살아나게 합니다. 나라는 생명, 너라는 생명이 서로 이어져 있는 온 생명이고, 당신이 있기에 나도 있다는 생각으로, 함께 모여 삶의 문제를 풀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마을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마을은 건물도 아니고 사업도, 자본도 아닙니다. 생명과 생명, 자연과 사람, 나와 당신이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같은 씨앗을 뿌려도 밭마다 또는 싹마다 똑같지 않은, 저마다 고유한 열매를 맺듯이 이 땅 곳곳에 자연과 사람이 서로 살리는 삶, 마을, 밝은누리가 움트길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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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7년 10월 현재 8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