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통제와 억압의 한국 문화사
블랙리스트, 통제와 억압의 한국 문화사
[블랙리스트에서 여성혐오까지 ②] 통제하는 권력, 억압으로의 저항
일베 현상의 중요한 시사점 중 하나는 지성을 조롱하는 태도가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넷상에 발화했다는 것이다. 비단 일베뿐만이 아니다. 지식인의 권위는 인터넷 혁명과 맞물려 급전직하했다. 대중문화 비평이 더는 권력을 지니지 못한다. 뉴스의 정보 독점력도 사라졌다. 이른바 전문가로 지칭되는 이들의 뉴스 코멘트에 대중이 어떤 태도를 지니는가는 인터넷 포털 댓글로 확인 가능하다. 

그런데, 지성에의 거부감이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발달에 따라 커졌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이들 신문명이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평할 수는 있겠으나, 지성인을 향한 대중의 혐오는 오랜 연원을 가졌다는 평이 나오기 때문이다. 매카시즘 광풍 이후 미국의 당대를 정리한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역작 <미국의 반지성주의>(유강은 옮김, 교유서가 펴냄)는 미국 사회가 일찌감치 지성에의 불편함을 지니고 있었음을 사회 다방면의 분야를 향한 스케치로 그려냈다. 이는 과거의 현상이 아니다. 지난 미국 대선이 지식 계층의 예상과 다른 결과를 낳자, 미국 출판계는 올 한해 이 현상을 조명키 위한 책을 쏟아냈다. <힐빌리의 노래>(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흐름출판 펴냄), <자기 땅의 이방인들>(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유강은 옮김, 이매진 펴냄) 등은 힐러리와 민주당으로 정체성을 대변하던 이들을 향한 대중의 거부감, 이른바 ‘PC함’에 관한 미국 대중의 피로의 연원을 나름의 방식으로 찾으려 한 책이다. 

과감히 '반지성주의'라는 용어를 차용하자면, 오늘날 한국에서도 이는 하나의 강고한 흐름이 되었음을 쉽게 짐작 가능하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을 갈라 보길 거부하는 사회 태도, 이른바 '747 성장' 공약으로 대표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시대 착오적 공약에 열광한 대중, 약자 혐오를 정당화하려는 분위기는 어제오늘의 결과물이 아니다. 

특히 여성주의가 사회적 논쟁 대상으로 떠오른 지금, 여성을 향한 혐오는 미국의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 볼 가능성을 제시한다. 현상의 근원에의 이해를 거부하는 대중의 시각은 피해의식과 맞물려 강고한 흐름을 만들었다. 이는 여성집단의 대대적 반발로 더 커지면서 소셜 미디어를 막말의 전쟁터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오랜 기간 문화 현상을 관찰했고, 여러 매체에 관련 글을 쓴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로부터 받은 한국의 반지성주의에 관한 글을 나눠 싣는다. 필자는 글에서 한국의 반지성주의를 낳은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식민지 남성성을 꼽는다. 이를 바탕으로 약자의 상황을 애써 모르려 하는 태도가 집단 반지성주의로 현현했다고 그는 진단한다. 필자는 우리 문화의 반지성주의를 드러내는 현상으로 박근혜 정부 당시 행해진 블랙리스트 사태, 이명박 정부 시절 큰 반향을 낳은 나꼼수 현상, 그리고 최근 우리 사회를 달구는 반여성주의 현상에 관해 세밀한 의견을 글로 정리했다. 편집자. 

▲ 박정희와 박근혜. 한국의 문화 정책은 출발부터 억압과 통제의 양상을 강하게 보였다.


