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새 집행부 선출을 위한 임원선거 일정에 돌입했다. 이번 임원선거에는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 이호동 전 발전노조 위원장, 윤해모 전 현대자동차지부장, 조상수 현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등 4명의 후보가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입후보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대부분 후보가 비슷한 공약을 내걸고 있어 딱히 쟁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나마 언론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요구하는 노사정위원회의 복귀 여부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노사정위 복귀 여부를 비롯해, 각기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과 선명성을 드러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프레시안>에서는 민주노총 선거 관련, 쟁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차기 집행부에서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프레시안>은 민주노총의 미래와 관련해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논쟁이 활발히 이뤄지길 바라며 지면을 열어 놓을 예정이다. (기고 보낼 곳 : kakiru@pressian.com)
며칠 전 <프레시안>에 금속노조 조합원이 기고한 글 <'정파정당'과 '정치혐오' 오가는 민주노총 선거>에 대해 마트노조 정준모 조합원이 모 매체에 반박 기고를 냈다. 그런데 그 기고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노동자 사회세력화'를 강조하는 주장을 오해하거나 초점을 비껴간다. 뜬금없이 '믿음'이란 품성을 강조하며 의지주의로 끌고 가는 것도 보인다. 우선 일부의 오해나 쟁점 혼동이 '노동자 사회세력화' 주장이 미진했기 때문일 수도 있기에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 '정파정당'과 '정치혐오' 오가는 민주노총 선거)
왜 '노동자 사회세력화'를 고민하는가?
노동자 사회세력화를 정치세력화 포기라고 대응하는 건 잘못된 만남이다. 노동자 사회세력화는 강력한 정치세력화로 나가는 필수 경로다. 아직도 노동자 대중은 질로 보나 양으로 보나 하나의 유력한 계급으로 형성되지 못했으며, 이는 노동운동의 천명과도 같은 기본과제다. 90%에 달하는 노조 밖 노동자를 노동운동의 주체로 세우고 노동조합으로 묶어내는 일, 그 중심에 민주노총이 서도록 최대 역량을 집중하자는 것이 노동자 사회세력화의 강조점이다.
사회세력화 논쟁이 새삼 민주노총 선거의 1번과 4번 후보 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1번 김명환 선본도 인정하듯, 고립이 우려되는 현재의 민주노총은 사회적 영향력을 높이고 대중적 기반을 넓혀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노동 중심 진보정당이 대중정당으로 발전하고 활발한 의회진출과 집권의 전망도 제시할 수 있다.
4번 조상수 선본은 노동자 사회세력화를 "전체 노동자의 일치된 정체성과 조직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급형성)과제"와 "노동조합의 조직화 등 사회적 영향력을 높이는 (노조세력화)과제", "민주노총의 조직과 활동의 대중성을 높이는 (노동운동대중화)과제"로 제시하면서, 궁극적으로 사회세력화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랄 것도 없으며, 엄밀히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분리되는 내용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제대로 정치세력화를 하자'고 늘 주장하던 대로 말하면 되지 왜 굳이 '사회세력화'란 말로 혼란을 주냐고 물을 수 있다.
필자는 사회세력화라는 의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하냐 마냐는 원론 이상의 문제의식이 담긴 문제이고, 정치세력화의 실패를 성찰하는 현실 진단이 다르며, 정치세력화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 혹은 집중해야 할 과제에 대한 강조점도 다르기 때문이다.
진보대통합은 민주노총의 지상과제
모두가 좋아하는 말로 표 모으기도 바쁜 선거판에서 애써 생소한(?) 언어로 승부하는 것은 그만큼 혁신 의지가 높다는 방증이다. '사회세력화'라는 낯선 화두를 던지는 것은 대중운동 확장에 기초하지 않는 정치세력화, 즉 분열된 진보정당 통합이 정치세력화의 '절대반지'인양 여기는 통념을 혁신해야 한다는 의지다. 확신컨대 진보정당의 전격적인 통합은 '상당 기간' 불가능하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의지나 정치세력화 강령을 강변한다고 희망의 근거가 될 순 없다. 이미 그걸 아는 민주노총 조합원과 대의원들은 지난 대의원대회에서 해당 정치방침 원안과 5개 수정안 모두 폐기시켰다. 그럼에도 1번 선본은 통합을 재추진하겠다며 진보대통합을 '민주노총 지상과제'라고 말한다. 노동조합 운동의 일대 진전을 일궈야 할 역사적 시기에 그들만의 당 통합 논란으로 또다시 역량을 소모시키자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진보대통합이 민주노총의 지상과제'라는 주장에 대한 '우려'를 정준모 조합원은 엉뚱하게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부정'으로 치환한다. 이는 정치세력화 강령의 권위를 빌어 진보대통합의 명분을 살리려는 의도이자, 정치세력화를 진보대통합과 동일시하는 협소한 단정이다. 그게 아니라 순전한 오해라면 정준모 조합원의 글은 노동자 사회세력화 주장과 토론할 준비가 안 됐다.
