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할 권리보다 낙태할 권리를"
"출산할 권리보다 낙태할 권리를"
[인터뷰] 저출산고령사회위원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
2018.01.07 18:03:30

한국사회에서 청춘은 '88만원 세대' 혹은 '무언가를 포기한 세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3포 세대'라는 말을 비웃듯이 '5포 세대'라는 용어가 나왔고, 헤아리기조차 어려웠는지 'N포 세대'까지 등장했다. 어디까지 포기하고 얼마나 더 불행해져야 할까. 한국의 청년들은 불행을 서표처럼 끼워 넣고 살아간다.

헬조선 한국에서 '탈(脫)조선'은 어느새 젊은 세대의 장래희망이 됐다. 청년들은 유학을 가는 친구에게 "돌아오지마"라고 덕담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어서', '적어도 내 아이는 나처럼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한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찾고, 새로운 상식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있다. "출산할 권리보다 낙태할 권리"를 외치고 "저출산 고령사회라는 디폴트 안에서 행복할 조건을 찾아보자"고 말한다. 탈조선에 성공했던 그의 친구는 "이런 친구들이 있다면 한국 사회가 바뀔 수 있을 것 같다"며 독일 시민권을 포기하고 고양이와 함께 한국에 돌아왔다.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그가 대표로 있는 닷페이스는 '힙한' 온라인 영상 미디어 스타트업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상식이 필요하다'는 슬로건 아래 '10년 후 우리 사회를 만들어갈 기준이 될 수 있는 가치'를 말한다. 닷페이스의 컨텐츠 중 지난 2016년 퀴어 퍼레이드 현장을 담은 <[성소수자 부모모임] 엄마는 널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단다'>는 페이스북에서 52만 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가 지난달 18일 출범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유일한 20대 위원으로 위촉됐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은 대통령 직속 기구로, 정부가 추진하는 저출산 및 고령화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기구다. 지난 4일 홍은동의 한 카페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 조소담 씨를 만났다.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사려 깊게  '새로운 상식'을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라지는 언니들' 그리고 '500/35'짜리 집에 사는 20대 비혼 여성

프레시안 : 저출산 고령사회위원으로 본인을 소개하며 "출산할 권리보다 낙태할 권리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좀 더 본인을 소개한다면.

조소담 : 보증금 500에 월세 35만 원 짜리 집에 사는 20대 비혼 여성이다. 다른 위원들처럼 정책연구를 전문적으로 했던 사람은 아니지만, 청년세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위원회의 목표는 '여성 한 명당 출산율'을 높이자는 식이었다. 새로 출범한 위원회는 삶의 조건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이 문제가 풀린다고 바라봤다. 그 방향성을 강조하고 싶어서 '출산할 권리보다 낙태할 권리'라고 표현한 면도 있다.


▲ 저출산 고령사회위원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조 위원이 대표로 있는 닷페이스의 슬로건은 '우리에겐 새로운 상식이 필요하다'이다. 자신을 소개할 때도 새로운 상식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새로운 상식'은 무엇인가.

조소담 : '상식'은 우리가 변화의 지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10년 후 우리가 이 사회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어떤 것들이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하면서 변화의 지점들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상황에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양한 가족구성권이나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같은 이전과는 새로운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기존의 슬로건과 정책이 본인의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일, 당연한 권리'란 문구를 '일하면서 고양이 키우는 일, 당연한 권리'라고 바꿔서 읽고, '아이와 한 시간 더' 이런 문구는 '고양이와 한 시간 더!' 이렇게 읽었다고 했는데.

조소담 : 친구들끼리 그런 얘기를 한다. "언니들이 자꾸 사라진다"고. 분명히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능력 있고 멋있던 여성 선배들이 있었는데, 결국 그들은 보이지 않게 된다. 왜 사라졌을까, 어디로 갔을까. 이번 정책에는 사라진 언니들의 이야기가 많이 포함됐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 범주에 진입조차 못 한 비혼 여성들이 있다. 언니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자란 20대 여성들은 아이를 낳거나 가족을 꾸리면서 커리어를 지속하는 미래를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 사례가 없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위원회에서 '아이를 더 잘 키우려면', '1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려면'과 같은 이야기를 할 때 소외된 느낌을 받는다. 출산이나 양육이라는 카테고리에 진입조차 못 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은 거의 없었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없다는 것은 그런 이야기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하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저출산 고령사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정해진 미래

프레시안 : 닷페이스는 페미니즘과 'LGBTQ(성소수자들을 통칭하는 단어)'를 카테고리로 다룬다. 위원회에선 여성 정책, 가족 정책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갈 텐데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던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을 것 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였던 이유가 있나.

ⓒ프레시안(최형락)

조소담 : 사실 처음 제안이 왔을 때 거절했다. 그러다 이전 위원회에 20대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문제 당사자인 20대 없이 뭘 얘기한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빠지면 20대 위원이 없는 상황이었다.

또 위원회엔 보증금 500에 월세 35만 원짜리 집에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 달 전까지 최저임금을 받았던 사람도 없고, 학자금 대출이 얼마나 누구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고, 불합리한 제작 관행을 비판했던 故 이한빛 PD처럼 과 노동에 시달리는 청년을 친구로 둔 사람도 없다. 내 주변의 친구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 결혼할 수 없어 한국을 떠난 사람, 지금도 한국에서 결혼을 꿈꾸지 못하는 성 소수자 친구들, 결혼 안 하고 동거하는 친구들이 내 옆에 있다. 위원회라고 마련된 수많은 자리 중에 이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 다른 위원들 옆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없을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전문적인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내게 들리는 목소리들을 위원회에 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조소담 :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별다른 역할은 못 하지 않을까. 너무 시니컬한가.