블랙리스트 : 통제와 억압의 문화사

직접적인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되지는 않았으나, 중요한 정치적 문제로 시민의 심각한 분노를 이끌어낸 사안 중 하나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박근혜 정부는 거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검열을 수시로 행하고 예술가들의 지원을 제한했으며, 특정 작품 발표를 막았다. 석 달에 걸친 재판 끝에 2017년 7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징역 3년 형을,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블랙리스트 건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문제를 사법부가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담은 판결문은 충격적이다. 정작 책임자인 전 대통령 박근혜는 공범이 아니라고 밝히고, 이른바 좌파 지원을 축소하고 우파 지원을 확대한 것은 "헌법이나 법령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지지 성향에 따라 예술가의 창작을 제한하는 정부의 권력 개입을 사법부가 정당하게 여긴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청와대는 이전 정부에서 미처 파기하지 못한 문서를 발견했다. 그 중 "문화예술계 건전화로 문화융성"이라는 내용이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 추진계획'을 세웠다. 좋은 이름이 붙은 계획이지만, 실상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공공연히 행하였던 블랙리스트 작성 문제를 언급하기 전에, 박근혜의 문화예술계 '건전화'와 '문화융성' 개념을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행해졌던 문화 정책을 대략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의 사회 현상은 과거와 단절된 채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만들어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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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윤보선 정부는 기본적인 정부 수립과 법제도 마련 등 국가 체제 정비에 치중해야 했으며, 한국전쟁 발발 등으로 인해 이렇다 할 문화 정책을 마련할 틈이 없었다. 반면 1960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국가주도적 문화예술정책을 시행했다. 1963년 12월부터 1979년 3월까지 박정희의 연설문을 바탕으로 박정희 정권의 문화예술정책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박정희는 문화를 제2의 경제 관점으로 인식했다. 박정희에게 문화는 '조국근대화'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수단이다. '민족 문화'와 '정신 문화'를 고양해 국가 근대화에 필요한 '국민정신'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그는 문화예술을 활용했다. 

박정희가 강조한 정신 문화란 다양한 지적 유산이 아니라 민족성이다. 문화예술에서 민족적 순수성에 집착했던 그는 서구 문화를 비정신적이고 반민족적인 세계로 여기기까지 했다. 순수한 우리 세계를 오염시키는 외래의 침범으로 봤기 때문이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생맥주, 록음악이 상징하는 젊은이의 새로운 문화는 바로 박정희가 지향하는 '민족' 문화가 아니기에 단속대상이었다. 박정희의 문화 정책은 곧 국가주도적인 전통 문화 계승 명목으로 자연스럽게 새로운 대중문화 통제로 발전했다. 박정희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전통과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문예와 학술의 적극적인 창발로 문화 한국 중흥에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나름 문화 정책 방향을 발표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에서 기본적인 문화 정책기관들이 만들어졌으나, 이 기관들은 국책 사업으로 작품을 만들거나-그 수많은 반공영화-검열에 앞장서는 역할을 했다. 1973년 박정희가 '문예중흥'을 선언한 이후 본격적인 문화 정책이 이어졌다. 1974년 박정희는 250억 원을 들여 제1차 문예중흥 5개년 계획을 세웠다. 반공 홍보와 새마을 운동도 이 계획에 해당한다. 또 박정희는 각종 윤리위원회의 이름으로 문화예술 검열을 제도화 했다. 한국방송윤리위원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 한국공연윤리위원회 등이 당시에 만들어졌다. 이 '윤리위원회'들은 금지곡과 금서 목록을 만드는 정책에 일조했다.

1969년 19만 대이던 텔레비전 수상기는 1975년 200만 대 넘게 보급되었다. 박정희가 사망하기 직전인 1979년 10월에는 570만 대가 넘었다. 텔레비전 시청자의 증가는 드라마와 광고, 각종 오락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만들어내, 그야말로 대중문화가 안방에 들어가게끔 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가만히 있을 리 없는 정부는 방송 편성에 개입해 대중문화를 통제했다. 대중문화의 성장이란 우리의 순수한 민족 문화가 불순한 서구에 물드는 상징이며,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는 대중은 국가 차원에서 통제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그러한 '오염'에서 국민을 계몽하고 건전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실상은 국민을 체제순응적으로 만드는 우민화 정책을 편다.

