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트럼프 치적'이어야 하는 까닭
남북 정상회담이 '트럼프 치적'이어야 하는 까닭
[기자의 눈] 두 개의 정치적 고비를 동시에 넘으려면…
2018.02.12 16:53:58
남북 정상회담이 '트럼프 치적'이어야 하는 까닭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던졌다. 공은 문재인 정부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로 동시에 넘어왔다.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인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통한 방북 초청에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했다. 한미 동맹에 균열로 비쳐지지 않도록 미국 정부와 협의를 통해 이 문제를 신중하게 다뤄나가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김여정 부부장에게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의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북미 대화가 병행되지 않는 한 문 대통령의 방북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보고 북측의 적극적 조치를 당부한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틀째 침묵이다. 백악관은 "우리는 북한에 대한 통일된 대응에 관해 한국 측과 긴밀히 연락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만 내놨다.

유럽을 순방 중인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긴장 완화를 위해 올림픽을 이용하는 것이 올림픽 종료 후 어떤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우리는 당장 이에 관해 말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남북 정상회담을 향한 첫 번째 관문은 4월로 예정된 한미 군사훈련이다. 비핵화에 관한 북한의 성의 있는 조치가 선행되지 않으면 미국이 먼저 훈련 축소나 연기를 할 가능성은 낮다. 한미 연합훈련이 그대로 실시되고 북한의 추가 도발로 이어지면 모처럼 불어온 훈풍은 다시 칼바람으로 변한다. 

이에 따라 평창 올림픽이 끝나기 전에 북미 대화의 모멘텀이 만들어지느냐가 3차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를 가늠할 최대 분수령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고비를 넘어도 한미 양국에 또 다른 정치적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6월 지방선거가, 미국은 11월 의회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다. 

6월 지방선거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실시되는 전국단위 선거라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는 탄핵까지 거론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이 걸려있다.

양국 정치에 공히 북한은 메인 이슈이며, 정치 풍향도 대북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김정은 위원장이 던진 남북 정상회담 카드는 양국 정치의 복판을 뒤흔들 이슈다. 공교롭게 남북 정상회담 시점으로 거론되는 6.15 남북공동선언 18주년과 8.15 광복절이 한국 지방선거와 미국 중간 선거 사이에 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김여정 북한 특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트럼프의 위기가 남북 정상회담의 기회

'평창 이후'인 4월부터 북미 대화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여건 조성에 총력을 기울일 문재인 정부의 내부적 암초는 남남갈등이다. '김일성 가면' 공세에서 드러나듯, 남북 정상회담에 관한 한국 보수의 알레르기는 예정된 수순이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대변인은 12일 논평에서 "핵개발 축하사절단에 불과한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은 명백한 이적행위임을 경고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김여정 부부장을 "김씨 왕조 세습공주님"이라고 칭하며 "도대체 무엇을 위해 우리 국민들의 생명을 핵으로 위협하고 있는 집단의 수괴들을 이토록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것이냐"고 했다.

'바른미래당'으로 통합을 하루 앞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남북 정상회담에 각을 세웠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회담을 위한 회담이 되어선 안 된다. 회담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정과 수단이 될 때에만 유효한 것"이라고 견제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북핵을 해결 못하고 제제와 압박을 무너뜨리고 한미동맹을 무너뜨리는 남북정상회담은 차라리 안하는 게 우리 국가안보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회 의석의 절반을 차지하는 보수 야당의 이같은 태도는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문재인 정부 견제론의 소재로 대북정책을 활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특히 지방선거 전망이 밝지 않은 보수 야당이 전방위적인 색깔론으로 선거 전선을 형성하려 들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치 변수는 미국의 중간선거다. 11월 6일 중간선거에서 상원은 100명 중 3분의 1인 34명이 교체되고, 하원은 435명 전원을 새로 뽑는다. 

선거 결과에 따라 현재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여대야소 국면이 뒤바뀔 수 있다. 최근 <블룸버그>는 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대승을 예측했다. 줄곧 30% 후반대에 머문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로는 공화당의 반전이 어림없어 보인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 패해 민주당이 다수당에 오를 경우, 트럼프 대통령을 죄어오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탄핵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승리와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벌일 것이라는 뜻이다.

북핵 문제는 미 중간선거의 최대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제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어졌다.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대화 가동이 중간선거에 미칠 영향을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줄기가 달라진다.

두 갈래 기류가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 공존하고 있다. 한쪽 기류는 강경하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오 CIA(중앙정보국) 국장, 매튜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등은 선제타격까지 대북 옵션에 올려둔 강경파다. 포틴져 보좌관은 최근 비공개 모임에서 "제한적 대북 타격이 중간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조셉 윤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 등 국무부 라인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도 있다. 이들은 북미 대화를 통해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쪽이다. 틸러슨 장관은 미국이 고위급 대북특사를 파견할 경우 적임자로 거론되기도 한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선택의 기로에 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절박한 건 정치적 명분이다. 임기 초반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던 그는 중간선거에 맞춰 외교적 실적을 내놔야 한다. 대북 선제타격 등 강경론이 미국 조야에서조차 현실성을 인정받지 못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론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적지 않다. 

그래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외교력이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해 온 '최대의 압박과 제재' 결과로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나온 것으로 비쳐져야 한다. 그래야 트럼프 대통령의 귀를 잡고 북미 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을 설득할 수 있다.

이는 한국 보수 진영의 북한 알레르기를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미국 대통령이 인정하고 한미 공조가 확인된 남북 정상회담이라야 색깔론의 논리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양국에 놓인 정치적 고비를 동시에 넘으려면 다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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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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