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정당 후보 출신의 혐오범죄, 어쩌다 이탈리아가?
우파정당 후보 출신의 혐오범죄, 어쩌다 이탈리아가?
[장석준 칼럼] 좌파와 파시스트, 대안 속도전을 벌이다
우파정당 후보 출신의 혐오범죄, 어쩌다 이탈리아가?
다음달 4일에 이탈리아 총선이 실시된다. 630석의 하원과 315석의 상원을 동시에 선출하는데, 내각책임제이므로 그 결과에 따라 새 정부가 구성된다. 선거 구도를 보면, 세 세력, 즉 현 여당 민주당(PD)과 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우파연합 그리고 독특한 포퓰리스트 정당 오성운동(M5S)이 접전을 펼치고 있다. 선거연합이 아닌 단독 정당으로는 오성운동이 지지율 1위를 달린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늙은 성추행범으로 나라 망신은 다 시키고 다닌 베를루스코니가 무려 82세의 나이로 다시 권력을 노린다는 사실 역시 놀랍기만 하다.

아니, 놀랄 일이 더 남았다. 선거운동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와중에 한 극우 청년이 아프리카계 행인들에게 총을 쏴 여럿이 다치는 참극이 벌어졌다(2월 3일). 며칠 전 발생한 흉악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아프리카계라 발생한 보복 사건이라 하지만, 결코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었다. 총격범 루카 트라이니는 베를루스코니와 선거연합을 맺은 유력 우파정당 북부동맹(LN) 소속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력까지 있는 인물이고,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떠받드는 노골적인 파시스트다. 그런데도 루카를 옹호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20세기에 파시즘의 깊은 상처를 입은 나라에서 파시즘이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선거판이 오른쪽으로 크게 기운 모습이다. 민주당을 중도좌파라 분류하지만, '민주당'이라는 당명뿐만 아니라 이들이 내세우는 '제3의 길' 식 정책도 좌파라 하기에는 영 석연치 않다. 파시즘에 맞선 내전 끝에 전후 이탈리아를 유럽에서 좌파세가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들었던 이 나라 좌파 정치 전통은 도대체 어떻게 됐는가? 아직도 헌법에서 "노동에 토대를 둔 민주공화국"이라 천명하는 나라가 어찌 다시 파시즘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기에 이르렀는가?

복잡한 이야기이고, 짧게 요약하기 힘든 역사다. 여기에서는 다만 지난 30여 년간 이탈리아 좌파가 밟은 쇠퇴의 여정을 간략히 짚어보겠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왼쪽의 정치 공간을 넓혀보려는 뜻깊은 시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反베를루스코니 대연합' 강박 속에 미국, 일본을 뒤따르다

이탈리아 좌파가 기울기 시작한 시점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내에서 공산당(PCI)과 더불어 좌파를 양분하던 사회당(PSI) 소속의 베티노 크락시가 이 무렵 기독교민주당(DC)과 연립정부를 이뤄 이탈리아 역사상 최초의 좌파 총리가 됐다. 그러나 크락시는 신자유주의 초기 공세(물가연동임금제 철폐 등)의 집행자가 됐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민주당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온갖 부패에 가담했다. 이 기억 때문에 사회당은 급속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좌파의 또 다른 축이자 사회당보다 더 강력했던 공산당에게 1990년대는 어쩌면 수십 년만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오직 공산당 집권을 막는다는 명분만으로 일본 자유민주당처럼 장기 집권해온 기독교민주당이 냉전 종식과 함께 대규모 반부패 수사(이른바 '깨끗한 손' 작전)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독교민주당은 와해됐고, 우파 정치 공간은 삽시간에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1990년대는 공산당에게도 위기의 시대였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탓이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소련 노선과 거리를 두어왔지만('유로코뮤니즘' 노선), 어쨌든 당명이 '공산당'이었다. 소련이 무너지던 와중(1991년)에 결국 공산당은 좌파민주당(PDS)으로 개명했다.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게 아니라 노선 역시 사회민주주의로 바꾸었다. 당 내 급진좌파는 이에 반발해 따로 공산주의재건당(PRC)을 꾸렸다.