1975년 6월 정부의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되었다. 여기에는 '공연 활동의 정화대책'이 포함됐다. 공연계는 정화의 대상이 되었다. 금지곡은 대대적으로 늘어났으며 가수들은 음반을 발표할 때 의무적으로 '건전가요'를 한 곡 넣어야 했다. 이 즈음 박근혜의 등장에 주시하자.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사망 후, 박근혜는 퍼스트 레이디 대행을 하면서 유신 체제 한복판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의 대표적인 활동이 '새마음 갖기 국민 운동'이다. 이 운동은 '우리 고유의 전통'과 '정신 문화'를 강조했다. 이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얼마 전 박근혜는 TV 방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77년 1월 3일 저녁 MBC TV는 신년특집프로그램 <대통령 영애 박근혜양과 함께>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오늘날과 같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물질주의 사고방식으로 인해 무너진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을 되찾고 튼튼한 복지국가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새마음 갖기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요'라고 말했다." (바로가기 : '박근혜, 퍼스트레이디 시절 무슨 일이?'
 
박정희의 피살, 이어진 전두환의 쿠데타와 집권으로 새마음 갖기 국민 운동은 자연스럽게 와해되었다. '새마음'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운동은 국민의 정신 개조를 목적으로 한다. '하면 된다' 정신이 깃든 박정희의 <우리 민족이 나갈 길>을 비롯하여 이러한 문화 운동의 기본 정신은 3.1운동 이후 시작된 일본의 문화통치에 협조한 이광수가 1922년 발표한 '민족개조론'과 흡사하다. "조선인처럼 관대한 자는 타민족에서는 보기 어렵습니다."라는 이광수의 생각처럼, 우리 민족의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개조하자는 뜻이다. "개인보다 단체를, 즉 사보다 공을 중히 여겨 사회 봉사를 생명으로 알게" 만들자는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박정희 정권의 정책에서도 배어난다.

이러한 정권에서 활동한 박근혜에게 문화 운동이란 국민이 마음을 단결케 하고, 나아가 국민을 국가를 위한 하나의 집단으로 키워내는 수단으로 익숙했다. 초가 지붕을 없애듯이 국민의 정신은 국가 차원에서 갈아엎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2013년 10월 1일 열린 제2기 문화융성위 2차 임시회의록에는 "인문 정신이 바탕이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과거 새마을 운동처럼 '새마음 운동'을 추진하여 생활 속에 인문 정신과 생활 문화가 확산되도록 한다"는 발언이 있다. 박근혜의 의식은 '새마음 운동'에 머물러 있었다. 1978년 박정희 역시 제9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문화 정책을 언급했다. "조상이 물려준 문화 전통과 정신 유산을 알뜰히 보전하고 창조적으로 계발해 격조 높은 민족 문화를 꽃피워야 하며 건전한 사회가 바탕이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박정희가 언급한 '창조적', '건전한' 등의 언어는 박근혜에게로 고스란히 넘어왔다. 박정희가 유신 독재 체제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검열과 통제 정책을 펼쳤다면, 박근혜는 최소한 정치적 민주화 아래 억압을 감추면서 자행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참고로 이 '건전'은 일제 강점기 문화 정책에서도 중요한 개념이었다. 건전과 명랑. 박정희가 60년대에 '명랑 사회'를 내세웠다는 점을 상기하면 일제 강점기 문화 정책과의 교집합은 점점 늘어난다.

통제와 검열, 우민화 정책은 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도 이어졌다.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쿠데타로 집권했으며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한 전두환은 대중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끔 하고자 문화를 활용했다. '정신 문화'를 강조하며 '민족'과 '국가'를 위한 국민을 양성하던 박정희 정권과 달리 전두환 정권은 아예 정치 자체에 무관심한 대중을 만들기로 작정한다. 대표적으로 3S 정책이 유명하다. 스포츠(sports), 성(sex), 영상(screeen)을 통해 대중문화를 육성하는 듯 했지만 목적은 역시 우민화 정책이다.