프레시안 :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조소담 : '저출산 고령사회'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정해진 미래고 디폴트 조건이다. 위원회는 저출산 고령사회라는 디폴트를 두고 다양한 사람들의 행복의 조건을 고민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여성 한 명당 출산율 높이겠다'는 목표를 버리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성 소수자 얘기를 하겠나, 비혼인 친구 얘기를 하겠나, 과노동으로 결혼준비조차 할 수 없는 피디 친구 얘기를 하겠나. 아이, 엄마, 아빠 이렇게 셋이 잘 돌아가기 위한 방안만 고민한다면 그럼 사실 그건 '출산가족 위원회'지 어떻게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겠나.

"'열외'의 가족 점점 늘어나, '정상가족'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프레시안 : 정부 정책의 모델인 '정상가족' 패러다임에선 결혼한 가임기 여성이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 틀 안에서 정책이 나오는 모양새다.

조소담 : 저출산 고령사회야말로 다양한 가족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청와대에서 비혼모 가정을 초대했고 언론에 동거 커플에 대한 보도가 나왔다.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이야기가 비교적 많이 나오고 있지만,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한 부모 가정'과 '속도위반 결혼'이란 단어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부모 가정'이란 단어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는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가 있는 가정이 당연한 가정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자녀가 엄마 혹은 아빠하고만 살 수도 있고 남녀가 자녀 없이 부부로만 평생을 살 수도 있고 여성끼리, 남성끼리 부부로 살 수도 있고 그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속도위반 결혼'도 없어져야 하는 게, 애가 생겼을 때 그 아이를 기르고 싶다는 결정을 꼭 결혼제도 안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커플 사이에 아이가 생겼을 때 법적 보호의 테두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소담씨도 13년 전부터 '한 부모 가정'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조소담 :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어머니 그리고 남매들과 같이 자랐다. 크면서 학교나 관공서에 무언가를 제출해야 하는 때가 오는데, 때때로 '한 부모 가정의 누구'라는 식으로 서류를 제출했다. 어릴 땐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나를 열외로 쳐서 40명 중에 몇 명으로 분류했다. 부끄러운 게 아닌데 선생님도 조용히 숨기면서 이야기했다. 우리 가족은 그냥 가족인데, 선생님은 쉬쉬하며 말했고, 나는 열외처럼 분류됐다. 그러나 저출산 고령사회의 한국에서는 그런 '열외'의 가족 형태가 훨씬 많아지고 있다.


아이 안고 있는 여성의 뽀샤시한 출산 장려 포스터 "절대 안 돼"

프레시안 : 말씀하신 대로 회의결과조차도 '아이 키우기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 아래 양육정책에 집중한 느낌이 강하다. 이름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아닌가. 답답함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조소담 : 사실 처음 위원회에 위촉됐을 때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라는 위원회의 이름이 달갑진 않았다. 좀 재미가 없지 않느냐(웃음). 그래도 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다양하게 문제의식을 제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원회 내부에서 '아이가 자라기 행복한 나라'라는 슬로건이 어떠냐는 제안도 있었다. 어떤 아이든, 아이가 자라기 행복한 나라를 상상했을 때 고려해야할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다른 시각으로 보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프레시안 : 확실히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와 '아이가 자라기 행복한 나라'는 차이가 느껴진다. 과거 칼럼에서도 임산부 배려석의 문구가 임산부를 '모체'로만 상징한다고 비판하지 않았나.

ⓒ프레시안(최형락)

조소담 : 맞다.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는 임산부 배려석에 적힌 문구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적어도 위원회에서는 여성을 모체로만 존중해선 안 된다. '내일의 주인공을 위하여'라는 슬로건과 아이 안고 있는 여성의 뽀샤시한 포스터 같은 것을 만들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위원회 내부에서 '아이를 많이 낳았기 때문에 애국했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애국이다'라는 느낌이 드는 말이라도 절대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다양한 엄마의 모습을 이야기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한 언론에서는 비출산이나 한 자녀 양육을 선택하는 젊은 세대의 풍조를 비판하며 '출산포비아'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조소담 : 출산이 언제부터 젊은 세대의 의무였나. '출산파업', '출산포비아'와 같은 말들로 출산이 여성의 의무이자 신성한 기회인 것처럼 미화하려는 시도들이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킨다.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20대 여성들이 정말 신성한 기회로 받아들일까. 당장 주변에서 언니들이 사라지고 있는데. 물론 아이를 낳는 기쁨도 있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접근할 때 그때부터 '출산파업'이 정말 시작될 수도 있다.

"위원회의 논의가 내 삶을 포함하지 못한다면, 메일 보내 달라"


프레시안 :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만큼 대통령에게 저출산 고령사회위원으로서 가장 먼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조소담 : 앞으로 30, 40, 50년 이후를 생각했을 때 이 사회에서 살아갈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 사회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갈 미래다. 그 전에 있던 질서를 고집하거나, 기존에 있던 가족의 개념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출산-양육-결혼'이라는 삶에서 당연하다고 했던 과정을 중심으로 사고할 때 예기치 못한 함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원회에서 나올 다양한 의견을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못다 한 말이 있나.

조소담 : 잘해보겠다. 혹시 '저 위원회 방향 마음에 안 든다'라는 생각이 들거나 '위원회의 이야기가 내 삶을 포함하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들면 저를 비난하진 마시고(웃음).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시거나 메일을 보내시거나 하면 의견을 대신 전하겠다. 제가 잘난 사람이거나 대표가 될 만한 사람이라서 위원회라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비교적 많이 들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메일주소는 showdam@gmail.com이다. 답장이 어려울 수도 있음을 양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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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기자 daramj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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