이탈리아 좌파의 중심축이 예전보다는 오른쪽으로 이동한 셈이었지만,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정치 지형은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30% 선의 지지를 받는 중도좌파 정당이 있고 그 왼쪽에 5% 안팎 지지율의 급진좌파 정당이 자리한 구도였다. 더구나 공산주의재건당은 2000년대까지는 서유럽 다른 나라 급진좌파 정당보다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다. 두 당의 사회적 토대인 이탈리아노동총연맹(CGIL)은 여전히 제1노총이었고 유럽 노총들 중 가장 전투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강박증 하나가 이탈리아 사회의 범진보파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바로 베를루스코니 재집권 저지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는 강박증이었다. 언론 재벌 베를루스코니는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우파정당 '가자 이탈리아(FI)'를 급조해서 기독교민주당이 망한 뒤 혼돈 상태이던 우파의 구심이 됐다. 가난한 남부를 공격해서 북부 중산층의 환심을 산 또 다른 신자유주의 우파정당 북부동맹, 네오파시스트 운동의 후예인 국민연합(AN)이 베를루스코니의 우산 아래 모여들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지금껏 세 차례 총리를 역임하면서 시장지상주의를 도입하고 언론을 장악하며 이탈리아 사회를 더욱더 오른쪽으로 몰아갔다.

좌파민주당은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 연합에 맞서고자 기독교민주당 후계 세력 중 중도파에 해당하는 이들과 '올리브 동맹'을 결성했다. 기독교민주당 진보파 출신이고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로마노 프로디가 올리브 동맹의 얼굴이 됐다. 1998년에는 이 틀을 통해 좌파민주당의 마시모 달레마가 공산당 출신으로는 최초로 총리가 되기도 했다.

1990년대에 등장한 이런 '베를루스코니 연합 대 반베를루스코니 연합' 구도는 2000년대까지 계속 연장됐다. 이탈리아 정치는 점차 유럽식 다당 구도보다는 미국식 양당 구도에 가깝게 변해갔다. 심지어 2005년 총선 앞두고는 공산주의재건당까지 사실상 반베를루스코니 연합에 동참함으로써 이 구도가 더욱 굳어졌다. 좌파 쪽의 다양한 의제(노동시장 개악 반대, 여성들의 가부장제 비판, 이주민 인권 등)는 반(反)베를루스코니 대연합의 대의 아래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자 좌파민주당 안에서는 이런 현실에 맞춰 당명과 이념에서 '좌파'를 아예 떼어버리자는 주장이 나왔다. 로마 시장을 역임한 발터 벨트로니가 이런 입장을 대표했다. 벨트로니 역시 공산당 출신이지만, 베를루스코니를 이기려면 좌파민주당을 넘어서 올리브 동맹 전체를 하나의 당으로 묶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염두에 둔 정당 모델은 미국 민주당이었다. 이념 역시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을 따랐다. 이런 논의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민주진보'세력이 민주당으로 다 모여야 한다던 이른바 '빅텐트'론을 연상시킨다.

벨트로니는 이미 미국식 양당 구도로 나아가던 당시 이탈리아 정치의 논리를 솔직히 대변했다고 할 수 있다. 현실 정치만 염두에 둔다면, 설득력 있는 논리였다. 달레마 등이 이끌던 당 내 다른 분파들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서 좌파민주당을 유지하자는 쪽이었지만, 결국 벨트로니 노선에 휩쓸려갔다. 그래서 2007년 좌파민주당과 올리브 동맹 내 중도우파 세력이 통합하며 민주당이 출범했다. 좌파 강세라던 이탈리아 정치 지형은 돌연 자유민주당 왼편에 사회당 대신 민주당이 들어선 일본과 비슷해지고 말았다.