그가 반박한 <프레시안> 글에선 "사회세력화는 정치세력화를 부정하는 경로가 아니다"라고 못 박고 있다. 이에 더해 '진보정당 통합으로 귀결된 실패한 정치세력화', '진보정당통합과 같은 말이 돼버린 정치세력화'라는 수식어를 통해 수차례 비판 지점을 구체화했다. 토론을 하려면 정치세력화를 수식하는 구체적 논점에 초점을 맞춰 반박해야 한다. 그런데 손으로 달을 가리키니 손을 보기는커녕 해를 부정하냐고 따지는 격이다.
현실을 외면한 신념에 찬 의지주의
정준모 조합원은 '사회세력화'가 '조합원이 진보대통합을 하지 못 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며, '조합원의 변화 발전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니 '믿는다'고 외치면 될 일일까? 그 근거로 민주노총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한다. 하나는 맞다. 95.4%의 조합원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당연한 얘기고 앞서 얘기했듯 이건 쟁점이 아니다. 쟁점은 운동론의 당위가 아닌 현실에 있다.
실패한 정치세력화, 즉 진보정당통합이다. 같은 여론조사 결과의 팩트를 보자. 민주노총 조합원 5440명 중 17.3%만이 진보정당 통합 추진을 찬성했다. 그보다 많은 25.8%는 민주노총 내부 공감대 확보가 우선이라며 시기상조라고 했다. 그런데 정준모 조합원은 이 둘에 더해 '민주노총이 아예 별도로 당을 만들자'고 한 35.5%까지 버물리고 퉁쳐서 "78.6%의 조합원이 단일한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사실을 호도한다.
이와 달리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합원 2047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선 노조의 발전방향을 묻는 질문에 62.6%가 '노조가 지지받는 사회집단으로 발전해야'한다고 답했고 14%만이 '정치세력화를 통해 친노조 정서를 사회적으로 만들어야'한다고 답하고 있다.
지금 시기 진보정당 통합이 민주노총의 지상과제라 강변하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신념에 찬 의지주의에 불과하다. 되려 정치세력화의 비전마저 퇴색시킨다. 기반과 전략이 없는 주장은 정치세력화의 좋은 의미마저 빈껍데기로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지난 시기 진보정당운동의 실패에 대해 어떤 성찰을 말할지 되물어야 한다. 사회세력화는 민주노총이 노동자 대중운동을 통해 국민들로 부터 존재감과 신뢰를 얻고, 더 많은 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해 자본과 제대로 맞서 싸우는 일에 중심을 잡자는 강조다. 그렇게 진보적이고 자주적으로 세력화된 노동자 대중운동은 걱정하듯 보수개혁정당의 먹잇감이 될 수 없다.
정준모 조합원은 더 열심히 활동하는 민주노총이 일본 렌고(連合, 일본노동조합총연합체)보다 조직세가 약한 건 사회세력화 문제가 아니라 분단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의 예를 들어 통합을 설득하려 한다. 그렇다. 해외 사례가 있으니 희망조차 꺾이진 말자.
그런데 그걸로 다다. 안타깝게도 포데모스 사례는 우리와 꽤 다른 조건을 기반으로 한다. 그들은 사회운동 강화를 중점 노선으로 삼는데, 이 점은 되레 '사회세력화'를 상기시킨다. 또한 그들은 스페인의 양대 노총을 기반으로 조직되지도 않았고 정파 갈등이 한국처럼 심각하지도 않다. 게다가 정준모 조합원의 주장처럼 결정적으로 분단국가도 아니지 않는가. 사례를 들려면 매우 다른 조건임에도 왜 그토록 중요한지 설명이 필요한 법이다.
늘 하던 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복수의 진보정당보다는 하나 된 진보정당이 노동자에겐 더 좋다. 하지만 현재 조합원들이 던지는 의문은 그런 당위를 넘어선 현실 문제다.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에 대한 관심이 없고, 조합원과 괴리된 민주노총은 진보정당 통합을 주도할 힘을 상실한 상태다. 조합원들이 정치성을 잃어온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 나아가 진보정당들 간 심각한 갈등을 당장 어떻게 풀 수 있는지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답하지 않고 통합의 당위만 강변했던 결과가 바로 지난해 정책대의원대회와 올해 초 정기 대의원대회의 씁쓸한 결과다. 그러니 1번 김명환 후보는 자신의 공약과 달리 토론회에선 "민주노총이 통합을 주도하자는 말은 아니다"라고 후퇴하지 않았나 싶다.
무엇이 더 시급한가? '노동조합도 없고, 심지어 노동조합을 불편해하는 90%의 노동자들을 어쩔 셈인가?' 노동자 사회세력화를 통해 '연대하는 민주노총', '미조직 노동자들과 해후한 민주노총'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세력화는 물론 새로운 세상과 더 가깝지 않은가. 언제까지 5% 노총의 5% 진보정당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지만 불태워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진보정당 통합이 민주노총의 지상과제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어떤 성찰 끝에 그런 주장을 반복하는지 찾아볼 수 없다. 의지만 앞세운 '관철'은 민주노총 내 단결을 해치는데 일조해왔고, 정파 간 대결구도만 심화시켰다. 더 이상 반복해선 안 된다.
각자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모두 동의하지 않을까? 실패해도 꿋꿋하게 하던 대로, 늘 하던 얘기만 해서는 결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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