박정희 시절 반공영화가 국책사업이었다면 80년대에는 에로 영화가 폭발적으로 제작되었다. 정인엽 감독의 '애마부인'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흥미롭게도 우민화라는 애초의 의도와 달리 전두환의 문화 정책은 다른 한편으로 대중문화가 다양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80년대는 국제 영화제에 한국영화가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시기다. 부분적이나마 국제적으로 한국영화가 알려진 반면, 가정으로 송출되는 TV 방송에서는 여전히 높은 수위로 검열이 자행되었다. 대통령을 닮아 TV 출연을 금지 당한 연예인이 있을 정도로 대중문화에서 정치의 모습은 철저히 금기시되었다. 그럼에도 이 시절에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치인, 재벌을 풍자하는 용기 있는 개그도 생산되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개그맨 최병서는 정치인과 대통령을 성대모사했고, 김형곤, 엄용수 등은 <유머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 재벌 그룹의 회의실을 재현하는 시사 풍자를 선보였다.

전두환 정권까지 정부가 국가의 기본적인 문화기반시설을 마련해왔다면, 노태우 정부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세워 예술교육의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등 창작자 양성을 위한 정책을 본격화한다.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는 박물관과 도서관 등의 문화시설을 늘리는 등 문화 수요자를 늘리는 정책을 폈다. 김영삼 정부 이후 정부의 검열과 통제형 문화 정책은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해졌고, 그에 따라 대중문화가 활발해진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88년, 94년, 97년을 다룬 까닭이기도 하다. 군사독재 시절 이후부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전까지 시기에 대중의 문화적 숨통은 잠시 트였는데, 이 시절은 현재 '복고'의 이름으로 불려나올 정도로 추억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소설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권력이 창작자를 감옥에 가둔,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외설 논쟁 사건도 바로 이 시기 일어났다.

그나마 가장 간섭 없는 지원을 실천한 시기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다. 김대중은 문화가 정치와 관료에게서 거리를 두도록 하는 '팔길이 원칙' 을 인식한 대통령이다. (인식했으나 실천이 잘 되었는지는 별개다.) 정부의 정책 홍보나 민족 문화 융성을 위한 전통 보존 차원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이 그때부터 본격화되었다. 내용의 질은 논외로 하고, 정부예산 총 지출 대비 문화예술 지원액 비율 1%를 처음 달성할 정도로 김대중 정부는 문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한류'를 비롯한 문화상품과 문화산업 개념이 널리 퍼졌으며, 한국 영화도 이 시기 번성했다.

문화예술은 국가 정책의 홍보 도구에서 벗어났지만, 또 다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산업이다. 정부가 '문화산업'을 인식하게 된 본격적인 계기는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쥬라기 공원>의 세계적 흥행이다. 이는 곧 "영화 한 편으로 벌어들인 돈이 소나타 자동차 150만 대를 수출한 효과"라는 수사를 만들었고, 이렇게 정확하게 수치로 표현되자 문화산업 효과를 향한 기대는 폭발적으로 커졌다. 잘 팔리는 상품이 곧 예술의 미적 수위와 동일시되기에 이른다. 2003년 영화 <실미도>가 최초로 관객 천만 명을 돌파하면서 '천만 영화'는 마치 한국 영화가 주기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어떤 고지처럼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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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잠시 느슨했던 통제형 문화 정책은 이명박과 함께 귀환했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듯 이명박 정부는 다시금 문화예술계에 노골적인 정치적 간섭을 시작했다. 2008년 취임한 이명박은 그 해 말 '문화비전 2012'를 수립한다. 문화 정책의 목표는 "품격 있는 문화 국가, 대한민국"이었다. 주요 전략 중에는 '문화를 통한 녹색성장'이 있다. '녹색성장'은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문화는 이 녹색성장의 도구 중 하나로 전락했다.