오성운동이 가로챈 좌파 혁신 기회

좌파민주당발 정계 개편은 공산주의재건당도 흔들었다. 이 당 소속으로 상원 의장을 맡고 있던 파우스토 베르티노티는 좌파 대중정당 재건을 바라는 이들을 결집하는 데 공산주의재건당이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민주주의부터 생태주의, 여성주의, 급진좌파까지 다 헤쳐 모이자는 것이었다. 이른바 '무지개 좌파' 노선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재건당 안에는 기존 노선을 고수하자는 흐름이 강했다. '무지개 좌파' 노선을 지지하는 당원들은 이에 맞서 탈당을 선택했다. 좌파 결집론이 오히려 공산주의재건당 분당을 낳은 셈이었다.

공산주의재건당 탈당파는 민주당 창당에 함께 하지 않은 몇몇 좌파 흐름들과 함께 '좌파/생태/자유'(SEL, 이하 '좌파생태자유당')를 창당했다. 2008년 총선에서 민주당 왼쪽의 어떤 세력도 원내 진출 하한선(3%)을 넘지 못했기에 좌파생태자유당은 원외 정당으로 출발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시기가 이탈리아 좌파에게 그냥 재앙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재앙의 한 쪽에서는 새로운 실험도 움트고 있었다.

새 실험의 중심에는 좌파생태자유당 창당 주역이자 당시 아풀리아(이탈리아 남부의 주) 주지사이던 니키 벤돌라가 있었다. 벤돌라는 좌파 안에서도 튀는 인물이다. 정치가이면서 시인이고, 공산당 출신이면서도 가톨릭 신자다. 또한 남부 출신으로서 남부 지역 사회를 좀 먹는 마피아 퇴치 운동에 앞장섰기에 마피아의 보복에 대비해 늘 경호를 받아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이런 그의 여러 얼굴 가운데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커밍아웃한 게이라는 사실이다.

성소수자라는 점은 기성 정치판에서는 약점이었지만, 벤돌라는 이를 오히려 매력으로 바꾸었다. 낡은 정치 문화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이 벤돌라에게 열광했다. 200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가 아풀리아 주지사 예비경선에서 거대정당 좌파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좌파 단일후보로 선출되자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니키의 공장'이라는 이름의 전국적 지지 모임이 결성됐다. 막 도입되기 시작한 소셜 미디어가 '니키의 공장'의 조직화 통로가 됐다. 스페인에서 포데모스가 출범하기 훨씬 전에 이탈리아에서 이를 예고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던 것이다.

좌파생태자유당을 둘러싼 이런 분위기는 이탈리아 좌파가 모처럼 자기 혁신을 감행할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좌파는 이 기회를 다른 세력에게 내주고 말았다. 좌파생태자유당 자체는 2013년 총선에서 원내 정당으로 성장했다. 당시 선거법이 거대 선거연합에 이로웠기 때문에 좌파생태자유당은 민주당과 선거연합('공동선')을 결성하는 길을 택했다. 덕분에 이 당은 3.2%를 득표하며 하원 37석, 상원 7석을 획득했다. 또한 하원의원 당선자 중 한 사람인 라우라 볼드리니가 하원 의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양당 구도에 유리한 선거 제도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겠다. 하지만 이 때문에 좌파생태자유당은 많은 이들에게 민주당의 하위 파트너로 비춰졌다. 민주당과 경쟁하거나 이를 대체할 정당으로 바라보지 않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베를루스코니 연합 대 반베를루스코니 연합'식 정치에 가장 식상해 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특히 그랬다.

이때 등장한 세력이 오성(다섯 별)운동이다. 정치 풍자를 주로 하는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와 인터넷 사업가 잔로베르토 카살레지오가 2009년에 결성한 이 정당은 좌와 우를 넘어서 기성 정치 전체에 맞선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을 내세우며 좌파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이민 반대를 외치며 극우파에 동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기성 양대 정당에 신물 난 정치 혐오층을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유럽 정계에 등장한 포퓰리즘 정당 가운데 오성운동은 좌우 구별이 가장 어려운 특이한 사례다.

