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낙태죄, 국가와 남성 빼고 여성에게만 책임 물어"
靑 "낙태죄, 국가와 남성 빼고 여성에게만 책임 물어"
조국 靑수석 "처벌 위주 정책 부작용...사회적 논의 필요"
2017.11.26 15:09:18
靑 "낙태죄, 국가와 남성 빼고 여성에게만 책임 물어"
청와대가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에 관한 국민 청원에 내놓은 공식 답변은 '정확한 실태조사가 먼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태아 대 여성, 전면 금지 대 전면 허용 식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26일 오후 청와대 홈페이지 등에 게시한 동영상을 통해 지난 9월 30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해 "2010년 이후 실시되지 않은 임신중절 실태조사부터 2018년에는 재개하기로 했다"면서 "임신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된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한 번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사건이 진행 중"이라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공론의 장이 마련되고 사회적 법적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임신한 여성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낙태를 선택하게 될 수 있는데,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을 조화롭게 하는 방법이 있다"며 1970년대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을 예로 들어 "임신 후 일정 기간은 낙태 허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조 수석은 "법 개정을 담당하는 입법부에서도 함께 고민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자연유산 유도약의 합법화 여부도 이런 사회적, 법적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 임신중절 관련 보완대책도 다양하게 추진하겠다"며 "먼저 청소년 피임 교육을 보다 체계화하고, 내년에 여성가족부 산하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해 가능한 곳부터 시범적으로 전문 상담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 제안이 올라와 참여 인원이 23만5000여 명에 달하는 호응을 얻었다. 조 수석의 공식 답변은 청원이 올라온 지 30일 내에 20만 명을 넘으면, 관련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급 인사가 답을 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청와대를 대표한 조 수석이 낙태죄 폐지에 관한 직접적인 찬반 입장 표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태아의 생명권'에 비해 그동안 묵살되어 왔던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함으로써 향후 낙태에 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수용할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평가다.

조 수석은 지난 2012년 헌재가 4대4로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린 결정문을 소개한 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제로섬으로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임신중절이 실제로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며 가장 최근 조사인 지난 2010년 자료를 인용해 "추정 낙태 건수는 16만9000여 건이나 의료기관에서 행해진 합법적 인공 임신중절 시술 건수는 1만800여 건으로 합법에 의한 영역은 6%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조 수석은 이어 "임신중절을 줄이려는 당초 입법 목적과 달리 불법 임신중절이 빈번히 발생하는 현실"이라며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불법 시술 양산 및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 원정 시술, 위험 시술 등의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있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여성의 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조 수석은 "Δ 교제한 남성과 최종적으로 헤어진 후에 임신을 발견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Δ 별거 또는 이혼 소송 상태에서 법적인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발견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Δ 실직이나 투병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 양육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에서 임신했음을 발견한 경우, 어떻게 하나?" 등 현행 법체계의 모순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를 들며 "이런 세 가지 경우 현재 임신중절을 하게 되면 그것은 범죄"라고 지적했다.

조 수석은 이어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천주교 등 종교계의 반발을 우려한 듯, "근래 프란체스코 교황은 임신중절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며 "이번 청원을 계기로 우리 사회도 새로운 균형점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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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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