역대 문화부 장관 중 최장수 재임 기록을 세운 유인촌은 자신의 권력을 '문화계 좌파 청산'을 위해 휘둘렀다. 정치적 이유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내몰았고, 정치적 의견을 드러낸 이로 김미화, 김제동 등의 방송인을 언급하며 '소셜테이너'를 통제했다. 문화예술은 다양성을 지지 받지 못하고 감시 받았고, 정책은 간섭 없는 지원이 아니라 지원 없는 간섭으로 향했다. 정부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지원을 끊고, 국립오페라합창단을 해체했으며, 날치기로 미디어법을 통과시켰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말하는 이에게는 '종북' 낙인을 찍었다. <자본론>을 강의하는 강사를 국정원에 신고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등 광포한 사상검증이 벌어졌다. 광적인 종북 사상검증과 낙인은 박근혜 정권 들어 통진당 해산과 이석기 의원 구속으로까지 치달았다.

횡포에 가까운 이명박 정권의 문화예술 '정책'은 박근혜 정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2009년 노무현의 자살 이후 진보 진영의 집결을 두려워한 보수층은 대중에게 노출되는 문화예술인의 정치적 발언과 참여에 과도한 방어전을 펼쳤다. 유신의 후예인 박근혜는 이명박이 깔아놓은 토양 위에 제 나름의 문화 정책을 펴나간다. 국민의 마음을 새 것으로 갈아엎는 새마음 운동을 적극 이끌었던 인물답게 박근혜는 문화예술인을 개조하려고 했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을 지지하지 않으면 비정상이다. 창조, 기운, 혼 등 국가지도자가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언어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언급하면서 그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구했다. 김기춘과 조윤선 공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본격적으로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었으며 2014년 6월 문체부는 최초로 명단을 전달받았다. 2013년 말 노무현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의 흥행, 2014년 봄 세월호 참사로 국민의 정부 불신이 심화하는 현상을 마주하며 박근혜 정부는 정치적 위기를 더욱 강경한 문화예술 억압으로 '정상화' 하려 한 것이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의혹을 제기하는 작품은 모두 검열했다. 세월호 사건을 다룬 영화 <다이빙벨> 개봉을 방해했으며, 2014년 이 영화를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압박했다. 또한 박근혜는 문화예술계를 개인의 놀이터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 2016년 3월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박근혜가 관심을 표명한 프랑스장식미술전 개최를 반대한 이유로 자신이 경질되었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무려 만 명에 가까운 문화예술인이 명단에 올랐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2012년 12월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지지선언 문화예술인 4110명, 2014년 6월 2일 세월호 시국선언 문학인 754명, 2014년 6월 서울시장 선거 박원순 후보 지지 문화예술인 909명, 2015년 5월 1일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 서명 문화인 594명 등을 기준으로 총 9474명이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블랙리스트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예술가들은 명단에 이름이 없으면 '내 이름은 왜 없느냐'고 농담했고, 명단에 이름이 오르면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며 '국가의 인증'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한민국의 문화 정책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와 대중을 분리하는 수단이었다. 정부는 과거 우민화 정책과 국가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문화를 활용했으며, 2000년대 이후로는 이윤 창출을 위한 산업의 도구로 문화 개념을 확장시켰다. 한국에서 창작자와 시민은 정치적 민주화 흐름 가운데서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수시로 구속 받았다. 표현/자유에 관해 제대로 배우고 훈련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일까. 미숙한 앙가주망은 정치인의 '팬' 되기 형태로 나타났다. 문인들은 19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지지를 위해 '오구오구 우쭈쭈5959uzuzu.com' 라는 사이트 이름으로 문재인 웹 매거진 <문카운트>를 만들었다. 한쪽에서는 검열을, 다른 한쪽에서는 '지지'라는 형식의 팬덤을 쌓는다. 지성의 '덕질' 시대에서 비판적 지식인과 비평의 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드러난 현상 이상의 부작용을 낳았다.ⓒ연합뉴스