이탈리아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은행-재정 위기에 빠진 남유럽 국가들 중 하나다.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과 마찬가지로 이 나라에서도 위기 원흉이자 긴축 정책 집행자인 기성 정치 세력들을 향한 불만이 끓어올랐다. 그러나 이 불만의 등에 올라탄 것은 좌파생태자유당이나 공산주의재건당 같은 급진좌파가 아니라 오성운동이었다. 급진좌파도 유로존 위기를 비판하기는 했지만, 오성운동은 아예 유로존 탈퇴를 선동했다(요즘은 이 입장을 철회했지만).

이런 식으로 바람을 일으킨 오성운동은 창당 4년만인 2013년 총선에서 25.5%를 득표하며 일약 제3당이 됐다. 이로써 이탈리아 정치의 양당 구도가 깨지고 3당 구도가 들어섰다. 스페인에서 포데모스가 기성 좌우 양당 구도를 깬 것처럼, 이탈리아에서는 오성운동이 다당 구도를 연 것이다. 다만 스페인에서는 이와 함께 좌파 정치 공간이 더욱 광범하고 다양해졌지만, 이탈리아는 그렇지 못하다. 좌파가 혁신과 도약의 기회를 놓친 결과는 너무도 뼈아팠다.

좌파 갱생의 두 시도 : '자유평등당'과 '민중에게 권력을'

이번 총선의 3강 구도에는 이러한 전사(前史)가 있다. 그런데 이걸로 이탈리아 좌파의 오랜 역사가 종지부를 찍었냐면,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다시금 기회가 열리고 있고, 이에 맞춰 새로운 도전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전망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올해 총선이 민주당의 위기 속에 실시된다는 데 있다. 2013년 총선으로 민주당이 집권했고, 당시 총리 후보는 당 내 사회민주주의 분파에 속한 피에르 루이지 베르사니였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마테오 렌치 총리가 2014년부터 민주당 주도 연립정부를 이끌었다. 렌치는 1975년생의 젊은 정치인이지만, 벨트로니 노선의 계승자로서 낡은 '제3의 길' 노선을 고수한다. 옆 나라 프랑스의 젊은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처럼 그도 유로화의 우산 아래서 기성 질서를 유지하는 데 골몰한다.

급기야 렌치가 베를루스코니 정부도 하지 못한 수준으로 노동법 개악(정리해고 요건 완화, 비정규 고용 확대 등)에 나서자 민주당이 폭발하고 말았다. 당 내 사회민주주의 경향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 중 상당수는 결국 탈당을 결행했다. 예전에도 이런 탈당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사회민주주의 경향의 대부인 달레마, 베르사니 등이 집단 탈당을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원의원 42명, 상원의원 16명에 이르는 탈당파는 '민주진보운동(MDP)'을 결성했다가 다시 작년 12월에 좌파생태자유당 그리고 민주당에서 먼저 탈당한 그룹들과 통합해 '자유롭고 평등한(LeU, 이하 자유평등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에 남아 있던 사회민주주의 경향과 좌파생태자유당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왼쪽 세력이 1991년 공산당 재창당 이후 처음으로 한 당에 모인 것이다.

신당의 대표이자 총리 후보는 상원 의장 피에트로 그라소가 맡았다. 그라소는 평생을 마피아와의 싸움에 바친 검사 출신이다. 72세의 노장이라 젊은 렌치와 대비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유평등당이 고령화된 조직은 아니다. 합당 전에 민주진보운동과 좌파생태자유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로베르토 스페란자, 니콜라 프라토야니 등은 모두 40대다. 총선 이후 이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자유평등당의 지지율은 6~7% 대다. 분명 3대 정당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3대 정당 이외 정치 세력 중에서는 가장 높은 지지율이다. 또한 노동운동 안에서 자유평등당 지지 여론이 만만치 않다. 이탈리아노동총연맹의 수산나 카무소 사무총장은 민주당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면서 자유평등당 지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아무튼 자유평등당의 탄생은 이탈리아 좌파 정치의 기나긴 여정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자유평등당의 등장은 영국에서 노동당 내 제러미 코빈 경향으로, 프랑스에서 장-뤽 멜랑숑 세력('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으로, 스페인에서 포데모스로 전개되고 있는 탈신자유주의 좌파의 결집이 이탈리아적 형태로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다.