저항의 방식 : <더러운 잠> 논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국회 로비에서 예술인들이 이러한 시국을 비판하는 풍자 예술 전시를 개최했다. 2017년 1월 20일부터 31일까지 열린 이 전시의 이름은 '곧, 바이! 전(展)'이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였기에 곧 대통령과 '바이'한다는 뜻을 암시한다. 이 전시에 참여한 20여 명의 작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향한 예술가들의 풍자 연대' 소속이었다. 표현의 자유에 저항하는 작가들의 연대는 바람직하나 엉뚱한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이구영의 작품 <더러운 잠>을 둘러싼 여성 혐오 논란과 작품 훼손 문제였다. 여기서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안을 구별해야 한다.

<더러운 잠>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박근혜와 최순실을 풍자한다. 박근혜를 침대 위에 나체로 누워있는 '창녀'로, 최순실을 꽃다발을 든 하녀의 위치에 놓는다. 이는 박근혜의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이 있는 풍자라고 했다. 세월호 사건이라는 중대한 사고가 발생해도 편히 잠이나 잔 '나쁜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이다. 문제는 이 작품의 풍자 대상이 대통령이라는 권력자라기 보다, 발가벗긴 여성성이었다는 점이다. <더러운 잠>의 내용은 패러디 원본인 <올랭피아>와 아무 상관이 없다. 오직 벌거벗은 여성의 몸을 필요로 했을 뿐이다. 소수자의 성, 인종, 종교 등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행동은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조롱과 혐오로 이어질 뿐, 권력을 향한 풍자가 되진 않는다. 이 작품이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아니라 여성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음은 이 작품을 비난하는 새누리당 여성의원들의 수사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이 전시 기획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을 향해 "네 아내도 벗겨주마"라고 공격했다. 벗김을 이용한 공격이 여성에게만 해당됨을 방증하는 행동이다.

즉각 <더러운 잠>에 관한 비판이 제기되었으나, 비판의 목소리는 새누리당에 힘을 실어주는 입장으로만 치부되었다. 이 논란이 한바탕 지나간 후 문화연대를 비롯한 56개 문화예술단체가 <더러운 잠> 훼손에 관한 책임을 묻는 성명을 냈다. '박사모'를 비롯한 보수 단체가 이 작품을 훼손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성명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나쁜 정치인' 박근혜 풍자에 '여성 혐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본말의 전도다." 문화예술단체의 성명에서조차 이 그림의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작품 훼손과 작품 비판을 혼동했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에서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저항은 무엇인가. 참여예술로서의 작품은 현실의 문제를 직시한다. 수용자는 이를 정치적 지시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참여예술이란 제도에의 개입이며, 수용자를 이 개입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러운 잠>은 바라보기의 젠더 권력을 가동했다. '바라보기'는 남성의 권력 행위다. 이리가레의 지적처럼 "여성은 남성에 비해 바라보는 것에 덜 집착한다. 눈은 다른 감각보다 훨씬 더 객관화하고 지배하려 한다. 눈은 거리를 설정하며 거리를 유지한다. 우리의 문화 속에서 냄새, 맛, 촉감, 청각을 지배하는 바라보기의 우월성은 신체가 서로 관계 갖는 것을 방해해 왔다." 이리가레의 발언에 부연하자면, 여성은 바라보는 것에 '덜 집착하도록' 권장 받았으며, 대신 응시의 대상이 되도록 길러졌다. 이는 본능이라는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설명되어 '문화'로 자리잡았다. <더러운 잠>은 이러한 '바라보기'의 남성 권력을 '여성' 대통령을 향해 휘두른 작품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참여라기 보다 약자의 정체성을 끌어와 수치심을 유발케 하려는 태도이며, 이러한 수치심 유발을 저항으로 착각한 결과다. 블랙리스트와 이에 대항하며 마련된 전시에서 선보인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은 제도적 억압과 문화적 저항 사이에서 볼모가 되는 '여성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게다가 정치적 진보-보수의 이분법이 작품의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함을 알려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작가의 정치적 입장이 작품의 미학적 진보를 보장하진 않는다.

박근혜 집권을 전후로 홍성담의 작품을 비롯하여 박근혜를 풍자 비판한다는 작품들은 늘 여성을 끌어왔다. 홍성담이 정치적 보복의 대상이 되었던 사실과 별개로, 여성성을 공격하는 방식이 정치 권력을 향한 저항으로 여겨지는 창작 행태에 관해서는 명백한 문제의식이 제기되어야 한다. 약자를 조롱하거나 혐오하지 않고는 그럴듯한 창작을 하지 못하는 미적 안목이 종종 저항이라는 액자를 두르고 나타난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이러한 저항은 오히려 혐오를 고착화한다. 자유와 저항을 향한 여정이 그저 여성의 가슴과 자궁 사이만을 오간다. 2016년 가을 소셜 미디어에서 '~내 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로 문학과 미술을 비롯한 문화예술계 성폭력에 관해 익명의 고발이 이어졌다. 이러한 고발이 터져 나온다는 것은 이미 내부가 곪을 대로 곪았다는 뜻이다.

저항을 내세우는 힙합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뚜렷하다. DJ DOC는 시국을 비판하는 '수취인분명' 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이 노래는 2016년 11월 26일 광화문 범국민대회 무대에 올려지기로 했으나 가사에 관한 비판이 거세어지면서 취소되었다. 가사는 박근혜를 '미스 박'으로 지칭했다. 시각예술이 여성의 몸을 활용한다면, 청각예술은 여성을 부르는 방식으로 '박근혜'라는 하나의 정치권력을 여성성으로 전환해 비판한다.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같은 문제에 봉착한다. 표현에 관한 비판조차 표현을 가로막는 검열과 동일시하는 인식이 깊다. 실제로 소설가가 작품 때문에 감옥에 가는 일이 벌어진 사회에서 작품 비판과 제도적 검열은 잘 분리되지 않았다. 꽤 인지도 있는 영화사이트 '익스트림 무비'에 2017년 8월 올라온 공지는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익무는 장르영화들을 애정하며 지지하는 곳이지, 혐오의 대상으로 검열하는 곳이 아닙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논란은 창작자로 하여금 작품을 만들 때, 자기검열부터 거치라고 강요하는 상황입니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검열과 눈치로 태어난 문화가 제대로 만들어질리 없습니다."  운영자는 아예 '여혐, 남혐'이라는 단어를 금지어로 지정하겠다고 알렸다.

저항은 없고 분풀이의 대상만 찾는다. 2016년 내내 '병신년'은 박근혜를 조롱하는 언어로 떠돌았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한국의 문화를 대표했다거나, 이러한 흐름만 있었다고 왜곡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비하와 희롱, 혐오를 동반한 문화 현상은 오늘날 뚜렷한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조선족'이 재현되는 방식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신세계>, <아수라>, <황해>, <악녀>, <청년경찰> 등의 영화에서 재중동포 남성은 무자비한 폭력배로 등장한다. 한국 영화계가 여성을 주로 살인과 강간의 대상으로 놓는다면, 이주 남성에게는 '악의 타자화'를 시도 중이다. 아동성폭행범 김수철이 "제 안에 욕망의 괴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악의 타자화를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사회가 있다.

여성, 장애인, 이주민, 아이 등을 통한 타자화에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관성에 젖은 체제 비판의 언어가 활발하다. 말과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창녀'나 '자폐'를 언급한다. 잘못된 비유와 예시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혐오는 놀이가 되고, 게임이 되고, 개그가 되고, 저항이 되어간다. 지하철 스크린에 얹힌 시민의 차별적 감수성과 부적절한 시어는 이러한 사회의 반영에 불과하다. 우리는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분노하지만, 일상은 이미 소수자와 약자의 블랙리스트가 견고하게 작성된 상태다.

▲ <더러운 잠>은 저항마저 약자에의 억압을 통해 표출됨을 보여줬다. 타자화의 문제의식이 없는 사회상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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