실은 새 도전자가 자유평등당만은 아니다. 자유평등당과 동시에 출범한 연합정당 '민중에게 권력을(PaP)'도 있다. 이 조직에는 공산주의재건당, 트로츠키주의 정파, 이탈리아 각지의 사회센터들(민중의 집의 현대판)이 모여 있다. 공산주의재건당은 본래 자유평등당 건설 논의에 참여했지만, 달레마나 베르사니의 결합에 반대하며 따로 연합정당을 꾸리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에서 탈당한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비록 지금은 신자유주의와의 단절을 외치지만 그간 집권하면서 시장지상주의 정책을 도입한 책임이 있으니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민중에게 권력을'의 지지율은 1%대다. 그러나 당장의 지지율만으로 평가를 마칠 수는 없을 것 같다. '민중에게 권력을'은 활동가들의 평균 연령이 자유평등당보다도 훨씬 더 젊으며 참여 민주주의, 지식의 사회화 등을 놓고 훨씬 미래 지향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노동당 내 코빈 지지 운동인 '모멘텀', 프랑스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스페인의 포데모스는 자유평등당과 '민중에게 권력을'의 창당대회에 모두 대표를 파견해 연대의 인사를 전했다.

총선 이후 : 재선거냐 아니면 대연정이냐?

좌파 쪽의 재구성 작업이 장기화되자 이번 총선에서는 인종주의 극우파가 이들을 앞지르며 치고 나가는 모양새다. 지금 베를루스코니가 네 번째 집권을 꿈꾸는 것은 자신의 지지율이 늘어나서가 아니다. '가자 이탈리아'의 지지율은 늘 15% 선에 머물러 있다. 합쳐서 30%를 훌쩍 넘는 우파연합 지지율은 다른 두 정당, 북부동맹과 이탈리아형제단(FdI) 덕분이다.

북부동맹은 한때 좌파 사회센터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젊은 지도자 마테오 살비니(1973년생) 아래서 반이민 선동 중심의 파시스트 정당이 돼가고 있고, 이탈리아형제단(당명과는 달리 대표가 여성이다)은 진짜 파시스트 정당이다. 만약 우파연합이 압도적 1위를 기록해 베를루스코니가 단독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면, 이들 파시스트가 입각하게 되는 셈이다. 오스트리아처럼 이탈리아에도 파시스트가 포함된 정부가 들어설 것인가?

아직 그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지지율 추이를 보면, 3대 정파 중 어느 쪽도 크게 앞서지 못하는 선거 결과가 예상된다. 지금으로서는 민주당, 우파연합, 오성운동 모두 상대방과 대연정을 하지는 않겠다고 하기 때문에 아마도 재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재선거를 한다고 세력 균형이 크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만약 대연정을 수립하게 된다면, 베를루스코니가 북부동맹이나 이탈리아형제단을 버리고 민주당과 공동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복잡한 정치 지형에서 두 세력만이 유로존 질서에 충성을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럽연합 엘리트들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오로지 현상 유지만을 위한 이러한 선택은 이탈리아 사회의 불만을 더욱 자극해 더 큰 정치 위기를 낳게 될 것이다.

자유평등당과 '민중에게 권력을'로 나타나고 있는 좌파 혁신과 재편 시도는 이 위기의 시간을 재빨리 대안을 벼릴 기회로 만들어야만 한다. 이미 몇 차례 기회를 놓쳐 버렸기에 더는 후퇴할 수 없다. 마치 1920~1930년대 유럽처럼 좌파의 대안과 파시즘의 대안이 벌이는 속도전이 지금 이탈리아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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